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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할 만한 자리 (연변延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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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11-10-26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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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활한 벌판과의 강렬한 첫 만남, 누구라도 목놓아 울 수밖에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모든 감동이란 첫 경험에서 일어난다.

처음으로 만주 벌판을 보는 그 감동은 '울고 싶다'로 축약할 수 있다. 일찍이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만주 벌판을 처음 봤을 때 감동을 다음처럼 적었다.

'…말을 채찍질하여 수십 보를 채 못 가서 겨우 산기슭을 벗어나자 눈앞이 아찔해지면 눈에 헛것이 오르락내리락하여 현란했다. 나는 오늘에서야 비로소 사람이란 본디 어디고 붙어 의지하는 데 없이 다만 하늘을 이고 땅을 밟은 채 다니는 존재임을 알았다. 말을 멈추고 사방을 돌아보다가 나도 모르게 손을 이마에 대고 말했다. '좋은 울음터로다. 한바탕 울어볼 만하구나!'
우리 심성 속에 깊이 숨어 있던 호연지기(浩然之氣)를 만난 것이다. 답답한 반도에 갇혀서 그것이 반도인 줄도 모르고, 마치 그 세상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인 줄 알고 살았던 사람들이 끝없이 펼쳐진 넓은 땅을 봤을 때 충격을 받게 되고 그제야 세상을 보는 시야도 탁 트이게 되는 것이다.

뜻이 있는 조선의 사내라면 그 벌판을 보고 한 번씩은 통곡을 한다. 연암뿐 아니라 이육사도 그랬고, 유치환도 그랬고, 당대 문필가, 예술인, 기타 필부까지 그 호연지기를 느꼈다. 우리 시단에 웅장한 남성 어조의 원조이자 독보적인 존재라 할 수 있는 이육사와 청마 유치환의 그러한 시세계가 만주 경험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으리라.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로 시작하는 이 육사의 대표 작 '광야'의 웅장한 시간과 공간의 배경은 만주가 아니면 도저히 탄생할 수가 없었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시(詩)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당시 젊은이의 정서를 지배했던 대중가요 속에도 호연지기를 느낄 수 있다.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 따르는 이별주에 탄식만 길더라…' 로 시작하는 1930년대 히트작 '번지 없는 주막', '대지의 항구', '나그네 설움' 역시도 그것이 비록 애상적인 정조가 주조를 이루고 있다 할지라도 가슴이 벅찬 호연지기임에 틀림없다. 그런 노래는 좁은 반도에서 절대로 나올 수 없는 정서이다. 그렇고 보니 그 노래를 부른 '백년설'이라는 가수의 이름 역시 반도에서는 찾기 힘든 대륙적 이름이다. 우리는 그 시절 만주를 보면서 비로소 우리의 역사를 본 것이다. 중국의 속국인 작은 나라가 아니라는 사실에 우리 스스로도 놀랐을 것이다.

해외여행 자유를 누리지 못했던 스무 해 전만 해도 우리의 젊은이들은 연암 시대보다 더 답답한 세계에 갇혀 지냈다.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지만 당시 우리는 좁은 반도 그것도 허리가 잘린 반도 남쪽에서만 지낼 수밖에 없었다. 중년이 되어서 말로만 듣던 넓은 만주 벌판을 처음으로 봤을 때 정말 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올라왔다. 그것이 '호연지기'였다.

만주에서 통곡하는 시인이 또 있다. 2003년에 나와 동행했던 조성래 시인은 만주 경험이 처음이었다. 그는 속에 것을 다 끄집어내 듯 통곡했다. 아무런 이유 없이 통곡했다지만 그 역시 자신의 속 깊은 곳에 내재되어 있던 그 '호연지기'를 만나는 감동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감동은 그가 늘 즐겨 부르던 백년설의 '나그네 설움'처럼 한없이 깊은 정서의 울림을 말해 주고 있었다.

그가 목 놓아 울었던 것은 이육사가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 놓'은 그 광야에서 '천고 뒤 백마 타고 온 초인'처럼 '목 놓아 울'었던 것은 아닐까. 남성다움이 사라지고 점차 소인배들만 늘어가는 지금의 경박한 우리 사회에 아직도 통곡할 만한 자리가 있다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 아니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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