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시족 흑백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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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11-03-17 09:23|본문
나시족의 신화에는 수없이 많은 신들이 등장한다. 그 신들을 두 개의 계보로 나눈다면 하나는 티베트의 토착종교인 뵌교에서 온 외래 신 딩바스뤄(丁巴什羅), 다른 하나는 나시의 토착신인 충런리언이다. 천신의 딸과 혼인한 충런리언이 영웅적 인간이라면 티베트 뵌교의 시조였던 딩바스뤄는 둥바교의 신이 되었다.
뱃속에 있을 때 이미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었고, 어머니의 겨드랑이에서 태어났으며 악마에게 잡혀갔지만 오히려 그 악마를 물리친 딩바스뤄는 인도신화의 인드라와 많은 점에서 비교된다. 둥바교의 위대한 시조 딩바스뤄는 다른 선신(善神)들과 더불어 성스러운 산 쥐나스뤄(居那什羅)에 산다.
쥐나스뤄는 올림푸스산이나 쿤룬산(昆侖山)과 같은 나시족의 성산(聖山)이다. 높이 솟아올라 하늘을 떠받치는 이 산에는 또한 하늘까지 닿는 거대한 우주목, 한잉바오다(含英寶達) 나무가 자란다. 뭇 신들이 사는 이 산을 통해 영웅 충런리언이 천신의 딸 천훙바오바이와 함께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산의 남쪽, 녹색 세상에 인간이 거주하기 시작했다.
충런리언은 미리둥주(米利董主·약칭 '둥주')의 후손이다. 선신족인 미리둥주와 악신족인 미리수주(米利術主·약칭 '수주')가 벌이는 백과 흑의 전쟁, 그 거대한 서사가 기록되어 있는 책이 바로 '둥안수안(董岩術岩)'('둥'과 '수'의 원한과 복수라는 뜻. '흑백대전'(黑白大戰)으로 번역됨)이다. 악과 선을 대표하는 흑과 백의 전쟁은 원래 중원의 것이 아니다. 흑과 백의 선명한 대조, 그것이 상징하는 어둠과 광명, 악과 선이라는 것은 서아시아의 전통에 오히려 가깝다. 나시족 신화에 들어있는 티베트 뵌교의 요소들이 서아시아의 전통과 맞닿아 있다면 아후라마즈다를 숭배하던 조로아스터교의 관념이 윈난 지역에 살고 있는 민족들에게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진(眞)과 실(實)이 합쳐져/ 밝은 태양이 생겨났고/ 가(假)와 허(虛)가 합쳐져/ 차가운 달이 생겨났네/ 태양빛이 변하여 터키석이 되고/ 터키석이 변하여 하얀 기운이 생겨났네/ 하얀 기운이 변해 아름다운 소리가 되었고/ 아름다운 소리가 변하여 이꺼와꺼 선신이 생겨났네/ 달빛이 변하여/ 흑보석이 되었고/ 흑보석이 변하여 검은 기운이 생겨났지/ 검은 기운이 변하여 시끄러운 소리가 되었고/ 시끄러운 소리가 다시 변하여 이구딩나 악신이 생겨났네
그렇게 생겨난 선신 이꺼와꺼는 하얀 알로 변했고 하얀 알이 하얀 닭을, 하얀 닭이 아홉 쌍의 하얀 알을 낳았으며 그 알에서 많은 착한 신들이 태어나고 마침내 선신족인 둥족(董族)이 태어난다. 악신 이구딩나는 검은 알로 변했고 그 알에서 검은 신조(神鳥)가 태어나며 그 신조가 아홉 쌍의 검은 알을 낳는데 그 알에서 무수한 요괴들이 나와 선신들과 대립한다. 그리고 악신족인 수족(術族)이 나타난다. 동족의 우두머리 둥주와 수족의 우두머리 수주, 마침내 그들 사이에 얽히고 설킨 전쟁과 사랑의 장엄한 서사가 시작된다.
