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장애인과 고아에 사랑을 몰붓는 미국인 내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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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5-08-03 08:45|본문
중국 장애인과 고아에 사랑을 몰붓는 미국인 내외
18년전, '장애인과 고아에 대한 사랑'을 결실맺자고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시에 온 미국인 내외가 있는데 그 내외가 바로 '훈춘시특수교육학교' 리사장인 김찬영박사(79세)와 부인 김패추리샤(68세)이다.
장장 18년간의 다함없는 사랑의 결실이 인정되여 지난 5월 15일, 김박사 내외는 훈춘시 정부가 수여하는 '훈춘시명예 중국시민증'을 받았다.
일찍 미국의 한 대학에서 교육학을 가르치면서 슬하에 자녀 9명을 둔 김박사 내외는 5명은 고아원에서 입양했는데 이 친자녀와 양자녀 모두 훌륭한 사회인으로, 지금은 모두 미국에서 살고 있다.
교육학 박사인 그는 중국에 와 장애인과 고아들에게 교육으로 사랑의 결실을 맺겠다는것이 꿈이였다.
18년전에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시에 와서 '훈춘시특수교육학교'(이하 학교로 략칭함)를 설립했던것이다. 드디어 그의 미국에서의 꿈은 현실로 되여 중국땅에서 사랑의 결실을 맺었다.
18년전 중국땅을 밟은 김찬영박사의 인상은 가난 그 자체였다. 훈춘시에 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미국에서 번 돈을 아낌없이 학교 건설에 희사했던것이다. 이 학교에는 현재 '말 사육장', '제빵공장'이 있고 또 훈춘시 양포향의 1만 5000평방미터의 땅에 약 3000평방미터의 건물을 올해안으로 완공할 예정인데 이 건물은 장애자를 위한 양로원과 고아원으로 사용된다.
현재 이 학교에는 100여명의 학생들이 공부한다. 그중 외지에서 온 50여명은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공부를 하고 있다. 물론 모두 무료이다.
"말사육장을 세운 목적은 재활 승마장 즉 장애인들의 근력단련을 위한 목적이고 말타는 자체로 나도 할수 있다는것을 고취하자는데 목적을 두고 있고 제빵공장은 장애인들과 고아들의 취직을 해결하려는데 그 목적이다"라고 김박사는 설명했다.
학교와 양로원 및 고아원 시설은 현재까지 길림성내에서는 으뜸이다. 유수의 양로원과 고아원은 리익을 위한 이른바 영업위주의 운영책이지만 이 시설들은 무료로 힘들고 의지가지 없는 사회의 로약자들에게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이렇게 김박사는 미국에서 번돈을 중국에 와서 자선사업에 쓴다. 현재 김박사는 미국 회사에서 버는 리익금을 지속적으로 사랑의 손길에 쓰이고 있다.
부인 김패추리샤와의 인터뷰를 제의하자 그 녀인은 "자기는 할 얘기가 없다"고 류창한 우리말로 답하는것이였다. 그 답 자체가 남편의 속내가 바로 자기의 속내와 같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한국에서 태여나 저 멀리 미국땅에 가서 자수성가한 김찬영박사가 미국에서 성공한뒤 그 성공의 희열을 중국 연변에 와서 발산하는 그 자체가 돋보인다.
이 학교는 길림성의 모범학교로서 김박사의 공로가 인정되어 수차 정부로부터 감사패와 공로패를 받았다.
김박사는 "18년전에 중국에 왔을 때 공직자들의 월급이 근근히 500원 가량되는 가난한 국가였지만 지금의 중국은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대국이므로 이제 외국인들이 중국에 와서 장애인들과 고아를 돌보는 시대에서 하루 속히 벗어나서 중국 현지인들이 서로 돌보는 사회가 됐으면 하는 바램이다"라며 "선천적인 장애인이든지 후천적인 장애인이든지 그들에게는 행복의 권리가 있기에 인간사회에서는 그들에게 십시일반으로 행복 즉 인간의 따사로움을 안겨줘야 한다"고 력설하면서 "인젠 외국인들이 돌아가도 된다고 할 때가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장 18년간의 다함없는 사랑의 결실이 인정되여 지난 5월 15일, 김박사 내외는 훈춘시 정부가 수여하는 '훈춘시명예 중국시민증'을 받았다.
