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는 조선족 만나본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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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09-04-14 09:17본문
머리말: 2008년 10월 4일부터 19일까지 15일간 한국을 방문했다. 15일간은 짧지만 많은것을 보고 듣고 느꼈다. 특히 한국에 나가 돈벌이 하는 친척이나 친구들을 통해 중국조선족들의 한국에서의 삶을 느껴보았다.
많은 중국조선족들이 다녀갔고 또 지금 살고있는 한국, 한국이란 우리에게 무엇인가?
환률이 자꾸 떨어져 한국로무도 돈벌이가 안된다고 아우성을 치는 오늘이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한국행 막차라도 타지 못해 안달이고 이미 한국에 간 근 40만명의 중국조선족들은 한국사회에서 보다 나은 삶의 질을 위해 분주히 살아가고있다.
나의 한국방문인상기는 내가 짧은 시간동안 한국에 체류하면서 보고 듣고 느낀것을 그대로 일기체 형식으로 기록한 부족한 글이다. 그러나 나의 한국방문인상기가 애독자들이 한국에서의 중국조선족들의 생활실태와 현황을 료해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수 있다면 좋겠다.
2008년 10월 4일 오전 9시발 심양―인천행 비행기를 탔다.
내 옆좌석에 앉은 료녕 안산에 산다는 조선족들은 한국에서 이미 3년간 일을 했고 재입국절차로 다시 한국에 돈벌이 나가는 사람들이였다.
한국에서 건설현지 등에서 일당을 뛰였다는 50대의 안산남자는 하루에 6~7만원가량의 일당을 벌었다고 했다. 그러나 요즘은 한국돈이 자꾸 환률이 급락하면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환률이 떨어진다 해도 아직까지는 한국에서 돈버는것이 중국에서 돈버는것보다 낫다는 신심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는 한국돈이 100만원당 중국돈 5700원가량의 환률에서 5000원이하로 떨어지면 한국에서 고생스럽게 일하는 재미는 없을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난해 이맘때처럼 한국돈 100만원당 7000원이상의 환률로 다시 돌아올가 하면서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오전 10시 30분, 한국시간으로는 11시 30분가량 됐을 때 비행기는 한국상공을 날아왔다. 심양에서 출발해서 꼭 1시간 30분가량 날아온것 같다. 인천 앞바다가 보이기 시작했고 바다우로 길게 늘어서있는 해상다리가 보였다.
이 곳이 바로 한국이구나, 중국내 그렇게 많은 조선족들이 오지 못해 안달아하고 코리아 꿈을 꾸게 했던 땅, 기실 한국은 너무나도 가까운 지척에 있었다. 비행기로 한시간 반, 그것도 령공을 에돌아와서 그렇지 직선거리로 날아오면 1시간 거리밖에 안된다.
출구로 빠져나오니 지난해 방취제로 한국에 나온 매형과 친구 광호가 기다리며 손짓한다.
서울로 올라오는 공항리무진을 탔다. 공항에서 누나가 살고있는 양재까지 뻐스를 타고 올라오는데 인당 9000원이란다. 인민페로 치면 50원이 넘는다.
양재동에 내려서 육교를 넘어오니 길옆에 남새들을 펴놓고 파는 행상들이 심심찮게 보여 연길의 서시장부근 행상풍경과 다르지 않았다.
서울도심속에 이런 싸구려난전들이 펼쳐져있다는것이 신기, 지나가고 다가오는 사람들마다 억양과 톤이 다른 한국말을 하고있고 허다한 간판들이 한글로만 즐비한곳, 이게 바로 한국이였다. 그리고 한국은 중국에서 보는 금전의 천당이 아닌, 그 곳에서도 오이며 감자며 도마도 같은 작은 로천행상을 펼쳐놓고 어렵게 생을 유지해나가고있는 년로한 할머니도 있고 이제 막 앳된 모습을 벗는 사춘기소녀애들이 흘리고가는 까르르 웃음소리도 있고 정장에 넥타이를 맨 아저씨가 어데론가 급급히 걸어가는 삶의 냄새와 풍경이 있는 곳이였다.
누나와 녀동생이 들어있는 양재동세방에 들어가면서 길목에 있는 포장마차에서 삶은 돼지고기와 순대 등 술안주들을 샀다. 2만3000원이 나왔다. 슈퍼에서 또 백세주며 맥주 등 술을 샀는데 2만원이 넘는다. 아마 어림잡아도 5만원은 넘는것 같다. 5만원이면 중국돈으로는 300원이 넘는다. 중국돈 300원이면 중국에서는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놓고 잘 먹을수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보기에도 초라한 술상이 차려질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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