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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녀걸13] 북만땅에 피 뿌린 녀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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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5-06-08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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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순선(崔顺善,1912ㅡ1940)은 1912년에 훈춘현 경신구 구사평의 한 가난한 농가에서 태여났다. 그가 여덟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후어머니가 들어왔는데 후어머니는 인자한 분이였다. 순선은 후어머니를 친어머니처럼 대하며 따랐다. 헌데 아버지는 딴판이였다. 한때 독립운동에도 참가했다는 어른이 성질이 괴짜여서 딸까지 팔아먹으려 하였다. 기미를 챈 최순선은 소학교 3학년까지 다니다가 언니 최정신과 함께 대황구에 가서 대황구3.1학교 4학년에 계속 다니였다.
대황구3.1학교는 조선인반일지사들이 꾸린 학교였다. 최순선은 이 학교에서 공부를 잘했다. 금요일 오후마다 가지는 강연회에서 강연도 제격이였다. 노래 또한 능수, 그가 노래할라치면 모두가 흥이 나서 귀를 모았다. 녀자들도 공부를 잘해야 성공한다, 봉건을 타파해야 한다 등 내용의 노래는 사람들의 마음을 울려주었다.
1925년에 최순선은 고향 경신구에 돌아가 부녀운동에 종사하였다. 그후 그는 한창 나이의 처녀로 커가면서 서씨라고 하는 한 혁명자와 결혼했고 연통라자에 항일근거지가 세워지자 근거지에 들어가 계속 부녀사업에 투신하였다. 그의 임무는 연구구위 부녀위원을 도와주는것이였다.
그때의 녀성사업은 처녀지 개척이 위주였다. 최순선은 구위부녀위원 황정일 등과 같이 마적달, 하다문, 물남포대, 동알라 등지를 자주 찾아갔다. 최순선이 왔다하면 부녀들이 서로 다투어 모이였다. 그만큼 그도 부녀들속에 깊이 뿌리를 박았다.
한번은 마적달우의 한 마을부녀들이 최순선이 강연을 잘한다는 말을 듣고 마을에 청했다. 최순선이 찾아가자 마을의 한 팔간집에 로인들까지 근 80명이 빼곡이 모여들었다.
《오늘 이렇게 모여주니 감사해요. 제가 최순선이예요. 뭐 특별한데는 없구요. 공산당덕분에 사람이 됐지요.》
최순선이 이렇게 허두를 떼자 좌중은 귀를 강구었다. 이날 그는 부녀해방문제를 담론했는데 남녀평등을 옳바로 대할 것을 희망했다.
《남녀평등이라고 하여 먹을것도 같이 먹고 입을것도 같이 입는다는것이 아니지요. 목적은 권리를 박탈하는 자본사회를 철저히 쳐부시기 위해서예요. 권리만 있으면 무슨 일이나 다 잘될수 있지요. 봐요. 자산가의 귀부인들은 잘사는것 같지만 남편에게서 일전도 빌어써야 하는 처지지요. 우리는 자기 손으로 권리를 찾아야 해요…》
부녀들은 최순선의 말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고 야단이였다.
1934년 겨울, 연통라자근거지가 파괴된후 당, 단 조직과 여러 단체, 혁명군중들은 두황자를 거쳐 왕청현 금창으로 들어갔다. 이때의 최순선은 이미 중공당원이였다. 그는 금창에서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 독립사 제4퇀(훈춘 4퇀) 재봉대에 편입되였다. 1935년 겨울 일제의 대토벌이 우심해지자 2군 5사(왕청과 훈춘 2개 현 항일유격대를 토대로 하여 조직됨)는 북만으로 전이하여 녕안의 제5군과 협동작전을 벌리게 되였다.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후에 항일련군으로 재편성) 5사에는 녀전사들이 적지 않았다. 5군에 녀전사들이 수요되였다. 최순선, 주신옥, 김정순(김백문) 등 훈춘적 조선족녀전사들이 5군에 편입되였고 제5군 부녀퇀의 녀전사로 되였다.
