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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이 첫괭이를 박은 사이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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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3-25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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룡정시 소재지에서 동남쪽으로 28.5킬로메터 상거한 개산툰진, 개산툰진 소재지에서 다시 두만강 흐름을 따라 6킬로메터쯤 내려가면 유유히 흐르는 두만강을 끼고 뉘연하게 펼쳐진 기름진 벌이 시야에 가득 펼쳐진다.  이 벌이 바로 두만강과 더불어 수많은 사연과 전설을 남긴 천평벌이다. 천평(天坪)이란 한자 그대로 하늘의 들판이란 뜻이다.  천평벌은 상천평(上泉坪),  중천평(中泉坪), 하천평(下泉坪)으로도 나뉘여 불리운다.
 
우리 민족은 이곳에 첫괭이를 박고 두만강을 젖줄기로 오늘날의 기름지고 비옥한 옥답을 가꾸어왔다, 그제날 위만주국 황제의 수라상에 올린 입쌀을 생산하였다 하여 어곡전이라고도 불리우고 오늘날엔 기름기 찰찰 흐르는 입쌀을 중남해에도 보내고있는 천혜의 땅 천평벌, 천평벌에 우리 민족이 처음으로 중국땅에 발자국을 남긴 간도(사이섬 또는 꼬리섬으로도 불리웠음)와 더불어 선구촌이 있다.
 
기자는 선구촌의 어제날의 창상과 오늘의 변화를 알아보고저 선구촌에서 토배기로 40여년 살아오면서 선구촌의 굵직굵직한 행사들에 관여해왔고 촌의 변천사에 각별한 관심을 쏟아온 심정호씨를 만났다.
 
흘러간 지난날을 소급하면서 명상에 잠겨 말없이 마을을 조용히 내려다보고있는 엄가더기, 엄가더기에서 들려오는 꿩울음소리가 도란도란 이야기소리에 추임새를 먹이듯 유난히 반가왔다.
 
선구촌지명과 선구나루터
 
1880년대초부터 국운이 기울어지기 시작한 청나라는 막심한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였다.  대외로 세계 렬강들이 비게덩이같은 땅에 침을 흘리며 달려들고 대내로는 각종 모순에 빠져 허우적였다. 조선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해마다 자연재해가 덮치고 탐관오리나 지주들의 등살에 민초들은 살길이 막막하였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 두만강을 넘나들면서 땅을 일구고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비일비재로 나타났다.  제일 먼저 건너온 사람이 바로 조선 하상봉의 리경수형제였다. 그들의 뒤를 따라 사람들이 아침일찍 두만강을 건너와 억새밭을 일구어 농사를 짓고 저녁 어슬녁이면 남들의 눈을 피하면서 두만강을 되건너가군 했다.  1883년 조선정부는 부득불 월강금지령을 페지하기에 이른다.  제일 먼저 일군 땅이 사이섬이다. 사이섬이란 두만강에 홍수가 지면서 지금의 개성촌 4촌민소조 아래로부터 두만강물곬이 두갈래로 나뉘여 지금의 선구촌 6촌민소조에 이르러 생긴 섬을 말한다. 사람들은 그때로부터 이 섬을《사이섬》 혹은 《간도》라고 불렀고《간도》는 그후 사이섬만이 아닌 두만강류역 연변지역을 일컫는 말이 되였다.
 
처음에는 옷을 벗고 두만강을 건넜다.  그런데 수확철이 되여 소중한 낟알을 건네가려니 운수도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사용한것이 떼목이다.  한가지 일도 자주 하면 미립이 트는 법, 거기에서 발전한것이 쪽배였다. 《간도》땅은 조선사람들에게 목숨을 부지할수 있는 유일한 희망의 땅이였다. 조선사람들은 농사를 지어서는 가을에 낟알을 조선으로 날라갔다. 그리고 바심을 해서는 팔기도 했는데 쌀이 하도 좋아 밥을 해놓으면 기름기가 찰찰 돌고 밥맛이 천하별미였다. 이렇게 되자 소문이 새끼를 치면서 《간도쌀》이 조선반도에서 소문을 놓게 되였다.  《간도》로 농사 지으러 오는 사람들의 행렬이 늘어났다. 《간도》는 이렇게 후세에 남았다.
 
청나라 광서년대중기부터 두만강을 건너다니며 농사를 짓던 사람들이 점차적으로 《간도》에 정착하면서 마을이름을 처음 배가 들어온 곳이라고 해서 배 선(船)자에 입 구(口)자를 달아 선구라 지었는데 그 이름이 이곳 지명으로 되였다.
 
