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가지 보배의 동네 고형(古滎, Gux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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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작성일 :11-04-14 09:04|본문
세 가지 보배의 동네 고형(古滎, Guxing)은 기원전 6,7세기에 벌써 정(鄭)나라가 성을 쌓고 정치와 경제, 문화의 중심으로 만든 유구한 역사의 동네이다.
1983년에 발견한 서산(西山)유적은 지금으로부터 5300-4800년전의 유적이다. 문화재의 시대별로 세 단계로 나뉘는 서산유적의 첫번째는 유적과 문화재가 상대적으로 적은 후강(後崗)문화시기이고 두번째는 유적이 많은 앙소(仰韶)문화시기이며 세번째는 앙소문화 말기이다.
그 중 특기할바는 흙으로 지은 건물과 토성중심의 앙소문화 말기유적이 중국 고대 문명의 기원과 도시발전사를 연구하는데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 점이다.
기원전에 쌓은 네모난 성 형양고성(滎陽故城)은 아직도 모양이 남아 있다. 이 성은 남북길이가 2,200m, 동서너비가 1,500m에 달하고 높이는 20m, 상단 폭은 10m, 하단 폭은 30m에 달한다.
고형진 제철유적은 이천여년전 한(漢)나라때의 제철소 유적이다. 이 유적에서는 내화토로 쌓은 타원형의 키 높은 용광로와 벽체, 가공틀 등 제철관련 기구들을 볼수 있다.
그 중 1호 용광로는 한나라때 최대의 용광로로써 높이가 5,6m에 달한다. 용광로 주변에서는 생산공구 제조의 증거물로 다양한 주조 금형과 철기를 발견했다.
748년에 지은 기공묘(紀公廟)는 삼국시기 유방(劉邦)의 장군 기신(紀信)을 위한 절이다. 유방이 항우(項羽)에게 포위되었을때 기신이 유방으로 변장해 항우를 유인했고 그 사이에 유방이 포위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뒤에 진상을 알게 된 항우가 기신을 불태워 죽였고 후세사람들이 기신을 위해 무덤과 절을 지었다. 하지만 오늘날 절은 무너지고 절의 역사와 기신의 공적을 적은 비석만 30여점이 남아 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비석이 전서체와 예서체로 쓴 "한충열기공비(漢忠烈紀公碑)"이다. 특히 단정하면서도 우아한 전서체의 비문은 많은 서예가들의 발길을 끈다.
명(明)나라 초반에 신축했다가 1501년에 보수한 성황묘(城隍廟)는 하남에서 가장 완정하게 보존되고 규모가 가장 큰 고건물군락이다. 산문(山門)과 전전(前殿), 낙루(樂樓), 대전(大殿), 침궁 등으로 구성된 성황묘는 모두 노오란 유리기와를 떠이고 날아갈듯한 처마와 정교한 조각을 안고 있다.
15m 높이의 2층건물인 낙루는 지붕에 입체로 용을 조각했고 그 사이로 봉황이 날아예며 연꽃과 사자가 그들을 받쳐준다. 대전에도 용과 봉황, 모란, 소나무, 인물 등을 조각했다.
해마다 음력으로 3월 18일이 되면 이 성황묘에서 절간장 행사가 펼쳐져 다양한 공예품을 사고 팔며 맛 있는 음식을 집대성한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흥성거리면서 성대한 행사를 보여준다.
북쪽으로 황하(黃河)를 끼고 남쪽으로 악산(岳山)에 기댄 황하유람구는 산 좋고 물 맑은 명소이다. 높은 곳에 올라 북쪽을 바라보면 황하물이 흘러가는데 산골을 흐르던 황하가 이 곳에서 평야로 떨어지면서 특이한 경관을 이룬다.
남쪽의 산봉사이에는 고풍스러운 정자와 누각이 운치를 자랑한다. 황하 유람구에는 또한 악산사(岳山寺)와 낙타령, 한나라 이왕(二王)성, 염황(炎黃) 이제(二帝) 석각 등 볼거리가 많다.
6천년 황하문화를 축소해서 보여주는 정주황하대관(鄭州黃河大觀)은 황하 유역의 인문경관을 주선으로 첨단기술과 건축예술을 이용해 조성한 테마공원이다.
공원은 황하를 주선으로 태산(泰山)과 용정(龍亭), 용문석굴(龍門石窟), 대안탑(大雁塔), 병바용(兵馬俑), 장성(長城) 등 황하기슭의 대표적인 명소 19곳을 재현하고 7층 높이의 스크린을 통해 현대기술로 황하문화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