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력사 바로 알고 삽시다(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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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철호 작성일13-03-22 05:27본문
연변조선족자치구창립대회에서 연설하는 제1임 자치구 주석 주덕해
연변조선족자치구의 성립
민족의 숙망 실현 주덕해 자치구 제1임 서기로 당선
수천만 인파 거리에 떨쳐나서 북장고 울리며 환호성
국경 첫돐에 드리는 겨레의 선물
중화인민공화국의 창건이 어제 같은데 벌써 국경 첫돌을 맞이하게 되었다. 당과 정부에서는 전국의 소수민족대표와 소수민족문공단 배우들을 북경에 초청하여 함께 명절을 쇠도록 마련해주었다. 동북인민정부에서는 조선족대표단을 파견하기로 결정지었다. 중공연변지위에서는 연변대학교 부교장 림민호를 단장으로, 항일렬사자가족 김신숙을 단원으로, 연길한어전문학교 교도주임 반룡해를 수원으로 한 대표단을 구성했다. 예술축전에 참가할 배우들은 새로 창작한 가무종목을 다그쳐 련습하였다.
9월 22일, 대표단일행은 연길역을 떠나 23일 심약역에 도착했다. 심약역에는 동북인민정부 지도일군들과 각계 대표들이 나와 대표단일행을 환영하여주었다.
9월 27일, 대표단일행은 북소리와 환호성속에서 북경역에 도착하였다. 수십만의 각계 대표들이 역에 나와 대표단을 맞아주었다.
9월 28일, 대표단일행은 로동인민문화궁에서 주은래총리의 국제국내정세에 대한 보고를 들었고 29일에는 주은래총리의 초청을 받고 북경호텔에 가서 만찬회에 참석하였다.
9월 30일, 마침내 모택동주석의 초청을 받고 북경호텔을 향하게 되였다. 모택동, 류소기, 주덕, 송경령, 장란, 리제심 등 공화국의 주석, 부주석들과 정무원총리 주은래가 연회대청앞에서 대표들을 맞아주었다. 400여명 대표와 배우들은 지구별로 줄을 지어 령도자들의 앞을 지나가면서 악수하고 인사를 올렸다.
접견이 끝난후 대표들은 연회에 참가하였다. 술과 음료수가 한쪽에 놓여있고 연회상에는 여러 가지 푸짐한 료리들이 갖추어져있었다. 의자가 없이 서서 자유롭게 먹고 마시는 연회여서 자못 경쾌했다.
한동안 지난후 진운, 팽진, 리유한, 우란후, 류춘 등 령도자들이 제가끔 잔을 들고 조선족대표단이 서있는쪽으로 다가왔다. 대표들은 열렬한 박수로 그들을 맞았다.
“동지들은 조선족대표들이죠?”
진운은 이렇게 물은후 말을 이었다.
“나는 동북국에서 사업하는 동안 조선족을 잘 리해하게 되었습니다. 조선족은 정말 믿음직한 민족입니다. 동북해방전쟁때 조선족인민들은 용감하게 잘 싸웠습니다. 동북해방전쟁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놀았지요. 우리는 조선족인민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뒤이어 팽진이 말했다.
“나는 조선족에 대해 깊은 정을 가지고있습니다.”
동북국과 제4야전군사령부에서는 적지 않은 조선족경위원들을 두어 기관과 사령부안전을 담보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지도자들이 조선족에 대한 극히 큰 신임이였다. 특히 팽진의 처제 장수암은 조선족정치활동가인 리철부의 안해였기에 팽진은 조선족에 대한 리해가 남달리 깊었던 것이다.
10월 1일, 북경성은 새벽부터 징소리, 북소리, 폭죽소리속에 들끓었다.
림민호, 김신숙, 반룡해는 청첩장을 받고 천안문서쪽 관례대에 오르고 배우들은 북경시민들과 함께 시위행진에 참가하였다. 남자들은 흰 광목바지저고리를 입고 흰 수건을 머리에 두르고 운동화를 신었으며 여성들은 환한 색깔의 치마저고리를 입었다. 그들은 괭과리, 북, 새납을 행진용악기로 삼았다.