1909년 11월,  일본은 룡정에다 소위 《간도일본총령사관》을 세우고 선구에다는 세관까지 설치하여 배를 타고 중국에서 조선으로 오가는 통상구로 삼았다.
 
《제가 다섯살나던 해 어머니의 등에 업혀 조선에 있는 외가집에 가기 위해 그 세관을 건넜던 기억이 어렴풋이 납니다. 그땐 겨울이여서 세관에서 통행증에 도장을 맞고 얼음이 깔린 두만강을 건넜습니다.》
 
심정호씨는 두눈을 가늘게 뜨고 량미간에 주름을 모으면서 기억을 더듬었다.
 
1945년 동북이 해방되자 일본사람들이 세운 세관을 우리 나라 정부에서 인수하여 관리하면서 선구세관은 한때 계속 조선으로 오가는 통상구로 사용되였다.
 
일설에 의하면 선구는 또 우리 민족의 애절한 정서와 한을 담은 노래 《눈물젖은 두만강》의 창작지이기도 하다.  
 
베감투사건과 일본순사가 혀를 내두른 조선사람
 
선구촌은 조선과 중국 사이의 특수한 지리적위치에 놓여있는만큼 광복전 크고 작은 사건들이 자주 발생해 세상을 놀래웠다. 지금도 선구촌사람들은 베감투사건을 곧잘 외우군 한다.
 
1932년 6월의 어느날, 선구일본경찰분주소 사무실을 기웃거리는 한 사나이가 있었다. 겉으로는 태연한척하나 날을 세운 그의 눈빛이 사뭇 매서웠다. 리동일은 애명이 리수원, 지금의 덕신향 흥륭촌 사람이다. 한나절이나 분주소부근을 서성거리며 분주소내부구조와 들락거리는 사람의 수자를 장악한 그는 어스름이 깔리기 시작하자 선구촌과 4킬로메터 떨어진 물학성(지금의 개성촌 4소조)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그날밤 나지막한 초가집 뒤방에 여러명의 청년이 머리를 맞대고 무엇인가를 수군수군 의논했다. 이튿날 점심때가 좀 지난 시각 베감투를 쓴 리동일과 청년 여럿이 분주소로 향하였다.
 
정오가 좀 지난 시각, 따가운 해볕에 마을은 조는듯 조용했다.
 
《나의 가친이 방금 세상을 떴수다. 돼지고기가 있어야 조문오는 사람들을 대접할게 아닙니까? 그래서 돼지를 잡으려 하니 허락해주십시오.》
 
리동일이 허리를 굽히면서 말했다.  그때는 려염집에서 돼지를 함부로 잡지 못한다고 엄격히 규정하였다. 분주소사무실에는 예측한대로 가네다소장이 혼자였다. 가네다소장은 점심술에 얼근히 취해 있었다.
 
방금전만 해도 허리를 굽히며 허락해줍시사 하던 리동일이 갑자기 무섭게 돌변하더니 상복호주머니에서 작은 도끼를 꺼내여 추켜들며 《꼼짝 말앗!》 하고 벽력같이 소리쳤다.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라 잠에서 덜 깬 사람처럼 얼뜨름해있는 가네다소장을 재빨리 포승지운 리동일은 벽에 걸려있는 세자루의 총과 탄알 한상자를 밖에서 대기하고있던 동료들에게 넘겨주고 자기는 뒤문으로 나와 산으로 올리뛰였다.
 
리동일이 사라진 뒤에야 제정신으로 돌아온 가네다소장은 돼지 멱따는 소리로 분주소에서 잔심부름을 하는 배룡범을 불렀다.  분주소앞뜰에서 잔일을 하던 배룡범이 허겁지겁 달려들어오자 《빨리 싸이렌을 울려!》 라고 소리쳤다. 배룡범은 15메터 높이의 나무사다리로 올라가 싸이렌을 울렸다. 분주소의 경찰들이 천방지축 달려왔을 땐 이미 리동일일행이 멀리 사라진 뒤였다.
 
배룡범은 그때 열일곱살이였다. 후일 그는 리동일이 가네다소장을 묶어놓고 총을 빼앗은 이야기를 자주 해 《베감투사건》은 선구촌의 전설로 되였다.
 
