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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기획7]서시장의 “오신”—리옥녀의 한복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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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1-21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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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계렬보도 “두만강은 말한다”(7)
 
-30년간 전통을 고집해온 “제일한복” 리옥녀사장의 창업이야기
 
 
30년간 전통을 고집해온“제일한복” 리옥녀사장
 
30여년전에 일본드라마 “오신”이 중국을 들썽해놓은 사실은 그때를 경험해온 사람들이라면 아마 다 기억에 생생할것이다. 바로 그때 중국의 개혁개방과 더불어 “오신”의 주인공 오신의 끈질긴 창업정신이 중국의 수많은 가정부녀들을 창업의 길에 떨쳐나서게 하였다. 리옥녀(67세)씨가 바로 그가운데의 대표적인 한사람이다.
 
시작은 의외로 단순했다. 오로지 생계유지때문이였다. 24살 꽃다운 나이에 남편을 저세상으로 떠나보내고 어린 아들딸과 홀로 남겨진 그녀에게 더이상 꽃청춘은 없었다. 흑룡강성 목단강시에서 무작정 살길을 찾아 떠나온 땅이 바로 연변땅이다. 목단강을 떠나 안도현 송강진에서 자그마한 위생소의 맨발의사로 근무하다가 턱없이 부족했던 생활비로는 두 아이의 뒤바라지를 이어대기에 역부족이였다. 그렇게 살길 찾아 떠나온 낯선 장사의 길이다. 바로 연길 “제일한복” 리옥녀사장의 드라마보다도 더 드라마같은 파란만장 창업일화이다.
 
80년대말까지만 해도 조선족자치주 수부인 연변에는 한복을 파는곳이 없었다. 조선족 집거지역인 연변에 한복전문점이 없던 공백을 메우게 된건 우연히도 리옥녀씨의 한복대리판매로 시작되였다.
 
기자는 일전 연길공원 맞은켠 300여평방메터 고급 한복전문점을 차리고 운영중인 리옥녀사장을 만났다. 화려한 불빛, 한복의 고운 선, 고운 색감으로 가리워진 한복뒤에는 리옥녀사장의 고단한 창업분투의 이야기가 숨겨져있었다.
 
생계때문에 뛰여든 장사의 “길”
 
그가 맨처음 장사의 길에 뛰여든 첫발은 한복이 아닌 온실도마도로 시작되였다.
 
“새벽별을 등에 지고 온실도마도 한바구니씩 머리에 이고 연길기차역으로 매일같이 달려나가 팔면서 두 아이를 공부시켰어요.”
 
그렇게 하루에 열대여섯근씩 팔아 어렵사리 손저울 하나를 겨우 장만했다. 스무근씩 팔았더니 10원짜리 손수레도 살만 했다. 손에 남는건 없어도 집세마련도 가까스로 이어댈만했다. 하지만 잘 팔리던 온실도마도도 여름철이 다가오니 제철도마도에 밀려 판로를 잃었다. 하여 콩나물장사에도 매달려봤다.
 
“몸이 고달프긴 하여도 작은 돈이 모여지는 재미가 쏠쏠했어요. 좀 더 용기를 내 옷장사를 시작해봤어요.”
 
연길서시장이 생겨나기전 현재 연길국제무역청사터가 옛 연길시장였다며 비와 해빛을 가리는 판가리개도 없는 골목길에 무작정 바줄 두개를 늘이고 옷장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젊은 나이에 겁없이 뛰여든 시장바닥에서도 그는 성실하게 일했다. 남들보다 리윤을 적게 남겨도 많이만 팔수 있으면 그게 남는 “장사”라고 생각했던 그의 두손과 두발은 한시도 쉼없이 돌아쳤다. 부지런하고 가여운 젊은 애엄마에게 도매상들은 외상으로 먼저 옷을 갖다팔게 진심으로 도와주기도했다.
 
