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중동포, 내 형제로 안아줄 수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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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4-13 09:33본문
“누구를 비판하고 싶어질 때는 말이지” 하고 아버지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네가 누리고 있는 만큼 그렇게 유리한 처지에 있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F S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에서)
조선족(재중동포)의 역사는 신산한 우리의 근현대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민족은 일제 강점기 이전부터 만주 일대에 살고 있었지만 일반적 의미에서 ‘조선족’은 일제 강점기 무렵 만주로 들어온 세대 또는 그 후손들이라 할 수 있다. 독립운동과 강제이주 등 거친 역사적 현실로 말미암아 생성된 공간과 시간에서 살아온 이들과 그 후손들. 우리는 이들을 조선족이라 부른다.
20세기 후반, 냉전시기 40∼50년간 조선족과 한국인은 중국의 국민과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각기 다른 이념과 제도 하에서 색다른 삶을 살아왔다. 이렇게 남남으로 살아오던 한민족이 동질감과 서로의 정체성을 확인하면서, 극적으로 상봉한 것은 1992년 한국과 중국의 수교를 통해서였다.
“조국인 중국에 충성해야 하면서도, 동시에 조상의 뼈가 묻혀 있는 고국을 사랑해야 하는 것, 이것이 조선족 사회가 갖고 있는 딜레마입니다.” 저자는 조국인 중국과 고국인 한국 사이에 놓인 조선족의 정체성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다. ‘친가와 시가, 낳은 정과 기른 정’, ‘민족정체성과 국민정체성이 공존하는 이중정체성’, ‘중국과 조선의 정체성이 융합된 제3의 정체성’ 등 조선족의 정체성은 여전히 수많은 언어 속에 혼란스럽게 걸쳐 있다. 어느새 우리는 조선족을 합·불법적으로 국내에 체류하며 단순히 돈을 벌려는 목적 즉 ‘코리안드림’을 실현하기 위해 모여든 존재라고 인식하고 있다. 조선족 스스로 제기하는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듣기보다 ‘유리한 처지’에 간신히 놓인 우리의 처지에 감사하며 비판적 시선만 던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자문해 본다.
‘그래도 희망은 대한민국’과 ‘가장 마음에 걸린다’는 조국과 고국 사이 경계에 선 재중동포 지식인이 때론 한민족 내부자의 시선으로, 때론 중국국적의 이방인의 시선으로 바라본 ‘대한민국과 그 사람들’의 이야기다. 저자의 이야기는 정치, 경제, 문화, 역사를 아우른다. 두 책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드러내고자 하는 저자의 마음일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네가 누리는 만큼 그렇게 유리한 처지에 있지 않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면, 그래도 희망은 대한민국?, 이냐는 물음에 답하지 않으려면, 한국과 중국의 경계인으로만 중국동포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소중한 우리의 ‘동포’로서 이제부터라도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200만 재중동포는 우리와 다르지 않다. ‘그래도 희망은 대한민국’이라고 말하는 것에 대해 이제 우리가 답할 차례이다.
이태곤 글누림 기획편집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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