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로그인

만주의 봉천(奉天), 심양 아이러니 (심양沈阳)

페이지 정보

작성자 :admin| 작성일 :11-10-28 08:33|

본문

한족의 경계로 흔적만 남은 만주의 상징도시
여섯빛깔 문화이야기
 

심양역 역사(驛舍) 위로 붉은 해가 지고 있었다. 서울역과 흡사한 웅장한 돔 형식 지붕 위로 해가 지는 장면은 장관이었다. '해가 지다'는 이 도시의 이름(沈陽)과 기가 막히는 어울림이다. 아니, 차라리 아이러니에 가깝다. 인구 1000만 명에 가까운 만주 제일의 도시로 발전한 이 도시의 이름이 '해가 진다'는 지극히 패배적이고 감상적인 이름인지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심양의 옛날 이름이 '하늘을 받들다'는 뜻의 봉천(奉天)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정말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어째서 '하늘을 받든다'던 도시가 그 정반대의 뜻을 지닌 '해가 침몰하는'(沈陽)라는 이름이 되었을까.

'심양'이라는 이름에는 한족들의 배만민족주의(만주를 배척하는 민족주의)가 담겨 있다. 사실 그들은 봉천뿐만 아니라 '만주'라는 이름도 사용하지 않는다. 그리고 만주를 아예 3등분하여(흑룡강성, 길림성, 요녕성) '동북3성' 또는 '동북'이라 한다. 과거 만주족의 지배를 받으며 엄청난 치욕을 감수했던 한족인지라, 청조가 망하자 만주를 배척하는 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렸고, 그래서 만주족은 거꾸로 한족에게 많은 경계와 박해를 받았다. 옛 청나라 수도의 상징인 고궁 정문의 코앞에 위압하듯이 높이 솟은 건물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만주의 모든 기운을 짓눌러 버리는 자세다.

심양은 기원전 연나라부터, 한(漢)-고구려-당-요-금-청으로 근대 만주국에서 현재 중국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역사를 거치면서 만주의 중심에 서 있었다. 당연히 우리와도 많은 역사가 얽혀져 있다. 병자호란 때는 봉림대군(후에 효종)을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잡혀왔고, 만주국 시절에는 돈벌이 떠나는 조선 사람들의 중심이 되어 온 곳이다. 이곳은 지금도 30만 명의 조선족이 살고 있고 한국의 기업인, 유학생 등도 많다.

그런데 더 큰 아이러니는 정작 만주에는 만주가 없다는 것이다. 만주 어디를 가도 만주는 흔적만 있을 뿐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로서는 우리와 가장 이웃하는, 그래서 가장 닮은 민족과 문화권을 잃어버린 꼴이니 아쉽지 않을 수가 없다. 사실 만주와 우리는 역사, 문화, 혈통 등 모든 측면에서 겹쳐지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그들이 건재하다면 지금 양국 간에 문제가 되고 있는 동북공정이니 고구려사 침탈이니 하는 문제도 완충 지대가 되었을 것이다.

'너는 오랑캐의 피 한 방울 받지 않았건만/오랑캐꽃//돌가마도 털메투리도 모르는 오랑캐꽃/목놓아 울어나 보렴 오랑캐꽃…'.

이용악은 '오랑캐꽃'란 시에서 오랑캐(만주)민의 소외와 설움을 연민의 정으로 노래했다. 물론 이용악 자신도 망국의 백성 조선인이었고, 조선에서도 설움 많은 변방인 함경도 출신이어서 동병상련의 심정일 것이지만 만주족은 중국이나 조선으로부터도 소외되었다. 반면 우리에게는 꿈의 장소이기도 했으니 이 또한 아이러니다.

실제 조선 사람들이 만주에서 살아가는데 그리 나쁜 대접을 받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같은 시기에 내지(일본)로 갔던 조선 사람들이 받았던 민족적 차별의식이 그쪽에선 별로 없었다. 만주국 시절에 그들은 2등국민 대우를 받았다. 일본인-조선인-중국인(한족)-만주인 등의 계급이 존재했다. 그것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유곽의 여자 값이 그 순서로 등급 지어졌다. 어떻게 보면 조선 사람들은 만주 사람들에게 으스댔다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피지배 백성이면서 지배백성이었던 그들 또한 아이러니다.

'…봉천이 얼마나 좋으면/꽃과 같은 나를 두고 /만주 봉천 가느냐…'.

