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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新, 日日新, 又日 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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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작성일 :09-07-13 11:13 조회 :2,282회 댓글 :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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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로 새로와지려거든 하루하루를 새롭게 하고 또 매일매일을 새롭게 하라. 

 

1)이 말은 원래 중국의 최초 역사서인 [상서(尙書)]에 실린 은(殷) 탕(湯) 왕의 반명(盤銘)이란  글에 실려 있고, 이후 [대학(大學)]이란 유가 경전에 다시 실려 유명해진 말이다. 

 

원래의 문구는 “日新, 日日新, 又日 新”으로 “날로 새로워지려거든 하루하루를 새롭게 하고  또 매일을 새롭게 하라.”란 뜻이다. 이를 간략히 줄여 “일신우일신”이라고 한다. 

  즉 '날마다 잘못을 고치어 그 덕(德)을 닦음에 게으르지 않음'을 이르는 말이다.

 

2)새로워진다는 것은 과거를 돌이켜 잘못된 점을 살피고, 이를 고쳐 새롭게 변화시키는 것이다. 

  즉 ‘반 성’과 ‘적극적 변화’를 전제로 한다. 물론 변화의 방향이나 목적지에 대한 논의는 별개의 것이지만.... 아무튼 새로워진다는 것은 긍정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여기에 함정이 있다. 새로워지는 것의 상대 적 개념으로 ‘과거’가 자칫 낡은 것으로 평가절하 되어 고쳐지는 것의 대상으로서, 언 듯 보기에 나쁜 무언 가로 생각되기 쉽다. 

  가령 요즘에 유행하는 ‘구시대를 개혁 한다’든가 ‘과거사를 바로 잡는다’는 등의 구호 가 근사하게 보임으로서, ‘과거’는 구시대의 개혁대상이거나 아니면 뭔가 잘못의 근원으로 암울하고  더럽고 구린 냄새가 나는 것으로 비춰진다. 

 현재의 세대가 종전의 세대를 대체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런 일이 고 피할 수도 없는 일이다. 

  장강의 뒷물이 앞 물을 밀쳐내듯이 말이다. 이것은 상생의 물질운동이다. 바꿔 치는 운동이 아니다. 

  강물은 위에서 아래로 일관된 방향으로 흐를 뿐이고, 이 자연스런 물질운동을 유지하는 가운데 무리 없이 장강은 늘 새로운 물로 가득차 흐른다. 

  그러니 장강의 앞 물은 뒷물에 의해 피눈 물을 흘리면서 밀려나는 것이 아니고, 뒷물도 앞 물을 도끼눈 뜨고 밀쳐내는 것이 아니다. 따라 가는 것이다. 

 즉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특별한 액션을 가하지 않아도 냉엄한 물질의 법칙에 의해 순환해간다. 

  그러므로 과거는 현재와 미래의 스승이고 본원이다. 

  잔혹하게 또 억지로 교체하거나 교정되는 것이 아니다.

 3)과거는 현재와 미래를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과거의 가치를 현재와 미래의 시점에서 찬양한 말들은 많다. 

  가령 ‘溫故而知新’이라든지 혹은 ‘繼往開來’라든지. 모두 과거의 생산적 의미를 강조하고 있는 말이다. 

  자동차의 백미러를 통해 우리는 뒤를 바라본다. 하지만 그 궁극적 용도는 앞으로 잘 달리기 위한 것이다. 각도를 바꿔 말한다면, 과거를 어떻게 이해하고 처리할 것인가에 따라 현재와 미래의 의미가 규정된다. 

  이 대목에서 한 편의 시를 살펴보자.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겠어요. 

          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주듯이. 

          지금 어드메쯤 아침을 몰고 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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