 항일련군 제5군 부녀퇀은 1936년 2월경에 조직된 것으로 알려진다. 이를 전후하여 항일련군 제1군과 2군, 3군, 4군, 6군, 7군들에도 선후로 부녀대대와 부녀대가 조직되였는데 부녀퇀을 조직하기는 제5군이 유일하다. 신생한 5군부녀퇀은 부대와 더불어 녕안과 그 일대에서 전전하면서 대다수 녀전사들이 각 련에 소속되여 활동하고있었다. 이해 여름 제5군 군부가 녕안을 떠나 목릉일대서 활동할 때 군부를 따라 행동한 부녀퇀의 녀전사는 10여명이였다. 이 10여명중 책임자 왕옥환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2군 5사에서 넘어온 조선족녀성들이였다.
1936년 여름, 부녀퇀에 서은경이라고 부르는 중국인 녀전사가 들어섰다. 그는 림구현에서 새로 입대한 동무였는데 말이 통하지 않아 무등 애를 먹었다. 게다가 재봉기 돌릴줄도 몰랐다. 이때 부녀퇀의 조선족녀전사들이 너도나도 도와나섰다. 최순선도 그러했다.
옷차림이 단정하고 곱게 생긴 최순선이 서은경 앞에 나타날 때마다 서은경은 기뻐하였다. 그도 그럴것이 이 조선족녀전사가 생글거리며 그의 두손을 잡고 서투른 한어로 곧잘 이야기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서은경이 알아듣지 못할 때면 최순선은 손동작으로 표시했다. 손동작이 효과를 보지 못하니 종이에 몇글자를 적기까지 하였다.
했으나 서은경은 일자무식이였다. 최순선은 이점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그는 죄라도 지은듯 안타까이 고개를 숙이였다. 한참만에 순선이는 고개를 쳐들더니 서은경의 손을 자기 얼굴에 갖다 대였다.
《이제부터 내가 글을 가르치겠어요.》
그때로부터 그들 둘은 무람없이 지냈다. 서은경이 처음 싸움터에 나서게 되였을 때 최순선이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를 가르쳤고 휴식할 때면 재봉기 다루기, 군복 짓기, 글자 등을 가르쳤다. 행군할 때면 서은경의 배낭을 빼앗아 메기가 일쑤였다.
1936년 가을에 5군은 오늘의 림구현 경내 목단강일대에서 정치군사활동을 벌리였다. 부대가 목단강반의 삼도통에 머무를 때였다. 강 서쪽은 우리 부대 주둔지고 강 동쪽에는 위만군이 도사리고있었는데 위만군은 일제놈들의 명령에 의해 늘 강을 건너와서 우리를 쳤다. 그때면 부대는 산에 올랐지만 먼저 총을 쏘지는 않았다. 전투가 벌어질 때면 부녀퇀의 최순선 등 녀전사들은 앞장서 함화공작을 들이댔다.《중국사람은 중국사람을 치지 않는다!》
《총부리를 돌리라!》
《위만군형제들, 당신들은 집에 부모처자, 자매를 두고 누구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건가?!》
함화공작이 활발해지자 위만군의 기세가 꺽이였다. 위만군은 산에서 두어고패 돌다가는 돌아섰다. 다른 놈들이 교대진공을 들이댈 때면 최순선 등은 함화공작을 벌리는 한편 항일가요도 부르고 정치선전을 들이댔다. 위만군은 처음엔 욕소리가 높더니 나중엔 아예 입을 봉하고말았다.
포로들은 교육하고 돌려보내거나 부대 야회에 참가시켰다. 그때면 최순선과 그의 전우들은 열성껏 돌아치면서 그들이 총부리를 돌려 항일의 성전에 나설것을 선전하였다.
최순선 등 녀전사들의 함화, 정치선전사업은 큰 효과를 보았다. 위만군은 다시는 우리 부대를 치지 않았을뿐만아니라 핍박에 의해 나서더라도 먼저 우리측에 알리거나 헛총을 쏘고는 물러갔다. 일본군과 같이 나설 때면 먼저 사람을 띄워 편지형식으로 적군의 작전계획을 알려주었다. 하여 우리 부대는 강 이쪽에서 시름놓고 군중선전공작을 내밀수 있었다.
훈춘시 대황구항일근거지에 세워진 기념관,최순선렬사의 항일발자취가 깃들어있다(자료사진).
어느날 군부에서 야회를 조직하였다. 야회에는 최순선, 주신옥 등 부녀퇀의 녀전사들과 청년의용군 그리고 부대전사들과 외지서 온 혁명군중들이 참가하였다. 야회가 시작되자 청년의용군의 한 전사가 벌떡 일어섰다.
