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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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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2-03-26 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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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은 사회주의 국가인가?  
 
 
누군가 말했다. “아시아에 두 가지 불가사의가 있다. 하나는 중국이 사회주의를 택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한민국이 자본주의로 성공한 것이다.”

중국인들은 대체로 부(富)를 숭상하는 경향이 있다. 부자를 시기 질투하지 않고, 오히려 어떻게든 부자가 되지 못해 안달이다. 특정인이 부자가 된 배경을 시시콜콜 트집 잡는 경우도 별로 없다. 중국의 식당이나 슈퍼마켓, 미용실, 목욕탕, 금은방 같은 곳에 가보면 입구에 관우(關羽)상을 모셔놓고 간단한 제물과 함께 향을 피워놓은 모습을 흔히 발견할 수 있는데,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를 중위국인들은 재신(財神)으로 여긴다. 관우를 잘 모시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편으로 중국인들은 단결력이 약하고 다소 이기적이다. 오죽했으면 중화민국의 창시자 쑨원(孫文)이 “모래알 같은 중국인들”이라고 한숨을 쉬었겠는가. 그런 중국인들이 사유재산을 부정하고, 만민평등과 인민대단결을 기치로 내건 ‘사회주의’의 길을 택했다. ‘부자=역적’이라는 이념을 받아들인 것이다. 불가사의한 일이다.

반대로 한국인들은 평등의식이 강하다. 내가 부자가 되고는 싶어도 남이 부자가 되는 것은 질투하고, 부자들은 대체로 부정과 협잡으로 그렇게 되었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 또한 많다. 오죽했으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까지 있었겠는가. 한편으로 한국인들은 응집력이 강하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든지 ‘코리안타운’을 형성하며 하나로 뭉치고, 월드컵 길거리 응원이 보여주듯 모두가 똑같은 색깔의 옷을 맞춰 입고 거리로 쏟아져 나와 ‘대한민국’을 외치며 하나됨에 감격한다. 그런 한국인들이 자율경쟁, 능력위주, 적자생존의 자본주의 국가가 되었다. ‘부자=지존’의 길을 택한 것이다. 역시 불가사의한 일이다. 

어쩌면 한국과 중국이 서로 뒤바뀌었으면 딱 맞을 일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자본주의, 중국은 사회주의 노선을 선택했다. 신기한 일이다. 그러나 여기서 생각해보자. 과연 오늘의 중국은 사회주의 나라가 맞는가? 과거에는 사회주의였을까? 엉뚱하게 캐물어보자면, 그러는 한국은 자본주의 국가가 맞는가? 사회주의란 무엇이며 자본주의란 또 무엇인가? 아니, 이제와 자본주의 - 사회주의를 구분하여 이야기하는 일이 현실적인 의미가 있기나 한 것일까? 

▮ 사회주의 VS 자본주의

대한민국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로 시작한다. 중국 헌법은 ‘중화인민공화국은 노동자 계급이 영도하고, 공농연맹을 기초로 하는 인민민주 전제정치의 사회주의 국가’라고 제1조의 문을 열고 있다. 중국은 이렇게 분명하게 사회주의 국가를 표방하고 있다.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사람들은 혼란에 빠진다. 도대체 무엇이 ‘사회주의’라는 거야? 중국에 수년을 살면서도 왜 중국을 ‘사회주의’ 국가라고 부르는 것인지 제대로 느끼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쉽게 이야기한다. “중국은 사회주의가 아니다, 자본주의다.” “아니, 자본주의보다 더 자본주의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머리가 좀 아프겠지만, 그래서 일단은 간략하게라도 사회주의가 무엇이고 자본주의가 무엇인지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 사회주의

사회주의를 쉽게 이해하기 위해, 자본주의와 비교하지 말고, 우선 공산주의와 비교해보자. 공산주의는 인간의 모든 소유관념이 사라진 이상사회다. 쉽게 말해 ‘네 것 내 것’이 없는 사회다. 사회주의는 그러한 공산주의로 나아가는 ‘과도기’이다. 

공산주의가 필요한 만큼 원하는 대로, 생산의 결과물을 자신의 양심껏(?) 가져가는 사회라면, 사회주의는 노력한 것만큼 정당하게 가져가는 사회다. 공산주의 세상에는 착취자도 없고 피착취자도 없다. 모두가 평등하고, 모두가 소유한다. 모두가 자유롭다. 사회주의는, 이러한 공산주의로 가기 위해서, 우선은 국가가 모든 것을 몰수하고 계획하고 통제해서 인민들에게 균등하게 나누어주는 사회다. 당분간은 자유도 통제한다. 반동 자본가세력들이 호시탐탐 언제든지 들고 일어날 수 있으니까, 당연히 노동자 계급이 권력을 독점해야만 한다. 우리 프롤레타리아 계급이 독재를 잘 하여 사회가 완전하게 평온을 되찾았을 때에야 너희 부르조아지들에게 자유를 주리라. 그것이 사회주의다. 

그래서 사회주의는 네 가지 특징으로 정리된다. ▲사회주의는 공산주의로 나아가는 과도기로써 ▲공장이나 토지 등 일체의 생산수단을 국유화(國有化)하고 ▲노동자계급이 정권을 장악하여(유식한 말로 ‘계급독재’), ▲철저한 계획경제로 사회를 운영한다.

● 자본주의

흔히들 자본주의는 ‘시장경제’라고 이야기한다. ‘시장을 통해 가격이 결정되는 경제’라고 풀이하는 것이 맞겠다. 국가가 가격을 결정하고 통제하는 사회주의와 대비되는 운영의 원리다. 그리고 자본주의를 ‘자율경제’ 또는 ‘자유경제’라고 부른다. 생산자와 소비자, 판매자와 구매자, 모든 경제주체들이 자신의 필요에 따라 시장에 참여하고, 서로의 자유로운 합의에 따라 거래가 이루어지며, 각자의 판단에 따라 생산을 하고 소비를 하는 그런 경제라는 말이다. 이 또한 국가에서 생산량과 품목을 결정하고, 생산된 제품을 인민들에게 배급하듯 나누어주는 사회주의와는 상당히 다른 개념이다. 

