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시안① 대륙의 榮華가 깃든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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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11-01-31 08:51|본문
산시성(陝西省) 시안(西安)은 중국 여행의 시발점으로 삼을 만하다. 오늘날 중국 대륙을 이루는 다양한 층위의 문화가 이곳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곳에 도읍을 정했던 왕조가 무려 13개이며 그 기간도 1천 년이 훨씬 넘는다. 그로 인해 죽기 전에 꼭 봐야 한다고 알려진 세계적인 명소가 도심 안팎으로 즐비하다. 진시황의 무덤을 지키는 병마용(兵馬俑), 한자 문화의 총체를 일견할 수 있는 비림(碑林), 당나라 현종과 양귀비의 로맨스가 꽃피던 화청지(華淸池) 등이 대표적이다. 물론, 중국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장방형 성벽도 빼놓지 말아야 한다.
◆시안 여행의 워밍업은 성벽에서시안셴양(西安咸陽)국제공항에서 시안 시내까지는 40㎞ 남짓 거리다. 버스로 이동하면서 창밖을 보면 평원에 드문드문 야산이 하나씩 솟아 있다. 황제들이 묻힌 능이라는 게 가이드의 설명이다. 공항 인근에만 한나라 황제 9명의 능이 산재해 있다고 한다. 황실의 무덤뿐 아니라 귀족들의 무덤도 즐비하다. 이로 인해 '시안에서 부자가 되려면 땅을 파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실제로 청나라 말기부터 문화혁명 시기까지 혼란기를 틈타 도굴되어 시안 밖으로 유출된 유물이 부지기수라고 한다. 물론, 지금은 시안 일대가 문화재 특별 관리 지역으로 지정돼 아무 곳이나 함부로 땅을 팠다가는 사법처리를 감수해야 한다. 시안 성벽 내에서는 건물 높이까지 제한을 받는다. 현재 진행되는 지하철 공사 역시 문화 유물 보호를 위해 다른 도시보다 훨씬 깊이 땅을 파고 건설하는 중이다.
시안의 역사는 약 3천 년이다. 관중분지(關中盆地)의 중앙에 해당돼 예부터 이곳을 얻는 자는 천하를 다스린다고 알려져 왔다. 실제로 주나라 무왕을 필두로 13개 왕조의 황제 73명이 이곳에 터를 닦고 중원을 지배했다. 그중 가장 번성했던 시기는 당나라 때다. 장안(長安)으로 불리던 당대(唐代) 시안의 규모는 동서 9.5㎞, 남북 8.5㎞에 인구가 100만 명이 넘었다.
장안은 세계 최대의 국제도시로 가까운 한반도와 왜(倭), 안남(베트남)을 비롯해 멀리 아라비아와 동로마제국과 교류했다. 당시의 유산인 바둑판 모양의 도로 구획 덕분에 시안은 지금도 중국에서 길 찾기가 가장 쉬운 도시로 통한다. 종루(鐘樓)광장을 중심으로 도로가 사통팔달 뻗어나간다.
현재 남아 있는 시안 성벽은 명나라 때 완성된 것이다. 12m 높이의 두터운 성벽이 동서 4.3㎞, 남북 2.4㎞ 규모로 조성돼 있다. 둘레 길이가 총 13.4㎞인 성벽 위에는 4차선 너비의 벽돌길이 나 있는데, 매년 11월 첫 번째 일요일에 국제 마라톤 대회가 개최된다. 1993년부터 시작된 세계 유일의 성벽 마라톤으로 외국인을 포함해 수천 명이 참가해 성황을 이룬다.
또 성벽 위에는 군사방어시설인 적루(敵樓)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설치돼 있고, 성벽 아래에는 12m 폭의 해자인 호성하(護城河)가 흐르고 있다. 적루와 적루 사이, 성벽과 해자 사이의 간격은 활로 상대를 죽이기에 안성맞춤이라는 60m 거리가 유지된다.
◆실크로드의 유산이 남겨진 도시시안 시내 풍경은 중국의 여느 도시와 다를 게 없다. 시민들이 공원에서 아침저녁으로 태극권이나 전통춤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차량이 많은 4차선 도로에서도 여유롭게 무단횡단을 한다. 물론, 고속도로가 정체되자 역주행으로 톨게이트까지 돌아가는 운전자와 상반신을 완전히 노출한 채 만원버스에 앉아 가는 승객을 보면 시안 사람들의 간(肝)이 다른 지역보다 좀 더 크다는 생각도 든다.
