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한 하늘, 따스한 햇살, 빛나는 바다-절강성 보타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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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11-03-10 08:28|본문
아침에 눈을 뜨니 눈부신 햇살이 방안을 비추고 있다. 여행을 시작한 이후 내내 달고 다니던 감기가 이제는 떨어져야 할텐데…. 두껍게 옷을 껴입고, 경산이가 사온 만두와 빵으로 아침을 먹고 집을 나선다.
오늘은 이곳 영파에서 2시간 가량 걸리는 보타산으로 1박2일의 짧은 여행을 떠난다. 집 앞에서 1원짜리 버스를 타고 배표 끊는 곳에 도착하니 9시 반. 10시 50분 표를 끊고 주위를 둘러본다. 론니플래닛을 보니 주변에 포르투갈 성당이 있다기에 찾아간다.
▲ 영파 선착장 부근의 포르투칼 성당.
ⓒ 오마이뉴스 김남희
성당의 문은 잠겨 있고 문지기 아저씨가 매서운 눈길로 나를 훑어본다. 들어가도 되겠느냐고 묻자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되묻는다. 한국사람이라는 대답에 딱딱한 인상이 풀리며 문을 열어주신다.
성당은 작고 조용하다. 창이 많은 실내로 밝은 햇살이 들어와 실내는 어둡지 않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관련된 그림들이 벽을 따라 늘어서 있고, 조악하지만 지난 성탄절에 만들어놓은 듯한 아기 예수와 말구유도 보인다.
천주님 앞에 서서 두 손을 모아 기도를 드린다. 이 여행을 건강하게 잘 마칠 수 있게 지켜봐달라고. 성당을 나오니 문지기 아저씨가 말을 걸어온다. 매주 토요일 저녁이면 한국사람들이 모여 미사를 드리니 꼭 오라고. 작별인사를 하고 성당을 나와 버스정거장으로 간다.
버스는 한 시간 남짓 달려 선착장에 나를 내려놓는다. 작은 유람선은 물결을 가르며 다시 한 시간을 달려 섬에 밧줄을 맨다. 여기가 아미산, 구화산, 오태산과 함께 중국의 4대 불교성지로 불리는 보타산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섬에 첫 발을 디디니, 예기치 않은 불청객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표"라고 쓰인 커다란 안내판이다. 이 섬의 입장료는 무려 110원(우리 돈 17000원). 중국 대졸신입사원의 평균 월급이 2000원 가량이라니, 이 돈이 얼마나 큰 돈인가? 엄청난 입장료에 기가 죽고 기분이 상한 나는 여관에서 나온 호객꾼들을 뿌리치고 항구를 빠져나와 걷기 시작한다.
한 눈에 보기에도 작은 섬인 것 같아 발길 닿는 대로 걸어본다. 섬에는 곳곳에 동백이 피어 있고, 아직 시들지 않은 쑥부쟁이가 길섶에 웅크린 채 보라색 꽃잎들을 햇볕에 데우고 있다. 우물가에선 여자들이 배추를 절이고, 또 한 쪽에선 방망이질을 하며 빨래를 하고 있다. 날빛 놓은 봄날, 남도의 어느 해안가를 걷고 있는 것 같은 정겨운 풍경이다.
▲ 공동우물가에서 빨래하는 여인들.
ⓒ 오마이뉴스 김남희
섬은 작고, 섬을 둘러싼 산들도 낮게 엎드려 있다. 겨울인데다 평일이라 이곳을 기웃거리는 낯선 이방인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조용하고 깨끗한 섬의 첫인상이 긴장했던 내 마음을 풀어준다.
두 시간 남짓 섬을 돌아보다 배고픔을 못 참고 숙소를 찾아든다. 이곳은 중국인들에게 유명한 관광지답게 모든 게 놀랄 만큼 비싸다. 300원 넘게 부른 방값을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며 깎고 또 깎아 100원에 협상을 한다.