진도 아리랑에서까지 살기 좋은 곳으로 노래하고 있다. 봉천은 당시 만주의 상징 도시였다. 고생한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그래도 가난에 찌든 사람들이나 혈기 왕성한 젊은이들에게는 분명 신천지에 대한 꿈을 제공한 곳이었던 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그래서 너도 나도 봉천 가는 기차를 탔다. 개장수를 할지라도…. 그것 또한 아이러니다.
0

중국여행 목록

중국여행 목록
세계의 공장 중국 … 중국의 백화점 이우 (이우义… 인기글 이우 중국 저장성 한복판에 있는 도시로 상하이에서 350km, 항저우에서 150km, 닝보에서 200km 떨어졌다. 도농복합 행정구역으로 도시지역 인구는 70만 명이며, 외국인을 포함해 매일 평균 20여만 명의 외지인이 방문한다. 개혁·개방 초기인 1982년 공예품 장터에 세금 혜택을 주면서 현대식 시…(2011-10-31 08:07:11)
천년역사의 수상도시 오진(烏鎭, Wuzhen) 인기글 중국 남방의 유명한 수상도시인 오진(烏鎭, Wuzhen)은 소박하고 전통적인 건물을 통해 유구하면서도 두터운 문화적 함의을 발산한다. 천여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 수상도시 오진은 "동방문명의 활화석"으로 독특한 매력을 보여준다. 절강(浙江, Zhejiang)성 가흥(嘉興, Jiaxing) 동향(桐鄕…(2011-10-28 08:36:43)
[열람중]만주의 봉천(奉天), 심양 아이러니 (심양沈阳) 인기글 한족의 경계로 흔적만 남은 만주의 상징도시여섯빛깔 문화이야기 심양역 역사(驛舍) 위로 붉은 해가 지고 있었다. 서울역과 흡사한 웅장한 돔 형식 지붕 위로 해가 지는 장면은 장관이었다. '해가 지다'는 이 도시의 이름(沈陽)과 기가 막히는 어울림이다. 아니, 차라리 아이러니에 가깝다. 인구 1000만 명에 가까운 만주 제일의 도시로 발전한 이 도시의 이름이 '해가 진다'는 지극히 패배적이고 감상적인 이름인지 의아하지 않을 수 없다. 심양의 옛날 이름이…(2011-10-28 08:33:24)
노천탕 천국… 눈감으면 바람결에 海神(장보고)의 숨결이… (… 인기글 장보고가 숨쉬는 중국 威海 삼면이 바다로 둘러쌓인 한반도는 타민족과 쉽게 섞이기 어려운 지리적 조건을 갖고있다. 하지만 바다에도 길은 있고, 길 위에는 사람이 왕래하기 마련이다. 그렇게 사람들이 만나는 곳에서 새로운 문화는 싹튼다. 인천항에서 서해 물길을 따라 가면, 14시간만에 중국 산둥 반도의…(2011-10-26 08:45:56)
통곡할 만한 자리 (연변延边) 인기글 광활한 벌판과의 강렬한 첫 만남, 누구라도 목놓아 울 수밖에여섯빛깔 문화이야기 모든 감동이란 첫 경험에서 일어난다. 처음으로 만주 벌판을 보는 그 감동은 '울고 싶다'로 축약할 수 있다. 일찍이 연암 박지원은 열하일기에서 만주 벌판을 처음 봤을 때 감동을 다음처럼 적었다. '…말을 채찍질하여 수십 보를 채 못 가서 겨우 산기슭을 벗어나자 눈앞이 아찔해지면 눈에 헛것이 오르락내리락하여 현란했다. 나는 오늘에서야 비로소 사람이란 본디 어디고 붙어 의지하는 데 없이 …(2011-10-26 08:43:46)
동방명주(東方明珠)를 타고서 (연변延边) 인기글 만주로 가는 바다 위에서 한민족 중년 사내의 평균치를 보았다저렴한 비용에다 다양한 이들과 어울려 지루할 틈도 없는 낭만적인 만주행 배편여섯빛깔 문화이야기 항구를 떠나는 배들은 대개 각오가 대단한 용사처럼 보인다. 거대한 여객선 동방명주가 인천항을 떠날 때는, 해지는 서쪽 바다가 배경으로 깔리기 때문에 그 각오는 비장미가 넘쳐 장엄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일찍이 이 시대 최고의 가객 정태춘은 동방명주의 낭만을 노래했다. '동방명주, 대륙 가는 배가 반도를 떠나는구나'…(2011-10-24 09:24:42)
프롤로그 '놈놈놈'과 만주 개장수 (연변延… 인기글 민족의 희미한 기억 '만주의 삶'을 찾아서시중 책이나 교실선 정사나 기록문학인 독립군 투쟁사만 있고꿈을 좇아 건너갔던 수많은 조선청년들의 애환어린 삶은 없어당시 개장수가 많았던 건 조선족도 많았다는 반증여섯빛깔 문화이야기 22일부터 '여섯빛깔 문화 이야기'의 하나로 '소설가 박명호의 만주일기'를 매주 월요일 연재한다. 지난 8일자로 끝난 '강영환 시인의 시가 있는 산' 후속이다. 박명호 씨 글 속의 만주는 중국…(2011-10-24 09:20:36)