1883년부터 마을이 형성되면서 지금의 선구촌에 장터가 생기고 술집도 한집두집 문을 열었다. 일제가 조선에서 술을 엄격히 단속했기때문에 조선사람들은 두만강을 건너와 술을 마시군 했다. 어느날 한 조선사람이 술을 마신 뒤 술병 하나를 품에 넣고 두만강을 건넜다. 술집에 있던 누군가가 고자질을 해 일본순사가 그 조선사람의 뒤를 쫓았다. 집까지 쫓아가 조선사람을 붙잡은 일본순사가 아무리 찾아도 술병을 들추어낼수 없었다. 한동안 싱갱이질하던 일본순사는 《술을 빼앗지도 않고 너를 검거하지도 않겠으니 술병을 어디에 감추었는지만 알려달라》고 했다.  조선사람의 기민함과 지혜앞에 일본순사의 형상이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이였다.
 
《노끈으로 뒤문고리에 달아놓았수다.》
 
조선사람의 너무나도 기발한 생각에 할 말을 잃은 일본순사는 우거지상이 되여 되돌아가고말았다.
 
선구산성과 어곡전
 
아직은 이른봄이라 산마루에는 누렇게 말라버린 잡초만 무성했다. 희끗희끗 눈발이 날리는 산성옛터는 그 옛날의 번성을 잊은듯 조용하기만 하다. 선구촌에 위치한 선구산성은 높이가 201메터인데 산꼭대기에는 흙으로 쌓은 성벽이 지금도 있다. 성벽의 둘레는 3000메터에 달하고 높이는 9메터, 너비 4메터, 길이가 1960메터이다. 성벽은 또 내성과 외성으로 되여있는데 내성의 길이가 500메터, 성벽의 모서리근처에는 집터자리가 있고 서남과 서북쪽에는 각각 출입문자리가 하나씩 있었다. 서북쪽에다 성벽을 쌓았는데 둘레가 1814메터, 그 주변에서 피면기와, 막새처마기와와 손가락무늬기와 그리고 질그릇밑굽 등이 출토되였다. 이 산성은 1115년부터 1234년까지 료나라와 금나라때 사용되였다고 한다.
 
선구산성과 골짜기를 사이두고 약 300메터되는곳의 무덤속에서 돌로 만든 관이 발견되였는데 그 관속에는 해골이 있었다.  그 돌관두껑을 장동골사람들이 마을길이 물에 밀린다 하여 길에다 깔아놓았는데 지금도 선구에서 장동으로 오가는 길에 있다.  선구촌 6소조의 길옆에 산이 있는데 이 산은 선구산성과 골짜기를 사이두고있다. 십여년전만 해도 이 산꼭대기에서 쇠붙이들이 나와서 이곳 사람들은 이 산을 《야장간덕》이라고도 불렀다.
 
선구촌에서 빼놓을수 없는것이 바로 어곡전력사이다.
 
천평벌이 기름지고 벼농사가 잘 되기에 사람들은 천평벌을 《하늘의 복판》이라고도 불렀다.  천평벌에 벼농사가 잘된다는 소문을 듣고 조선 길주에서 살던 최학출이란 사람이 남부녀대하고 두만강을 건너와 천평벌에 자리를 잡았다. 그는 원래 학식도 좀 있고 농사경험도 있기에 산종농사로는 벼의 생산량을 높일수 없다는것을 알고 새로운 농사법으로 벼농사를 지으려고 작심했다.  반복되는 연구끝에 그는 벼모를 일찍 키우고 논밭에 일찍 내는 농사법을 연구해냈다.  그것이 그때 당시에 소문 놓은 《유지온상육모법》이다. 유지제품이 없었기에 세면종이에 콩기름을 바르고 그 종이를 모상판우에 덮어 모상판의 온도를 높여 벼모가 빨리 자라게 하는 방법이였다.  
 