중국에서는 뭐든지 제값 주고 사면 바보라고 한다. 심지어 공중전화카드도 할인해서 사야 한다고 경산이가 충고한 일이 생각난다. 당연히 할인율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나다. 그러니 중국에서는 긴 협상 끝에 돈을 치르고 나도 늘 뒷맛이 개운치 않고 찜찜함이 남는다.
방에 짐을 내려놓고 숙소에 딸린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그새 내 때깔이 바랬는지 이 섬에서는 모두들 나를 중국인으로 본다. 나의 현지적응력이 어디를 가나 빛나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중국사람 취급을 받다니….
▲ 골목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 오마이뉴스 김남희
밥을 먹고 나와 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니 이 섬이 점점 마음에 든다. 3층 이상의 건물이라고는 단 한 채도 없는 이 섬에서는 골목을 돌면 고색창연한 절들과 긴 담장과 늙은 나무들이 수줍게 서 있다. 그러다 어디쯤에선가 다시 골목은 끝나고 햇살에 빛나는 바다와 푸른 야채들이 자라는 밭들과 낮은 산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지도도 보지 않고 발길 가는 대로 몸을 맡기고 걸어본다. 지칠 때까지 걷다가 해질 무렵 숙소로 돌아온다.
오랫동안 손님이 들지 않았는지 방 안에 서린 냉기가 무섭도록 차고 시리다. 중국의 건물들은 겉에서 보기엔 참 그럴 듯한 건물도 안에 들어가 보면 영 허술한 구석이 많다. 창문은 2중창이 거의 없고, 벽도 얇고, 중앙난방도 되지 않아 온풍기를 겸하는 에어콘 하나로 난방을 해결한다.
덕분에 유난히 추위를 못 견디는 내가 중국에 온 후 감기를 달고 사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가 않다. 때로는 햇살이 있는 바깥이 건물 안보다 더 따뜻하게 느껴지기도 할 정도다. 깨끗하게 새로 지은 이 호텔도 찬바람이 쌩쌩 들어오는 어두운 복도와 지린내가 진동하는 중국 특유의 문 없는 재래식 화장실을 숨기고 있다.
침대에 앉아 있으려니 문득 마음이 우울해진다. 여행 초기의 이런 우울함은 늘 있어 왔지만 이번에는 워낙에 기약 없는 여행을 떠나와서인지 가끔씩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심란해지고는 한다. 이럴 때는 빨리 잠드는 게 해결책이다. 잠 속으로 도피하고 아침에 눈을 떠 눈부신 햇살이라도 비쳐주면 마음은 다시 희망으로 하루를 시작하고는 하니까.
▲ 보제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담배를 피우는 노인.
ⓒ 오마이뉴스 김남희
▲ 보제사에서 한 여인이 향로에 향을 꽂은 후 법당의 부처님을 향해 간절히 무언가를 기원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남희
기어이 햇살은 닫힌 창과 커튼을 뚫고 들어와 방 안을 점령했다. 오늘도 화창한 날씨다. 뜨거운 물에 두유를 타서 마시고 밖으로 나간다. 오늘도 걸어서 섬을 둘러보기로 한다. 이곳에서 가장 큰 절인 보제사로 들어서니 이른 아침의 절은 조용하다. 향로에 향을 꽂고 소원을 비는 중국사람들이 간혹 보인다.
불정산으로 오르는 길목 곳곳에 작은 불상을 모셔놓고 향을 피운 흔적들이 남아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섬 어디에서도 흙을 밟을 수 없다는 거다. 산꼭대기까지도 1088개의 화강암 계단이 놓여 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계단을 오르니 바위틈에 신수라고 쓰여 있는 샘이 보인다.