시안은 종종 로마에 비견된다. 중국으로 대표되는 동양문화권의 중심지 역할을 오랫동안 수행했다. 동서양 문명을 잇는 실크로드의 두 기점이 바로 시안과 로마였다. BC 2세기부터 상인들은 낙타에 비단을 싣고 시안에서 출발해 우루무치, 페르시아, 이스탄불을 거쳐 로마에 닿았다.
시안 도심의 회족(回族) 거리도 실크로드의 유산이다. 동서 무역로가 열리면서 다양한 이민족이 중국 문화권으로 들어왔는데, 회족은 8세기 중반 안록산의 난을 계기로 중국 역사에 등장했다. 당나라 현종이 안록산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서역에 원군을 요청하자 이슬람 세계에서 군대가 파병된다. 당나라는 난이 평정된 후 돌아가지 않은 아라비아 출신 무슬림들의 정착을 지원했고, 그 후예들이 회족의 뿌리가 되었다.
시안 회족 거리에선 이슬람교를 바탕으로 한 회족 공동체의 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양고기 꼬치를 비롯한 회족 전통 음식과 고유한 옷차림이 그것이다. 다채로운 향신료가 가미된 갖가지 꼬치류, 주먹만 한 대추야자를 비롯한 이국적인 과일, 살구씨와 복숭아씨가 들어간 기이한 향의 떡을 맛볼 수 있다.
시안 성벽과 종루 광장, 회족 거리를 돌아보았다면 시안 여행의 워밍업은 마친 셈이다. 이제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할 차례다. 진시황릉, 병마용갱, 비림, 화청지 등 찬란한 영화와 이야기를 품은 중국사의 실크로드를 향해 길을 나서야 한다. 또 시안 안팎으로는 석가모니 진신지골사리(眞身指骨舍利)가 봉안된 후한시대 사찰 법문사(法門寺), 당 고종이 어머니 문덕황후를 기리기 위해 중건한 대자은사(大慈恩寺) 유적지 등 세계적인 규모의 불교문화 관광지도 조성돼 있다.
고색창연한 도심 풍경과 함께 시안 여행에서는 중국 역사를 장식한 걸물들이 길잡이 역할을 한다.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이름은 대륙을 최초로 통일한 영정(훗날 진시황이 됨), 당나라의 전성기와 쇠퇴기를 동시에 가져온 현종과 그의 연인 양귀비, 중국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꾼 시안사변의 두 주인공인 장제스와 장쉐량 등이다. 특히 비석 박물관인 비림에선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필과 문장가를 모두 만나게 된다. 왕희지, 구양순, 안진경, 조맹부, 장욱 등 대가들이 남긴 서법 예술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다.
◆시안 여행의 워밍업은 성벽에서시안셴양(西安咸陽)국제공항에서 시안 시내까지는 40㎞ 남짓 거리다. 버스로 이동하면서 창밖을 보면 평원에 드문드문 야산이 하나씩 솟아 있다. 황제들이 묻힌 능이라는 게 가이드의 설명이다. 공항 인근에만 한나라 황제 9명의 능이 산재해 있다고 한다. 황실의 무덤뿐 아니라 귀족들의 무덤도 즐비하다. 이로 인해 '시안에서 부자가 되려면 땅을 파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실제로 청나라 말기부터 문화혁명 시기까지 혼란기를 틈타 도굴되어 시안 밖으로 유출된 유물이 부지기수라고 한다. 물론, 지금은 시안 일대가 문화재 특별 관리 지역으로 지정돼 아무 곳이나 함부로 땅을 팠다가는 사법처리를 감수해야 한다. 시안 성벽 내에서는 건물 높이까지 제한을 받는다. 현재 진행되는 지하철 공사 역시 문화 유물 보호를 위해 다른 도시보다 훨씬 깊이 땅을 파고 건설하는 중이다.
시안의 역사는 약 3천 년이다. 관중분지(關中盆地)의 중앙에 해당돼 예부터 이곳을 얻는 자는 천하를 다스린다고 알려져 왔다. 실제로 주나라 무왕을 필두로 13개 왕조의 황제 73명이 이곳에 터를 닦고 중원을 지배했다. 그중 가장 번성했던 시기는 당나라 때다. 장안(長安)으로 불리던 당대(唐代) 시안의 규모는 동서 9.5㎞, 남북 8.5㎞에 인구가 100만 명이 넘었다.
