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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력사 바로 알고 삽시다(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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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철호 작성일12-12-18 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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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황투쟁과 관련해 중한민중에게 알리는 중공동만특위의 1932년 1월 7일부 서한

 

 

 

추수춘황투쟁

 

 

농민들 지주의 낟가리 허물어 “감조감식”실현

지주들의 창고문 열어 소작농들의 봄량식해결

 

“9.18”사변

 

1931년 9월 18일 밤, 일본관동군은 심양의 북대영을 공격하고 동북을 침략하는 전면적인 공격을 시작하였다.

 

“9.18”사변이 발생한 이튼날 연길지수사겸 길림성방군 제27려 려장 길흥(吉興)은 한간이며 길림부사령관공서 참모장인 회흡의 지시에 좇아 대표를 파견하여 룡정총령사관에 가 투항하고말았다. 하여 일제는 군대를 파견하지 않고 앉은자리에서 연변을 삼켜버렸다. 이때로부터 연변인민들은 전 동북의 인민들과 마찬가지로 일제의 철제밑에서 가증스러운 식민지생활을 하게 되었다.

 

“9.18”사변이 발생한 사흗날인 9월20일, 중국공산당은 “동북3성에 대한 일본제국주의의 강점을 반대하는 중국공산당의 선언”을 발표하여 전국인민은 일떠나 항일구국할 것을 호소했다. 중공만주성위에서도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일본제국주의의 만주에 대한 무장점령과 목전 당의 긴급임무에 대한 결의”를 지었다. 만주성위에서는 또한 “만주의 조선인 로동자, 농민, 학생 및 로고대중에게 알리는 글”을 발표하여 일제의 억압과 착취에 의해 비참한 생활을 하고있는 조선인들은 중국공산당의 령도밑에 여러 민족 인민들과 일치단결하여 일본제국주의침략을 반대하고 민족의 해방을 쟁취하여야 한다고 호소했다.

 

9월 28일, 중공동만특위에서도 긴급회의를 열고 중공만주성위의 지시를 전달했다. 동만특위에서는 “일제의 만주점령을 반대하는 긴급결의안”, “일본의 만주점령을 반대하여 대중들에게 알리는 글”, “농민운동 결의안”, “사병운동 결의안” 등 일련의 문건들을 련이어 발표하여 항일구국운동을 힘있게 밀고나갔다. 하여 연변 각지에서는 각종 반일단체들이 조직되였고 여러 가지 형식의 반일운동이 전개되였다. 공산당의 령도밑에 있는 “반일회”, “반제동맹”, “농민협회” 등 대중단체들이 분분히 일떠나 반일집회와 시위행진을 단행했다. 당시 연변각지에서 성세호대하게 벌어졌던 “추수투쟁”, “춘황투쟁”은 이러한 력사적환경에서 벌어졌다.

 

추수투쟁

 

1931년 봄, 동북군벌정부산하 길림성정부에서는 “3.7”, “4.6”감조법령을 반포하였다. 그러나 지방의 지주들은 이 법령을 실행하지 않았다. 이리하여 중공동만특위에서는 이 기회를 빌어 광범한 농민들에게 “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자”, “‘3.7’, ‘4.6’제를 실시하자”는 투쟁구호를 내놓고 추수투쟁을 일으켰다.

 

1931년 9월, 연길현 로투구부근의 관도구와 대기동 등지의 800여명의 농민이 먼저 공산당의 호소에 호응하여 “추수투쟁”의 첫 불길을 지펴올렸다. 그들은 중공로투구구위의 령도하에 시위행진을 거행하였으며 지주 장원을 포위하고 식량창고를 헤치고 식량을 소작농들에게 분배해주었다.

 

투쟁의 불길은 재빨리 전연변을 휩쓸었다. 연길의 소영자, 화룡현의 자동, 삼동포, 천평, 후동, 왕청현의 배초구, 소왕청, 훈춘현의 경신, 밀강 등 곳들에서 련이어 투쟁이 일어났다. 이번 투쟁에 약 1만5000여명의 농민이 참가했는데 투쟁은 4개월동안이나 지속되였다.