그래서 자본주의의 특징 또한 4가지로 정리할 수 있겠다. ▲자본주의는 다른 무슨 사회로 넘어가기 위한 과도기적 사회가 아니라 자본주의 자체가 지향점이자 완결점이라고 볼 수 있으며 (이에 대해서는 견해를 달리하는 사람들도 있다.) ▲공장이나 토지 등 생산수단은 물론이고, 그렇게 하여 생산된 제품 등 일체의 재화(財貨)에 대한 개인적인 소유(사적소유)를 바탕으로 하고, ▲시장을 통해 가격이 형성되고 사회가 발전하며, ▲여기에 덧붙이자면 사적소유와 시장을 통한 자유로운 거래를 법과 제도로써 보장해준다. 

 

▮‘사유재산’으로 나아가는 두 걸음

이론적인 이야기는 일단 여기서 잠시 멈추고 오늘의 중국을 돌아보자. 사회주의에 가까울까, 자본주의에 더 가까울까? 우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를 구분하는 가장 큰 특징 가운데 하나라고 하는 ‘사유재산’의 측면에서 살펴보자. 2007년과 2008년, 사유재산 문제와 관련하여 중국에 잇따라 벌어진 두 개의 풍경이 오늘을 말해준다. 

● 물권법(物權法)

한국의 국회에 해당하는 중국의 입법기관은 ‘전국인민대표대회’다. 줄여서 ‘전인대’라고 부른다. (사실 전인대는 한국의 국회와는 그 위상이나 역할에 약간의 차이가 있다. 그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이야기하자.) 한국 국회의원들의 임기가 4년인 반면, 전인대 대표들의 임기는 5년이다. 1954년 처음 소집되었던 전인대를 ‘제1기’로 셈하기 시작하여, 임기 5년을 단위로 2기, 3기, 4기 전인대 하는 식으로 부른다. 2003~2007년의 전인대는 10기 전인대였다. 

2007년 3월, 전인대 10기 5차 회의가 열렸다. 전인대가 매년 한 번씩 열리기 때문에, 5년의 임기 가운데 첫 해에 열리는 전인대를 ‘1차 회의’라 부르고, 마지막 해에 열리는 전인대는 ‘5차 회의’라고 부른다. 10기 전인대 대표들의 임기가 끝나는 마지막 5차대회의 마지막 날에 ‘물권법’이 통과되었다. 이것 때문에 세계 언론이 떠들썩했다. 

물권법이라 하면, 물권(物權) - 즉 재화(物)의 권리관계(權)를 규율하는 법이다. 세계 어느 나라나 흔하게 갖고 있는 법이다. 그런데 왜 중국이 만들어 떠들썩했을까? 중국이 아직까지는(!) ‘사회주의’를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살펴보았듯 사회주의는 모든 재산을 ‘국가’가 소유한다. 개인의 소유는 있을 수 없다. 그런데 물권법은 본질상 ‘개인의 소유’를 규정하는 법이다. “드디어 중국이 완전한 자본주의의 길로 한걸음 성큼 다가서게 되었다”고 언론들이 호들갑을 떨만도 하다. 

물권법이 제정되기 이전 중국의 소유개념을 단적인 예를 들어 살펴보자. 중국에서 집을 살 때, 한국인들은 당연히 ‘소유한다’고 말하겠지만, 중국인들은 엄밀하게는 ‘사용한다’고 보아왔다. 중국의 주택등기부에는 희한하게도 ‘사용기간’이라는 것이 적혀 있다. 주택의 경우에는 사용기간이 70년이다. 상가는 40년, 공장은 보통 50년이다. 가지면 그냥 갖는 것이지 ‘사용’한다는 건 또 뭘까? 게다가 70년? 보통 일러야 20~30대의 나이에 주택을 구입할 테니, 사용기간이 70년이면 90살, 100살까지는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러면 죽을 때까지 소유하는 것이나 마찬가진데 왜 쓸데없이 ‘사용기간’이라는 것을 두었던 것일까? 의아하게 생각할 사람이 많겠지만, 그것이 중국이었다. 모든 재산은 국가의 소유라는 사회주의 개념을 지키기 위해, 주택 또한 국가가 개인에게 ‘빌려주는 것’ 정도의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따라서 이론적으로는, 70년 후에는 국가에 돌려주어야 하는 것이다. 전인대 10기 5차회의에서 통과된 <물권법>은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국가, 집체, 개인의 물권 및 기타 권리인의 물권은 법률 보호를 받으며 어떤 단위 혹은 개인이 침범할 수 없다.” (중화인민공화국 물권법 제4조)

물론 현재 중국 헌법에도 “공민의 합법적 사유재산은 침해받지 않는다(제13조)”라고 사유재산에 대한 권리를 언급하고는 있다. 하지만 그에 앞선 12조에 “사회주의 공공재산은 신성불가침”라고 되어 있어, 이 둘이 상충할 때에는 무엇이 우선인지 분명치 않았다. (사실은 13조의 헌법 조항도 2004년에야 생겼다.) 물권법 제정으로 사유재산의 우선권, 안정성의 개념이 더욱 명징해진 것이다. 

물권법이 제정된 이후에도 ‘사용기간’이라는 것은 남아있지만, 사용기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연장이 되도록 만들어놓았다. 70년, 140년, 210년……. 그러니까 사용기간의 의미가 완전히 없어졌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상속도 가능하고, 매매와 저당도 가능하다. 오롯한 ‘자기 재산’인 것이다. 그러면 아예 사용기간을 없애버리면 될 텐데……. 아마도 그것은 사회주의 중국의 마지막 자존심(?)이 아닐까 싶다. 

대표적으로 주택을 예로 들어 이야기했지만, 여하튼 물권법의 제정으로 ‘사유재산을 인정하지 않고, 국가가 소유한다’는 사회주의의 첫 번째 특징은 상당히 무너져버렸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중국의 극좌파들이 물권법 제정을 오래도록 반대해왔으며, 1993년 초안이 작성되었던 법이 2002년에야 상임위 심사를 시작하였으며 2007년에 비로소 통과되었다. 장장 14년에 걸친 투쟁(?)의 결과다. 그래도 표결을 할 때는 압도적이어서, 표결에 참가한 전인대 대표 2888명 가운데 2799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기권 37표, 반대는 52표에 불과했다. 물권법이 전인대를 통과되던 날, 전인대 상무위원 류허장(劉鹤章)은 이렇게 말했다. “이를 계기로 중국이 사회주의냐 자본주의냐 하는 논쟁은 끝났다.” 의미심장한 말이다. 