둥주는 빛과 정의를 상징하는 반인 반신의 영웅이다. 그의 시대에 하늘과 땅이 열리고 마을도 생겨났으며 아이가 태어나기 시작했고 농사도 시작되었다. 신의 세상에서 인간 세상으로 내려와 아들 아홉과 딸 아홉을 낳아 마을을 만든 그가 있는 곳은 하얗고 환한 세상이었다. 태양도 달도 하얀색이었으며 산도 나무도 모두 하얀색이었다. 둥주와 수주의 마을 경계에 미리다지(米利達吉) 바다가 있었고 하늘사다리 역할을 하는 한잉바오다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검은 알에서 태어난 악신족의 우두머리 수주는 어두운 세상에 살고 있었다. 태양도 달도 검은색이었으며 산도 나무도 모두 검은색이었다. 수주는 빛을 원했다. 그는 하얀 세상을 환하게 비춰주는 해와 달을 훔쳐오고 싶어 했다. 해와 달을 차지하려는 경쟁은 창세신화에서 낯설지 않은 모티프이다. 수주는 신수(神樹)인 한잉바오다 나무를 베어버리려고 했다. 나무에 상처가 나자 동주는 불사약을 뿌려주어 나무의 상처를 낫게 했다. 한잉바오다는 금꽃과 은꽃, 옥으로 된 과일이 열리는 신비로운 나무였다. 그 나무에 매달린 초록색 잎은 젊은이들의 생명, 노란 잎은 노인들의 생명을 의미한다. 천신 미리둥아푸가 노란 잎을 지팡이로 걷어내면 세상의 노인들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 나무로 대표되는 자연은 나시족에게는 생명의 근원이다. 그러한 신수에 난 상처는 둥족과 수족의 처절한 전쟁을 예고한다.
수주의 아들 안성미우(安生迷吾)는 둥주의 아들 둥뤄와루(董若瓦路·약칭 '와루')에게 자기 마을에 와서 하얀 세상에 있는 것과 같은 해와 달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흔쾌히 그러겠다고 대답했지만 와루의 아버지 둥주는 악신들의 땅에 태양을 만들어주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아들인 와루는 아버지의 명에 따라 태양과 달을 거꾸로 걸어놓고 재물을 챙겨 자기 마을로 와버렸고, 안성미우는 와루를 추격해 둥주의 땅으로 들어왔다가 그들이 미리 설치해놓은 철 가시나무에 찔려 죽게 되었다.
분노한 수주는 둥주의 마을로 쳐들어왔다. 둥주 마을의 해와 달을 빼앗아와야 했고 아들의 원수를 갚아야 했다. 둥족의 와루는 바다 밑 깊숙한 곳에 숨어 있었다. 그것을 알아낸 수주는 딸 거라오츠무(格饒茨姆)를 보내 와루를 유혹하게 했다. 푸른 바다 한가운데에서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빛나는 어깨와 하얀 몸을 드러낸 채 노래를 부르는 거라오츠무의 유혹에 빠진 와루는 결국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오빠의 원수를 갚으려는 일념에서 시작된 유혹이었지만 이를 어쩌나, 거라오츠무 역시 와루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결국 둘은 도망쳐서 쌍둥이 남매를 낳게 된다. 아버지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지만 그녀는 그를 사랑했다. 그러나 가엾은 거라오츠무의 가슴에 격렬한 갈등의 불꽃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집안의 원수와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는 사랑에 빠진 그녀의 깊은 슬픔과 고통을, 사랑의 감정 때문에 아픈 밤을 보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하리라. 그녀는 선택을 해야 했다. 어쩔 것인가. 결국 그녀는 핏줄을 택한다. 거라오츠무는 찢어지는 가슴을 안고 사랑하는 사람을 흑과 백의 경계지역으로 유인해 내고, 와루는 검은 바다에서 죽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남매를 둥주의 나라로 보냈다. 그 사실을 안 수주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둥주의 나라를 향해 총공세를 벌인다.
동주가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수주의 단단한 방어선을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결국 둥주는 하늘로 올라가 천신들에게 도움을 청했고 천신들은 그에게 하늘나라의 용감한 장수들, 즉 유마(優麻)와 둬거(多格)를 내려 보낸다. 360명의 유마는 사자 머리에 인간의 몸을 한 전쟁의 신이며, 360명의 둬거는 매의 날개를 가졌으며 선과 악을 분명히 판별할 줄 아는 정의의 신이다. 하늘의 힘을 가진 전쟁의 신들이 둥주를 도와주니 판세는 금세 달라졌다. 수주의 마을은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흑과 백의 전쟁은 빛과 정의, 선을 상징하는 백의 승리로 끝났다. 전쟁에서 이긴 둥주는 수주의 내장을 꺼내어 승리신들, 즉 유마와 둬거에게 바쳤다. 비장하고 처절한 흑과 백의 서사는 이렇게 막을 내린다.
