中國 최대명절 춘제 역사 9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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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12-01-24 20:27|본문
中 최대명절 춘제 역사 99년
중국의 최대 명절 춘제(春節)는 중국인들조차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것으로 여기고 있으나 실상 지금과 같은 명절로 자리 잡은 것은 99년의 역사에 불과하다.
성도일보(成都日報)는 24일 중국과학원 쯔진산(紫金山)천문연구소 왕쓰차오(王思潮)연구원을 인용, 중국에서 음력 정월 초하루를 춘제로 명명, 새해를 맞이하는 명절로 삼은 건 1914년부터였다고 보도했다.
왕 연구원에 따르면 중국에 춘제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은 한(漢)나라 시기였다. 그러나 당시의 춘제는 24절기 가운데 하나인 입춘(立春)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위진남북조시대에 이르러서는 춘제가 봄의 계절(春季)을 지칭하는 것으로 의미가 확장됐다.
춘제를 쇠는 날도 지역마다 달라 음력 정월 초하루나 섣달 초하루, 11월 초하루, 10월 초하루 등 제각각이었다.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새해를 맞는 우리 민족의 설에 해당하는 명절의 명칭은 춘제가 아니라 위안단(元旦)이었다.
춘제가 음력 정월 초하루의 새해맞이 명절로 규정된 것은 신해혁명(辛亥革命) 이후의 일이었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淸)왕조를 타도하고 권력을 장악한 위안스카이(袁世凱)가 1913년 7월 내무총장의 건의를 받아들여 춘제와 단오, 중추절, 동지 등 4절기를 4대 명절로 정하면서 춘제가 위안단을 대체하는 정월 초하루 명절의 명칭이 됐다.
위안스카이는 4대 명절을 공휴일로 지정하면서 위안단으로 불렸던 정월 초하루를 춘제로 명명하고 1914년부터 이를 시행했다. 따라서 정월 초하루 명절인 춘제를 쇤 것은 올해를 포함해 99번째에 불과하다는 것이 왕 연구원의 설명이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건립되고 그해 9월 열린 제1기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체회의에서 양력을 채택하면서 양력 1월 1일은 위안단, 음력 정월 초하루를 춘제로 명명, 춘제가 지금의 중국 최대 명절로 확실하게 굳어졌다.
이후 점차 쉬는 날이 늘어 지금은 공식적으로 일주일을 쉬게 됐으며 심지어 동부연안에서 일하는 서부지역 출신 농민공들은 40일 가까운 휴가를 받아 귀향해 1년동안 만나지 못했던 가족들을 상봉하는 기회로 삼는다.
춘제 하루 전인 섣달 그믐날부터 악귀를 쫓는 폭죽놀이도 시작된다. 폭죽놀이 등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궈녠(過年)' 의식은 보름간 계속되기 때문에 중국인들은 정월 대보름을 쇠고서야 일상으로 복귀한다.
중국의 최대 명절 춘제(春節)는 중국인들조차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닌 것으로 여기고 있으나 실상 지금과 같은 명절로 자리 잡은 것은 99년의 역사에 불과하다.
성도일보(成都日報)는 24일 중국과학원 쯔진산(紫金山)천문연구소 왕쓰차오(王思潮)연구원을 인용, 중국에서 음력 정월 초하루를 춘제로 명명, 새해를 맞이하는 명절로 삼은 건 1914년부터였다고 보도했다.
왕 연구원에 따르면 중국에 춘제라는 용어가 등장한 것은 한(漢)나라 시기였다. 그러나 당시의 춘제는 24절기 가운데 하나인 입춘(立春)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위진남북조시대에 이르러서는 춘제가 봄의 계절(春季)을 지칭하는 것으로 의미가 확장됐다.
춘제를 쇠는 날도 지역마다 달라 음력 정월 초하루나 섣달 초하루, 11월 초하루, 10월 초하루 등 제각각이었다.
중국에서 전통적으로 새해를 맞는 우리 민족의 설에 해당하는 명절의 명칭은 춘제가 아니라 위안단(元旦)이었다.
춘제가 음력 정월 초하루의 새해맞이 명절로 규정된 것은 신해혁명(辛亥革命) 이후의 일이었다.
1911년 신해혁명으로 청(淸)왕조를 타도하고 권력을 장악한 위안스카이(袁世凱)가 1913년 7월 내무총장의 건의를 받아들여 춘제와 단오, 중추절, 동지 등 4절기를 4대 명절로 정하면서 춘제가 위안단을 대체하는 정월 초하루 명절의 명칭이 됐다.
위안스카이는 4대 명절을 공휴일로 지정하면서 위안단으로 불렸던 정월 초하루를 춘제로 명명하고 1914년부터 이를 시행했다. 따라서 정월 초하루 명절인 춘제를 쇤 것은 올해를 포함해 99번째에 불과하다는 것이 왕 연구원의 설명이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건립되고 그해 9월 열린 제1기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체회의에서 양력을 채택하면서 양력 1월 1일은 위안단, 음력 정월 초하루를 춘제로 명명, 춘제가 지금의 중국 최대 명절로 확실하게 굳어졌다.
이후 점차 쉬는 날이 늘어 지금은 공식적으로 일주일을 쉬게 됐으며 심지어 동부연안에서 일하는 서부지역 출신 농민공들은 40일 가까운 휴가를 받아 귀향해 1년동안 만나지 못했던 가족들을 상봉하는 기회로 삼는다.
춘제 하루 전인 섣달 그믐날부터 악귀를 쫓는 폭죽놀이도 시작된다. 폭죽놀이 등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궈녠(過年)' 의식은 보름간 계속되기 때문에 중국인들은 정월 대보름을 쇠고서야 일상으로 복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