일찍 미국의 한 대학에서 교육학을 가르치면서 슬하에 자녀 9명을 둔 김박사 내외는 5명은 고아원에서 입양했는데 이 친자녀와 양자녀 모두 훌륭한 사회인으로, 지금은 모두 미국에서 살고 있다.
교육학 박사인 그는 중국에 와 장애인과 고아들에게 교육으로 사랑의 결실을 맺겠다는것이 꿈이였다.
18년전에 연변조선족자치주 훈춘시에 와서 '훈춘시특수교육학교'(이하 학교로 략칭함)를 설립했던것이다. 드디어 그의 미국에서의 꿈은 현실로 되여 중국땅에서 사랑의 결실을 맺었다.
18년전 중국땅을 밟은 김찬영박사의 인상은 가난 그 자체였다. 훈춘시에 학교를 설립하기 위해 미국에서 번 돈을 아낌없이 학교 건설에 희사했던것이다. 이 학교에는 현재 '말 사육장', '제빵공장'이 있고 또 훈춘시 양포향의 1만 5000평방미터의 땅에 약 3000평방미터의 건물을 올해안으로 완공할 예정인데 이 건물은 장애자를 위한 양로원과 고아원으로 사용된다.
현재 이 학교에는 100여명의 학생들이 공부한다. 그중 외지에서 온 50여명은 기숙사에서 생활하면서 공부를 하고 있다. 물론 모두 무료이다.
"말사육장을 세운 목적은 재활 승마장 즉 장애인들의 근력단련을 위한 목적이고 말타는 자체로 나도 할수 있다는것을 고취하자는데 목적을 두고 있고 제빵공장은 장애인들과 고아들의 취직을 해결하려는데 그 목적이다"라고 김박사는 설명했다.
학교와 양로원 및 고아원 시설은 현재까지 길림성내에서는 으뜸이다. 유수의 양로원과 고아원은 리익을 위한 이른바 영업위주의 운영책이지만 이 시설들은 무료로 힘들고 의지가지 없는 사회의 로약자들에게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이렇게 김박사는 미국에서 번돈을 중국에 와서 자선사업에 쓴다. 현재 김박사는 미국 회사에서 버는 리익금을 지속적으로 사랑의 손길에 쓰이고 있다.
부인 김패추리샤와의 인터뷰를 제의하자 그 녀인은 "자기는 할 얘기가 없다"고 류창한 우리말로 답하는것이였다. 그 답 자체가 남편의 속내가 바로 자기의 속내와 같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한국에서 태여나 저 멀리 미국땅에 가서 자수성가한 김찬영박사가 미국에서 성공한뒤 그 성공의 희열을 중국 연변에 와서 발산하는 그 자체가 돋보인다.
이 학교는 길림성의 모범학교로서 김박사의 공로가 인정되어 수차 정부로부터 감사패와 공로패를 받았다.
김박사는 "18년전에 중국에 왔을 때 공직자들의 월급이 근근히 500원 가량되는 가난한 국가였지만 지금의 중국은 강대국으로 부상하는 대국이므로 이제 외국인들이 중국에 와서 장애인들과 고아를 돌보는 시대에서 하루 속히 벗어나서 중국 현지인들이 서로 돌보는 사회가 됐으면 하는 바램이다"라며 "선천적인 장애인이든지 후천적인 장애인이든지 그들에게는 행복의 권리가 있기에 인간사회에서는 그들에게 십시일반으로 행복 즉 인간의 따사로움을 안겨줘야 한다"고 력설하면서 "인젠 외국인들이 돌아가도 된다고 할 때가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