그런데 이게 웬일. 한 아줌마가 지키고 서서 돈을 받고 한 잔, 혹은 한 병씩 물을 팔고 있다.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대동강 물을 팔아먹었다는 김선달도 울고 갈 일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당장 "이 물이 아줌마 물이냐?"고 싸움이 나거나 했을 텐데, 중국사람들은 돈을 내고 물을 먹거나 말없이 스쳐 지나간다. 중국에 왔으니 중국식을 따라야겠지. 목마름을 애써 참고 나 역시 말없이 돌아선다.
불정산 정상 부근에 자리한 혜제사에 들어서니 또 입장료가 5원이다. 섬 상륙비로도 모자라 이 섬은 절마다 다 따로 입장료를 받고, 해변의 모래사장을 걷기 위해서도 입장료를 내야 한다. 이 작은 섬을 왕복하는 미니버스는 무려 5원. 순식간에 지갑을 비워버리는 섬이다.
이곳에 오르는 동안 자신도 혼자 여행하니 같이 가자던 중국인 아줌마가 내게 향을 건네 주신다. 잠시 망설이던 아줌마, 내게 1마오(15원)를 달라고 하신다. 돈을 내지 않고 향을 꽂으면 좋지 않다고 덧붙이면서.
작년 여름 일본에서 친구 마미코의 식구들과 도쿄 근처의 절에 갔던 일이 생각난다. 그때 마미코 어머님도 내게 소원을 비는 종이를 사주시면서 1원을 달라며 같은 말씀을 하셨는데. 아줌마께 1마오를 드리고 향을 받아든다. 곁눈질로 아줌마를 따라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절을 하고 향을 꽂는다. 이곳에서도 역시 내 여행의 무사함과 가족들의 평안을 기원. 부처님과 천주님 두 분 중의 한 분은 내 기원을 들으셨겠지.
가끔씩 사람들이 내게 종교를 물으면 나는 대답하기가 난처하다. 매번 안식일을 지키는 종교는 없지만, 모든 종교에 문호개방을 하고 절에 들어가면 부처님께, 성당에 가면 천주님께, 이슬람사원에 가면 알라신께 복을 빌고는 하니 기회주의자라고 비난받아도 할 말이 없을 듯도 하다.
하지만 신이 없다, 있다 하는 것 자체가 내게는 인간의 인식영역을 넘어서는 일인 것 같이 여겨진다. 또 기독교의 하나님이 계시다면 부처님이나 알라신이 없다고 하는 것도 부당한 것 같고, 신들의 세계에서는 인간이 만든 경계 따위는 가볍게 건너다니지 않을까 싶기도 한 것이다.
우주를 주관하는 존재에 대해서는 내가 알 수 없는 영역으로 남겨두고, 나는 이 세계에 인간의 지적 능력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다른 세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싶은 거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신의 마음이 깃들어 있다는 믿음이 아닐까? 이상은 한 기회주의자의 변명.
▲ 불정산 혜제사로 오르는 길가의 작은 불상.
ⓒ 오마이뉴스 김남희
절 입구로 들어서니 세 발자국 걷고 한 배를 올리고 다시 세 발자국 걷고 한 배를 올리는 독실한 신도들과 스님들이 보인다. 반면, 아직 계를 받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일부 젊은 스님들은 어째 행동거지가 좀 경박하고 진중함이 없다.
큰 목소리로 떠들며 주변을 활보하거나 나를 보고 흘끔대는 스님들을 보니 기분이 나빠진다. "아니, 속세의 아녀자에게 무슨 볼일이 있어 그렇게 쳐다보십니까?"라고 따지고 싶어진다. 중국의 절은 국가 소유이고 스님들은 정부에게서 월급을 받는다고 하더니, 역시 이곳에도 안정된 직업으로서 중을 택한 사람들이 있을 것도 같다.
절에서 나와 산정에 올라 섬을 내려다본다. 주변의 작은 섬들과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도 전망이 좋은 곳에는 꼭 정자를 만들어 놓았다. 정자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며 점심을 먹는다. 비록 2원짜리 싸구려 빵뿐인 빈약한 점심이지만 청명한 하늘과 따스한 햇살, 빛나는 바다가 있어 제왕의 성찬 못지 않다.