 

동만 각지에서 일어난 “추수투쟁”가운데서 연길현의 “추수투쟁”이 가장 기세가 높았다. 1931년 10월, 중공연길현위에서는 중공동만특위의 지시에 좇아 추수투쟁을 발동하기로 결정짓고 현위서기 김성도를 마반산지구에 파견, 직접 투쟁을 지도하게 했다. 11월, 중공해란구위와 연길구위는 합의를 본후 먼저 화련리, 계림촌, 하동, 온림동, 마반산, 부암, 광흥촌, 소영촌의 농민들을 발동하여 감조감식을 기본내용으로 한 추수투쟁을 벌리였다. 각 촌 농민대표회의에서 강태익 등 5명을 대표로 선출하여 11월 5일 소영촌 대지주 임보성과 감조감식에 대한 담판을 진행하기로 토의하였다. 이 소식을 들은 광흥촌 서구공안분주소 순경들은 선손을 써서 농민대표 5명을 체포하여 분주소에 구금하였다.

 

이에 해란구위에서는 즉시 공산당, 공청단 지부, 반제동맹, 농민협회, 부녀회, 소선대, 적위대 등 몇백명을 동원하여 11월 6일 대표들을 구금하고있는 광흥촌 서구공안분주소를 겹겹이 포위하고 대표들을 석방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군중들이 항의에 겁을 먹은 공안분주소 소장은 당장에서 대표 2명을 석방하고 3명은 국자가 연길현공안국에 압송하였다고 설명했다.

 

이에 시위군중들은 공안분주소 소장을 앞세우고 곧추 국자가로 향했다. 가는 길에서 연길구위의 선동으로 발동된 연길의 청년학생과 연길근교 농민 수백명이 달려나와 시위행렬에 가담하였는데 국자가에 닿았을 때 시위군중은 수천명에 달하였다. 현정부를 둘러싼 시위군중들은 현장을 나서라고 웨쳤다. 현장은 “민란”이 일어날가 두려워 구금된 농민대표 3명을 즉시 석방함과 동시에 감조감식에 대한 요구를 접수한다고 표했다.

 

농민시위군중들은 석방된 농민대표들을 데리고 소영촌 대지주 임보성네 집에 이르러 더 받아갔던 소작료를 도로 찾아 소작농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이날 태양향, 팔도향을 포함한 팔구의 연집강, 와룡동, 소평, 광돌촌, 광석촌 일대의 농민군중 천여명도 국자가 동시장거리로 달려와 현정부를 포위하고있는 연길구, 해란구 농민시위대렬에 합세하였다. 임보성네 낟가리를 헤친후 그들은 그 길로 연길 서교에 있는 상발원대지주 장원으로 몰려갔다. 이 소식이 태평향에 전해지자 중편촌, 중흥촌, 횡도촌, 태흥촌, 회녕촌, 오합궁, 장승촌 등 여러 마을의 천여명 농민이 떨쳐나와 국자가에서 올라오는 시위대오에 합세했다.

 

상발원의 지주는 장사진을 이룬 시위대오를 보자 두눈이 뒤집혔다. 그는 황급히 국자가에 있는 민국군대 사령부에 전화를 걸어 구원을 요청했다. 그자의 요청에 응해 민국군대 사령부에서는 기병 백여명을 파견하였다. 기병대는 농민시위대오를 앞질러와 해산하라고 으르댔다. 농민시위대오 지도자인 중공팔구 구위서기 리신준은 “골간 백명을 선발하여 핵심대오를 짓고 그 좌우에 군중대오를 정렬시켜 투쟁대렬을 편성할 것, 핵심대오는 어떠한 일이 있던지간에 헤쳐지지 말것”을 지시했다. 잠간사이에 투쟁대렬을 재편한 시위군중은백명의 핵심대원을 선두에 세우고 민국기병부대와 대결했다.

 

농민대표가 나서서 “우리는 성정부의 포고대로 ‘3.7’, ‘4.6’제 실시를 요구할뿐 다른 의도는 없다”고 하자 기병대지휘관이 “성정부의 포고대로 나눠주도록 우리가 보증할테니 해산하여 돌아가라”고 하였다. “그렇게 할수 없다. 우리는 오늘 직접 나눠가지겠다.” 농민대표의 단호한 대답이였다. 쌍방에서는 추호도 서로 양보하지 않았다.

 

담판이 오래 끌게 되니 농민투쟁대오의 지휘부에서는 각 촌마다 투쟁에 참가한 농민들에게 밥을 공급하라고 지시했다. 어떤 촌에서는 소수레로 밥을 날라왔고 가까운 마을에서는 녀성들이 함지박에 음식을 담아이고 달려왔다. 민국기병대는 할수 없이 물러서면서 포고대로 곡식을 나눠가지라고 했다. 팔구농민투쟁대오는 계속하여 구수하방향으로 전진하면서 소평, 광동의 소지주들과 협상하여 순조롭게 감조감식을 실현하였다.

