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천국 창시자 홍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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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9-02-03 01:04|본문
홍수전(洪秀全)의 본명은 홍인곤이고 아명은 홍화수로 광동현 화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어려운 가세를 돕기 위해 농사일을 배웠다.
과거에 급제하는 것이 가난과 멸시에서 벗어나는 길이라고 생각한 홍수전은 16살부터 31살까지 여러번 과거를 보았지만 번마다 낙방되었다. 마지막으로 과거에서 낙방되던 해 홍수전은 광주 거리에서 선교사에게서 받은 기독교 입문 서적인 "권세양언"을 읽게 되었다.
홍수전은 "권세양언"을 읽은 후 친구인 풍운산 등과 함께 광서지역을 다니면서 선교활동을 진행했다. 선교기간 홍수전은 50여 편의 글을 썼는데 지금 전해지고 있는 것은 "원세구세가" 등 몇 편이다.
홍수전은 "원도구세가"에서 사람은 누구나 정치, 경제적으로 평등해야 한다고 언급하면서 신선, 공자, 맹자, 청 황제는 모두 염라요이고 관리와 군대는 요도, 귀졸이기에 타도할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홍수전은 1851년 12월 10일 자신의 38세 생일을 기해 태평천국 성립을 선포했다. 태평천국은 청나라를 정벌하고 명나라를 부흥한다는 기치를 내걸었다. 태평군은 호남성으로 진격했는데 그 세력은 마치 구르는 눈덩이마냥 갈수록 커져 이듬해엔 장강 중류의 요충지를 모두 함락했다.
이때 태평군은 2백여만 명에 달했으며 수륙 양군은 장강 연안을 따라 남경을 공격해 청나라 군대와 치열한 전쟁을 벌였다. 남경을 함락한 후 홍수전은 남경을 천경이라고 이름을 고치고 수도로 삼아 정착했다.
태평천국 봉기가 일어날 때 중국은 아편전쟁후로 외국 열강들이 침략을 받고 있었다. 때문에 태평천국은 청나라 봉건통치에 대항하는 외에 외세 침략에도 항격해야 했다. 태평천국이 성세를 이루자 제국주의 열강들은 태평천국을 돕는 조건으로 중국의 영토를 나누어 가지자고 했지만 홍수전은 이를 단연히 거부했다.
태평천국의 성세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태평천국은 지도층의 내분으로 하여 원기를 크게 상했다. 1856년 9월 2일 홍수전은 함께 태평천국을 세운 양수청을 북왕 위창휘를 시켜 살해한 뒤 위창휘가 다시 오만해지자 그마저 살해했다.
홍수전은 옥새를 만들고 천왕으로서의 권위를 과시하면서 미녀 18명을 뽑아 후궁으로 삼는 등 중국의 역대 제왕과 같은 생활방식을 추구하기 시작했다. 홍수전은 오랫동안 정사를 돌보지 않고 궁녀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또는 종교적 명상을 하며 세월을 보냈다. 이 사이 숨 돌릴 틈을 얻은 청나라는 외국 열강들과 손잡고 태평천국 정벌에 나섰다.
1862년 태평천국의 장수들이 천경의 상황이 위급하므로 퇴각해야 한다고 조언했지만 홍수전은 신의 계시를 믿는다고 하면서 퇴각을 거부했다. 그는 신이 도움을 주리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천경이 포위될 경우에 대비해 식량을 비축하는 것조차 비준하지 않았다.
홍수전은 천경이 함락되기 한달전에 병사했다. 이로써 14년에 걸쳐 중국의 18개 성을 휩쓸었던 농민봉기는 역사의 어둠속에서 막을 내렸다.
홍수전이 조직, 지휘한 태평천국운동은 중국에서 위대한 농민혁명운동으로 역사에 빛나는 한 폐지를 수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