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동네 애휘(愛輝, Aihu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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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작성일 :11-06-02 09:14|본문
960만 제곱 킬로미터에 달하는 넓은 중국의 땅위에는 아름다운 명소들이 수도 없이 많다. 내외에 이름난 관광지나 관광도시는 물론이고 산과 들과 물가에 산재해 있는 옛 동네 마찬가지로 비경이다.
오랜 세월속의 동네 애휘(愛輝, Aihui)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동네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모습을 자랑하는 부유한 동네이다. 흑룡강물을 사이두고 러시아와 마주하는 애휘는 구동네와 신동네로 나뉜다.
구애휘는 흑룡강의 왼쪽기슭에 위치하고 애휘진으로도 불리우는 신애휘는 흑룡강의 오른쪽기슭에 위치해 있다. 애휘는 청(淸)나라때 흑룡강유역의 경제와 문화, 군사중심지였고 오늘날은 농업과 관광업, 축산업이 앞서가는 동네이다.
오랜 세월속의 동네 애휘(愛輝, Aihui)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동네이면서 동시에 새로운 모습을 자랑하는 부유한 동네이다. 흑룡강물을 사이두고 러시아와 마주하는 애휘는 구동네와 신동네로 나뉜다.
구애휘는 흑룡강의 왼쪽기슭에 위치하고 애휘진으로도 불리우는 신애휘는 흑룡강의 오른쪽기슭에 위치해 있다. 애휘는 청(淸)나라때 흑룡강유역의 경제와 문화, 군사중심지였고 오늘날은 농업과 관광업, 축산업이 앞서가는 동네이다.
1907년 애휘를 수복한 후 성을 쌓고 동네를 새롭게 조성했다. 애휘신성의 북쪽에는 카륜산이 솟아 있고 동쪽에는 포대산이 있으며 남쪽에는 나루터가 있고 서남쪽 북대령(北大嶺)은 바로 1900년에 제정러시아와 싸운 전쟁터이다.
신성은 동서남북에 성문 하나씩 두었으며 남문밖에 성황묘(城隍廟)를 짓고 성안 사거리의 중앙에 종루(鐘樓)를 세웠다. 그밖에 성안에는 관공서와 성황묘, 문묘 등 건물과 일반 가옥들이 위치해 있다.
신성은 동서남북에 성문 하나씩 두었으며 남문밖에 성황묘(城隍廟)를 짓고 성안 사거리의 중앙에 종루(鐘樓)를 세웠다. 그밖에 성안에는 관공서와 성황묘, 문묘 등 건물과 일반 가옥들이 위치해 있다.
1975년에 건설한 애휘역사전시관은 청나라때 장군의 저택에 위치한, 중국에서 유일하게 극동지역에서의 중러관계를 보여주는 박물관이다. 왼쪽은 네모나고 오른쪽은 둥글게 조성된 전시홀은 국토의 완정함을 보여준다.
전시홀은 둘로 나눈 커다란 삼각형의 변이 하나는 견증송(見證松)을 가리키고 다른 한 변은 괴성각(魁星閣)을 바라본다. 그리고 오른쪽의 둥근 건물은 성밖으로 나가 제정러시아에 강점되었음을 의미한다.
전시실 왼쪽의 벽에는 <아름답고 부요한 흑룡강>을 보여주는 벽화가 그려져 있고 오른쪽 벽에는 1858년에 체결한 <애휘조약>의 불평등을 의미하는 풍경 1858개가 달려 있다.
전시홀은 둘로 나눈 커다란 삼각형의 변이 하나는 견증송(見證松)을 가리키고 다른 한 변은 괴성각(魁星閣)을 바라본다. 그리고 오른쪽의 둥근 건물은 성밖으로 나가 제정러시아에 강점되었음을 의미한다.
전시실 왼쪽의 벽에는 <아름답고 부요한 흑룡강>을 보여주는 벽화가 그려져 있고 오른쪽 벽에는 1858년에 체결한 <애휘조약>의 불평등을 의미하는 풍경 1858개가 달려 있다.
전시실안에는 역사를 복원하는 기법으로 애휘조약의 체결현장이 생동하게 재현되었다. 그리고 해란포(海蘭泡) 참안을 보여주는 1,000여구의 유해가 마음을 흔든다.
전시실의 마감부분에는 정치와 경제, 군사 등 분야에서 친선적으로 지낸 중국과 러시아와의 역사가 재현되어 <자자손손 적으로 되지 말자>는 아름다운 소망을 보여준다.
애휘역사전시실의 서북쪽에 솟은 푸른 소나무는 애휘의 고난의 세월을 보아왔다. 1900년 러시아가 애휘를 공격해 200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애휘성을 폐허로 만들었다.
그 고난에서 남은 것이라고는 견증송이라는 이름의 이 소나무와 괴성각뿐이다. 1945년 쏘련홍군이 동북에 출병하면서 괴성각이 포화의 세례를 받았고 그 뒤에 무너지고 말았다.
전시실의 마감부분에는 정치와 경제, 군사 등 분야에서 친선적으로 지낸 중국과 러시아와의 역사가 재현되어 <자자손손 적으로 되지 말자>는 아름다운 소망을 보여준다.
애휘역사전시실의 서북쪽에 솟은 푸른 소나무는 애휘의 고난의 세월을 보아왔다. 1900년 러시아가 애휘를 공격해 200여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진 애휘성을 폐허로 만들었다.
그 고난에서 남은 것이라고는 견증송이라는 이름의 이 소나무와 괴성각뿐이다. 1945년 쏘련홍군이 동북에 출병하면서 괴성각이 포화의 세례를 받았고 그 뒤에 무너지고 말았다.
오늘날의 괴성각은 1980년에 그 자리에 원 모양대로 복원한 건물이다. 괴성각에 올라서면 흑룡강과 5000여명이 목숨을 잃은 참안의 현장 해란포가 한 눈에 보인다.
괴성각의 1층과 2층은 벽돌로 쌓았고 3층에 목조건물로 누각을 지었다. 조각된 대들보와 그림이 화려한 기둥, 붉은 난간과 푸른 기와가 주변의 백양나무와 어울려 우아하면서도 소박하다.
흑룡강(黑龍江, Heilongjiang)성 흑하(黑河, Heihe)에 위치한 애휘는 교통이 편리하다. 흑룡강성 소재지 할빈(哈異濱, Haerbin)에서 열차를 이용해 흑하에 이르고 흑하역에서 애휘행 버스를 바꾸어 타면 된다.
괴성각의 1층과 2층은 벽돌로 쌓았고 3층에 목조건물로 누각을 지었다. 조각된 대들보와 그림이 화려한 기둥, 붉은 난간과 푸른 기와가 주변의 백양나무와 어울려 우아하면서도 소박하다.
흑룡강(黑龍江, Heilongjiang)성 흑하(黑河, Heihe)에 위치한 애휘는 교통이 편리하다. 흑룡강성 소재지 할빈(哈異濱, Haerbin)에서 열차를 이용해 흑하에 이르고 흑하역에서 애휘행 버스를 바꾸어 타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