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질량(质量)이 미래를 좌우한다(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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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9-07-21 20:30|본문
생각의 질량(质量)이 미래를 좌우한다(4편)
이동호
'인간 존중'으로 1등 기업을 만든 허브 켈러허 회장
"직원, 주주 고객 중에서 직원이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직원의 직함이나 직위에 상관없이 이들을 드높이고, 존경하고, 보살피고 보호한다면, 직원들은 서로를 보살피게 되고, 손님들도 세심하게 보살피고 환대하게 될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의 외부 고객들이 다시 돌아오게 만들 것이다. 이는 결국 우리의 주주들에게 즐거움을 안겨줄 것이다." 켈러허 회장 이야기이다.
허브 켈러허 회장은 1967년 조종사였던 롤린 킹과 함께 미국 사우스웨스트 항공을 설립해 거의 실비에 가까운 싼 요금을 받으면서도 최고 수준의 고객 만족을 이끌어 내는 독특하면서도 위대한 기업으로 만든 주인공이다.그는 2019년 1월 3일 87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러나 직원들이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하면 고객은 저절로 행복해 진다는 신념으로 조직문화를 만들어 인간존중을 실천했다.
그는 자신과 가장 가까이 있는 직원들부터 존중했고 최고 대우를 받는다고 느낀 직원들이 사우스웨스트항공의 경쟁력을 극대화했다.
사우스웨스트항공사의 경쟁력은 사람에 있기 때문에 모방할 수가 없다. 제품, 기술, 재무, 자원 등 눈에 보이는 것은 다른 기업이 따라 잡을 수 있지만 애사심으로 뭉친 직원들은 결코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켈러허 회장의 인간존중 경영철학을 담은 어록을 살펴 보면 사우스웨스트항공 성공 사례가 왜 경영학 교과서에 나오는 단골 메뉴인지 알 수 있다.
"직원을 고객처럼 대하라" "공포가 아니라 사랑으로 묶이면 기업은 더 강해진다" "직원을 맨 앞에 두라. 직원을 잘 대하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고객이 다시 찿아와 주주들을 행복하게 만들 것이다. 직원들과 함께 시작하면 나머지는 저절로 따라온다."
"우리 성공의 핵심은 경쟁자가 모방하기 가장 어렵다는 것이다. 물질적인 것은 누구나 구매할 수 있다.그러나 살 수 없는게 있다. (회사에 대한) 전념, 헌신, 충성이다. 이것으로 무장한 직원들은 십자군에 참여한 군인과 같다.
" "어떤 사람이 비용 절감 아이디어를 가지고 오면 나는 바로 반응하지 않고 묻는다. 그게 고객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서비스의 본질적 차이는 기계나 사물에 있지 않다. 정신, 마음, 영혼에 있다."
"나는 모든 인간적 약점을 용서한다. 병적인 자기중심과 가식만 빼고." "비즈니스의 비즈니스는 사람이다" "조직을 이끄는 일은 시스템만큼이나 인간 영혼에 관한 것이다." 많은 회사 경영자들로부터 제일 많이 듣는 이야기 중에 사람을 다루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나아닌 상대편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면 자연스럽게 인간존중에 대한 나의 모랄이 정립될 수 있다. 켈러허 회장의 금과옥조를 마음 속에 새긴다.
무케니 암바니 회장의 무한도전 정신
인도 최고 부호 무케시 암바니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 회장의 딸 이샤 암바니(27)의 결혼식에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전 세계 유명인사들이 모였다. 릴라이언스 그룹은 인도 최대 민간기업으로 전력·석유채굴·금융·바이오·통신·유통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 중이다. 암바니 가문의 재산은 470억 달러, 우리돈 약 53조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12월 중순 딸 결혼식에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을 포함해 세계적인 저명인사들을 초청해 초호화 결혼식을 거행했다는 기사를 보고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상상을 초월하는 행동을 하는 걸까 관심사가 되어 조사를 해봤다. 그는 타타그룹과 더불어 인도를 대표하는 기업 릴라이언스의 무케시 암바니 회장이었다. 그는 도넘은 과시욕으로 종종 구설에 올랐고 5명이 살기위해 8년 전에 지은 27층짜리 저택은 베르사유 궁전보다 넓다.