오래된 마을을 찾아서(2) 쉬춘(許村) 인기글 隱者(은자)처럼 몸을 낮춘채 나그네에 길을 열어주고…소금무역상들 모여살던 곳처첩 아편값 감당못해 몰락관광지로 지정됐지만 한산 '오악(五岳)을 보고나면 뭇 산을 볼 필요가 없고, 황산(黃山)을 보면 오악을 볼 필요가 없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빼어난 산이 황산이다. 황산은 산으로도 유…(2011-10-17 10:07:15)
오래된 마을을 찾아서 (3)펑황쩐(鳳凰鎭) 인기글 봉황 타강가에서 만나는 아침. 가랑비가 내리는 가운데 옅은 운무가 천천히 내려오고 있다 '봉황 8경' 진수 외지인 탄성손재주 뛰어난 묘족들의 터전고풍스런 분위기 신비감 더해 안평대군이 꿈속에서 무릉도원을 방문한 이야기를 듣고 안견(安堅)이 그렸다는 몽유도원도(夢遊桃源圖)는 말 그대로 상상속의…(2011-10-17 10:03:27)
오래된 마을을 찾아서(4)핑야오고성 (平遙古城) 인기글 북경서역에서 서쪽으로 가는 열차를 타면 철로는 두 갈래로 나뉘어 달린다. 하나는 운강석굴이 있는 따통(大同)방향이고, 또 하나는 산서성의 성도인 타이위엔(太原)과 시안(西安)을 지나 티베트와 실크로드 가는 길로 다시 갈라진다. 이번에는 황토고원과 크고 오래 된 고가(古家)와 아직 주민들이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고성을 만나…(2011-10-10 09:13:09)
오래된 마을(古村)을 찾아서 (5) 수천소학교(水泉小學校) 인기글 장예모 영화 '책상서랍 속의 동화' 촬영지버스도 없는 오지마을"날 저문데 자고가시라"끼니ㆍ잠자리 걱정까지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베이징 북쪽의 어느 작은 마을. 단 한 분의 교사인 까오(高)선생님과 서른 명에 조금 못 미치는 전교생을 가진 희망소학교가 있다. 병든 어머니 간병 때문에 한 달간 학교를 비워야 …(2011-10-10 09:09:40)
오래된 마을을 찾아서 (6) 통리(同里) 인기글 중국 10대 水鄕으로 명성15갈래 하천 마을 이어줘겨울이 가고 새봄에 제비가 박씨를 물고 온다는 강남은 장강(長江)-양자강의 남쪽을 말한다. 이 강남에는 크고 작은 수향(水鄕)들이 곳곳에 널려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통리다. 내가 통리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거의 10년 전쯤이다. 그 때는 아주 유명한 두어 곳의 수향이…(2011-10-03 09:50:51)
오래된 마을을 찾아서 (10) 사오씽(紹興) 인기글 박태만의 중국기행 / 중국문학의 거장 노신의 고향영웅들이 호탕하게 마셨던 술, 黃酒의 산지왕희지 절세의 걸작 '난정서' 탄생지금도 소흥에 가면 시엔헝주점(咸亨酒店)이 있다. 젊은 날 루쉰(魯迅)이 가끔 찾았던 잔술집이다. 소흥을 찾을 때마다 나도 그곳에서 한 사발 그득하게 나오는 황주(黃酒-소흥주)를…(2011-10-03 09:42:19)
오래된 마을을 찾아서(11)왕지아따위엔 (王家大院) 인기글 성벽의 한 곳에 올라서서 보는 홍문보의 한 부분. 대원 밖으로는 실제 서민들이 거주하는 동굴집이 많이 보인다. 대원 안팎의 차이를 보는 듯하다. 50년간 '방 1000개' 완성두부장수로 성공한 巨富 서유기 속 손오공이 활약하던 수미산 인근마을근대화ㆍ일제 식민지 이후 왕씨 일가 쇠락…관광지로 변모그녀가 입고 있는 옷의 짧은 소매 끝에 카일라스(kailas)라는 알파벳이 조그맣게 보였다. 모자 위로 걸친 선글라스와 손목에 묶은 손수건, 작은 디지털 카메라가 여행객임을 …(2011-09-26 08:51:11)
오래된 마을을 찾아서(12)푸롱쩐 (芙蓉鎭) 인기글 영화 속에서 두부를 팔던 가게자리는 지금도 두부를 팔고 있다. 하지만 따스해 보이던 주인공 부부의 잠자리가 있던 곳에는 냉기만 흐를 뿐 사람 사는 냄새가 사라진 듯하다. 흥청거리던 나루의 소란함이 없어서 일까, 떠나간 사람들이 함께 가져간 마음 때문일까. "여기가 북적이던 영화속 '왕촌'이던??인적…(2011-09-26 08:43:55)
게시물 검색

공지사항 2024년 龍의 힘찬 기운을 받아 건강부자가 되세요
延边聖山本草商贸有限公司(연변성산본초상무유한공사)微信 138-4339-0837 카톡전화번호 010-4816-0837
Copyright © 2006 吉ICP备2020005010号 住所 :延吉市北大新城 2号楼3010
企业法人注册号(법인사업자 등록번호):222400000012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