淸 마지막 황제 푸이 기념관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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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11-02-21 09:03|본문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溥儀)가 9년간 투옥돼 평민으로 '개조'됐던 중국 랴오닝(遼寧)성 푸순(撫順) 전범관리소 기념관이 2년간의 보수 공사를 끝내고 21일 재개관한다고 화상신보(華商新報)가 8일 보도했다.
푸순 전범관리소는 푸이가 1950년부터 1959년까지 9년동안의 수감생활을 통해 빨래와 바느질 등을 배우고 학습을 거쳐 평범한 공민으로 변신, 풀려난 곳이다.
1908년 3살의 나이로 청의 12대 황제에 올랐으나 4년 만인 1912년 신해혁명으로 퇴위한 푸이는 중국을 점령한 일제에 의해 1934년 만주국의 황제가 되지만 제2차 대전에서 승리한 소련에 체포돼 1945년부터 5년간 하바롭스크의 전범수용소에 수용된 뒤 1950년 8월 이곳으로 이송됐다.
1950년 6월 건립된 푸순 전범관리소는 2차 대전에 패배한 일본 및 위만주국 전범들을 수용해오다 1964년 마지막 수용됐던 일본 전범들이 본국으로 송환되면서 푸이 기념관으로 운영돼오다 2008년 4월 시설 보수를 위해 문을 닫았다.
중국 정부는 3천30만 위안을 들인 2년간의 보수 공사를 통해 이 전범관리소를 1950년 건립 초기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새롭게 단장해 문을 여는 푸순 전범관리소에는 푸이가 처음 옷을 빨았던 빨래터와 1959년 풀려나면서 거행했던 특별사면 대회장 등이 원형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푸이가 쓴 '죄 인정서'와 그가 입었던 수인 번호 981번이 새겨진 수의, 그의 육성 녹음테이프, 생활도구와 보석 상자 등 그의 수감 생활과 개조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유품들도 전시돼 있다.
바느질을 하는 모습과 청진기로 전범들을 진찰하는 형상을 한 2개의 푸이 조각상도 설치돼 있다. 이 조각상들은 그가 학습을 통해 성공적으로 자력갱생 할 수 있는 평민으로 안착했음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게 전범관리소의 설명이다.
전범관리사무소는 푸이 전시관을 재개관하면서 200여 장의 푸이 사진과 추가로 수집한 그의 유품 80여 점도 새롭게 선보인다.
1959년 석방된 푸이는 1964년 제4기 전국 정협위원으로 선출되고 문헌 관리를 하는 문사관 관원으로 일하다 1967년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
푸순 전범관리소는 푸이가 1950년부터 1959년까지 9년동안의 수감생활을 통해 빨래와 바느질 등을 배우고 학습을 거쳐 평범한 공민으로 변신, 풀려난 곳이다.
1908년 3살의 나이로 청의 12대 황제에 올랐으나 4년 만인 1912년 신해혁명으로 퇴위한 푸이는 중국을 점령한 일제에 의해 1934년 만주국의 황제가 되지만 제2차 대전에서 승리한 소련에 체포돼 1945년부터 5년간 하바롭스크의 전범수용소에 수용된 뒤 1950년 8월 이곳으로 이송됐다.
1950년 6월 건립된 푸순 전범관리소는 2차 대전에 패배한 일본 및 위만주국 전범들을 수용해오다 1964년 마지막 수용됐던 일본 전범들이 본국으로 송환되면서 푸이 기념관으로 운영돼오다 2008년 4월 시설 보수를 위해 문을 닫았다.
중국 정부는 3천30만 위안을 들인 2년간의 보수 공사를 통해 이 전범관리소를 1950년 건립 초기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새롭게 단장해 문을 여는 푸순 전범관리소에는 푸이가 처음 옷을 빨았던 빨래터와 1959년 풀려나면서 거행했던 특별사면 대회장 등이 원형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푸이가 쓴 '죄 인정서'와 그가 입었던 수인 번호 981번이 새겨진 수의, 그의 육성 녹음테이프, 생활도구와 보석 상자 등 그의 수감 생활과 개조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유품들도 전시돼 있다.
바느질을 하는 모습과 청진기로 전범들을 진찰하는 형상을 한 2개의 푸이 조각상도 설치돼 있다. 이 조각상들은 그가 학습을 통해 성공적으로 자력갱생 할 수 있는 평민으로 안착했음을 상징하는 것이라는 게 전범관리소의 설명이다.
전범관리사무소는 푸이 전시관을 재개관하면서 200여 장의 푸이 사진과 추가로 수집한 그의 유품 80여 점도 새롭게 선보인다.
1959년 석방된 푸이는 1964년 제4기 전국 정협위원으로 선출되고 문헌 관리를 하는 문사관 관원으로 일하다 1967년 파란만장한 삶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