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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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03-01 11:18본문
3·1 운동(三一運動) 또는 3·1 만세 운동(三一萬歲運動)은 일제 강점기에 있던 한국인들이 일제의 지배에 항거하여 1919년 3월 1일 독립을 선언하고 비폭력 만세운동을 시작한 사건이다. 기미독립운동 또는 3·1 인민봉기라고도 부른다. 대한제국 고종이 독살되었다는 고종 독살설이 소문으로 퍼진 것이 직접적 계기가 되었으며, 고종의 인산일인 1919년 3월 3일에 맞추어 한반도 전역에서 봉기한 독립운동이다.
이 만세 운동을 주도한 인물들을 민족대표 33인으로 부르며, 그밖에 만세 성명서에 직접 서명하지는 않았으나 직접, 간접적으로 만세 운동의 개최를 위해 준비한 이들까지 합쳐서 보통 민족대표 48인 또는 프랭크 스코필드를 포함 민족대표 49인으로도 부른다. 이들은 모두 만세 운동이 실패한 후에 구속되거나 재판정에 서게 된다. 약 3개월 가량의 시위가 발생하였으며, 조선총독부는 강경하게 진압했다.
조선총독부의 공식 기록에는 집회인수가 106 만여 명이고, 그 중 사망자가 7,509명, 구속된 자가 4만 7천여 명이었다. 한편 신복룡 교수나 일본 측 야마기 겐타로 등 학자들의 견해에 의하면 약 50만 명 정도가 참여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1919년 3월 당시 일제 강점기 조선의 전체 인구는 1,678만 8천400명이었다.[1][1][2] 학자들의 견해를 따르면 당시 조선 인구 중 2.76%에서 2.97%이 만세 운동에 참여하였다. 조선총독부의 기록대로라면 전체 국민 중 6.31%가 만세 시위에 참여한 것이다.
3·1 운동을 계기로 군사, 경찰에 의한 강경책을 펴던 조선총독부는 문화 통치로 정책을 바꾸게 된다.
1946년 3월 1일 제27회 기념식을 시초로 국가 경축일로 지정되고[3], 1949년 10월 1일 <국경일에관한법률>을 공포함으로써 국경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