● 토지경작권 거래

2008년 10월에 열린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또 하나의 의미있는 결정이 내려졌다. 농민들이 토지경작권을 매매하거나 양도할 수 있도록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주택의 ‘사용기간’과 엇비슷하게 중국은 농토(農土)에도 ‘경작권’이라는 개념이 있다. 공식적으로는 토지승포경영권(土地承包經營權)이라고 부르는데, 풀이해보자면 국가로부터 토지를 승포(承包 ; 책임을 지고 떠맡다)받아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권리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막 성립되었을 때, 중국 인민의 80~90%는 농민이었다. 자본가 계급을 타도하고 노동자들의 새세상을 만든다는 정통 사회주의 이론과는 달리, 중화인민공화국은 농민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농업 사회주의’ 국가였다. 공산당이 토지개혁에 가장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것도 나름의 사회주의 방식대로, 국가에서 모든 토지를 몰수하여 농민들에게 나누어주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한 과정에 초급합작사니, 고급합작사니, 인민공사니, 3급소유제니 하는 세계 역사에 길이 남을 헛발질도 몇 차례 했다.) 보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가지라고 주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서 농민에게 ‘빌려주는’ 것이다. 농업용 토지의 승포 기간은 30년이다. 초지(草地)의 경우에는 최대 50년, 임지(林地)는 70년까지 승포가 이루어진다. 

그런데 물권법의 제정으로 약간 시끄러울 일이 생겨났다. 주택용 토지에 대해서는 사용기간이 종료되어도 자동으로 연장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매매, 상속, 저당까지 가능하도록 함으로써 완전한 사유재산으로 인정해주었다. 반면 농업용 토지는 그러한 권리를 전혀 누릴 수 없다. 승포 기간이 끝나면 당국의 허가를 받아야만 연장할 수 있고, 매매나 상속 같은 것은 꿈도 꾸지 못한다. 농지 또는 경작권을 담보로 돈을 빌릴 수도 없다. 이런 불공평한 경우가 어디 있는가. 물론 자기 노력으로 구입한 주택과 국가로부터 승포받은 농지가 똑같은 재산 개념으로 취급받을 수는 없다. 그래도 중국공산당의 입장에서는 농민들을 위해서도 무엇이든 당근 하나를 던져주어야 할 상황이다. 그렇다고 하여 중국 전체 면적의 60~70%를 차지하는 농지, 초지, 임지까지 갑작스레 사적소유를 인정해버리면 그 파장 또한 만만찮을 것이다. 당신이 중국공산당 중앙위원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여기서 잠깐 중국 농민 문제의 일면을 들여다보자. 사실 중국에서 농민은 상당히 차별받는 계층이다. 한국의 호적(戶籍)을 중국에서는 후커우(户口, 호구)라고 부르는데, 이 후커우를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일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농촌에 후커우를 둔 사람이 도시로 후커우를 옮겨가는 일은, 과거에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한번 농민은 영원한 농민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중국에는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다”고까지 말하기도 하지만, 알다시피 중국의 많은 농민들이 도시로 나와 일하고 있다. 다만, 몸은 도시에 있으되 후커우는 여전히 농촌에 있을 뿐이다. 이들을 농민공(農民工)이라고 부른다. 

중국에서는 노동자를 공인(工人)이라고 한다. 그래서 농민공이라 하면 ‘농민 + 공인’ - 농민도 아니고 노동자도 아니거나, 농민이기도 하고 노동자이기도 한, 그런 애매한 사람들이다. 후커우는 농촌에 두어 국가로부터 승포받은 토지도 있는데, 농사로는 수입이 변변치 않으니 도시에 올라가 노동자로 일한다. 아주 엄밀히 따지자면 불법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 불이익이 있을 수밖에 없다. 도시에서 번듯한 직장을 찾을 수가 없으니 대다수가 공장이나 건축현장의 단순 육체노동자로 일한다. 어렵게 돈을 모아 도시행 기차에 올랐고, 쉽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농민공들의 처지를 고용주들이 익히 알고 있기 때문에 노동조건 또한 매우 열악하다.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농촌 총각과 결혼하려는 도시 처녀를 만나기도 쉽지 않을 뿐더러, 농민공들끼리 결혼하여 자식이 태어나면 다른 무엇보다 교육문제가 애매하다. 농촌에 후커우가 있기 때문에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서는 도시 학교에 입학하기 어렵다. 따라서 후커우를 도시로 옮겨와야 하는데, 도시에 주택을 구입하거나 회사를 차려야만 후커우 이전을 승인해준다. 도시에서 막노동을 하면서 그 정도의 재력을 갖춘 농민공 부부가 몇이나 될까? 씁쓸한 이야기지만, 결국 농민의 자식은 대를 이어 농민이 되어야만 하는 셈이다. 생때같은 자식을 농촌의 늙은 부모에게 맡겨놓고 도시로 올라와 고생하는 젊은 농민공 부부의 애절한 사연들이 때때로 중국 방송매체의 전파를 13억 인민의 심금을 울린다. (물론 중국 언론은 이것을 자극적으로 보도하지는 않는다. 잔잔한 휴먼 다큐쯤으로 제작하여 열심히 살아가자는 의욕을 고취시키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중국 정부의 통계에 따르면, 현재 중국 대륙의 농민공 숫자는 2억 명가량으로 추정된다. 농민 전체 인구가 8억 명이니 1/4가량이 도시로 빠져나와 있는 셈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앞으로 중국공산당이 풀어나가야 할 숙제를 이야기할 때, 농민공 문제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래서 호구제를 폐지하자는 주장까지 서서히 제기되고 있지만, 급격한 실현가능성은 희박하다. 지금 이렇게 통제를 하여도 농촌 인구가 도시로 밀려드는 현상을 막을 수가 없는데, 호구제까지 폐지하면 어떻게 될 것인가? 비록 강제적이고 불공평한 측면이 많긴 하지만, 중국공산당으로서도 고민이 많을 것이다. 아마도 점진적인 개선의 방향을 검토하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자, 그럼 원래 농촌에 있어야할 농민공들의 ‘승포받은’ 토지는 뭘 하고 있을까? 다른 사람에게 경작을 부탁하고 오거나, 혹은 불법이긴 하지만 금전적인 거래를 통해 빌려주고 오거나, 집안의 노인들이 떠맡고 있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그냥 버려진 채 황무지로 남아있을 것이다. 물권법이 통과할 때에 도시에서는 ‘만세’ 소리가 울렸겠지만, 농촌에서는 그렇잖아도 이런저런 차별이 서러운 마당에 ‘대체 우린 뭐야?’하는 탄식과 불만의 목소리가 높았을 것이다. 

