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미래 투영된 푸둥(浦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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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09-03-30 15:46|본문
중국의 경제중심 상하이(上海) 푸둥(浦東)은 올해 성년식을 가졌다. 1990년 4월18일 당중앙, 국무원 결정으로 푸동개발이 시작되면서 역사의 한 장을 연 지 18년이 지난 것이다. 상하이의 오랜 역사에 비춰보면 이제 성인식을 막 치른 젊은이인 셈이다.
'상하이런(人)'은 상하이 출신이라는 의미 뿐아니라 중국내에서도 별종으로 취급될 정도로 이재에 밝은 사람들이라는 의미도 있다.
상하이는 1840년 난징조약으로 외국 열강에 강제 개방됐고 치외법권인 외국인 조계지의 영향으로 일찌감치 원동의 금융중심이 됐다. 상하이런이 이재에 밝은 것은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하이런들에게도 1990년대까지 푸둥은 상하이가 아니었다.
"푸시(浦西)에 침상을 하나 장만할지언정 푸둥에 집을 사지 마라"는 것이 당시 불문율이었다. 그만큼 푸둥의 거주환경은 열악했다.
하지만 푸둥은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의 시대를 맞아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선전에 10년 늦었지만 1990년 경제특구로 선정되면서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길을 걷게 됐다.
상하이의 금융중심인 루자주이(陸家嘴)는 최근 세계파이낸셜센터(SWFC)를 일반에 개방했다. 푸둥개발 시작과 거의 비슷한 시기인 94년 발주한 세계파이낸셜센터가 14년만에 완공돼 손님을 맞았다.
이 건물은 101층 492m 높이로 88층 421m 높이의 진마오(金茂) 빌딩과 이웃하고 있고 세계적으로 두바이 타워와 대만의 101층 국제금융센터의 뒤를 잇는 세번째로 높은 빌딩이다.
상하이는 여기에 2013년까지 580m 높이의 세계 최고층인 상하이센터를 완공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상하이를 상징하는 삼각기둥이 모두 완성된다.
푸둥은 경제특구 지정 이후 상하이의 상징이 됐다.
성년이 되기까지 18년간 푸둥은 연평균 15%의 고속성장을 했다. 1990년 푸둥신구의 생산총액은 60억위안에 불과했지만 2007년에는 2천750억위안이 됐다. 45배로 증가한 것이다. 푸둥신구의 경제총량이 전체 상하이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 9분의 1에서 지금은 4분의 1로 커졌다. 외자유치는 전체 시의 3분의 1을 점유하고 있고 수출입은 2분의 1이다.
푸둥은 상하이 경제를 이끌어가는 주 동력이다.
덩샤오핑은 1992년 남순강화의 마지막 장소로 상하이를 선택했다.
남순강화의 요지는 단순했다. 더 개혁하고 더 개방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개혁개방 정책을 수행할 때 우려해야 할 것은 다급함이 아니라 주저함"이라며 다그쳤다.
남순의 마지막 종착지인 상하이에서 춘제(설날)를 보내면서 푸둥특구를 둘러봤다.
그는 상하이 관리들에게 "실수를 했다면 좀 더 빨리 푸둥을 경제특구로 만들지 못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상하이는 덩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금융섹터인 루자주이에는 현재 493개의 금융기관들이 입주해 있다. 금융계 종사인력만 10만을 헤아린다. 지난해 금융업이 전체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6.9%에 달했다. 루자주이에서 동쪽으로 30분을 달리면 장강(張江)하이테크 공업단지에 이른다. 이 곳에 입주한 기업은 1천317개로 통신, 생물의학, 소프트웨어 등 3대 산업이 밀집해 있다.
여기서 동쪽 바다에 인접한 곳에는 제조업체들이 밀집해 있는 진차오(金橋)공능구가 있고 와이가오차오(外高橋)보세물류원구에는 다국적기업의 아시아태평양지구 배송기지들이 입주해있다.
상하이는 금융, 무역, 항공운송 등 3개중심이 경제중심을 이룬다는 4개중심을 추진하고 있으며 푸둥은 4개중심의 기둥이다.
상하이 푸둥신구 선전부부장인 천가오훙(陳高宏)은 "80년대 선전이 중국 개혁개방 전략의 얼음깨기였다면 90년 푸둥은 개혁개방을 공고히 하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푸둥개발은 80년 선전 개혁개방이 중국 중서부 개발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했으며 지리적으로는 연해지역에서 내지로, 동부에서 서부로 가는 과정에서 전략적 중추였다.
푸둥개발은 사회주의 시장경제운용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시장체계, 규칙, 환경 건설 등의 기초를 닦는 역할을 했다.
푸둥은 이제 성년식을 맞아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푸둥은 텐진(天津) 빈하이(濱海)신구와 새로 경쟁을 해야할 상황에 있으며 베이징은 주요 정책결정기구들이 모여있는 금융다제(金融大街)를 중심으로 새로운 금융허브로 나서면서 상하이를 위협하고 있다.