성실과 신용은 도매상들뿐아니라 고객들도 알아주었다. 하여 단골도 퍼그나 많이 생겨났고 1985년 연길시서시장이 일떠서면서 자리를 옮겨 서시장실내에 자그마한 매대 하나를 맡아하게 되였다.
 
“처음부터 크게하는 장사가 어디 있겠어요? 희망을 가지고 하나하나 역경을 넘다보니 점차 장사수완도 늘고 장사방향도 잡히게 되는것이지요” 리옥녀사장이 힘든 과거를 뒤돌아보면서 말하는 진솔한 감회였다.
 
 
운명처럼 대리판매로 시작된 “한복인생”
 
매대를 차리고 얼마 안되여 한 단골이 한국에 친척방문을 다녀왔다면서 한국에서 갖고온 공단한복 3견지를 대신 팔아달라고 리옥녀씨에게 부탁을 들었다. 연변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게 귀했던탓에 그는 흔쾌히 그러겠다고 했다. 며칠 안되여서 한복을 발견한 눈썰미 있는 한 사진사가 3견지를 모조리 사갔다. 그후로 5견지, 10견지… 한국에 친척방문을 다녀오는 사람들마다 소문을 듣고 리옥녀씨의 매대를 찾아 부탁했더니 어느샌가 알게 모르게 “한국한복을 파는 집”으로 소문이 나게 되였다.
 
공단으로 된 한복은 재질이 두껍다며 얇은 천으로 된 한복을 요구하는 고객도 있었다. 그런 고객의 요구에 맞춰 한국에 친척방문을 떠나는 사람들에게 어렵게 주문을 넣었다가 물건이 오면 팔았는데 불티나게 잘 나갔다.
 
“이미 다 만들어놓은 한복이기에 사이즈가 맞지 않아 아쉬워하며 돌아서는 고객들도 많았지요. 아쉬워하는 그들에게도 어떻게 한복을 맞춰서 해줄수 없겠는가를 연구했어요.”
 
고심끝에 리옥녀씨는 한국에서 한복원단을 들여와 직접 맞춤한복으로 판매를 시작했다. 그렇게 대리판매에서 맞춤한복으로 넘어가면서 정식으로 간판을 내걸고 한복전문점을 차리게 되였다.
 
어려서부터 재봉일을 하던 어머니한테서 배워둔 깔끔한 바느질과 꼼꼼하고 세심했던 성격의 리옥녀씨이였지만 처음 시도하는 맞춤한복이란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바늘에 손가락들이 찔려 상처투성이가 되고 손가락 마디마다 썩살이 박혔다. 수많은 시행착오끝에 드디여 고운선을 살려낸 매끈한 바느질과 실제 풀꽃을 그대로 옮겨놓은듯한 손수놓이는 녀성고객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명주실로 한뜸한뜸씩 수놓은 손수놓이는 아무리 씻어도 변형이 없고 색감을 잃지 않아 아무리 힘들어도 리옥녀사장은 지금도 손수놓이를 고집해오고있다.
 
워낙 성근하고 남돕는 일에 앞장서던 그는 일찍 1986년에 연길시 정협위원으로 당선, 이듬해 연길시 개체기업가협회 부회장직을 맡았다. 당선된 이래 리옥녀리사장은 개체기업가들의 대변인으로서 정협위원의 직책을 다하했을 뿐만 아니라 개체기업가들을 동원해 사회에 많은 선행을 베풀어왔다.
 
특히 최근년래 전국범위에서 일어난 크고작은 사건사고와 자연재해에 리옥녀사장은 여러차례 의연모금을 조직해 피해지역에 지원했으며 그 자신만해도 몇년래 15만여원을 불우이웃돕기에 헌금했다.
 
그는 선후로 “연길시 선진개인”, “연길시 우수개체공상호”, “3.8붉은 기수”, “길림성 선진개체로동자”, 그리고 길림성과 연변자치주 및 연길시 “로력모범”, 연길시 “특수기여모범인물”등 수두룩한 영예를 수여받았다.
 