최학출농민의 밭에서 자란 벼는 소출이 높았고 밥맛도 훨씬 좋았다. 최학출농민의 《유지온상육모법》은 린근은 물론 위만주국중앙에서까지 알게 되였다. 위만주국중앙에서는 천평벌이 원래부터 농사가 잘된다는것을 알고 사람을 파견하여 최학출농민의 농사법을 조사하게 하였다. 그때로부터 위만주국중앙에서는 최학출농민에 대해 중시를 돌렸고 1941년 12월에는 그를 신경(당시의 장춘)으로 불러다 그에게 장려로 1천원까지 주면서 고무격려했고 1942년에는 농업대표단 일원으로 일본을 방문하게 했다. 그리고 논밭까지 정해주면서 황제의 《어곡미》를 생산하는 임무를 주었다. 이렇게 되여 최학출은 황제의 수라상에 올릴 어곡미를 짓는 어곡전을 다루게 되였다. 어곡전은 봄에 소로 논갈이하고 써레질에서부터 번지까지 모두 사람의 힘으로 해야 했다. 그리고 모내기때에는 마을의 숫처녀들을 동원하여 하얀 버선을 신기고 정성들여 모를 꼽게 했고 가을이면 또다시 마을의 처녀들을 불러다 하얀 장갑을 끼고 낫으로 정성들여 가을하게 했다. 달거리가 온 처녀는 당연히 제외였다. 그리고 어곡전주변에 마을의 개나 돼지같은 가축들이 얼씬도 거리지 못하게 했다. 탈곡도 맨먼저 해야 하고 정미소에서 가공한후에는 집에 가져다가 깨끗한 유리판우에 한줌씩 올려놓고 귀가 떨어졌거나 색이 조금만 달라도 골라냈다. 다음 하얀 옥양목으로 만든 주머니에 일매지게 포장하여 제시간에 황제에게 보냈다. 이것이 어곡미에 깃든 사연이다. 
 
일찍 고구려, 발해 시기의 기재에도 《로송의 벼가 좋다》는 말이 있다. 로송이란 바로 지금의 천평벌이다. 천평벌에 벼농사가 잘되는데는 기후가 타지방보다 더 따뜻하여 무상기가 140일은 넘기고 거기에 사토질의 토지가 비옥하고 자연재해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천평벌의 쌀로 지은 밥은 투명하고 점착성이 강하며 영양이 풍부하고 향기로와 그 맛이 일품이다.
 
선구촌사람들의 고향애
 
1883년 마을이 형성되여서 장장 한세기도 훨씬 넘는 력사의 장하속에 선구촌은 상전벽해의 변화를 거듭하면서 오늘은 살기 좋은 《북국의 강남》으로 변신하였다. 벽돌기와집들이 줄칸자로 그은듯 보기좋게 렬을 지어 마을의 오붓함을 오롯이 보여준다.
 
해방후 전국민병모범으로 모택동주석의 이름을 새긴 반자동보총을 상으로 받기까지 한 서병학 등 인물을 배출한 선구촌은 자기의 력사에 새로운 페지를 쓰고있다. 현재 강소촌과 강종촌을 합병하여 강소촌으로, 선구촌과 후동촌을 합병하여 선구촌으로 되였다. 농사가 위주인  선구촌농민들은 주로 로무송출과 농사에 의존하고있다. 한호에 평균 수한전이 1.5헥타르, 그들은 벼농사를 잘하여 수입을 올리려 하고있다. 선구촌에 룡정시어곡전협회 선구분회를 세우고 작년 9월 22일 어곡전비제막식을 가지는 등 어곡미의 브랜드우세를 리용하여 록색입쌀을 생산하고 그 쌀을 재료로 음식제품들을 개발하려 하고있다. 그리고 관광자원개발도 추진중이다.
 
 《십여년전 선구촌에만도 84호가 살았는데 지금은 50여호밖에 안됩니다. 호도거리이전에 대채평공을 할 때 한공에 1원아래로 내려가본적이 없을 정도로 생활수준이 꾸준히 고르로왔습니다. 개혁개방이후 생활이 향상되였으나 반면에 호총이 줄어들어 결혼식과 첫돌생일잔치같은것은 거의 보기 힘듭니다. 그만큼 로인이 많고 젊은이가 적다는 말이 되지요. 그래도 남아있는 우리가 어곡미의 전통을 계승하고 또 관광자원을 개발하여 선구촌을 더욱 살맛나는 고장으로 건설할것입니다.》
 
심정호씨의 말이다. 심정호씨는 자식 셋을 연길이나 룡정에 보내고 자신은 안해 장월자씨와 함께 선구촌에서 살고있다. 자식들이 시내로 와 편한 생활을 하라고 몇번이나 말해도 그는 선구촌을 떠나지 못한다. 이곳에서 살아야 마음이 편하다는 그의 솔직한 고백, 그것은 유서깊은 고향 선구촌에 대한 애착과 사랑이다. 아니 고향에 대한 애착과 고향사랑은 심정호씨 한사람만이 아닌 선구촌사람들의 하나같은 마음이리라. 선구촌사람들은 선구촌의 지난 력사를 대대로 전하면서 가슴 뿌듯한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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