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원조 한류’ 구운몽, 중국판 필사본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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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1-10-04 22:41본문
양승민 교수 "19세기 개작 '구운루' 옮긴 책 찾아"
중 소설 특징 버무려 각색…조선 유통위한 판본
< 구운몽 > 은 한류의 원조였다. 조선시대 한글소설 걸작인 김만중(1637~1692)의 < 구운몽 > 이 19세기 초 중국에서 백화문(일상적인 중국어 입말)으로 개작돼 출판됐음을 입증하는 필사본(손으로 직접 쓴 책)이 발견됐다.
선문대 중한번역문헌연구소의 양승민 연구교수는 19세기 중국에서 < 구운몽 > 을 개작한 소설 < 구운루 > 의 필사본을 최근 인천 미추홀도서관에서 찾아냈다고 4일 밝혔다.
< 구운루 > 는 조선시대 말 시인 김진수(1797~1865)가 당시 청나라 수도 연경(베이징)을 돌아보고 와서 낸 시집 < 연경잡영 > (1832)을 통해 당시 연경에서 < 구운몽 > 을 개작해 유통된 소설이라는 사실이 알려졌으나 그동안 실물은 전하지 않았다. 1970년대 영남대 도서관에서 < 구운기 > 9권9책이 발견됐으나, 원본이 10권10책이었다는 기록과 다르고, 백화문과 문어체가 뒤섞여 < 구운루 > 정본인지를 놓고 논란이 이어져왔다.
이번에 발견된 < 구운루 > 는 10권10책 가운데 4책이 빠진 6권6책이다. 책마다 일제강점기 인천부립도서관의 정사각형 인장이 찍혀 있고, 표지 안쪽엔 일왕 연호인 쇼와 15년(1940) 등록했다는 타원형 청색인도 보인다. 중국 수입지에 한쪽당 10행 18자로 원래 내용을 일일이 옮겨 적은 뒤 4차례 끈으로 묶어 장정한, 옛 중국본 형식이다. 양 교수는 "필사한 목판본 괘지(글자가 들어갈 칸을 넣은 옛 책 종이)와 표지 장정에 각각 장식용으로 찍힌 두잎·황색마름모 무늬 등은 조선 책의 특징으로, 19세기 중반 조선에서 필사돼 민간에 전하다가 1940년 도서관에 반입된 것임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 구운루 > 는 35회, 18만자가 넘는 장편 소설로 < 구운몽 > 의 세배 분량이다. 긴 이야기를 잘게 회, 장으로 나눠 풀어내는 옛 중국 통속 소설의 특징을 보여준다. 선계에서 속세로 내려온 양소유의 영웅적 일생을 다룬 줄거리는 같지만 세부는 다르게 바꿨다. 중국학계는 < 구운루 > 를 1994년 기존 영남대본 < 구운기 > 를 바탕으로 새롭게 출간한 바 있다.
양 교수는 "책의 크기나 제본은 물론 회·장의 차수 표시, 균일한 글자 수 등이 중국 원본 목판본을 보고 옮겼다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고 밝혔다. 또 군데군데 붓으로 꺼멓게 지우거나 오려낸 뒤 새로 써넣은 흔적들로 보아, 원본을 단순히 베껴 소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중국 판본을 수입해 조선에서 번각본(한 번 새긴 책 목판을 그대로 다시 새겨 찍은 책)을 유통시키기 위해 작업한 교감본(원본의 틀린 글자를 바로잡은 책)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번 발견으로 < 구운몽 > 중국어 개작본의 전모가 밝혀졌다"고 평가하면서 "이미 공개된 영남대본은 미추홀도서관본을 바탕으로 내용을 깁고 더한 필사본이며, 이런 첨삭 과정에서 원작의 내용이 훼손되었다"고 주장했다. 양 교수는 이런 연구 결과를 8일 경기도 성남시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열리는 한국한문학회 가을 학술대회에 발표할 예정이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중 소설 특징 버무려 각색…조선 유통위한 판본
< 구운몽 > 은 한류의 원조였다. 조선시대 한글소설 걸작인 김만중(1637~1692)의 < 구운몽 > 이 19세기 초 중국에서 백화문(일상적인 중국어 입말)으로 개작돼 출판됐음을 입증하는 필사본(손으로 직접 쓴 책)이 발견됐다.
선문대 중한번역문헌연구소의 양승민 연구교수는 19세기 중국에서 < 구운몽 > 을 개작한 소설 < 구운루 > 의 필사본을 최근 인천 미추홀도서관에서 찾아냈다고 4일 밝혔다.
< 구운루 > 는 조선시대 말 시인 김진수(1797~1865)가 당시 청나라 수도 연경(베이징)을 돌아보고 와서 낸 시집 < 연경잡영 > (1832)을 통해 당시 연경에서 < 구운몽 > 을 개작해 유통된 소설이라는 사실이 알려졌으나 그동안 실물은 전하지 않았다. 1970년대 영남대 도서관에서 < 구운기 > 9권9책이 발견됐으나, 원본이 10권10책이었다는 기록과 다르고, 백화문과 문어체가 뒤섞여 < 구운루 > 정본인지를 놓고 논란이 이어져왔다.
이번에 발견된 < 구운루 > 는 10권10책 가운데 4책이 빠진 6권6책이다. 책마다 일제강점기 인천부립도서관의 정사각형 인장이 찍혀 있고, 표지 안쪽엔 일왕 연호인 쇼와 15년(1940) 등록했다는 타원형 청색인도 보인다. 중국 수입지에 한쪽당 10행 18자로 원래 내용을 일일이 옮겨 적은 뒤 4차례 끈으로 묶어 장정한, 옛 중국본 형식이다. 양 교수는 "필사한 목판본 괘지(글자가 들어갈 칸을 넣은 옛 책 종이)와 표지 장정에 각각 장식용으로 찍힌 두잎·황색마름모 무늬 등은 조선 책의 특징으로, 19세기 중반 조선에서 필사돼 민간에 전하다가 1940년 도서관에 반입된 것임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 구운루 > 는 35회, 18만자가 넘는 장편 소설로 < 구운몽 > 의 세배 분량이다. 긴 이야기를 잘게 회, 장으로 나눠 풀어내는 옛 중국 통속 소설의 특징을 보여준다. 선계에서 속세로 내려온 양소유의 영웅적 일생을 다룬 줄거리는 같지만 세부는 다르게 바꿨다. 중국학계는 < 구운루 > 를 1994년 기존 영남대본 < 구운기 > 를 바탕으로 새롭게 출간한 바 있다.
양 교수는 "책의 크기나 제본은 물론 회·장의 차수 표시, 균일한 글자 수 등이 중국 원본 목판본을 보고 옮겼다는 명백한 증거가 된다"고 밝혔다. 또 군데군데 붓으로 꺼멓게 지우거나 오려낸 뒤 새로 써넣은 흔적들로 보아, 원본을 단순히 베껴 소장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중국 판본을 수입해 조선에서 번각본(한 번 새긴 책 목판을 그대로 다시 새겨 찍은 책)을 유통시키기 위해 작업한 교감본(원본의 틀린 글자를 바로잡은 책)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번 발견으로 < 구운몽 > 중국어 개작본의 전모가 밝혀졌다"고 평가하면서 "이미 공개된 영남대본은 미추홀도서관본을 바탕으로 내용을 깁고 더한 필사본이며, 이런 첨삭 과정에서 원작의 내용이 훼손되었다"고 주장했다. 양 교수는 이런 연구 결과를 8일 경기도 성남시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열리는 한국한문학회 가을 학술대회에 발표할 예정이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