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의 건축풍을 가미한 이런 기루들은 1층은 가게로 사용되고 2층은 주거용으로 사용된다. 그밖에 기루들 사이에는 회관과 유사한 공공건물도 자리 잡고 있다.
애성에는 또한 청(淸)나라때 지은 가옥들도 많다. 혹은 무너진 건물이나 개조중인 건물도 보이지만 대체적으로 고풍스러운 느낌은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이런 가옥들은 남북과 동서향으로 된 두 갈래 중심선을 둘러싸고 조화롭게 위치해 있다. 청나라때의 가옥은 대부분 가운데 뜰을 두고 사면에 건물을 지은 사합원(四合院)구도이다.
800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성덕당(盛德堂)은 당나라 관료의 저택인데 현재는 안채 하나만 남아 있다. 성덕당이라는 이름은 남송때 이 곳에 좌천된 한 관리가 지은 이름이다.
특기할만한 것은 성덕당이 고건물군락에 합류한것이 아니라 홀로 한다는 점이다. 성덕당의 남쪽은 논이고 동쪽은 무성한 야자숲이며 서쪽과 북쪽에는 현대적인 주거시설이 있어서 환경이 심히 좋다.
애성학궁(學宮)은 현재 해남에서 가장 완정하게 보존된, 급별이 가장 높고 규모가 가장 큰 학당인 동시에 중국의 가장 남쪽에 위치한 공자의 사당 공묘(孔廟)이다.
천여년전의 송(宋)나라때에 신축된 이 건물은 그 뒤에 수차에 달하는 보수와 확장을 거쳤는데 오늘날까지 유지하는 완정한 구도는 1872년의 청(淸)나라 마지막 보수때 조성한 것이다.
대성전(大成殿)과 대성문, 동서쪽 별채들인 동무(東庑), 서무(西庑), 천자대(天子台), 곤명지(昆明池) 등 건물에서 연꽃을 새긴 돌 기둥은 송조때의 풍격을 보여주고 대들보는 명조때의 풍격을 보여준다.
엄격한 대칭을 이루면서 조화롭게 째인 구도를 자랑하는 애성학궁은 지방의 특색과 지역의 문화를 보여주는 전통건물의 대표작이다. 애성학궁은 옛 성의 남문, 패방과 함께 애주의 중심선을 구성하고 해방로와 학전가, 교부가와 함께 열 십(十)자형의 거리 구도를 형성한다.
애성에서 빼놓지 말아야 할 명소가 또 하나 있다. 0.25제곱킬로미터의 부지에 70여채의 명청시기 고건물이 들어선 보평촌(保平村)이다. 두드러진 특색을 자랑하면서 완정하게 보존된 이 동네에는 용과 봉황, 기린, 학, 소나무, 대나무 등을 새긴 정교한 불단이 일품이다.
애성에는 한 때 번화일로를 달리고 아름다운 경관을 가진 대단항(大旦港)이라는 이름의 항만도 있다. 이 곳에 정착하러 온 모든 사람들이 거쳐간 이 항만은 오늘날 더는 항만의 역할은 하지 못하지만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대단항의 근처에는 감진(鑒眞)스님이 일본으로 다섯번 오가면서 거쳐간 쇄경파(晒經坡)가 있다. 태풍을 피해 이 곳에서 경전을 말리우고 1년간 주거하는 동안 이 곳에서 불교의 계율을 가르쳤다고 해서 이름이 쇄경파이다.
중원(中原)문화의 영향을 받은 애성의 민족민간문화예술은 다채롭고 풍부하다. 리족과 묘족의 노래와 춤, 방적기술, 대나무엮기, 금은 장신구, 철물주조, 종이 오리기, 목각, 석각, 신 맞이 행사 등은 애성전통문화를 보여주는 좋은 실례들이다.
그 중 수백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애성의 민요 애주민가(崖州民哥)와 가장 좋은 헬스무용으로 공인되는 타시무(打柴舞)는 중국 무형문화재 명록에 등재되기도 했다.
해남(海南, Hainan) 삼아(三亞, Sanya)에 위치한 애성은 교통이 편리하다. 삼아도심에서 애성행 버스를 이용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