그래서 2008년 10월 중국공산당 중앙위원들의 결정사항은 이렇다. 어차피 토지경작권의 거래가 암암리에 이루어지고 있는 마당에, 아예 주택용 토지처럼 경작권도 매매가 가능하도록 만들어버리자는 것이다. 대신 그러한 결정이 농업에 미칠 충격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경작권 매매는 농민들 사이에서 농업용으로만 가능하도록 하고, 도시 사람들에게는 경작권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단서조항을 둘 것이라 한다. 

중국공산당이 이렇게 결정하였다고 이것이 곧바로 현실화되는 것은 아니다. 중국 헌법 서문에 ‘중국공산당의 영도’를 명시하고는 있지만, 어쨌든 형식상으로는 전인대가 최고권력기관이고, 전인대에서 구체적인 입법절차를 거쳐야만 토지경작권의 공식 거래도 가능하게 된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언제 어떻게 이루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농업 사회주의’의 골간을 이루었던 농지의 국가소유 개념까지 폐기될 전망인 것만은 확실하다. 도시에서의 사적소유가 중국 전체의 사적소유로 확대되는 셈이다. 현재 몇 개 농촌지역에서 경작권 거래가 시범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개혁위로 바뀐 계획위

중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주택을 자유롭게 구입하게 될 수 있게 된 것도 어쩌면 최근의 일이다. 2002년 9월 1일 베이징에서부터 시작하였고, 지금은 중국 어디 도시에나 외국인도 자기 주택과 사무실을 구입할 수 있다. 그때에 가장 앞서 주택을 구입했던 어느 한국인 사업가는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말했다. “집을 사도 이것이 영원히 내 것이라는 보장이 있었어야 말이지…….”

사실이 그랬다. 외국인들의 시각에서는 ‘중국 = 사회주의 = 국가소유’라는 선입견이 강하였기 때문에 혹시나 갑작스레 개혁개방 정책이 바뀌어 중국 내에서의 자기 재산이 몰수되는 것은 아니냐는 불안감까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불안이 싹 사려졌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부자들의 주택구입 붐이 일어나면서 부동산 거품이 심해지자 외국인들은 1인당 1주택만 구입이 가능하도록 하고, 대출한도도 크게 낮추고, 일정한 기간 이상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들만 구입할 수 있도록 주택정책이 바뀌어가고는 있지만, 적어도 ‘몰수될 수도 있다’는 걱정은 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물권법 때문에 그렇다. 

이렇게 사유재산에 대한 보호조치가 강화되었다고 하여 중국은 완연한 자본주의 국가가 된 것일까? 사적소유에 대한 정책의 변화만으로 사회주의 노선을 완전히 버렸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사회주의의 또 다른 특징 가운데 하나인 계획경제의 측면을 들여다보자.

과거 중국에 ‘국가계획위원회’라는 정부 기구가 있었다. 사회주의 국가들은 대체로 이러한 계획위원회를 둔다. 옛 소련에도 있었고, 지금 북한에도 있다. 말 그대로 ‘계획’을 수립하는 곳으로, 사회주의 경제의 핵심사령탑 역할을 담당하는 부서다. 1952년 중국에 국가계획위원회가 처음으로 생겨났을 때, 덩샤오핑(邓小平), 펑더화이(彭德怀), 린뱌오(林彪), 펑전(彭真) 등 권력서열 최상층의 쟁쟁한 인물들이 위원으로 포함되어 있는 것만 보아도, 이 기구가 얼마나 높은 위상을 갖고 있었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국가계획위원회’라는 조직은 없다. 완전히 없어진 것인가? 아니다. 이름만 바꿨다. 1998년에 ‘국가발전계획위원회’로 이름을 바꾸었다가, 2003년부터는 ‘국가발전과 개혁위원회’라고 부르고 있다. ‘계획’을 떼어내고 굳이(?) ‘개혁’으로 바꾸어버린 대목이 흥미롭다. 

‘국가발전과 개혁위원회’는 줄여서 ‘발개위’라고 부른다. ‘계획위원회’로부터 ‘개혁위원회’로 이름은 바뀌었어도, 발개위는 여전히 중국 사회를 이끌어가는 브레인이자 종합적인 컨트롤 타워의 역할을 담당한다. 국가경제의 중장기 계획, 연도별 발전계획을 수립하여 발표하고, 금융 ․ 물가 ․ 환율정책 등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며, 외국 자본의 이용전략과 산업비율의 조정 역할까지 담당한다. 

중국 신문을 며칠만 꾸준히 살펴보면 ‘발개위’라는 명칭이 빈번하게 등장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발개위의 발표에 따르면…”, “발개위가 내놓은 계획에 따르면…”, “발개위가 공개한 통계에 따르면…”. 신문을 보고 있노라면 ‘중국에는 발개위라는 조직밖에 없나?’라는 생각이 드는 날도 있다. 10~20년후 GDP 목표치나 금년도 물가인상률, 위안화 절상의 폭 같은 것은 물론이고, 몇 월 며칠부터 의약품 가격을 몇 %내린다, 기름 가격은 몇 % 올린다, 심지어는 호적제도를 폐지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문제와 휴대전화 로밍요금을 인하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발개위가 발을 걸치지 않는 영역이 없다. 