점심을 먹고 산을 내려오는 길에 노점에서 장사를 하던 중국인 아줌마가 말을 건다. 현지인과 여행객 사이에 오가는 상투적인 인사와 신상조사가 끝나자 자기랑 같이 어디를 가겠느냐고 묻는다. 도대체 어디를 가자는 건지 알 수가 없다.
한국에서 1년이나 학원에 다니며 연마한 내 중국어 실력은 중국에 온지 딱 삼 일 만에 드러났다.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절박한 몸부림에 불과한 처참한 수준으로! 그래도 그렇지, 이 지방 사투리가 지독한 이 아줌마의 말은 정말 못 알아듣겠다. 좀전에 이 아줌마가 나에게 "너 보통화(중국 표준어)를 정말 잘 하는구나!"라고 감탄한 심정이 갑자기 이해가 갈 것도 같다.
답답해하던 아줌마, 결국 내가 손에 들고 있던 섬 지도를 보더니 거기 실린 관음상을 가리킨다. 유명한 관음상이라는 말로 알아들은 나, 아줌마를 따라나선다.
졸고 있는 미니버스들이 세워진 버스정거장을 지나, 꼬불꼬불 좁은 골목길을 돌고 돌아, 말라빠진 배추와 잘린 무의 밑동이 팽개쳐진 밭들을 헤치며 씩씩하게 걸어가는 아줌마와 나. "2분만 더 가면 돼!" 다섯 번쯤 같은 말을 반복하던 아줌마, 마침내 허름한 민가로 나를 끌고 들어선다.
한쪽 문을 여니 표독스럽게 생긴 여자가 앉아 있고, 뒤편으로는 작은 불상과 화려한 색색의 천들이 걸려 있다. 점집이다. 내 과거를 알려주고, 앞으로 하지 말아야 할 일 이런 것을 알려줄 테니 나에게 어서 돈을 내란다.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온다. 나는 이런 것을 안 믿는다고 말하고 돌아서 나오는데 실망으로 일그러지는 아줌마의 얼굴.
하지만 어쩌랴. 내가 정말 못 하는 일 중의 하나가 이런 일에 마음을 의지하는 일인데. 재미로라도 그냥 보고 나올 걸 그랬나 슬며시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어차피 배 시간도 얼마 안 남았기에 서둘러 큰길가로 나선다.
▲ 바다를 굽어보는 정자 조양각.
ⓒ 오마이뉴스 김남희
▲ 야채를 실은 수레를 끌고 골목을 달리는 상인.
ⓒ 오마이뉴스 김남희
특별한 일은 하나도 없었던, 어쩌면 그래서 더 평화롭기만 했던 나의 짧은 보타산 여행은 이렇게 끝났다. 보타산은 특별한 것을 기대하고 오는 여행자들을 실망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섬에는 세 개의 작은 해변-해변의 이름은 각각 백보해변과 천보해변으로 각각 백걸음과 천걸음 남짓이면 끝까지 갈 수 있는 크기의 모래사장을 가지고 있다-과 오래된 절들과 늙은 나무들, 동굴과 정자들뿐이고 섬의 물가는 비싸다.
아, 볼 것으로 치자면 이 섬의 주민들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33미터 높이의 '아시아 최대' 관음상도 있다. 비록 그 관음상이 내게는 감동을 주는 데 실패했지만. 왜냐면 나의 모국 역시 '세계최고', '동양 최대' 이런 수식어를 갖다 붙이고 규모로 승부하는 데에 일가견이 있는 나라이기에.
어쨌든 진기한 것을 쫓는 관광객들의 눈이 돌아가고 숨이 멎을 정도의 무언가가 이 섬에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도시와 관광지의 북적거림을 피해 어느날 작은 배낭 하나만을 메고 숨듯이 찾아든다면, 피로에 지친 여행자들에게 잠깐의 휴식 정도는 망설임 없이 제공해 줄 넉넉한 정취와 여유를 지닌 곳이다.
