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명나라 학자 최선의'육훈(六訓)... 육훈과 조선의 최부자 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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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두넷 | 작성일 :20-04-15 22:37|본문
중국 명나라 학자 崔銑 '육훈(六訓)...
1. 자처초연(自處超然)
자기 자신에 대해 초연하고
속세의 일에 구애 받지 않는 것.
2. 처인애연(處人靄然)
남과 사김에 있어
상대를 즐겁게 하고 기분 좋게 하는 것.
3. 유사참연(有事斬然)
무슨 일이 있을 때 꾸물대지 말고
명쾌하게 처리할 것.
4. 무사징연(無事澄然)
아무 일도 없을 때는
물처럼 맑은 마음을 가질 것.
5. 득의담연(得意澹然)
일이 잘 되는 때일 수록 조용하고
안정된 마음을 가질 것.
6. 실의태연(失意泰然)
실의에 빠졌을 때에도
태연자약 할 수 있을 것
(* 崔銑(478 ~ 1541) 중국 명나라 학자. 중국 하남(河南) 안양(安陽) 사람. 자는 중부(仲鳧) 또는 자종(子鍾)이고, 호는 후거(後渠) 또는 소석(少石), 원야(洹野)며, 시호는 문민(文敏)이다. 홍치(弘治) 18년(1505) 진사(進士)가 되었다.
중국역사에서 유명한 최선의 육훈은 조선의 최고 부자집 가훈으로 되였다
1. 경주 최부자집에 대한 내력
1) 내용
- 300년 동안 부를 지켜온 "최부자 집" 이라? 년간 지속되어 온 경기 침체로 인해, 하루 사는 것도 각박한 그 당시 사회에서 어떻게 하여 부자가 되었으며, 또한 그 부를 그렇게 오랫동안 지켜 낼수 있었을까? 우선 '최부자'라 하면 우리나라 역사에서 가장 오래동안 부를 지켜온 가문 입니다. 최부자보다 더 많은 재물을 가졌던 사람들도 물론 있었지만 거의 모두 '부'를 일구고, 당대에 망했거나 길어야 3대까지도 가기가 어려웠습니다
- '경주 최부자'는 17세손인 최진립(1568-1636)과 그의 아들 최동량이 터전을 이루고, 손자인 최국선(1631-1682)으로 부터 28세손인 최준(1884-1970)에 이르는 약 300년동안 부를 누린 일가를 말합니다
- 최부자 집안은 병자호란때 숨진 최진립(전라도수군절도사 등을 역임)의 공신 토지를 기반으로 만석의 재산을 일컸습니다, 최진립은 병자호란때 왕명에 의하여 공주 영장(정3품 당상직)으로 군사를 이끌고 청군과 싸우다 용인 험천에서 전사 하였습니다. 만석지기 최부자 가문은 1대 최진립(1568-1636)에서 전재산을 영남대 설립에 기부한 12대 최준(1884-1970)까지를 말합니다
- 1947년에 대부분의 재산을 영남대 설립에 기부해, 부자 가문의 막이 내렸습니다, 후손들은 평범한 중산층으로 살고 있습니다. 영남대학교는 1947년 3월 최준에 의해서 '대구문리과 대학'으로 개교 하여 1947년 9월 재단법인 대구대학 설립을 인가 받고 1967년 12월 학교법인을 '영남대학교'로 교명을 변경 하였습니다
- 최준은 조선의 독립운동가이자, 기업인, 사회운동가, 교육인으로서 본관은 경주, "경주 최부자 12대"로 마지막 최부자로 알려져 있습니다(1983년 대한민국 정부에서 대통령표창을 추서 하였고,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하였습니다)
최부자 가문의 육연
(자신을 지키는 교훈)
자처초연(自處超然) : 스스로 초연하게 지내고
대인애연(大人靄然) : 남에게 온화하게 대하며
무사징연(無事澄然) : 일이 없을 때 마음을 맑게 가지고
유사감연(有事敢然) : 성공했을 때는 담담하게 행동하고
실의태연(失意泰然) : 실패했을 때는 태연히 행동한다
최부자 가문의 육훈
(집안을 다스리는 교훈)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벼슬을 하지 말라
만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흉년기에는 땅을 늘리지 말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주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시집 온 며느리들은 3년간 무명옷을 입게 하라
- 최부자의 고택(옛집)은 7대인 최인경(1743-1804)대에 경주시 내남면 이조리 속칭 "게무덤(물이 모이는 기름진 땅)" 에서 이곳(경주시 교동)으로 옮겨 왔으며, 최부자의 옛집은 국가 중요민속자료 제27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최부자의 옛집 "경주시 교동" (방이 99개나 되었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