2012년 현재 발개위 산하에는 28개 부서가 설치되어 있는데, 여기에는 정책연구실, 발전규획사, 가격사, 지역경제사는 물론이고(중국에서 사(司)는 한국의 국(局)에 해당한다), 자원절약과 환경보호사, 기후변화사, 취업과 수입분배사, 교육 ․ 문화 ․ 육아 ․ 위생 ․ 체육문제 등을 다루는 사회발전사까지 두고 있다. 단순히 경제담당 부서가 아니라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모든 분야를 빠짐없이 아우르는, 참으로 오지랖이 넓은 위원회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발개위의 존재 사실을 두고 “중국은 여전히 계획 경제다, 그러니 사회주의다”라고 말할 수가 있을까? 그렇게 따지면 한국도 사회주의다. 발개위의 오지랖에는 비할 바가 아니지만, 한국에도 ‘기획재정부’가 존재하여 각종 경제지표를 종합하여 목표치를 결정하고 조정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지 않은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세우고, 매년 매분기 경제목표를 제시하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시장개입도 하고, 때로는 물가나 소비, 개발에 대해 강력한 통제정책을 펼치기도 한다. 

따지고 보면, 정부의 계획이나 개입이 없이 완벽하게(?) 시장경제의 원리에 따라 움직이는 나라는 없지 않은가. 문제는 어느 정도 계획과 개입을 하느냐 하는 것인데, 그렇게 보면 중국보다 더욱 사회주의적인 자본주의 국가가 세상에 많고 많을 것이다. 결국은 계획이나 개입이 사회주의-자본주의를 구분하는 특징이 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앞서 말한 전제조건 자체가 부정되는 것이다. 여기서 잠깐 덩샤오핑 옹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 자본주의에도 계획 있고, 사회주의에도 시장 있다

1980년대 중후반부터 중국공산당 지도부 사이에 ‘성자성사(姓資姓社)’라는 논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도대체 우리 중국의 성(姓)씨는 자본주의 자(資)냐, 사회주의 사(社)냐는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중국은 자본주의로 가고 있는 것이냐, 사회주의로 가고 있는 것이냐 하는, 공산당 보수파들의 입장에서는 위태롭기 짝이 없는 국가정체성에 대한 자문(自問)이었다. 

더구나 그때에는 개혁개방과 함께 서구 문화가 서서히 중국 인민들의 틈바구니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여자들이 굽 높은 구두를 신고 립스틱을 바르고 치마의 길이도 짧아졌다. 사람들의 옷차림이 점차 다양해지기 시작하고, 서구음악과 영화, 서적이 빠르게 번져나가고, 급격히 늘어난 언론매체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들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1986년 말부터는 학생시위가 전국 각지에서 빈번하게 일어났다. ‘자본주의 황색 바람’에 대한 보수파들의 걱정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당시 중국 사회의 풍경을 영국인 던컨 휴잇은 이렇게 회고한다. 던컨 휴잇은 1986년부터 중국 유학생을 시작하여 BBC 베이징 특파원 등을 지냈다. 

“특히 1980년대 후반기에는 지적인 갈망이 커지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우연히, 조직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도입되기는 했지만, 중국인들은 새로워 보이는 모든 것에 열광하기 시작했다. 오래전에 제작된 <로마의 휴일> 같은 영화들을 극장에서 상영할 수 있게 되자, 전국 극장에서 외화를 보는 일이 가능해졌다. 또한 지식인 계층은 장 폴 사르트르의 실존주의에서 조지 마이클과 웸에 이르기까지 외국 문화의 모든 것에 대해서 논할 수 있게 되었다! 정부의 강요로 재미없는 마르크스 레닌주의만 공부해야 했던 학생들은 대학 기숙사에서 매일 밤 댄스파티를 열곤 했는데, 오랫동안 외설적이고 부르주아적인 것으로 금기시했던 왈츠와, 드물게나마 현대적인 영화가 상영되고 난 후에 들어온 브레이크 댄스처럼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춤들을 같은 파티에서 추곤 했다. 이러한 변화 앞에서 중국 고위층 보수 진영들뿐 아니라 상당수 중국인들은 외국 사상이 초대할 후유증에 대해서 여전히 깊은 우려를 표명하고 있었다.” (던컨 휴잇, 「선부론」, 랜덤하우스코리아)

나중에 자세히 소개하게 될 1989년의 천안문 사태, 그리고 사회주의 종주국 소련의 붕괴와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잇따른 체제전환으로 보수파들의 걱정과 우려는 극에 달했다. 화평연변(和平演變)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서방국가들이 자본주의를 서서히 유입시켜 평화적으로(和平) 중국을 붕괴하려(演變) 시도하는 것 아니냐, 그것에 휘말리지 말자는 주장이다. 개혁개방파들의 입지는 한껏 줄어들었다. 

이러한 때에 덩샤오핑은 남쪽으로 가는 기차에 올랐다. 1992년 1월 18일의 일이다. 당시에 덩은 그나마 갖고 있던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까지 후계자에게 물려주고, 외형상으로는 정계에서 은퇴한 상태였다. 덩샤오핑은 때때로 추운 겨울을 피하여 남쪽에서 휴가를 보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번에도 ‘영감님이 좀 쉬러 가시나 보구나’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이 유명한 남순강화(南巡講話) - 중국 개혁개방의 역사에 또 하나의 획을 그어놓는 연설의 모티브가 되었다. 

2월 22일까지 한 달이 넘는 기간동안 우창(武昌), 선전(深圳), 주하이(珠海)를 거쳐 상하이(上海)를 둘러보는 것으로 여행을 마감하였는데, 이때 덩샤오핑의 발언을 연설문으로 엮어서 남쪽을(南) 돌아보며(巡) 했던 연설(講話)이라 하여 ‘남순강화’라 부른다. 연설의 핵심인즉, “사회주의를 견지하고 않고, 개혁개방을 하지 않고, 경제발전을 하지 않고, 인민생활을 개선하지 않으면 오로지 남는 것은 죽음의 길 밖에 없다”는 것이다. 맨 앞에서 ‘사회주의를 하지 않고’라는 말은 체면상 집어넣은 것 같고, 정작 하고 싶은 말은 ‘개혁개방 밖에 출로는 없다’는 강력한 경고를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우창에 도착하였을 때, 영접을 나온 당서기가 “(인민들에게) 사회주의 교육을 잘 시키고 있습니다”라고 하니까 덩 영감이 퉁명스럽게 “인민들의 배나 곯지 말게 하시게”라고 충고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남순강화에 등장하는 유명한 말 가운데 하나가 “자본주의에도 계획이 있으며 사회주의에도 시장이 있다”라는 표현이다. 이것으로 ‘성자성사’ 논쟁에 종지부를 찍었다. “우리가 가는 길이 사회주의인지 자본주의인지 하는 쓰잘데기없는 논쟁이나 하지 말고 생산력(경제)이나 발전시키라”고 톡 꼬집었다. 게다가 “이대로의 걸음으로 100년을 가자”라는 말로 확인사살(?)까지 하였다. 