오늘은 이곳 영파에서 2시간 가량 걸리는 보타산으로 1박2일의 짧은 여행을 떠난다. 집 앞에서 1원짜리 버스를 타고 배표 끊는 곳에 도착하니 9시 반. 10시 50분 표를 끊고 주위를 둘러본다. 론니플래닛을 보니 주변에 포르투갈 성당이 있다기에 찾아간다.
▲ 영파 선착장 부근의 포르투칼 성당.
ⓒ 오마이뉴스 김남희
성당의 문은 잠겨 있고 문지기 아저씨가 매서운 눈길로 나를 훑어본다. 들어가도 되겠느냐고 묻자 어느 나라 사람이냐고 되묻는다. 한국사람이라는 대답에 딱딱한 인상이 풀리며 문을 열어주신다.
성당은 작고 조용하다. 창이 많은 실내로 밝은 햇살이 들어와 실내는 어둡지 않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관련된 그림들이 벽을 따라 늘어서 있고, 조악하지만 지난 성탄절에 만들어놓은 듯한 아기 예수와 말구유도 보인다.
천주님 앞에 서서 두 손을 모아 기도를 드린다. 이 여행을 건강하게 잘 마칠 수 있게 지켜봐달라고. 성당을 나오니 문지기 아저씨가 말을 걸어온다. 매주 토요일 저녁이면 한국사람들이 모여 미사를 드리니 꼭 오라고. 작별인사를 하고 성당을 나와 버스정거장으로 간다.
버스는 한 시간 남짓 달려 선착장에 나를 내려놓는다. 작은 유람선은 물결을 가르며 다시 한 시간을 달려 섬에 밧줄을 맨다. 여기가 아미산, 구화산, 오태산과 함께 중국의 4대 불교성지로 불리는 보타산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섬에 첫 발을 디디니, 예기치 않은 불청객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표"라고 쓰인 커다란 안내판이다. 이 섬의 입장료는 무려 110원(우리 돈 17000원). 중국 대졸신입사원의 평균 월급이 2000원 가량이라니, 이 돈이 얼마나 큰 돈인가? 엄청난 입장료에 기가 죽고 기분이 상한 나는 여관에서 나온 호객꾼들을 뿌리치고 항구를 빠져나와 걷기 시작한다.
한 눈에 보기에도 작은 섬인 것 같아 발길 닿는 대로 걸어본다. 섬에는 곳곳에 동백이 피어 있고, 아직 시들지 않은 쑥부쟁이가 길섶에 웅크린 채 보라색 꽃잎들을 햇볕에 데우고 있다. 우물가에선 여자들이 배추를 절이고, 또 한 쪽에선 방망이질을 하며 빨래를 하고 있다. 날빛 놓은 봄날, 남도의 어느 해안가를 걷고 있는 것 같은 정겨운 풍경이다.
▲ 공동우물가에서 빨래하는 여인들.
ⓒ 오마이뉴스 김남희
섬은 작고, 섬을 둘러싼 산들도 낮게 엎드려 있다. 겨울인데다 평일이라 이곳을 기웃거리는 낯선 이방인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조용하고 깨끗한 섬의 첫인상이 긴장했던 내 마음을 풀어준다.
두 시간 남짓 섬을 돌아보다 배고픔을 못 참고 숙소를 찾아든다. 이곳은 중국인들에게 유명한 관광지답게 모든 게 놀랄 만큼 비싸다. 300원 넘게 부른 방값을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며 깎고 또 깎아 100원에 협상을 한다.
중국에서는 뭐든지 제값 주고 사면 바보라고 한다. 심지어 공중전화카드도 할인해서 사야 한다고 경산이가 충고한 일이 생각난다. 당연히 할인율도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엄청나다. 그러니 중국에서는 긴 협상 끝에 돈을 치르고 나도 늘 뒷맛이 개운치 않고 찜찜함이 남는다.