이 이야기는 나시족의 조상들이 거쳐 온 투쟁의 역사를 반영한 것으로 읽히기도 하고 위대한 영웅들에 대한 장엄한 송가로 읽히기도 한다. 학자들은 또한 흑과 백의 투쟁이라는 구도에서 이원적 세계관과 이원 대립구조를 읽어내기도 한다. 이원 대립구조에서 승리하는 것은 언제나 선이며 정의이고 광명이다. 그것은 이원적 구조를 가진 다른 나라의 영웅 신화들과 별로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사실 이 신화 전체를 관통하는 모티프는 하얀 해와 달을 차지하려는 치열한 경쟁이다. 흥미로운 점은 검은 세상에 태양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에게도 검은 태양은 있다.
그렇다면 왜 태양은 하얀 태양과 검은 태양으로 나뉜 것일까? 태양은 여기서 자연의 상징이다. 자연은 언제나 두 가지 얼굴을 가진다. 나시족의 다른 신화에 보면 아홉 개의 태양이 나타나니 너무 뜨거워서, 아홉 개의 달이 나타나니 너무 추워서 한 개씩만 남기고 나머지를 제거하는 이야기가 있다. 자연은 인간을 품어주는 자애로움을 갖고 있지만 때론 혹독한 시련을 주기도 한다. 하얀 태양과 검은 태양은 자연이 갖고 있는 이중성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때 태양은 하얀색이다. 그러나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고 조화를 무너뜨릴 때 태양은 검은색이 된다. 한잉바오다나무가 인간의 생명과 관련이 있다면 뱀의 몸을 하고 있는 둥바교의 자연신 수(署) 역시 자연을 형상화한 존재이다.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 자연도 인간을 보호해준다. 그러나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면 뱀 모양의 자연신 수는 무지막지한 벌을 내린다. 이원적 대립 구조를 보여주는 하얀 태양과 검은 태양의 이야기가 전하려는 진짜 메시지는 어쩌면 인간과 자연의 화해가 아닐까.
뱃속에 있을 때 이미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었고, 어머니의 겨드랑이에서 태어났으며 악마에게 잡혀갔지만 오히려 그 악마를 물리친 딩바스뤄는 인도신화의 인드라와 많은 점에서 비교된다. 둥바교의 위대한 시조 딩바스뤄는 다른 선신(善神)들과 더불어 성스러운 산 쥐나스뤄(居那什羅)에 산다.
쥐나스뤄는 올림푸스산이나 쿤룬산(昆侖山)과 같은 나시족의 성산(聖山)이다. 높이 솟아올라 하늘을 떠받치는 이 산에는 또한 하늘까지 닿는 거대한 우주목, 한잉바오다(含英寶達) 나무가 자란다. 뭇 신들이 사는 이 산을 통해 영웅 충런리언이 천신의 딸 천훙바오바이와 함께 지상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산의 남쪽, 녹색 세상에 인간이 거주하기 시작했다.
