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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 시조황제 주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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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 :19-02-03 01:26 조회 :229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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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명나라 시조황제 주원장(朱元璋))의 자는 국서이다. 호주, 종리(지금의 안휘성 봉양현) 출신으로서 가난한 농민 가정에서 태어났다.

주원장은 17살 나던 해 부모를 잃고 황각사에 들어가 꼬마 중으로 있었다.

1352년 주원장은 곽자흥이 이끈 홍건군에 가입해 용감하게 싸워 이름을 날렸다.

 

1355년 곽자홍이 죽자 주원장은 곽군의 지휘권을 장악하였다. 병권을 장악한 주원장은 대군을 이끌고 원 왕조의 수군을 크게 무찌르고 장강을 건너 강남으로 세력을 뻗쳤다.

주원장은1356년 집경로(후에는 응천부라 함)를 점령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응천부를 근거지로 삼아 주변세력을 확장해 장강 남북을 모두 차지하였다. 1368년 주원장은 응천부에서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서 국호를 명, 연호를 홍무로 정했다.

황제가 된 주원장은 북방에 대군을 파견하여 원나라의 수도 대도(大都, 지금의 베이징)를 점령하고 원나라 순제를 몽골초원으로 쫓아냈다. 그 뒤에도 몇 차례 대군을 파견하여 원나라의 잔존세력을 정벌하였고 1388년 통일을 완성했다.

주원장은 농민출신이었기에 왕위에 오른 후 백성들의 부담을 덜어주고 생활을 안정시키는 정책을 실시하는데 주의를 돌렸다.

그는 관리들에게 청렴결백하고 법을 지켜야 하지 뇌물을 받아먹고 법을 어겨서는 안 된다고 명을 내렸다.

 후에 그는 황무지 개간을 격려하고 3년 동안 부역과 세금을 면제하였으며 주둔군이 황무지를 개간하여 식량을 자체로 해결하도록 했다.

주원장은 도덕규범인 육유를 정했으며 교민방문을 반포하여 백성이 지켜야 할 본분을 가르쳤고 황제에게 충실하게 복종할 것을 강요하였다.

1380년 승상 호유용이 왕위를 차지하려고 시도한다는 고발을 받은 주원장은 호유용과 그 집안뿐만 아니라 그와 연류 된 15000명도 가차 없이 죽였다.

 호유용 사건이 발생한 후 주원장은 군정대권을 대신들에게 주는 것이 안심되지 않아 승상직을 취소하고 직접 5개부의 상서(지금의 장관급)를 관할했으며 군권을 장악하고 있는 대도독부를 철폐하고 좌, 우, 중, 전, 후 5개 도독부를 설치하였다.

 결과 주원장의 권력이 크게 집중되었다. 1382년 주원장은 자신이 직접 관할하는 국사기구인 금의위(錦衣衛)를 설치했다.

금의위 관원들은 황제의 특명을 함부로 행사했는데 모반을 꾀한다는 죄명으로 문무관원 15000여명을 죽였다. 하여 조정의 대신들이 거이 다 숙청되어 명태조의 독재와 잔인한 성품이 역사에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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