방에 짐을 내려놓고 숙소에 딸린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그새 내 때깔이 바랬는지 이 섬에서는 모두들 나를 중국인으로 본다. 나의 현지적응력이 어디를 가나 빛나긴 했지만 이렇게 빨리 중국사람 취급을 받다니….
▲ 골목에서 뛰어노는 아이들.
ⓒ 오마이뉴스 김남희
밥을 먹고 나와 골목을 돌아다니다 보니 이 섬이 점점 마음에 든다. 3층 이상의 건물이라고는 단 한 채도 없는 이 섬에서는 골목을 돌면 고색창연한 절들과 긴 담장과 늙은 나무들이 수줍게 서 있다. 그러다 어디쯤에선가 다시 골목은 끝나고 햇살에 빛나는 바다와 푸른 야채들이 자라는 밭들과 낮은 산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는 지도도 보지 않고 발길 가는 대로 몸을 맡기고 걸어본다. 지칠 때까지 걷다가 해질 무렵 숙소로 돌아온다.
오랫동안 손님이 들지 않았는지 방 안에 서린 냉기가 무섭도록 차고 시리다. 중국의 건물들은 겉에서 보기엔 참 그럴 듯한 건물도 안에 들어가 보면 영 허술한 구석이 많다. 창문은 2중창이 거의 없고, 벽도 얇고, 중앙난방도 되지 않아 온풍기를 겸하는 에어콘 하나로 난방을 해결한다.
덕분에 유난히 추위를 못 견디는 내가 중국에 온 후 감기를 달고 사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가 않다. 때로는 햇살이 있는 바깥이 건물 안보다 더 따뜻하게 느껴지기도 할 정도다. 깨끗하게 새로 지은 이 호텔도 찬바람이 쌩쌩 들어오는 어두운 복도와 지린내가 진동하는 중국 특유의 문 없는 재래식 화장실을 숨기고 있다.
침대에 앉아 있으려니 문득 마음이 우울해진다. 여행 초기의 이런 우울함은 늘 있어 왔지만 이번에는 워낙에 기약 없는 여행을 떠나와서인지 가끔씩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심란해지고는 한다. 이럴 때는 빨리 잠드는 게 해결책이다. 잠 속으로 도피하고 아침에 눈을 떠 눈부신 햇살이라도 비쳐주면 마음은 다시 희망으로 하루를 시작하고는 하니까.
▲ 보제사 대웅전 앞마당에서 담배를 피우는 노인.
ⓒ 오마이뉴스 김남희
▲ 보제사에서 한 여인이 향로에 향을 꽂은 후 법당의 부처님을 향해 간절히 무언가를 기원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남희
기어이 햇살은 닫힌 창과 커튼을 뚫고 들어와 방 안을 점령했다. 오늘도 화창한 날씨다. 뜨거운 물에 두유를 타서 마시고 밖으로 나간다. 오늘도 걸어서 섬을 둘러보기로 한다. 이곳에서 가장 큰 절인 보제사로 들어서니 이른 아침의 절은 조용하다. 향로에 향을 꽂고 소원을 비는 중국사람들이 간혹 보인다.
불정산으로 오르는 길목 곳곳에 작은 불상을 모셔놓고 향을 피운 흔적들이 남아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섬 어디에서도 흙을 밟을 수 없다는 거다. 산꼭대기까지도 1088개의 화강암 계단이 놓여 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계단을 오르니 바위틈에 신수라고 쓰여 있는 샘이 보인다.
그런데 이게 웬일. 한 아줌마가 지키고 서서 돈을 받고 한 잔, 혹은 한 병씩 물을 팔고 있다.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대동강 물을 팔아먹었다는 김선달도 울고 갈 일이다. 우리나라 같으면 당장 "이 물이 아줌마 물이냐?"고 싸움이 나거나 했을 텐데, 중국사람들은 돈을 내고 물을 먹거나 말없이 스쳐 지나간다. 중국에 왔으니 중국식을 따라야겠지. 목마름을 애써 참고 나 역시 말없이 돌아선다.