충런리언은 미리둥주(米利董主·약칭 '둥주')의 후손이다. 선신족인 미리둥주와 악신족인 미리수주(米利術主·약칭 '수주')가 벌이는 백과 흑의 전쟁, 그 거대한 서사가 기록되어 있는 책이 바로 '둥안수안(董岩術岩)'('둥'과 '수'의 원한과 복수라는 뜻. '흑백대전'(黑白大戰)으로 번역됨)이다. 악과 선을 대표하는 흑과 백의 전쟁은 원래 중원의 것이 아니다. 흑과 백의 선명한 대조, 그것이 상징하는 어둠과 광명, 악과 선이라는 것은 서아시아의 전통에 오히려 가깝다. 나시족 신화에 들어있는 티베트 뵌교의 요소들이 서아시아의 전통과 맞닿아 있다면 아후라마즈다를 숭배하던 조로아스터교의 관념이 윈난 지역에 살고 있는 민족들에게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진(眞)과 실(實)이 합쳐져/ 밝은 태양이 생겨났고/ 가(假)와 허(虛)가 합쳐져/ 차가운 달이 생겨났네/ 태양빛이 변하여 터키석이 되고/ 터키석이 변하여 하얀 기운이 생겨났네/ 하얀 기운이 변해 아름다운 소리가 되었고/ 아름다운 소리가 변하여 이꺼와꺼 선신이 생겨났네/ 달빛이 변하여/ 흑보석이 되었고/ 흑보석이 변하여 검은 기운이 생겨났지/ 검은 기운이 변하여 시끄러운 소리가 되었고/ 시끄러운 소리가 다시 변하여 이구딩나 악신이 생겨났네
그렇게 생겨난 선신 이꺼와꺼는 하얀 알로 변했고 하얀 알이 하얀 닭을, 하얀 닭이 아홉 쌍의 하얀 알을 낳았으며 그 알에서 많은 착한 신들이 태어나고 마침내 선신족인 둥족(董族)이 태어난다. 악신 이구딩나는 검은 알로 변했고 그 알에서 검은 신조(神鳥)가 태어나며 그 신조가 아홉 쌍의 검은 알을 낳는데 그 알에서 무수한 요괴들이 나와 선신들과 대립한다. 그리고 악신족인 수족(術族)이 나타난다. 동족의 우두머리 둥주와 수족의 우두머리 수주, 마침내 그들 사이에 얽히고 설킨 전쟁과 사랑의 장엄한 서사가 시작된다.
둥주는 빛과 정의를 상징하는 반인 반신의 영웅이다. 그의 시대에 하늘과 땅이 열리고 마을도 생겨났으며 아이가 태어나기 시작했고 농사도 시작되었다. 신의 세상에서 인간 세상으로 내려와 아들 아홉과 딸 아홉을 낳아 마을을 만든 그가 있는 곳은 하얗고 환한 세상이었다. 태양도 달도 하얀색이었으며 산도 나무도 모두 하얀색이었다. 둥주와 수주의 마을 경계에 미리다지(米利達吉) 바다가 있었고 하늘사다리 역할을 하는 한잉바오다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검은 알에서 태어난 악신족의 우두머리 수주는 어두운 세상에 살고 있었다. 태양도 달도 검은색이었으며 산도 나무도 모두 검은색이었다. 수주는 빛을 원했다. 그는 하얀 세상을 환하게 비춰주는 해와 달을 훔쳐오고 싶어 했다. 해와 달을 차지하려는 경쟁은 창세신화에서 낯설지 않은 모티프이다. 수주는 신수(神樹)인 한잉바오다 나무를 베어버리려고 했다. 나무에 상처가 나자 동주는 불사약을 뿌려주어 나무의 상처를 낫게 했다. 한잉바오다는 금꽃과 은꽃, 옥으로 된 과일이 열리는 신비로운 나무였다. 그 나무에 매달린 초록색 잎은 젊은이들의 생명, 노란 잎은 노인들의 생명을 의미한다. 천신 미리둥아푸가 노란 잎을 지팡이로 걷어내면 세상의 노인들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 나무로 대표되는 자연은 나시족에게는 생명의 근원이다. 그러한 신수에 난 상처는 둥족과 수족의 처절한 전쟁을 예고한다.
수주의 아들 안성미우(安生迷吾)는 둥주의 아들 둥뤄와루(董若瓦路·약칭 '와루')에게 자기 마을에 와서 하얀 세상에 있는 것과 같은 해와 달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흔쾌히 그러겠다고 대답했지만 와루의 아버지 둥주는 악신들의 땅에 태양을 만들어주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결국 아들인 와루는 아버지의 명에 따라 태양과 달을 거꾸로 걸어놓고 재물을 챙겨 자기 마을로 와버렸고, 안성미우는 와루를 추격해 둥주의 땅으로 들어왔다가 그들이 미리 설치해놓은 철 가시나무에 찔려 죽게 되었다.