“제가 오늘날까지 보따리장사로부터 시작해서 이만큼이라도 성공할수있었던것은 고객들이 저에 대한 믿음과 지지에서 비로소 가능했다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주변의 불우이웃들을 돕는것은 선행이 아닌 응당한 사회인으로서의 의무와 직책인거지요.”
 
리옥녀사장은 타인을 돕는것은 결국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라고 말했다.
 
가족 3대가 이어가고있는 한복사랑
 
고달프게 시작된 한복인생의 외길에서 리옥녀씨의 가족들이 하나둘 한복에 뛰여든것은 그로서는 기쁜일이 아닐수 없었다. 현재 리옥녀사장의 딸 김선자씨를 비롯해 며느리와 외손녀까지 3대가 일조해 한복과 연을 맺고 리옥녀사장의 뒤를 이어 한복만들기에 여념없다.
 
젊고 세련된 눈썰미를 가진 손녀 주현미양은 한복을 만드는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영향으로 걸음마를 타기 시작해서부터 늘 손에 한복원단을 장난감으로 들고있었다. 17살부터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하고있는 한복가게에 나가 일손을 거들면서부터 주현미양의 꿈도 오로지 “한복장인”이다.
 
그는 외할머니와 어머니의 어깨너머로 배워온것이 모자란다며 결연히 한국 류학길에 올라 차근차근 한복리론공부부터 다시 시작했고 8년간의 배움끝에 현재 연길에 돌아와 자체로 한복전문점을 차리고 젊은 CEO로 활약하고있다. 할머니와 어머니와는 조금 달리 젊은 시각으로 그는 한복을 과감히 개량한복으로 변화를 주어 현재 젊은 고객들을 끌고있다.
 
전통한복만을 고집하던 리옥녀사장도 개량한복을 처음에는 탐탁치 않게 여기다가 손녀의 끈질긴 노력과 발상의 전환으로 개성있는 한복을 만들어가는 손녀에게 지금은 응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했다.
 
“요즘은 한족고객들도 부쩍 늘었어요. 한족며느리도 한족시어머니들도 가게에 와서 한복을 빌려입던데로부터 이제는 맞춤한복 한벌씩 장만해 가요. 조선족도 아닌 다른 민족 고객들이 한복을 마음에 쏙 든다며 안아갈 때에는 정말 흐뭇해요. 우리 민족의 고유의 미가 인정받는 기분이죠.”
 
리옥녀사장이 말하는 가장 보람찬 순간이란다.
 
결혼식을 앞둔 고객들도 많이 한복가게를 찾지만 연변에 크고 작은 행사들이 열릴 때면 행사참가자들은 앞다투어 “제일한복”을 찾고있다. 뿐만아니라 연변을 찾는 유명인사나 국내 유명연예인들도 “제일한복”의 화려면서도 단아한 한복을 입고 조선족문화체험을 즐기며서 우리 민족의 아름다움을 극찬해왔다.
 
“연길에만해도 한복집이 수두룩합니다. 경영인으로서는 경쟁이 될수 밖에 없지요. 하지만 우리 전통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일이라면 더 많은 한복집들이 생겨나는것도 나쁘지 않아요. 우리 민족과 전통을 만방에 알려 소중한 우리의 문화가치와 더불어 전통문화의 계승과 보존에 보탬되는 일이라면 언제나 앞장서겠습니다.”
 
보따리장사로 시작된 장사의 길이지만 지금은 경제적인 리득보다는 우리 문화를 알리고 계승시키는데 자신의 역할이 분명 있다고 믿는 리옥녀사장, 피와 땀방울로 한땀한땀 떠올린 바느질이 외롭고 고달파도 어여쁜 한복을 보면 지금도 그토록 설레인다는 리옥녀사장의 한복사랑은 대를 넘어 오늘도 민족력사와 전통의 고운선을 올올이 그려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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