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교민사회의 ‘귀족’ 주재원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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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09-03-25 15:47|본문
주재원은 교민사회의 귀족?
중국에 거주중인 필자는 지난 음력설 기간 베이징의 한 교민매체 기자와 같이 택시를 같이 탄 적이 있다. 택시 안에서 대뜸 “ '주재원’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무엇인가요? 한번 얘기해 보세요.”라고 물었더니 “글쎄요. 편안함, 철새, 럭셔리…뭐 이런 단어가 생각나네요” 라는 답이 돌아왔다. 그 기자는 중국에서 생활을 오래한 축은 아니다. 쉽게 말하면 신참교민이다.
재중국 대한체육회 모 간부는 주재원들을 특징을 “이들은 특수한 목적으로 나온 특별한 분들이지요. 그들은 이곳에서 생활하다 정해진 기간이 지나면 한국으로 돌아가기에 이곳에서 터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과는 생각이 많이 다르지요”라고 말한다. 위의 교민매체 기자가 주재원에 관해 어렴풋이 떠오른 단어나 대한체육회 간부가 대담 중 나온 말은 그들뿐 아니라 거의 대부분 베이징 교민들의 주재원에 관한 생각을 정확히 웅변한다.
‘편안’과 ‘럭셔리’ 라는 단어가 떠오른 것은 그만큼 주재원들이 경제적으로 풍족하고 여가생활을 즐기며 잘산다고 느끼는 것을 은연 중에 표출된 것이고 ‘철새’라는 단어가 떠오른 것은 주재원들은 본사에서 파견된 사람들로 임기가 있기 때문에 여느 교민과는 달리 중국 교민사회 속으로 적극적으로 동화되지 않고 언젠가는 철새처럼 떠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겠다.
필자가 주재원에 관한 글을 써보겠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말했더니 반응이 다채로웠다. 특히 한 30대 여성의 대답이 걸작이다. 대뜸 필자에게 “주재원이 무슨 죄가 있냐”고 묻는 것이었다. 기자는 주재원에 관해 부정적인 글을 쓴다고 말하지도 않고 그럴 의도도 없었다.
그저 주재원의 생활이나 주재원에 얽힌 담론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즉 나름대로 가치중립적인 글을 쓰고 싶었는데 그 여성은 갑자기 그런 ‘격한’ 반응이 나온 것이다. 한마디로 죄 없는 주재원들을 건드리지 말라는 투였다.
어딘가 정서적으로 주재원 쪽에 치우친 그 여성은 그간 많은 이들로부터 주재원들에 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접했기 때문에 반사적으로 그런 행동이 나온 게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혹은 그 여성의 애인이나 미래의 남편 선호자가 주재원일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필자도 교민생활을 하면서 주재원에 관해 좋은 이야기를 들은 기억은 별로 없는 것 같다.
또 다른 30대 남자 회사원은 주재원 관한 글을 자세히 쓰면 상대적으로 일반 현지채용 직원 교민들이 심리적으로 위축된다는 이유로 반대를 했다. 자신들과 같은 현채직원은 주재원들의 호화스러운 생활상이 교민들에게 자세히 알려진다면 상대적인 소외감을 느끼게 되고 결국 교민사회의 위화감을 조성하게 된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가 나가면 부인이나 여자친구에게 주재원들과 비교되며 구박 당하지 않겠냐?”고도 덧붙였다. 그러나 필자는 나름대로의 감각으로 그에게 왠지 주재원들에 대한 이유 모를 적대감이 풍겨 나옴을 놓치지 않았다.
기자는 상반된 그 두 가지 반응을 보고 역시 주재원들에 관한 담론자체는 은연 중 어딘가 금기시 되는 ‘뜨거운 감자’라는 생각이 들어서 속으로 웃고 말았다. 결국 글을 쓰기에 앞서서 주재원은 이민자들이 주축이 된 중국 교민사회에서 별종의 집단,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그들은 간접적으로 입증해 준 셈이었다.