불정산 정상 부근에 자리한 혜제사에 들어서니 또 입장료가 5원이다. 섬 상륙비로도 모자라 이 섬은 절마다 다 따로 입장료를 받고, 해변의 모래사장을 걷기 위해서도 입장료를 내야 한다. 이 작은 섬을 왕복하는 미니버스는 무려 5원. 순식간에 지갑을 비워버리는 섬이다.
이곳에 오르는 동안 자신도 혼자 여행하니 같이 가자던 중국인 아줌마가 내게 향을 건네 주신다. 잠시 망설이던 아줌마, 내게 1마오(15원)를 달라고 하신다. 돈을 내지 않고 향을 꽂으면 좋지 않다고 덧붙이면서.
작년 여름 일본에서 친구 마미코의 식구들과 도쿄 근처의 절에 갔던 일이 생각난다. 그때 마미코 어머님도 내게 소원을 비는 종이를 사주시면서 1원을 달라며 같은 말씀을 하셨는데. 아줌마께 1마오를 드리고 향을 받아든다. 곁눈질로 아줌마를 따라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절을 하고 향을 꽂는다. 이곳에서도 역시 내 여행의 무사함과 가족들의 평안을 기원. 부처님과 천주님 두 분 중의 한 분은 내 기원을 들으셨겠지.
가끔씩 사람들이 내게 종교를 물으면 나는 대답하기가 난처하다. 매번 안식일을 지키는 종교는 없지만, 모든 종교에 문호개방을 하고 절에 들어가면 부처님께, 성당에 가면 천주님께, 이슬람사원에 가면 알라신께 복을 빌고는 하니 기회주의자라고 비난받아도 할 말이 없을 듯도 하다.
하지만 신이 없다, 있다 하는 것 자체가 내게는 인간의 인식영역을 넘어서는 일인 것 같이 여겨진다. 또 기독교의 하나님이 계시다면 부처님이나 알라신이 없다고 하는 것도 부당한 것 같고, 신들의 세계에서는 인간이 만든 경계 따위는 가볍게 건너다니지 않을까 싶기도 한 것이다.
우주를 주관하는 존재에 대해서는 내가 알 수 없는 영역으로 남겨두고, 나는 이 세계에 인간의 지적 능력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다른 세계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겸손하게 인정하고 싶은 거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지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신의 마음이 깃들어 있다는 믿음이 아닐까? 이상은 한 기회주의자의 변명.
▲ 불정산 혜제사로 오르는 길가의 작은 불상.
ⓒ 오마이뉴스 김남희
절 입구로 들어서니 세 발자국 걷고 한 배를 올리고 다시 세 발자국 걷고 한 배를 올리는 독실한 신도들과 스님들이 보인다. 반면, 아직 계를 받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일부 젊은 스님들은 어째 행동거지가 좀 경박하고 진중함이 없다.
큰 목소리로 떠들며 주변을 활보하거나 나를 보고 흘끔대는 스님들을 보니 기분이 나빠진다. "아니, 속세의 아녀자에게 무슨 볼일이 있어 그렇게 쳐다보십니까?"라고 따지고 싶어진다. 중국의 절은 국가 소유이고 스님들은 정부에게서 월급을 받는다고 하더니, 역시 이곳에도 안정된 직업으로서 중을 택한 사람들이 있을 것도 같다.
절에서 나와 산정에 올라 섬을 내려다본다. 주변의 작은 섬들과 바다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곳에도 전망이 좋은 곳에는 꼭 정자를 만들어 놓았다. 정자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며 점심을 먹는다. 비록 2원짜리 싸구려 빵뿐인 빈약한 점심이지만 청명한 하늘과 따스한 햇살, 빛나는 바다가 있어 제왕의 성찬 못지 않다.