날이 저물자 이날 밤은 광동촌에서 묵었다. 이튿날 새벽 4시경부터 각촌에서 밥을 날라오기 시작했다. 시위농민들은 아침밥을 든든히 먹은후 광석촌의 지주 정전방의 집을 향해 떠나려고 서두르는데 팔도의 금광로동자 백여명이 달려와 핵심대렬에 가담했다. 하여 투쟁기세는 한결 더 높아졌다. 정전방은 성정부의 포고대로 “3.7”, “4.6”제를 인차 승인했다. 농민들은 낟가리를 헤치고 소작농들에게 곡식을 돌려주었다. 농민대오는 계속 전진하여 중흥촌 지주 수풍림과 온정풍네 집에 달려들었다. 두 사람은 곱다란히 순종하였다. 대오는 승승장구로 횡도의 정영규지팡, 구제회지팡과 태흥의 심원지팡을 휩쓸었다. 지어 일본인 소유인 구제회지팡에서는 농민투쟁대오를 친절히 맞이하고군 소리없이 감조를 접수했다.

 

회녕촌에서 두 번째 밤을 지내고 사흘째 되던날 농민대오는 구수하일대에서 유명한 악질지주인 장전란과 맞다들게 되었다. 관청에서 허락해야 감조요구에 응하겠다면서 장전란은 토성대문을 걸어달고 뻗치였다.

 

투쟁지휘부에서는 대오를 두패로 나누었다. 핵심대렬에서 500명과 농민군중 2천여명을 뽑아 장가네 장원을 철통같이 포위한후 도망치거나 외계와 련계하지 못하도록 감시하였고 또 핵심대원 500명과 농민군중 천여명으로 편성된 다른 한패의 투쟁대오는 곧추 횡도공안분주소로 향하였는데 이 두패 사이의 련락임무는 적위대와 소선대에서 맡았다.

 

농민들은 토지문제를 갑장을 찾아가 해결하라는 분주소 소장을 끌고 갑장을 찾아갔더니 갑장은 벌벌 떨면서 자기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떼질썼다. 농민들은 갑장과 소장을 끌고 장가네 집으로 향했다. 이때 합세한 두 개 패의 농민투쟁대오는 4천여명에 달하였다. 농민들이 장전란, 갑장, 분주소 소장 등과 담판하는 사이에 팔도구보위퇀 퇀장이 병사 수십명을 데리고 달려왔다.

 

보위퇀 병사들이 총을 쏘겠다고 위협하면서 농민투쟁대오를 해산하라고 으르렁대자 지휘부에서는 미리 약정한 암호대로 령을 내렸다. 핵심투쟁대렬은 즉시 장사진으로 변하여 머리와 꼬리를 맞물려 보위퇀이며 순관이며 갑장이며 지주 장가놈을 에워쌌고 그 둘레에 수천면 군중이 포위하였다. 당황해난 퇀장은 상관하지 않겠으니 돌아가게 해달라고 애걸했고 소장도 상관하지 않겠다고 선포했다. 농민대표들은 지주 장전란이 협의서에 도장만 찍으면 다 돌려보내겠다고 약속했다. 양전란은 떨리는 손으로 협의서에 도장을 찍을 수밖에 없었다.

 

승리한 농민투쟁대오는 핵심대렬을 선두로 팔도향 장흥촌 지주 서다매태의 장원으로 향했다. 장전란이 굴복했다는 소식을 들은 서다매태는 순순히 협의서에 도장을 찍었다. 투쟁대오가 팔도향 관할에 있는 정사빈지팡과 최석마지팡에 이르니 이 자들은 군말없이 감조요구를 접수하였다. 이밖에 각 촌 소지주들의 낟가리를 각 촌 농민들이 스스로 해결하기로 하였다. 사흘동안 진행된 팔구농민추수투쟁은 농민들의 승리적으로 끝났다.

 

춘황투쟁

 

추수투쟁에 이어 1932년 봄, 중공동만특위에서는 농민들의 봄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일제 및 그들의 주구를 타도하고 그들의 재산과 식량을 몰수하여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누어 주자!”, “지주에게서 식량을 ‘꿔’ 기근을 넘기자!”는 등 구호를 제기하고 “차량(借粮)투쟁”을 전개할 것을 농민들에게 호소하였다. 이 투쟁을 세칭 “춘황투쟁”이라고 한다.