장안은 세계 최대의 국제도시로 가까운 한반도와 왜(倭), 안남(베트남)을 비롯해 멀리 아라비아와 동로마제국과 교류했다. 당시의 유산인 바둑판 모양의 도로 구획 덕분에 시안은 지금도 중국에서 길 찾기가 가장 쉬운 도시로 통한다. 종루(鐘樓)광장을 중심으로 도로가 사통팔달 뻗어나간다.
현재 남아 있는 시안 성벽은 명나라 때 완성된 것이다. 12m 높이의 두터운 성벽이 동서 4.3㎞, 남북 2.4㎞ 규모로 조성돼 있다. 둘레 길이가 총 13.4㎞인 성벽 위에는 4차선 너비의 벽돌길이 나 있는데, 매년 11월 첫 번째 일요일에 국제 마라톤 대회가 개최된다. 1993년부터 시작된 세계 유일의 성벽 마라톤으로 외국인을 포함해 수천 명이 참가해 성황을 이룬다.
또 성벽 위에는 군사방어시설인 적루(敵樓)가 일정한 거리를 두고 설치돼 있고, 성벽 아래에는 12m 폭의 해자인 호성하(護城河)가 흐르고 있다. 적루와 적루 사이, 성벽과 해자 사이의 간격은 활로 상대를 죽이기에 안성맞춤이라는 60m 거리가 유지된다.
◆실크로드의 유산이 남겨진 도시시안 시내 풍경은 중국의 여느 도시와 다를 게 없다. 시민들이 공원에서 아침저녁으로 태극권이나 전통춤으로 건강을 유지하고, 차량이 많은 4차선 도로에서도 여유롭게 무단횡단을 한다. 물론, 고속도로가 정체되자 역주행으로 톨게이트까지 돌아가는 운전자와 상반신을 완전히 노출한 채 만원버스에 앉아 가는 승객을 보면 시안 사람들의 간(肝)이 다른 지역보다 좀 더 크다는 생각도 든다.
시안은 종종 로마에 비견된다. 중국으로 대표되는 동양문화권의 중심지 역할을 오랫동안 수행했다. 동서양 문명을 잇는 실크로드의 두 기점이 바로 시안과 로마였다. BC 2세기부터 상인들은 낙타에 비단을 싣고 시안에서 출발해 우루무치, 페르시아, 이스탄불을 거쳐 로마에 닿았다.
시안 도심의 회족(回族) 거리도 실크로드의 유산이다. 동서 무역로가 열리면서 다양한 이민족이 중국 문화권으로 들어왔는데, 회족은 8세기 중반 안록산의 난을 계기로 중국 역사에 등장했다. 당나라 현종이 안록산의 난을 진압하기 위해 서역에 원군을 요청하자 이슬람 세계에서 군대가 파병된다. 당나라는 난이 평정된 후 돌아가지 않은 아라비아 출신 무슬림들의 정착을 지원했고, 그 후예들이 회족의 뿌리가 되었다.
시안 회족 거리에선 이슬람교를 바탕으로 한 회족 공동체의 면면을 들여다볼 수 있다. 양고기 꼬치를 비롯한 회족 전통 음식과 고유한 옷차림이 그것이다. 다채로운 향신료가 가미된 갖가지 꼬치류, 주먹만 한 대추야자를 비롯한 이국적인 과일, 살구씨와 복숭아씨가 들어간 기이한 향의 떡을 맛볼 수 있다.
시안 성벽과 종루 광장, 회족 거리를 돌아보았다면 시안 여행의 워밍업은 마친 셈이다. 이제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할 차례다. 진시황릉, 병마용갱, 비림, 화청지 등 찬란한 영화와 이야기를 품은 중국사의 실크로드를 향해 길을 나서야 한다. 또 시안 안팎으로는 석가모니 진신지골사리(眞身指骨舍利)가 봉안된 후한시대 사찰 법문사(法門寺), 당 고종이 어머니 문덕황후를 기리기 위해 중건한 대자은사(大慈恩寺) 유적지 등 세계적인 규모의 불교문화 관광지도 조성돼 있다.
고색창연한 도심 풍경과 함께 시안 여행에서는 중국 역사를 장식한 걸물들이 길잡이 역할을 한다.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이름은 대륙을 최초로 통일한 영정(훗날 진시황이 됨), 당나라의 전성기와 쇠퇴기를 동시에 가져온 현종과 그의 연인 양귀비, 중국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꾼 시안사변의 두 주인공인 장제스와 장쉐량 등이다. 특히 비석 박물관인 비림에선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필과 문장가를 모두 만나게 된다. 왕희지, 구양순, 안진경, 조맹부, 장욱 등 대가들이 남긴 서법 예술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