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도살인(借刀殺人) 전술에서 본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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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두넷 | 작성일 :21-01-17 17:40|본문
`파리스의 심판`(1599), 헨드릭 반 발렌.직접 싸우지 않고 이기는 전술은? `손자병법`에선 차도살인(借刀殺人), 즉 남의 칼을 빌려 싸우는 계략을 꼽는다. 상대 진영의 경쟁심을 자극해 자중지란을 일으키는 것이다. 서양의 `파리스의 사과`, 동양의 `안영의 복숭아`가 그 예다.
`파리스의 사과`는 불화(不和)의 여신 에리스가 올림포스의 신들을 분열시킨 음모의 사과다. 에리스는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하자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쓰인 황금사과를 결혼식장에 던진다. 신들 간에 이간질을 하기 위해서였다. 헤라, 아테네, 아프로디테 등 여신 간 미모 경쟁으로 인한 불화는 파리스의 심판 1라운드를 넘어 트로이와 그리스 연합군 간 전쟁의 2라운드로 이어졌다. 미인 경연에서 승리한 아프로디테는 트로이를, 실패한 헤라와 아테나는 그리스군을 지원했고 전쟁은 트로이의 멸망으로 끝났다.
동양의 이도삼살사(二桃殺三士), 복숭아 두 개로 세 명의 장수를 죽였다는 이야기도 비슷한 서사다. 중국 제나라 경공에겐 전개강, 고야자, 공손접이란 장수가 있었다. 이들이 자신들 공을 믿고 교만하게 굴자 재상 안영은 제경공에게 제거 음모를 간한다(알고 보면 `교만하다`는 권력자 관점이다). `공이 많은 장수가 먹도록 하라`며 일부러 복숭아를 두 개만 하사해 갈라치기를 유도한 것. 이들은 의형제를 다짐했던 결의도 잊고 자기 공이 크다고 다투다 모두 죽었다.
제갈량은 이들 무덤이 있는 곳을 지나다 `양부음(梁父吟)`을 지어 애도했다. "하루아침에 참소에 걸려들어 복숭아 두 개에 세 장수가 죽었네. 누가 그런 음모를 꾸밀 수 있을까. 제나라 상국인 안영이구나(一朝被讒言 二桃殺三士 誰能爲此謀 相國齊晏子)."
대처 켈트너 캘리포니아 버클리대 교수의 쿠키 몬스터 실험이 있다. 연구진은 학생 세 명을 한 조로 해 임의로 리더 한 명을 뽑았다. 휴식시간에 갓 구운 쿠키 4개를 가져와 각자 한 개씩 먹고 남은 쿠키 한 개를 누가 먹는지 살폈다. 남들은 하나씩밖에 못 먹게 된다는 걸 알면서도 혼자 과자 두 개를 거침없이 가져가는 사람은 대부분 리더로 지목된 이들이었다.
이들은 먹는 태도도 무례했다. 임의로 역할이 정해진 것일 뿐인데도 완장 때문에 생긴 권력중독현상이었다. 강자와 약자로 갈려 누군 권력을 누리고, 나머지는 위축됐다.
동서고금에 걸쳐 `차도살인` 병법이 먹히는 이유는 공명심 때문이다. 이에 대응하는 방법은 더 세지고, 더 높아지고, 더 인정받으려 하기보다 서로 협력하고 신뢰하는 것이다. 인간에겐 경쟁욕도 있지만 협력 본성도 내재돼 있다. 뒤로 제친 사람 수치보다 사람들과 함께하는 `가치`에서 동기를 얻고자 할 때 공멸이 아니라 공생 방법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