사실 덩샤오핑은 죽는 날까지 국가주석이나 공산당 주석, 총서기와 같은 당과 정부의 형식상 최고 지위에 올라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가 가졌던 최고위직은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리밖에 없다. 그런데도 20년 동안 ‘배후’의 권력 꼭대기에 앉아서 개혁개방을 총설계하고 지휘 ․ 조정한 불가사의한 통치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남순 당시에도 그랬다. 그가 공산당에서 갖고 있던 직책은 중앙고문위원회 주임에 불과(?)했다. 남순강화에서 덩샤오핑이 했던 말을 다른 사람이 했다면 ‘자극적인 헛소리’ 정도로 흘려버릴 수도 있었겠지만, 당시 중국에서 덩샤오핑의 권위는 그대로 법이었다. 그 어떤 공산당원도 반기를 들 수가 없었다. 부도옹(不倒翁 ; 오뚝이 - 덩샤오핑의 별명)께서 그렇게 말씀을 하시니 들을 수밖에.

그해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 ‘사회주의 시장경제’라는 말이 공식으로 등장하였다. ‘사회주의’에 ‘시장경제’라는 말을 갖다붙이다니, 한복 저고리 아래 청바지를 받쳐입은 것처럼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지만, 아니 10여 년 전만 하여도 누군가 그런 말을 했다면 ‘반동’으로 몰릴 수도 있었지만, 당당하게 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그런 용어가 통과되었다. 이듬해(1993년) 전인대에서는 헌법 서문에 등장하는 ‘계획경제’라는 표현을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대체하는 개정안까지 통과하였다. 사회주의의 대명사인 ‘계급투쟁’이라는 용어까지 헌법에서 삭제하였다. 이쯤되면 ‘막 나가자는’ 수준이다.

이때부터 물권법도 준비되었다. 경제개혁을 가로막고 있던 400여개의 규제 조항까지 철폐하면서 주춤했던 개혁개방에 재시동을 걸었다. ‘개혁개방하다 죽게 된다’라는 우려를 ‘개혁개방 안하면 죽음 뿐’이라는 구호로 일거에 뒤집어놓았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1992년을 ‘중국공산당이 되돌아올 수 없는 길로 접어든 해’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덩샤오핑의 카리스마만이 이끌어낼 수 있는 반전이다. 

▮ 스핑크스 사회주의

덩샤오핑은 “쓰잘데기 없으니 집어치우라”고 했지만, 돌아가신 영감님의 말씀은 무시하고 우리끼리 ‘성자성사’ 고민을 조금만 더 해보자. 지금 중국은 사회주인가, 자본주의인가? 

분명히 중국의 몸통은 사회주의가 아니다. 사적소유의 철폐와 국가의 소유, 계획경제, 노력에 따른 분배…… 흔히들 사회주의의 특징이라 말하였던 것들을 찾아볼 수가 없다. 가깝다면, 자본주의의 모습에 훨씬 가깝다. 그런데도 스스로 사회주의 국가라고 끝까지 우긴다. 자기들이 사회주의 맞다고 고집을 피우는데, 굳이 우리가 나서서 “아니야, 너희들은 사회주의가 아니야, 자본주의란 말이야, 정신차려!” 이렇게 찬물을 끼얹을 필요는 없다. 그냥 그렇다고 인정해주자. 그런데 참으로 역설적인 것은, 그렇게 스스로 사회주의라고 우기는 사람들, 바로 그런 사람들이 있어 중국은 사회주의다. 바로 ‘중국공산당’의 존재다. 

현재 중국을 사회주의 국가라고 규정지을 수 있는 근거는 ‘공산당이 통치하고 있다’는 것밖에는 없다. 앞에서 사회주의의 특징 가운데 하나로 살펴보았던 ‘계급독재’가 남아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계급독재라는 것은 자세하게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조금 구질구질하겠지만 낡은 이념의 한 페이지를 되짚어보자. 

현대 공산주의 이론의 창시자는 칼 맑스(Karl Marx) 선생이다. 그는 인류역사발전의 종착역을 공산주의로 보았다. 역사의 기관차는 공산주의를 향해 달려간다는 것이다. 그 중간에 잠깐 들르는 간이역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 사회’다. 프롤레타리아(proletariat)라는 말은 원래 고대 로마제국에서 유래한 용어다. 가진 것이라고는 자기 몸뚱아리 하나 밖에 없는 최하층민을 그렇게 불렀다. 워낙 가진 게 없다보니 군역(軍役)도 면제되었다.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는 로마 제국에서 군역 면제는 치욕스러운 일이다.) 맑선생은 이러한 프롤레타리아를 자신이 살던 시대로 끌어들여와, 어떠한 생산수단도 가지지 못한 채 오로지 자신의 노동력에 의지하여 비참하게 살아가는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자들에게 이름붙여주었다. 그리고 외쳤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자본가를 타도하고 당신들만의 세상을 만들라!”

흔히 프롤레타리아에 대비되는 개념으로 사용되는 부르주아(bourgeois)라는 말은 ‘성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용어로, 그만큼 근심걱정 없이 살아가는 자본가 계급을 이르는 말이다. 맑선생은 인류사회가 공산주의로 나아가기 위해서 프롤레타리아들이 부르주아를 제압하는 일정한 기간의 독재사회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프롤레타리아 독재’, 즉 계급독재로, 사회주의 국가를 이른다. 