대기업 주재원, 주택비만 월 1만 ~ 1만5천위엔(한화 약 130~ 160만원)
중국으로 파견된 주재원들은 중국에서도 대개 한국에서 받던 급여를 그대로 받는다. 한국과 중국의 물가차이를 감안하면 단번에 경제적 수준으로는 상류층이다. 또한 주재원들에게는 품위유지비, 차량유지비, 자녀 학비, 의료비, 주택보조비, 어학연수비, 귀경 교통비, 해외 근무 수당까지 포함해서 여러 가지 명목의 혜택이 있다. 기업의 연봉이라는 것이 은밀한 부분도 있고 ‘뻥튀기’는 면도 있어 정확히는 알수는 없으나 주재원의 대우가 일반 현채직원이나 교민경제에 비교할 때 파격적으로 좋은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같은 또래로 비슷한 직종에 종사하는 한국인이지만 5천 ~ 7천위엔(한화 약 60만원~ 80만원)의 월급을 받아 생활하는 중소기업 현지 직원이 수두룩한 교민사회에 주택비로만 1만위엔 이상을 지원받는다니 이 얼마나 심한 빈부의 격차인가. 양극화도 이런 양극화가 없다.
중국뿐 아니라 다른 나라의 한국 상사 주재원들은 현지의 고급주택 집값을 올려놓을 정도로 넉넉하게 잘사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래서 소위 '봉황족' 이라고도 불리운다. 이들은 현지인을 고용해 집안 일을 맡기고 골프, 쇼핑 등 호화생활을 하고 있어 다른 교민들의 빈축을 사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수입이 많으니 그에 따라 영유하는 생활이나 문화도 달라질 수 밖에 없다. 한국에서 살면 상상도 못할 가정부를 두고 부인은 ‘마님’ 대우를 받는다. 넓직한 아파트 혹은 별장에 살며 주말이면 골프도 치러 다닐 수 있다.
때로는 연간 학비가 1~2만 달러 되는 미주나 유럽계의 국제학교에 자녀를 보내며 자영업자와 유학생 위주로 구성되어 있는 교민사회에 경제적 뿐만 아니라 상대적인 희소가치를 마음껏 누린다. 어느 중앙 일간지 특파원이 '슬럼화'되고 있다는 표현을 쓸 정도로 가난하고 빈부의 격차가 심한 중국 교민 사회에서 일반 교민들과 생활상이 전혀 다른 주재원들의 생활은 많은 교민들에게는 말 그대로 ‘별천지’인 것이다.
중국 유학생들의 '금배지' 주재원
중국에서 공부하는 많은 한국 유학생들의 꿈은 학업을 마친 후 일단 귀국 후 주재원 자격으로 다시 중국으로 나오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일부 희소성 있는 학문을 공부하는 학생들, 학업에 계속 뜻이 있는 학생들을 제외하고는 신기할 정도로 그들의 ‘꿈’에 예외란 없다. 바로 ‘주재원’. 주재원이라는 존재는 그들의 궁극적인 가치인 것이다.
중국이라는 '수렁'에 발을 담근 그들은 수 년간의 유학 생활 통해 경제적 뿐만 아니라 사회적 위신까지도 보장되며 풍요롭게 생활하는 주재원들의 삶을 익히 보아 왔기 때문일 것이다.
주재원은 이미 중국 교민사회에서 상류계층으로 자리잡았다. 예를 들어 일반 교민들이 '주재원들이 많이 사는 아파트', 혹은 “주재원들이 잘 가는 식당”,”주재원들이 많이 다니는 학원” 식으로 말을 한다면 그건 무언가 고급스럽거나 유별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한 말인 것처럼 말이다.
베이징의 많은 식당, 미장원, 학원 등의 자영업자들은 자신들의 사업장에 주재원이 많이 오는 것을 은연 중 강조하고 싶어한다. 주재원은 많은 자영업자들이 지향하고 추구하는 고객상이다. 물론 소수인 주재원 고객으로 그들의 주된 수입원이 될 수는 없다.