푸둥은 2010년 세계무역박람회 개최를 계기로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을 어떻게 꽃피울지 앞으로가 더 주목되는 곳이 상하이 푸둥이다.
'상하이런(人)'은 상하이 출신이라는 의미 뿐아니라 중국내에서도 별종으로 취급될 정도로 이재에 밝은 사람들이라는 의미도 있다.
상하이는 1840년 난징조약으로 외국 열강에 강제 개방됐고 치외법권인 외국인 조계지의 영향으로 일찌감치 원동의 금융중심이 됐다. 상하이런이 이재에 밝은 것은 이런 역사적 배경이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상하이런들에게도 1990년대까지 푸둥은 상하이가 아니었다.
"푸시(浦西)에 침상을 하나 장만할지언정 푸둥에 집을 사지 마라"는 것이 당시 불문율이었다. 그만큼 푸둥의 거주환경은 열악했다.
하지만 푸둥은 중국 개혁개방의 총설계사 덩샤오핑의 시대를 맞아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선전에 10년 늦었지만 1990년 경제특구로 선정되면서 이전과는 전혀 새로운 길을 걷게 됐다.
상하이의 금융중심인 루자주이(陸家嘴)는 최근 세계파이낸셜센터(SWFC)를 일반에 개방했다. 푸둥개발 시작과 거의 비슷한 시기인 94년 발주한 세계파이낸셜센터가 14년만에 완공돼 손님을 맞았다.
이 건물은 101층 492m 높이로 88층 421m 높이의 진마오(金茂) 빌딩과 이웃하고 있고 세계적으로 두바이 타워와 대만의 101층 국제금융센터의 뒤를 잇는 세번째로 높은 빌딩이다.
상하이는 여기에 2013년까지 580m 높이의 세계 최고층인 상하이센터를 완공할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상하이를 상징하는 삼각기둥이 모두 완성된다.
푸둥은 경제특구 지정 이후 상하이의 상징이 됐다.
성년이 되기까지 18년간 푸둥은 연평균 15%의 고속성장을 했다. 1990년 푸둥신구의 생산총액은 60억위안에 불과했지만 2007년에는 2천750억위안이 됐다. 45배로 증가한 것이다. 푸둥신구의 경제총량이 전체 상하이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990년 9분의 1에서 지금은 4분의 1로 커졌다. 외자유치는 전체 시의 3분의 1을 점유하고 있고 수출입은 2분의 1이다.
푸둥은 상하이 경제를 이끌어가는 주 동력이다.
덩샤오핑은 1992년 남순강화의 마지막 장소로 상하이를 선택했다.
남순강화의 요지는 단순했다. 더 개혁하고 더 개방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개혁개방 정책을 수행할 때 우려해야 할 것은 다급함이 아니라 주저함"이라며 다그쳤다.
남순의 마지막 종착지인 상하이에서 춘제(설날)를 보내면서 푸둥특구를 둘러봤다.
그는 상하이 관리들에게 "실수를 했다면 좀 더 빨리 푸둥을 경제특구로 만들지 못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상하이는 덩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았다.
금융섹터인 루자주이에는 현재 493개의 금융기관들이 입주해 있다. 금융계 종사인력만 10만을 헤아린다. 지난해 금융업이 전체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6.9%에 달했다. 루자주이에서 동쪽으로 30분을 달리면 장강(張江)하이테크 공업단지에 이른다. 이 곳에 입주한 기업은 1천317개로 통신, 생물의학, 소프트웨어 등 3대 산업이 밀집해 있다.
여기서 동쪽 바다에 인접한 곳에는 제조업체들이 밀집해 있는 진차오(金橋)공능구가 있고 와이가오차오(外高橋)보세물류원구에는 다국적기업의 아시아태평양지구 배송기지들이 입주해있다.
상하이는 금융, 무역, 항공운송 등 3개중심이 경제중심을 이룬다는 4개중심을 추진하고 있으며 푸둥은 4개중심의 기둥이다.
상하이 푸둥신구 선전부부장인 천가오훙(陳高宏)은 "80년대 선전이 중국 개혁개방 전략의 얼음깨기였다면 90년 푸둥은 개혁개방을 공고히 하는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푸둥개발은 80년 선전 개혁개방이 중국 중서부 개발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했으며 지리적으로는 연해지역에서 내지로, 동부에서 서부로 가는 과정에서 전략적 중추였다.
푸둥개발은 사회주의 시장경제운용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시장체계, 규칙, 환경 건설 등의 기초를 닦는 역할을 했다.
푸둥은 이제 성년식을 맞아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푸둥은 텐진(天津) 빈하이(濱海)신구와 새로 경쟁을 해야할 상황에 있으며 베이징은 주요 정책결정기구들이 모여있는 금융다제(金融大街)를 중심으로 새로운 금융허브로 나서면서 상하이를 위협하고 있다.
푸둥은 2010년 세계무역박람회 개최를 계기로 새로운 도약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을 어떻게 꽃피울지 앞으로가 더 주목되는 곳이 상하이 푸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