《우리는 중국의 남아입니다. 비록 어리긴 하지만 망국노가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우리는 끝까지 항일할것입니다.》
부녀퇀의 조선족녀전사들도 만만치 않았다. 최순선이 말을 받았다.
《우리는 항일련군부녀퇀의 녀전사들입니다. 일제를 이땅에서 몰아내지 않는 한 우리는 절대 싸움을 그만두지 않을것입니다…》군중들은 최순선 등이 조선동지라는것을 알고 감탄을 금치 못하였다.
1937년 새해를 앞두고 최순선 등은 군부의 명령을 받고 청년의용군과 함께 대반도저격전에 참가하였
다. 얼마나 바라던 싸움이였던가, 최순선은 기쁜 나머지 어린애처럼 퐁퐁 뛰였다. 그들에게는 좀처럼 전투기회가 차례지지 않았던것이다.
먼동이 틀 때 부대는 대반도에 이르렀다. 전투부대가 큰길 량측 산에 진을 치고 부녀퇀과 청년의용군의 어린 전사들은 부근의 하마탕산우에 매복하였다. 그들의 임무는 군부의 수장들을 보위하고 도망치는 적들을 족치는 것이였다.
이윽고 북쪽 큰길에 적 척후병을 실은 마파리 7∼8개가 나타났다. 마파리가 지나자 적의 대부대가 매복권내에 들어섰다.
《땅, 땅, 땅!》
세발의 총성이 울리자 분노의 총탄이 일제히 적진에 쏟아졌다. 적진은 삽시에 수라장을 이루었다. 총소리, 아우성소리, 말효용소리가 한데 어울려 천지를 진동했다. 우리 군이 적진에 뛰여들자 적들은 삼대 넘어지듯 쓰러졌다.
최순선 등은 청년의용군과 함께 산아래 싸움터수습에 떨쳐나섰다. 그들은 여기저기 숨은 적 20여명을 끌어냈다. 이날 부대는 적의 마파리 200여개, 입쌀, 밀가루, 통졸임, 돼지고기, 사탕 등 많은 물자를 로획하였다.
대반도저격전후 부녀퇀은 몇차례 전투에 뛰여들었다. 며칠후 부녀퇀은 부대밀영지로 향하였다. 그들의 과업은 로획한 물자를 후방에 가져가고 부상병들을 밀영에 호송하며 밀영에 후방병원을 꾸리는것이였다.
5ㅡ6일만에 백명푼히 받아들일수 있는 귀틀집―후방병원이 일어섰다. 이 며칠간 최순선 등은 시름놓고 쉬지도 못하고 련속 돌아쳐야 했다. 그뒤 그들은 또 군부의 지시에 따라 재봉대까지 일떠세웠다. 때는 1937년 2월경이였다.
며칠후 천이 재봉대에 들어왔다. 헌데 흰천이 아니면 하늘색이여서 염색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최순선 등이 솜씨를 보이였다. 그들은 동만항일유격대시기의 이름난 재봉대원들이여서 참나무껍질 등으로 염색하는 방법을 내놓았다.
온 산은 참나무껍질, 봇나무껍질 등을 벗기는 전사들로 법석 끓었다. 재봉대 문앞의 몇개 큰가마에 물을 붓고 나무껍질과 함께 삶으니 물은 재빨리 누른색과 초록색으로 번져졌다. 끓는 물에 불궈낸 천들은 군복색으로 되여 해볕아래 눈부시였다.
한묶음 또 한묶음의 군복이 산아래에 전해졌다. 5군 전사들은 기뻐 야단들이였다. 정신이 분발된 그들은 적들과 싸워이기는것으로 부녀퇀동지들의 마음에 보답하겠다고 다지였다.
최순선은 군복짓기과업을 완수한 여가에 천쪼각으로 군모를 만들고 군모에 붉은오각별을 오려 박자고 제의하였다. 재봉기는 다시 부지런히 돌아갔다. 한쪼박, 한쪼박의 천은 숱한 군모로 바뀌여졌다. 붉은오각별까지 박힌 군모―5군전사들은 사기가 충천하여 원쑤격멸의 싸움터로 달려갔다.