아마 고객으로서 주재원의 존재가 다른 교민들의 소비를 추동시키는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마케팅 관점에서 볼 때,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무언가 자신들 보다 좀 더 나은 계층이 즐겨쓰는 대상을 따라하고 싶어하는 소위 ‘따라하기 심리’가 있기 때문이다.
“주재원은 이런 아파트에 안 사는데요”
교민사회에서 주재원들에 대한 고 평가 때문에 '피해' 아닌 피해를 입는 계층이 또 있다. 바로 중소기업 주재원. 중소기업 주재원과 대기업 주재원의 차이는 말 그대로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차이다. 한국을 두고 비교했을 때 중소기업의 임금은 대기업과 비교하면 많은 경우 두 배 가량 차이 난다. 그에 따른 복리후생은 더 말할 나위가 없겠다.
수교 초창기 주로 자본력이 거대한 대기업 위주로 중국으로 진출했지만 중국과 교역이 나날이 늘고 업종도 다양화 되면서 지금은 여러 분야의 중소기업 주재원들도 하루가 멀다 하고 파견되어 나온다. 이제는 빈약했던 중소기업 주재원의 숫자가 무시 못할 만큼 늘어났다. 그러나 아직까지 일반 교민들에게 ‘주재원’ 하면 ‘대기업 주재원으로 각인되어 있으니 어쩌랴. 중소기업 주재원들의 고충은 바로 여기서 출발한다.
중국 최대의 한국인 집단 거주지역인 왕징에 사는 30대의 인터넷 관련 중소기업 주재원 K씨가 기자에게 털어놓은 우스꽝스러운 실화다. 요즘 왕징에 새로 건립되는 아파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오래된 아파트인 W신청 아파트에 몇 년째 살고 있는 K씨를 보러 오랜만에 한국에서 부모님이 찾아 왔다. 현지실정을 잘 모르는 K씨의 부모는 같은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몇 번 보아 안면이 트인 이웃의 한국인 아주머니와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게 된다.
'베이징에는 어떻게 오셨어요?'
'아들을 보러 왔어요'
'아드님이 여기서 무슨 일을 하는데요?'
'아. 우리 아들은 회사 주재원이에요”
'그래요? 근데 주재원은 보통 이런데 안 사는데요?'
'네?'
'아들을 보러 왔어요'
'아드님이 여기서 무슨 일을 하는데요?'
'아. 우리 아들은 회사 주재원이에요”
'그래요? 근데 주재원은 보통 이런데 안 사는데요?'
'네?'
K씨의 부모는 이웃 아주머니의 그런 반응에 당황했다고 한다. 당황한 것은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K씨도 마찬가지. K씨는 중국 현지로 파견된 주재원으로 본사에서의 직책은 대리급이다. 그의 연봉은 한화로 3천만원 (인민폐 약 24만위엔) 거기에 별다르게 지급되는 해외수당은 없고 주택보조비로 한화 50만원 정도를 따로 지원 받는다고 한다. 한국돈 50만원이면 인민폐로 4천위엔 가량 된다.
여느 대기업 주재원들에게 지급되는 주택보조비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액수. 그러나 그의 부인은 인근 다른 아파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가인 W신청 아파트를 1년치 선불 월 3천 위엔으로 임대한 후 남은 1천위엔 정도는 따로 저축한다고 한다.
그는 베이징에서 별다른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이 살고 있지만 5년 임기가 끝나 한국으로 돌아갈 경우 자신의 ‘책상이 없어질 경우’를 대비, 주말이면 코피를 흘리며 이런 저런 다른 회사의 보고서를 대신 써주는 알바로 한국 돈 월 50만원 가량의 별도 부수입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부모님에게 그 일화를 전해들은 후 기분이 상하이 한 푼이라도 아끼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지고 임대 계약기간이 만료 되는대로 주재원들이 많이 거주한다는 인근 D신청이나 H세가 등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고가인 다른 아파트로 이사 갈 예정이라고 한다.
그는 이 일로 언성을 높이며 부부싸움까지 했다고 한다. K씨의 불쾌감은 일반 교민들이 중소기업 주재원을 대기업 주재원으로 오인하여 빚어지는 전형적인 해프닝의 하나. 다른 예를 한번 더 살펴보자.