빈부 격차가 심한 인도에서 지나친 사치를 부리는 것에 눈쌀을 찌푸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는 기업인으로서는 높은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그는 2세 경영인이지만 치열한 후계 경쟁에서 주위의 욕을 얻어먹어 가면서도 끊임없이 사업 영역을 확장해 기업을 키우며 많은 일자리를 만들고 있기 때문에 그의 성장사가 돋보이는 이유다. 릴라이언스그룹 창업자는 그의 아버지 디루바이 암바니다. 그는 1960년대 중반 작은 방직공장을 세워 사업을 시작했다.
불굴의 기업가정신에 사업 수완까지 뛰어났던 그는 10여 년 안에 회사를 상장시켰고 이를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석유화학 등 다른 분야로 영토를 넓혔다.
그의 장남 무케시 암바니는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을 다니던 1981년 부친의 부름을 받았다. 그의 경쟁자는 2년 뒤 그룹에 합류한 동생 아닐 암바니였다.
이때부터 두 형제들은 아버지의 낙점을 받기 위해 피투기는 경쟁을 벌였다. 그러는데 2002년 아버지가 유언도 남기지 않고 갑자기 세상을 떠나면서 두 형제는 전면전에 들어갔다.
보다 못한 어머니의 중재로 그룹을 쪼개 나눠 갖기로 하면서 파국은 막았다.
암바니 회장은 주력 업종을 차지했지만 만족하지 않고 동생의 영역까지 침범했다. 통신이다. 인구가 많은 인도에서 통신은 잠재력이 무궁무진했다.
그는 돈이 될만한 사업이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덤벼들었다. 풍부한 자본을 활용한 공격적 영업이 그의 무기였다. 그의 경영 지론은 사업은 많을수록 좋다는 신념이다. 그의 사업관을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100개 다리를 가진 지네같은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다가 1~2개를 잃어도 계속 굴러가며 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위험을 무릎쓰고 사업을 확장하는 이유가 뭐냐고 그에게 물으면 그는 이렇게 답했다.
"비판자와 냉소주의자 말엔 귀를 닫아라.너 자신의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삶의 리스크를 즐겨라, 이런 이들이 역사를 바꾸고 수많은 사람의 행복에 기여한다." 여기서 우리는 사업으로 나라에 봉사하고 사업으로 인류에 봉사한다는 기업가 정신을 되새겨 봐야 한다.
무케시 암바니의 경영을 우리식으로는 문어발식 경영이고 인도식으로는 지네 경영이라 부른다.
박정부 회장의 스스로에게 철저하라
아성다이소 박정부 회장, 그는 '싼게 비지떡'이라는 말을 가장 싫어한다. 그는 싸면서도 품질과 가치가 높은 상품을 내놓으려면 스스로 철저해야 한다는 자강론(自强论)을 펼친다.
국내 오프라인 유통기업 중에 유일하게 실적이 고공행진하는 기업이 있다. '1000원 가게'로 유명한 국내 기업 '다이소'이다. 작년 다이소 매출이 1조9785억원, 전년보다 20% 넘게 성장했다.
1000원짜리를 팔아 근 2조원치나 팔았다니 상상이 되는 일인가? 백화점도, 할인점도, 편의점도 아닌 '제4 유통'이라 불리는 균일가 매장을 국내에 안착시킨 사람이 박정부 아성다이소 회장이다. 다이소하면 대부분 일본 다이소를 연상하지만 순수 한국 기업이다.
박정부 회장은 공과대학을 나와 중소기업에서 근무하다가 어쩔 수 없는 일로 회사를 나왔다. 늦깎이로 일본 연수를 대행하는 회사를 세웠고, 기념품과 생활용품을 일본으로 수출하는 아성산업을 세웠다.
그는 일본 다이소산업에 납품하며 유통업에 눈을 돌렸다. 그는 회사 창립 초창기 시절을 회고했다. "1989년 무렵부터 일본으로 물건을 팔러 다녔는데 일본 기업으로부터 주문을 받는 일은 쉽지 않았다. 이때 100엔 숍을 보며 내 손으로 직접 팔아보자는 생각을 갖게 됐다.
1997년 5월 천호동에 첫 매장을 열었다." 이렇게 닻을 올린 다이소는 초기에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적자를 벗어나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10년 만에 매출이 1000억원을 돌파했고 2015년에는 1조원을 돌파했다. 현재 매장은 1300곳에 달한다.