그후 최순선은 중공길동성위비서처에서 사업하게 되였다. 새가 수풀을 그리워하듯이 그는 시간만 있으면 재봉대전우들한테로 갔으며 글을 배워주지 않으면 노래를 배워주고 의복씻기를 도와주었다.
어느날 최순선은 중국인신입전사에게 글을 가르쳤다. 그가 어려워하자 최순선은 노력만 하면 꼭 배워낼수 있다고 고무해주었다.
《언니, 언니는 조선사람인데 어떻게 우리 부대로 오게 되였나요?!》
중국인 녀전사가 불쑥 이런 물음을 제기했다. 뜻밖의 물음에 최순선은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가 이왕지사를 터놓기 시작하였다. 훈춘현 연통라자근거지, 왕청현 금창, 제4퇀 재봉대, 5군부녀퇀―최순선의 이야기는 중국인신입전사를 심히 감동시켰다. 최순선은 다시 한자로 《중국공산당 만세!》,《일본제국주의를 타도하자!》,《쏘련》,《사회주의》,그리고 늘 부르는 항일가요 등을 차례로 써주고 한글자, 한글자 잘 가르쳐주었다.
그후 이들 둘은 한시기 갈라졌다가 1939년에 제7군의 밀영에서 다시 만났다. 최순선은 길동성위를 따라 활동하다가 다시 5군 부대로 돌아왔다.
1940년 1월 초이후, 최순선 소속 부녀퇀 제2대의 녀전사들은 5군의 장진화사장이 이끄는 부대를 따라 보청부근의 탄요산일대에서 활동하고있었다. 부대는 적들이 설치한 봉쇄선을 헤치고 지방의 군중들한테서 식량을 해결하며 투쟁을 견지하였다. 그러던중 한차례 전투에서 온숙청이란 녀전사가 체포되여 변절하더니 부대와 군중의 련계지점이 드러났다.
2월 7일 장진화사장이 일부 전사들을 데리고 탄요와붕 련계점으로 갔다가 적들의 돌연적습격을 받았다. 몇번이고 포위를 돌파하려 했으나 허사였다. 장진화사장은 여러 곳에 중상을 입고 죽기내기로 전투를 지휘하였다. 최순선, 주신옥, 류영, 곽영순 등 6명의 녀전사도 부상을 입었다. 그들은 장진화사장의 지휘하에 다른 전사들의 포위돌파를 엄호하다가 으슥한 곳에 몰켜들었는데 끝내는 7명 모두가 적들의 수색에 걸려 보청현감옥에 압송되였다.
최순선 등 녀전사들이 심문실에 끌려들어갔다. 그들의 발과 손에는 족쇄와 수쇄로 철컥 거렸다. 놈들은 우리 부대의 행방과 부대형편을 대라고 윽박지르다가 녀전사들의 호된 견책을 당했다. 간담히 서늘해진 놈들은 주신옥이를 단독으로 끌어내고 시뻘건 쇠꼬챙이로 지지려고 했다. 이때 최순선 등이 앞을 막아나섰다. 그들은 결사적으로 쇠꼬챙이를 빼앗아가지고 놈들한테 달려들었다. 심문실은 수라장이 되였다. 랑패한 놈들은 비실비실 물러섰다.
놈들은 구두에 《협화복》을 차려입은 온숙청 이 변절자를 내세웠다.
온숙청이 녀전사들 감방문앞에 나타나자 녀전사들은 눈에 불이 일었다. 그들은 저마다 주먹을 부르쥐고 변절자를 노려보았다. 혼비백산한 온숙청은 권고 한마디 못하고 비실비실 물러났다.
적들은 실패했다. 혹형도, 유인술도 항일전사들을 굴복시키지 못하였다. 야수성이 발작한 이자들은 눈보라가 이는 어느 날 깊은밤에 최순선, 주신옥 등 6명 녀전사를 몰래 끌어냈다. 6명 동지는 눈보라속에서 떳떳이 가슴을 내밀고 적기가를 불렀다.
민중의 기 붉은기는
전사의 시체를 싼다
시체가 식어서 굳기도 전에
혈조는 기발을 물들인다
… … …
최순선과 그의 전우들이 함께 부르는 비장한 노래소리는 눈보라를 뚫고 밤하늘에 메아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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