 

1932년 2월, 연길현 의란구의 류채, 남양촌, 왕우구의 수백명 농민드이 공산당의 령도밑에서 “춘황투쟁”의 첫 포를 쏘았다. 농민투쟁대오는 구룡평에 있는 일본경찰분서를 포위, 습격하고 일제의 주구들을 청산하고 그들이 식량을 몰수하여 가난한 농민들에게 나누어주었다. 투쟁에서 체포된 동지들을 구하기 위하여 농민대오는 구룡평 일본경찰분서를 향해 진격하였다. 일제는 경찰들과 괴뢰보안단을 출동시켜 군중들을 향해 총질하였다. 이에 분노한 군중들은 결사적인 박투를 벌리였다.

 

의란구의 “춘황투쟁”은 료원의 불길처럼 전 동만지구를 신속히 불태웠다. 로투구, 달라자, 개산툰, 대황구, 연통라자, 대감자의 농민들도 일어났다. 차량투쟁은 점차 주구청산투쟁, 무장탈취투쟁으로 넘어갔다. 많은 토호렬신, 친일지주들이 혼비백산해 뿔뿔히 도시로 도망쳐가는 바람에 대다수 농촌의 일급기층정권이 기본적으로 마비상태에 빠지게 되었으며 완전히 공산당이 령도하는 민중들의 통제하에 있었다.

 

기아에서 헤매이는 기민대중아

도시에서 농촌에서 일떠나서라

아사에로 농촌에서 착취제도를

망치로 곡괭이로 때려부시자...

 

농민들은 “기민투쟁가”를 높이 부르면서 투쟁에 떨쳐나섰다. 훈춘현 락타하자의 지주 원대순과 벌린 “춘황투쟁”은 좋은 실례이다. 원대순은 왜놈의 충실한 주구이며 간악하기 그지없는 대주주였다. 원대순은 600여쌍의 토지와 수십필의 마소를 차지하고있었다. 1932년 봄, “춘황투쟁”의 불길은 훈춘에도 만연되여왔다. 중공훈춘현위의 직접적인 령도하에 대황구, 중강자, 연통라자 등지의 수천명 농민들은 “춘황투쟁”에 뛰여들었다.

 

3월초순의 어느날, 250여명의 남녀로소가 저마다 쌀주머니, 낫, 바오래기를 들고 락타하자에 있는 원대순에 집을 향하여 떠났다. 공청단황구구위 서기 남석우의 아버지 남덕향, 아동단 단장 전기옥이 대오의 맨앞장에 섰다.

 

“일본제국주의을 타도하자!”

“일제주구를 때려엎고 그들의 재산을 몰수하여 빈곤한 농민들에게 나누어주자!”

 

천지를 진감하는 구호소리가 락타하자골짜기에 메아리쳤다. 그 전해 추수투쟁에서 혼난 원대순은 겁에 질려 벌벌 떨며 대문밖에까지 나와 영접하면서 무슨 사연인지 요구대로 처사하겠다고 했다. 이에 앞장에 섰던 남령감이 “식량이 떨어져서 좀 ‘꾸’자고 왔다”고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원대순은 “맘대로 가져가십시오” 하면서 머슴보고 식량창고문을 열라고 하였다. 남령감이 소리치자 250여명의 남녀로소가 환성을 울리며 식량창고로 몰려갔다.

 

교활한 원대순은 농민들이 식량을 담는 틈을 타서자기의 심복을 말에 태워 일본령사분관에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령사분관 경찰분주소의 짚차 두 대가 원대순네 집뜨락에 들어섰다. 교활하고 음험하기 그지없는 경찰분주소의 미하라놈이 차에서 내리더니 간사하게 웃으면서 능숙한 조선말로 누가 책임자인가를 물었다. 남령감이 나서서 자기가 책임자라고 대답했다.

 

어느새 왜놈들은 250여명의 남녀로소에게 겹겹이 둘러싸였다. 충천하는 기세에 짓눌린 미하라놈은 원대순의 귀에 대고 뭐하 수군거리더니 해해 웃으면서 말했다.

“여러분, 조용하십시오. 난 여러분들의 이번 거사에 동정을 표하는바입니다. 방금 원대순선생께서도 자선심을 베풀어 오신분들에게 피낟과 콩을 한짐씩 선사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대표 두분을 일본령사분관에 보내면 소 20마리에 수수쌀도 보내드리겠습니다.”

 

미하라는 그럴듯하게 소개신까지 써주고는 농민들속을 비집고 빠져나와 꽁무니를 뺐다.

 

투쟁에서 승리한 청수동농민들은 원대순 놈의 집에서 점심밥까지 배불리 먹고 저마다 피낟과 콩을 한짐씩 지고 발걸음고 가볍게 귀로에 올랐다.

이번 춘황투쟁에 참가한 농민은 20만명에 달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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