모택동주석을 비롯한 당과 국가의 지도자들이 천안문성루에 오르자 시위행진에 참가한 사람들은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쳤다. 시위행진대오를 따라 관례대앞을 지날 때 조선족배우들은 격동에 넘쳐 “모주석만세!”, “중국공산당만세!”, “중화인민공화국만세!”를 부르고 또 불렀다.
배우 김성민은 괭과리를 맡았는데 한동안 지나니 괭과리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는 그제야 괭과리채가 꺾어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10월 3일 밤, 중남해의 회인당에서 예술축전활동이 있었다. 주은래총리를 비롯한 지도자들이 이미 자리에 착석하고 있었다. 7시 10분, 회인당강당 동쪽켠에서 갑자기 박수소리가 터졌다. 모택동주석이 대청안으로 천천히 걸어들어오고있었던것이였다.
이어 선물증정의식이 있었다. 각 민족 대표들은 순서대로 각기 주석대에 올라가 가지고온 선물을 모택동주석께 드리였다. 조선민족대표단은 세 번째로 주석대에 올랐다. 림민호가 먼저 연변인민들이 국경첫돐을 경축하는 서명부 한책을 모주석께 올렸다. 다음 김신숙이 조선족저고리와 조끼, 바지 한벌을 드렸다. 그다음 반룡해가 옥석으로 만든 벼루를 드렸다. 또 그 다음 예술단 단장 김동구가 조선족 회색두루마기를 모택동주석께 입혀드렸는데 두루마기의 길이와 품은 웅장한 모택동주석의 몸매에 딱 맞았다. 모택동주석은 두루마기를 훑어보면서 사의를 표하였다. 대청에선 우렁찬 박수소리가 울렸다. 마지막으로 배우 정영숙이 남색비단에 원앙새를 수놓은 방석을 드렸다.
선물증정이 끝난후 예술축전이 있었다. 연변문공단, 내몽골문공단, 신강문공단, 사천성의 장족, 묘족들의 가무종목은 명절의 분위기를 고조로 이끌었다.
연변문공단의 5개 종목은 그날 밤 문예축전의 4분의 1을 차지하였다. 먼저 대합창 “영용한 조선인민은 일떠났다”를 공연하였다. 주먹을 불끈 쥐고 힘차게 부른 노래소리는 회인당에 메아리쳤고 중남해의 정원을 넘어 수도인민들의 흉금을 울려주었다. 김혜련의 “지게춤”, 리인숙 등의 4인무 “절구춤”은 관람자들의 흥미를 자아냈다. 김인숙의 노래 “민가련창”과 방초선의 독창 “베짜기노래”도 절찬을 받았다. 각 민족대표들은 “조선족의 예술은 기교가 높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번 축전에서 조선족대표단은 모두 10차례나 단독으로 공연하였는데 공연때마다 초만원을 이루었다. 이때로부터 조선족예술은 북경인민들과 전국인민들의 이목을 끌게 되었다.
이날 밤 모택동주석은 조선족문공단을 포함한 소수민족문공단의 공연을 관람하고 “완계사” 한수를 지어 류아자선생에게 화답하였다.
지루한 밤 지샐줄 모르던
이 적현에
백년동안 마귀떼
우줄우줄 춤추어
오억인민 단란히
모일수 없었네
수탉이 홰를 치자
천하는 밝아
여러 민족 주악속에
위텐곡도 울리니
시인의 흥취
비길바 없구나!
중앙방문단 연변방문
1952년 7월 24일, 팽택민을 단장으로 하고 싸쿵료를 부단장으로 하는 중앙대표단 일행 50여명이 길림성인민정부 부주석 서원천의 안내하에 렬차로 연길에 도착하였다. 주덕해, 동옥곤, 최채 등 연변의 당정지도자들이 연길역에 나가 중앙대표단을 맞아주었다.
이날 연길시 6만5000여명 인구중 3만여명이 연도환영을 나왔다. 환영군중들의 울긋불긋한 꽃초롱불은 방문단이 지나가는 앞길을 가로등처럼 비추어주었다.