점심을 먹고 산을 내려오는 길에 노점에서 장사를 하던 중국인 아줌마가 말을 건다. 현지인과 여행객 사이에 오가는 상투적인 인사와 신상조사가 끝나자 자기랑 같이 어디를 가겠느냐고 묻는다. 도대체 어디를 가자는 건지 알 수가 없다.
한국에서 1년이나 학원에 다니며 연마한 내 중국어 실력은 중국에 온지 딱 삼 일 만에 드러났다.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절박한 몸부림에 불과한 처참한 수준으로! 그래도 그렇지, 이 지방 사투리가 지독한 이 아줌마의 말은 정말 못 알아듣겠다. 좀전에 이 아줌마가 나에게 "너 보통화(중국 표준어)를 정말 잘 하는구나!"라고 감탄한 심정이 갑자기 이해가 갈 것도 같다.
답답해하던 아줌마, 결국 내가 손에 들고 있던 섬 지도를 보더니 거기 실린 관음상을 가리킨다. 유명한 관음상이라는 말로 알아들은 나, 아줌마를 따라나선다.
졸고 있는 미니버스들이 세워진 버스정거장을 지나, 꼬불꼬불 좁은 골목길을 돌고 돌아, 말라빠진 배추와 잘린 무의 밑동이 팽개쳐진 밭들을 헤치며 씩씩하게 걸어가는 아줌마와 나. "2분만 더 가면 돼!" 다섯 번쯤 같은 말을 반복하던 아줌마, 마침내 허름한 민가로 나를 끌고 들어선다.
한쪽 문을 여니 표독스럽게 생긴 여자가 앉아 있고, 뒤편으로는 작은 불상과 화려한 색색의 천들이 걸려 있다. 점집이다. 내 과거를 알려주고, 앞으로 하지 말아야 할 일 이런 것을 알려줄 테니 나에게 어서 돈을 내란다.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온다. 나는 이런 것을 안 믿는다고 말하고 돌아서 나오는데 실망으로 일그러지는 아줌마의 얼굴.
하지만 어쩌랴. 내가 정말 못 하는 일 중의 하나가 이런 일에 마음을 의지하는 일인데. 재미로라도 그냥 보고 나올 걸 그랬나 슬며시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어차피 배 시간도 얼마 안 남았기에 서둘러 큰길가로 나선다.
▲ 바다를 굽어보는 정자 조양각.
ⓒ 오마이뉴스 김남희
▲ 야채를 실은 수레를 끌고 골목을 달리는 상인.
ⓒ 오마이뉴스 김남희
특별한 일은 하나도 없었던, 어쩌면 그래서 더 평화롭기만 했던 나의 짧은 보타산 여행은 이렇게 끝났다. 보타산은 특별한 것을 기대하고 오는 여행자들을 실망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섬에는 세 개의 작은 해변-해변의 이름은 각각 백보해변과 천보해변으로 각각 백걸음과 천걸음 남짓이면 끝까지 갈 수 있는 크기의 모래사장을 가지고 있다-과 오래된 절들과 늙은 나무들, 동굴과 정자들뿐이고 섬의 물가는 비싸다.
아, 볼 것으로 치자면 이 섬의 주민들이 그토록 자랑스러워하는 33미터 높이의 '아시아 최대' 관음상도 있다. 비록 그 관음상이 내게는 감동을 주는 데 실패했지만. 왜냐면 나의 모국 역시 '세계최고', '동양 최대' 이런 수식어를 갖다 붙이고 규모로 승부하는 데에 일가견이 있는 나라이기에.
어쨌든 진기한 것을 쫓는 관광객들의 눈이 돌아가고 숨이 멎을 정도의 무언가가 이 섬에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도시와 관광지의 북적거림을 피해 어느날 작은 배낭 하나만을 메고 숨듯이 찾아든다면, 피로에 지친 여행자들에게 잠깐의 휴식 정도는 망설임 없이 제공해 줄 넉넉한 정취와 여유를 지닌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