맑선생은 말했다. 프롤레타리아는 인민대중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당신(프롤레타리아)들이 행하는 독재는 독재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민주주의라고 했다. 그래서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라는 또다른 신조어를 만들어 노동자들을 안심(?)시켰다. 독재는 독재인데, 워낙 많은 프롤레타리아들이 한줌도 안되는 극소수 부르주아를 대상으로 하는 독재이기 때문에 그것은 곧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머리 나쁜 사람들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개념이다. 2명이 98명을 억압하는 것은 독재이지만 98명이 2명을 억압하는 것은 독재가 아니며 ‘98명들 사이의 민주주의’라고나 할까. 

맑선생은 세상 모든 것을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느냐, 갖고 있지 않느냐’하는 문제로 보았기 때문에 일체의 생산수단을 갖고 있지 못한 노동자들이 바로 혁명의 주역이라고 보았다. 코딱지만한 뙈지밭이나마 자신의 생산수단을 갖고 있는 농민들은 혁명의지가 노동자들보다 약하고 위기의 순간에는 동요를 할 수도 있다고 보았다. 그렇더라도 농민들의 처지 또한 워낙 곤궁하기 때문에 노동자들이 잘 이끌어주고 사상개조를 하면 금방 바꿀 수 있는 제1의 우군(友軍)으로 농민들을 추켜세웠는데, 그리하여 등장하는 개념이 ‘노농(勞農)동맹’이다. (그래도 역시 맑스주의에서 혁명의 핵심세력은 도시 노동자들이다. 이런 이론 때문에 농촌에서의 농민봉기를 강조하였던 마오쩌둥의 주장이 1930년대 소련파 공산주의자들로부터 배척을 받았던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이야기하자.) 

그럼 중화인민공화국 헌법 1조 1항을 다시 펼쳐보자. 

“중화인민공화국은 노동자 계급이 영도하고 공농연맹을 기초로하는 인민민주 전정의 사회주의 국가이다.”

여기서 공농(工農)연맹이 바로 맑선생이 이야기한 ‘노농연맹’이다. 이어서 등장하는 ‘전정(專政)’이라는 표현은 ‘전제정치’의 줄임말이다. 중국어사전에는 전제정치를 ‘독재정치’라고 풀이하고 있다. 한국의 국어사전에도 전제정치는 “국가권력을 개인이 장악하여 민의나 법률에 제약을 받지 않고 실시하는 정치”라고 정의한다. 그러니까 어찌보면 중국은 헌법 1조를 통해 ‘우리는 독재를 한다’고 당당히 선포를 하고 있는 셈이다. 

‘전정’ 앞에 붙어 있는 ‘인민민주’라는 말에도 주목해보자. 민주는 인민(民)이 주인(主)이 된다는 말로, 민주라는 용어 그 자체에 ‘인민’이라는 의미가 이미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도 왜 굳이 ‘인민민주’라는 중언부언의 말을 사용한 것일까? 마치 역전(驛前)이라고만 하면 될 것을 ‘역전앞’이라고 어색하게 강조를 하듯이 말이다. 여기서 인민은 그냥 보편적 인민이 아니라 ‘계급적 인민’, 즉 프롤레타리아를 뜻한다. 따라서 ‘인민민주의 전정’이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 독재’라고 풀어 말해도 틀림이 없을 것이다. 나름대로는 맑선생의 이론에 충실하게 사회주의 헌법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헌법에 ‘계급독재’를 하고 있다고 자랑(?)을 하고 있지만, 정말 맑스주의 입각하여 노동자-농민, 즉 프롤레타리아들의 독재를 하고 있느냐. 이런 것을 따져보자면 현재 중국공산당 당원들의 직업별 구성비율은 어떻게 되면, 중국공산당은 얼마나 친(親)노동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는지 하는 것들을 따져보아야겠지만 이 책은 전문적인 연구서적이 아니니 이만 줄이자. 대신 중국전문가인 경희대학교 강효백 교수의 칼럼을 살짝 참고하면 되겠다. 