중앙에서는 이번에 도합 4개방문단을 서남, 서북, 중남, 동북, 내몽골과 수원 등지에 파견하여 소수민족을 위문하며 중앙인민정부에 대한 여러 소수민족인민들의 희망과 요구를 료해하게 하였다. 연변으로 나온 중앙방문단은 바로 그 4개 방문단중의 하나였다. 팽택민을 단장으로 싸쿵료(몽골족), 핑스크(몽골족), 아에사이(위글족)를 부단장으로 하여 동북으로 나온 중앙방문단은 7월 9일 북경을 떠나 수원을 거쳐 15일 심양에 도착한후 두 개 조로 나뉘여 한조는 료서로 가고 다른 한조는 연변으로 나온 것이다.
7월 27일, 연길시 3만여명 여러 민족 인민들은 인민체육장에서 중앙방문단을 환영하는 성대한 모임을 가졌다. 환영대회에서 주덕해의 열정에 넘치는 환영사와 팽택민의 답사가 있은 뒤 모택동주석께서 중공연변지위, 연변전원공서에 보내는 금기가 전달하였다.《중화인민공화국 여러 민족은 단결하라!》는 모택동주석의 친필제사가 금기에 새겨져있었다. 이어 중앙방문단의 선물증송의식이 있었다. 선물로는 수령의 초상화 190폭, 모택동, 주덕, 주은래의 친필제사 500매, 기념메달 6500개, 환등기 2대, 도서 25종에 1392책, 약 25종에 15상자, 현미경 한 대를 포함한 26종의 의약기자재, 의학서적 303책이였다.
28일, 중앙방문단을 환영하는 운동대회가 있었다. 연길, 룡정 3개 시의 1900여명 선수들이 조선족 씨름, 그네, 널뛰기 시합에 참가하였다.
29일 오후부터 30일 오전까지 중앙방문단은 각족 각계 대표 50여명과 좌담을 가졌다. 좌담에서 사람들은 생산건설, 전선지원, 민족단결 등 면에서 얻은 보귀한 경험을 소개하였다.
중앙방문단은 연변에 체류하는 기간에 선후하여 중공연변지위, 연변전원공서, 연변대학, 동북조선인민보사, 인쇄공장, 연변교육출판사, 연변문공단, 룡정시, 로두구고무공장, 최죽송농업생산합작사와 김시룡농업생산합작사 등을 방문하였으며 기타 소수민족들인 회족, 만족들도 찾아보았고 일부 렬사유가족, 군인가족들도 위문하였다.
중앙방문단은 연변에서 9일간의 방문활동을 끝마치고 8월 2일 저녁차로 연길을 떠났다.
조선족 구역자치의 선포
1952년 8월 9일, 《중화인민공화국구역자치실시요강》이 발표된 12일후인 8월 21일, 연변 각족 각계 인민대표회의주비위원희의가 연길에서 열리였다. 회의에서 주비위원회의상무위원회를 산생, 대표회의의 임무, 대표자격 등 문제를 토론, 결정했다.
8월 29일부터 9월 2일까지 드디어 연변조선족자치구 제1기 각족 각계 인민대표회의가 연길시인민극장에서 소집되였다. 300여명 대표가 회의에 참석하였다. 동북인민정부대표 왕일부, 중공길림성위서기 리몽령, 길림성인민정부 주석 률우문이 대회에 출석하였다.
동옥곤이 회의에서 “길림성인민정부 연변전원공서 서업보고”를 진술하고 주덕해가 “길림성연변조선민족자치구시정건설에 관한 보고”를 진술했다. 보고에서 주덕해는 “연변조선민족자치구는 중화인민공화국의 구성부분이며 연변조선민족자치구인민정부는 1급지방정권기관으로서 공동강령과 상급인민정부의 결의, 지시, 법령에 근거하고 민족구역자치실시요강의 규정에 따라 자치구내에서 자치권리를 행사하며 공작을 진행한다. 연변조선민족자치구 인민대표대회와 곧 창립될 연변조선민족자치구인민정부의 임무는 민족특징을 돌보며 민족형식을 통하여 민족평등정책을 관철하며 여러 민족 인민을 단합시켜 체계적으로 절차를 밟아 정치, 경제, 문화 건설을 진행하는것이다”고 지적하였다.