비슷한 규모의 다른 회사를 다니는 최씨도 한국에서 파견된 중소기업 주재원이다. 최씨가 회사로부터 받는 대우는 K씨 보다 더 열악하다. 급여는 비슷하나 주택 보조비는 아예 없다. 회사의 입장은 월급은 한국에서 받는 그대로 줄테니, 사는 집은 한마디로 ‘네가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해외수당, 체류비 같은 명목은 자금력이 부족하고 먹고 살기 빠듯한 중소기업에는 가까이 하기에는 거리가 먼 단어다. 베이징으로 초임 발령을 받은 그는 주재원이라는 신분이 갖는 교민사회적 의미를 전혀 몰랐다.
베이징에 온 후 그는 퇴근 후에는 별로 할 일도 없고 총각에 외롭기도 하고 해서 한 교민 카페에 가입했다. 온라인으로만 활동하다가 나중에는 오프라인 모임까지 나가게 되었다. 그전에는 온라인에서 그냥 간단한 인사만 하는 사이인지라 술자리에서 회원들에게 각자 자신을 좀 더 자세히 소개하는 시간이 돌아왔다. 최씨의 차례가 돌아오자 별로 할말도 없고 해서 그냥 “한국에서 파견된 주재원”이라고 소개했다. 그런데 그 후 묘하게 다른 회원과는 달리 자신에게 쏟아지는 여러 사람들의 시선을 느꼈다고 한다.
곰곰히 생각해 보니 모임에 참석한 20여명 중 주위를 둘러봐도 주재원은 자신밖에 없었던 것. 평소에 여자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었던 그는 또래의 처녀들이 유난히 자신하게 친절하게 굴어 오히려 멋쩍었다고 한다. 그리고 몇몇과 더불어 맥주집으로 2차를 가게 되었다.
그런데 자신이 당연히 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일행의 시선이 돌아왔다. 어떤 이는 자신을 부럽다면서 대단한 존재인양 추켜 세우기까지 했다고 한다. 결국 기분이 좋아진 최씨는 3차의 가라오케 비용까지 자신이 모두 ‘쏘는’ 바람에 한달 생활비가 거덜났다고 한다. 이후에도 최씨는 이런 저런 명목으로 불려나와 소위 중국통인 ‘교민선배’들을 위해 술값을 ‘대납’했다. 그 후 최씨는 어디나가 자신을 소개할 때 그냥 간단하게 ‘회사원’이라고만 끝낸다고 한다.
필자는 교민들로부터 J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엄밀히 말하면 주재원이 아닌데 주재원을 자처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를 종종 들어왔다. 그 중에는 평소에는 6위엔 짜리 도시락으로 식사를 하기도 경제적으로 버거우면서 주재원인양 행세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는 기가 막힌 사연도 있었다.
한 미디로 ‘짝퉁’ 주재원인 것이다. 기자에게 이런 사실을 제보해 준 20대 후반의 유학생 출신의 한 여성은 자신도 과거에는 주재원에게 시집가고 싶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그의 꿈은 지금도 마찬가지인 듯 싶었다. 자신의 주위의 친구들은 모두 주재원에게 시집가고 싶은 게 소원이라고 귀뜸 했다.
조금 다른 예지만 일부 젊은 미혼남자 주재원들은 현지에서 본국의 애인과는 별도로 이른바 '세컨드'를 두고 있다고 맥주집을 운영하는 어느 고참 필자에게 알려왔다. 이 교민에 따르면 중국에서 대학을 졸업했으나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는 죽도로 싫은 일부 여성들이 중국에 남아 있고 싶어서 주재원들에게 경제적인 보조를 받으며 사실상 '첩' 노릇을 한다는 것.
사실인지 아닌지는 달리 확인할 수 없으나 이쯤 되면 미혼여성들의 '주재원 선호증'도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짝퉁 주재원’ 들을 끊임없이 양산하게 되는 토양이 형성되는 것이다. ..(下)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