분노한 수주는 둥주의 마을로 쳐들어왔다. 둥주 마을의 해와 달을 빼앗아와야 했고 아들의 원수를 갚아야 했다. 둥족의 와루는 바다 밑 깊숙한 곳에 숨어 있었다. 그것을 알아낸 수주는 딸 거라오츠무(格饒茨姆)를 보내 와루를 유혹하게 했다. 푸른 바다 한가운데에서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빛나는 어깨와 하얀 몸을 드러낸 채 노래를 부르는 거라오츠무의 유혹에 빠진 와루는 결국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 오빠의 원수를 갚으려는 일념에서 시작된 유혹이었지만 이를 어쩌나, 거라오츠무 역시 와루를 사랑하게 되었으니. 결국 둘은 도망쳐서 쌍둥이 남매를 낳게 된다. 아버지의 분노는 하늘을 찔렀지만 그녀는 그를 사랑했다. 그러나 가엾은 거라오츠무의 가슴에 격렬한 갈등의 불꽃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집안의 원수와 스스로도 통제할 수 없는 사랑에 빠진 그녀의 깊은 슬픔과 고통을, 사랑의 감정 때문에 아픈 밤을 보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하리라. 그녀는 선택을 해야 했다. 어쩔 것인가. 결국 그녀는 핏줄을 택한다. 거라오츠무는 찢어지는 가슴을 안고 사랑하는 사람을 흑과 백의 경계지역으로 유인해 내고, 와루는 검은 바다에서 죽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남매를 둥주의 나라로 보냈다. 그 사실을 안 수주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둥주의 나라를 향해 총공세를 벌인다.
동주가 최선을 다해 싸웠지만 수주의 단단한 방어선을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 결국 둥주는 하늘로 올라가 천신들에게 도움을 청했고 천신들은 그에게 하늘나라의 용감한 장수들, 즉 유마(優麻)와 둬거(多格)를 내려 보낸다. 360명의 유마는 사자 머리에 인간의 몸을 한 전쟁의 신이며, 360명의 둬거는 매의 날개를 가졌으며 선과 악을 분명히 판별할 줄 아는 정의의 신이다. 하늘의 힘을 가진 전쟁의 신들이 둥주를 도와주니 판세는 금세 달라졌다. 수주의 마을은 철저하게 파괴되었고 흑과 백의 전쟁은 빛과 정의, 선을 상징하는 백의 승리로 끝났다. 전쟁에서 이긴 둥주는 수주의 내장을 꺼내어 승리신들, 즉 유마와 둬거에게 바쳤다. 비장하고 처절한 흑과 백의 서사는 이렇게 막을 내린다.
이 이야기는 나시족의 조상들이 거쳐 온 투쟁의 역사를 반영한 것으로 읽히기도 하고 위대한 영웅들에 대한 장엄한 송가로 읽히기도 한다. 학자들은 또한 흑과 백의 투쟁이라는 구도에서 이원적 세계관과 이원 대립구조를 읽어내기도 한다. 이원 대립구조에서 승리하는 것은 언제나 선이며 정의이고 광명이다. 그것은 이원적 구조를 가진 다른 나라의 영웅 신화들과 별로 다를 바 없다. 그러나 사실 이 신화 전체를 관통하는 모티프는 하얀 해와 달을 차지하려는 치열한 경쟁이다. 흥미로운 점은 검은 세상에 태양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에게도 검은 태양은 있다.
그렇다면 왜 태양은 하얀 태양과 검은 태양으로 나뉜 것일까? 태양은 여기서 자연의 상징이다. 자연은 언제나 두 가지 얼굴을 가진다. 나시족의 다른 신화에 보면 아홉 개의 태양이 나타나니 너무 뜨거워서, 아홉 개의 달이 나타나니 너무 추워서 한 개씩만 남기고 나머지를 제거하는 이야기가 있다. 자연은 인간을 품어주는 자애로움을 갖고 있지만 때론 혹독한 시련을 주기도 한다. 하얀 태양과 검은 태양은 자연이 갖고 있는 이중성을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때 태양은 하얀색이다. 그러나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고 조화를 무너뜨릴 때 태양은 검은색이 된다. 한잉바오다나무가 인간의 생명과 관련이 있다면 뱀의 몸을 하고 있는 둥바교의 자연신 수(署) 역시 자연을 형상화한 존재이다. 인간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면 자연도 인간을 보호해준다. 그러나 인간이 자연을 파괴하면 뱀 모양의 자연신 수는 무지막지한 벌을 내린다. 이원적 대립 구조를 보여주는 하얀 태양과 검은 태양의 이야기가 전하려는 진짜 메시지는 어쩌면 인간과 자연의 화해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