대회에서 정식으로 연변조선민족자치구인민정부를 성립하고 “자치구인민정부조직조례”와 “민족단결에 관한 결의”를 통과한후 제1기 인민정부주석, 부주석, 비서장 등을 선거하였다. 주덕해가 제1기 연변조선민족자치구 주석으로 당선되였다. 부주석으로는 동옥곤(董玉昆), 최채(崔采)가 당선되고 비서장으로는 곽명광(霍明光), 부비서장으로는 박창무(朴昌武), 장국근(張國勤)이 당선되였다. 전인영(田仁永), 요흔(姚昕) 등 32명이 위원으로 당선되였다.
대회에서는 항일전쟁승리기념일인 9월 3일을 연변조선민족자치구성립기념일로 규정하였다.
자치구산하에는 연길시, 연길현, 화룡현, 왕청현, 훈춘현, 안도현이 포괄되여 있었는데 인구는 도합 85만4000여명이였다. 그중 조선족이 53만명으로서 62%를 차지하였다.
9월 3일, 연변 각계 각족 인민 3만여명이 연길시 서광장에서 연변조선민족자치구성립모임을 성황리에 가졌다. 중앙과 동북국, 길림성에서 파견되여 온 당정 지도자들이 회의에 출석하였다.
자치구인민정부 주석 주덕해가 연변조선민족자치구인민정부창립을 장엄하게 선포하자 대회장은 환호의 열도가니로 끓어번지였다.
얼마나 바라고 바라던 소망이였던가. 이것은 지난날 항일전쟁시기 “조국광복회10대강령”에서 제출되였던 동북에서의 조선인민족구역자치의 완전한 실현이며 자산계급 민주주의를 구유한 애국지사가 신해혁명직후에 국회에 제출한 민족자치방안의 더욱 높은 단계의 실현이였다. 조선족은 마침내 이 나라의 주인이 되었다. 조선족은 소수민족신분으로 세계인구 4분의 1을 차지하는 새중국의 광활한 땅에서 마음껏 활보할수 있게 되었다.
과경조선인은 문헌상에서와 민간속에서 개간민, 조선인, 한국인, 고려인, 심지어 삼한인(三韓人) 등으로 불리면서 고정된 족명조차 없는 망국노 류랑민의 생활을 영위해와야 했다. 그러나 이젠 조선족이라는 정치개념의 확립과 더불어 이런 력사현상을 완전히 사라지게 하었다. 쪽지게를 지고 오랑캐령을 넘어온 족속, 쪽배를 타고 선구나루터를 건너온 족속, 그 족속들이 뼈를 심고 살을 파묻어 걸군 이 땅의 주인으로 되었다. 토지혁명과 전쟁의 불길이 흩날리던 항일전쟁, 해방전쟁의 나날에 조국강산에 진붉은 피를 휘뿌리며 영웅적기개를 보여주던 그 민족이 이 땅의 당당한 주인이 되었다.
이날 연길시거리는 수천수만의 환호의 인파로 출렁이였다. 골목과 거리마다엔 민족복장을 떨쳐입은 주민들이 북장고를 울리며 덩실덩실 춤판을 벌리면서 자치구성립의 날을 경축하고있었다.
이 인파속에는 나젊은 작곡가 김성민도 섞어있었다. 그는 차창준이 금방 써준《자치구창립의 노래》가사를 손에 쥐고 주민들과 함께 춤노래판에 한도가니로 휩쓸렸다. 덩실덩실 춤추던 김성민은 불현듯 주선률이 떠올라 무릎을 꿇고앉아 기보하기 시작했다.
에루화 저절시구 좋구나 좋네
해란강도 노래하고 장백산도 환호하네
에루화 두둥실 장고를 울리세
연변조선족자치구 세웠네...
자리를 차고 일어난 김성민은 금방 작곡한 노래를 소리높이 불렀다. 주위의 사람들은 김성민의 노래에 맞추어 북장고 울리며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아름다운 노래소리는 조선족의 숙망을 담고 멀리멀리 울려갔다.(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