다이소의 성공 요인은 한마디로 가격을 월등히 앞서는 상품 가치에 있다. 박 회장의 설명을 들어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1000원짜리 제품과 1000원 현금을 놓고 선택하라고 했을 때 머뭇거림 없이 상품을 잡도록 해야 한다." 가격 대비 성능(가성비)과 만족도를 높여야 한다는 것인데 구매와 물류, 마케팅, 매장 운영 등 모든 게 혼연일체로 움직여야 가능한 일이다.
박 회장은 '싼 게 비지떡이다'이라는 말을 제일 싫어한다.
그는 싸면서도 품질과 가치가 높은 상품을 내놓으려면 스스로에게 철저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자신에게 타협하지 않고 강해야만 올바른 물건이 만들어진다는 의미다. "상품이 매장까지 나오는 과정은 길다. 모든 단계를 미리 연출하고 준비한다.
납품업체의 새로운 제품에 대한 시제품을 만들어 오면 치열하게 토론한다. 이렇게 힘든 과정을 거치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가 철저하지 못하고 게으르면 고객이 먼저 알기 때문이다. 하나가 불량이면 고객은 100% 불량이라고 생각한다." 동종업계가 극심한 불황인데 나홀로 호황을 누리는 저력이 어디에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말이다.
장진둥 회장의 소처럼 걸어도 만리를 간다(牛步万里)
1990년 국유기업을 박차고 나와 에어컨 판매 사업에서 모은 돈 10만위안(1700만원)으로 장진동(张近东)은 쑤닝전자를 개업했다. 그리고 27년이 지난 현재 쑤닝은 중국 전역에 1800여 점포와 18만여 명의 직원을 둔 최대의 전자제품 유통업체로 성장했다
이탈리아 명문프로축구팀 구단주가 중국 기업 쑤닝이라고 기억하는 사람이 드물다. 외국 유통업체가 중국에서 성공하기는 매우 어렵다. 악천고투하다가 철수한 한국의 이마트와 롯데마트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나마 프랑스 카르푸가 잘 버텨왔으나 카르프마저도 손을 들었다. 그러면서 카르프 중국법인 지분의 80%를 중국 유통업체인 쑤닝에 넘기기로 한 것이다.
여기서 다시 주목받고 있는 사람이 중국 스타 기업인인 장진둥 쑤닝 회장이다. 그는 대단한 배포와 비전을 갖고 있음을 그의 말에서 찿을 수 있다. " "나는 중국 전자상거래 시장을 '알리바바'라는 한 회사가 지배할 것이라곤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중국 시장은 매우 넓고 깊고 엄청난 인구를 가지고 있다." 그의 성장 과정을 살펴보자. 난징(南京) 출신인 그는 대학 졸업 후 잠시 국영기업에서 일했지만 곧 그만두고 형과 함께 에어컨 대리점을 차렸다. 당시 중국에서 에어컨은 사치품이었다.
판매를 늘리는 데 한계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경쟁자들보다 한발 앞선 전략으로 빠르게 성장했다. 무료 배송과 설치, 철저한 사후 서비스를 제공했던 것이다. 그는 말했다. "내가 에어컨 판매를 시작했을 무렵 고객들은 쑤닝 제품이 200위안이 비쌌는데도 기꺼이 구입했다. 이유는 하나다. 서비스가 좋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쑤닝그룹을 일군 발판은 1999년에 문을 연 가전양판점이었다. 에어컨 판매만으로는 지속가능한 사업이 힘들다고 판단한 그는 업태를 전환했다. 결과적으로 가전양판점에 배팅한 그의 선택은 옳았다.
쑤닝은 매달 새로운 매장을 개설할 만큼 성장 속도가 빨랐다. 장 회장은 2004년 쑤닝을 선전거래소에 상장하며 큰돈을 손에 쥐었다.
이 자금으로 일본 가전업체 라옥스 등 인수·합병의 종잣돈이 됐다. 외형이 커지자 그는 전자상거래, 물류, 금융 등으로 영역을 꾸준하게 확대하고 있다. 그는 자기의 경영철학을 '우보만리(牛步万里)'로 표현한다. "사업에서는 국면과 시기가 있다.
하나라도 더 팔려고 오늘 싼값을 외치면 결국에는 돈을 벌 수 없다. 한번에 대단한 일을 하려고 하지 말고 차근차근 이뤄 나가야 한다." 큰 뜻을 품고 꿈을 이루려는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이야기이다. "차근차근이 밟아 올라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