“그 많던 노동자와 농민은 어디로 갔을까. 필자가 선거법과 관련한 중국 정치 제도와 동향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생긴 의문이다. 1954년 제1기 전인대 대표의 대부분은 노동자와 농민들이었다. 개혁 · 개방 이후 역대 전인대 대표를 맡는 노동자와 농민의 수는 급격히 줄어들어갔다. 그들이 떠난 빈자리에는 엘리트 관료와 기업가들이 앉았다. 현재 제11기 전인대 대표 재적인원 2909명의 직업별 구성비를 살펴보면 당정관료 53%, 기업인 29%, 군인 9%, 교육·과학기술·예체능계 및 기타 전문가 집단 8%인데 비해 노동자 농민은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전인대와 함께 양회(兩會)라고 일컫는 국정 최고 자문기관인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위원회 위원 재적인원 2237명의 직업별 구성비도 전인대의 그것과 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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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국무원 동북진흥 '12.5' 규획에 어… 인기글 中 국무원 동북진흥 '12.5' 규획에 어떤 것 있나 본지 기자 pys048@hanmail.net 국가발전개혁위원회는 국무원에서 '동북진흥 12.5 규획'을 정식 허가했다고 밝혔다. '규획'은 동북지역을 국제경쟁력을 가진 장비제조업기지, 국가신흥원자재와 에너지보장 기지, 국가중요상품량식기지와 농업, 목축업 생산기지 및 중요기술연구개발과 창신 기지로 건설한다고 제기하였으며, 동북아를 향한 개방의 중요한 중심지로 건설한다고 밝혔다. '…(2012-03-26 04:05:59)
中 지방 당서기, 정치안정 이뤄야 최고지도부 올라 인기글 中 지방 당서기, 정치안정 이뤄야 최고지도부 올라 지방 관리의 '중앙 정치무대' 진출 공식지방분권 中, 당서기 권력 막강 - 지역 당·정부·사법·의회 총괄보시라이는 기관지까지 이용해 지나친 독자 정책 펼치다 낙마당은 '안정적 통치'에 점수 - 지방 관리는 '정치력 시험대'티베트 당서기였던 후진타오, '지역 안정' 功으로 주석 올라"시 정부와 인민대표대회, 당 상무위는 결연히 중앙의 결정을 옹호하고, 중…(2012-03-26 03:42:29)
중국서 내집 마련하기 가장 어려운 도시는? 인기글 중국에서 내집 마련하기 가장 어려운 도시는 상하이인 것으로 나타났다.글로벌 부동산 컨설팅 회사 세빌스(Savills)가 중국 주요 도시의 평균 집값과 각 지역의 중위소득 가정의 연소득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상하이의 PIR이 30으로 최고치를 기록했다. 광저우(广州)의 PIR은 28, 베이징은 20으로 뒤를 이었다.PIR(Price to Income Ratio)은 특정 지역이나 국가의 평균 수준의 주택을 연평균 소득으로 구입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의미한다. 상하이의 PIR이 30이라면…(2012-03-26 03: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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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최초 여성우주인 조건은 자연분만한 유부녀 인기글 中, 최초 여성우주인 조건은 자연분만한 유부녀 "25세 이상의 아이가 있는 기혼 여성, 자연분만에 의한 출산 경험, 입냄새를 포함해 몸에서 냄새가 나면 안됨, 흉터, 충치, 굳은 살이 있으면 안됨, 큰병을 앓았거나 과민반응이 있으면 안됨"국영기업 항천과학기술그룹(航天科技集团) 관계자가 밝힌 중국 최초의 여…(2012-03-26 02:2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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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도시경쟁력 평가해보니, 홍콩이 파리와 동급 인기글 세계 도시경쟁력 평가해보니, 홍콩이 파리와 동급 홍콩의 도시경쟁력이 미국 뉴욕보다는 뒤지지만 프랑스 파리와는 동급인 것으로 나타났다.영국 이코노미스트지의 자매사인 더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과 씨티그룹이 12일 발표한 '세계 도시경쟁력 벤치마킹' 보고서에 따르면 홍콩이 파리와 함께 종합순위…(2012-03-19 02:24:07)
[중국 고전 인물전] 편작, 겉만 보고 아픈 곳 찾아낸 명의 인기글 [중국 고전 인물전] 편작, 겉만 보고 아픈 곳 찾아낸 명의 편작(扁鵲), 겉만 보고 아픈 곳 찾아낸 名醫…그도 사람의 고집은 고치지 못했다 조짐(兆朕)이란 말이 있다.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채 느껴지는 기운이다. 특히 병은 그 실체가 감추어져 있으면서 독버섯처럼 자라고,실체를 알았을 때는 손쓸 겨를도 없이 목숨을 앗아가 버린다. 이런 조짐을 미리 알고 대처하는 사람이 명의다. 그 중 중국의 편작(扁鵲)처럼 신비스러움을 간직한 의사도 드물다. 편작은 발해군(勃海郡) 막읍 사람이다. 성은 진(…(2012-03-19 01:54:03)
노련한 정치가 원자바오 총리의 쓴소리 인기글 "중국의 정치개혁이 성공하지 못하면 문화대혁명 같은 비극이 다시 발생할 수 있다." 원자바오(温家宝) 국무총리가 14일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 폐막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외신 기자가 "정치체제 개혁 필요성을 줄기차게 주장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대답한 말이다.원자바오 총리는 "경제 발전에 따라 빈부격차, 부정부패 등의 문제가 발생했는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경제체제의 개혁뿐만 아니라 정치체제의 개혁이 필요하다"고 강조…(2012-03-19 01:52:08)
CEO들 "성장전망은 밝지만 인재가 없어 근심" 인기글 중국 CEO들이 올해 기업성장에 대해 전망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며 고급인재 부족을 가장 큰 문제로 꼽았다.매출액기준 세계 1위의 회계 감사 기업인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가 최근 60여개 국가의 CEO 1천25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2 글로벌 CEO 보고'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중국기업 성장 전망에 대해 절반 이상의 중국 CEO가 향후 기업 경영에 대해 긍정적 반응을 보였으며, 59%가 "훌륭한 인재가 갈수록 부족하다고 생각한…(2012-03-19 01:47:26)
中 스마트폰 시장, 올해 美 추월해 세계 최대 규모로 인기글 中 스마트폰 시장, 올해 美 추월해 세계 최대 규모로 중국이 올해 미국을 제치고 세계 최대 스마트폰 시장이 될 전망이다.미국 시장조사기관 IDC에서 15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전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중국시장의 비중은 20.7%로 높아져 20.6%로 예상되는 미국을 추월해 세계 최대 스마트폰 시장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지난해에는 미국이 21.3%로 1위였으며, 중국이 18.2%로 뒤를 이었다.IDC 관계자는 "중국에서 2백달러(22만5천원) 미만의 안드로이드 스마트폰이 대거…(2012-03-19 01:45:48)
흰 이리, 검은 개, 안경 뱀…중국의 '3대 구악&… 인기글 며칠 전 상하이의 30대 직장인 니(倪)모씨가 기자에게 "중국 사회에 '흰 이리, 검은 개, 안경 뱀'이라는 말이 있는데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물었다. 기자가 처음 듣는 얘기라고 하자 그는 자신의 경험을 곁들여 설명했다.그는 "세 가지 중 '흰 이리'는 의사로 대표되는 병원 관계자들을 가리킨다"며 "통상 상하이의 병원에서 출산을 하면 출산을 도와준 병원 관계자들에게 1500위안(약 27만원) 정도의 사례비를 줘야 한다"고 말했다. 담당 의사 800위안, 간…(2012-03-19 01:41:21)
중국에서 SUV 불티나게 팔리는 이유는? 인기글 [자료사진] 지난해 중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SUV 차종인 일본 혼다의 CR-V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최근 몇년간 SUV(Sport Utility Vehicle) 차량이 불티나게 팔린 것으로 나타났다.코트라 칭다오무역관에서 14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중국 자동차 판매량이 전년 대비 2.45%로 소폭 성장한 반면, SUV 판매량은 20.2%의 성장률로 대폭 성장했다.SUV의 시장점유율 비중도 지난 2005년 5%에서 올해 1월 13%까지 증가했으며, 지난 2010년 9월까지 자동차 수입량…(2012-03-19 01:3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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