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기기(欹器) & 계영배(戒盈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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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두넷 | 작성일 :20-08-08 03:39|본문
고대 중국에서 군주가 올바로 처신하도록 경계하기 위하여 사용한 그릇이다.
기(欹)는 기운다는 뜻으로, 물이 가득 차면 뒤집어지고, 비었을 때는 조금 기울어지며, 절반 정도 차면 반듯하게 놓이는 그릇이다. 고대 중국에서 왕이 앉는 자리의 오른쪽에 놓고 보면서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고 알맞게' 처신하도록 스스로 경계하는 데 사용한 그릇으로서, 중용(中庸)의 뜻과 상통하는 점이 있다. 기기에 관한 이야기는 《순자(荀子)》의 <유좌(宥坐)>편에 보인다.
공자가 노(魯)나라 환공(桓公)의 사당을 방문하였을 때 이 그릇을 보고 사당지기에게 무슨 그릇이냐고 묻자, 사당지기는 "환공이 자리 오른편에 두던 그릇"이라고 대답하였다. 공자가 "이 그릇은 비어 있으면 기울고, 절반쯤 차면 바르게 놓이며, 가득 차면 엎어진다(虛則欹, 中則正, 滿則覆)"고 들었다면서 제자를 시켜 물을 떠오게 하여 그릇에 담아 실험해보니 실제로 그와 같았다.
공자가 "가득 채우고도 기울지 않는 것은 없다"라고 말하자 제자인 자로(子路)가 "가득 채우고도 그것을 지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하여 물었다. 이에 공자는 "총명하고 지혜로우면서도 어리석음으로 지키고, 천하에 공을 세우고도 겸양으로 지키고, 천하를 누를 정도로 용맹하면서도 검약으로 지키고, 천하를 가질 정도로 부유하면서도 겸손으로 지켜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또 《채근담(菜根譚)》에도 "기기는 가득 차면 엎어지고, 박만은 비어야 온전하다. 그러므로 군자는 무에 거할지언정 유에 거하지 않고, 모자란 곳에 머물지언정 모두 갖춘 곳에 머물지 않는 법이다(攲器以滿覆, 撲滿以空全. 故君子寧居無不居有, 寧處缺不處完)" 라고 하여 욕심을 경계한 글이 보인다. 박만(撲滿)은 흙으로 만든 일종의 저금통으로 돈이 가득 차면 깨뜨려야 꺼낼 수 있으므로, 항상 비어 있어야 온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계영배(戒盈杯)’도 같은 의미다. 밑바닥에 구멍이 있는 술잔이다. 적당히 따라야지 70% 이상 채우면 술이 다 새나간다.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원래 고대 중국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 쓰던 제기였다. 과음은 말할 것도 없고, 매사에 지나침을 삼가게 해달라는 서원을 하기 위함이다.
조선에도 있었다. 조선시대 권력기관들은 각기 독특한 술잔을 가졌었다. 왕명을 받드는 승정원 관리들은 ‘갈호배(蝎虎杯)’란 걸로 술을 마셨다. 갈호는 사막에 사는 도마뱀의 일종인데 술 냄새만 맡아도 죽는다는 전설이 있단다. 일부러 술잔을 갈호 모양으로 만들어 과음을 자기 단속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