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하는 조선족 사회… 신뢰 관계 쌓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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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16-10-08 02:20본문
변화하는 조선족 사회… 신뢰 관계 쌓아야
차홍규 전 칭화대 교수
조선족은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한민족(韓民族) 혈통을 지닌 중국 국적의 주민들을 가리킨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의 민족 분류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의 56개 민족 가운데 조선족이 13번째로 인구가 많으며 ‘조선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대한민국 법무부의 출입국 외국인 정책본부가 작성하는 통계 자료에서는 ‘한국계 중국인’(韓國系中國人)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중국내 조선족은 200만 정도로 추산되고 있으며, 대부분 인구가 중국 동북지방의 랴오닝(遼寧), 지린(吉林), 헤이룽장(黑龍江), 즉 동북삼성(東北三省)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 시절 전국에 땅을 잃은 농민과 생업을 잃은 조선인들이 생겨났고, 이들 중 일부는 만주(滿洲)지방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이주한 조선족들은 황무지를 개간하고 산림을 개척하면서 생활 터전을 만들어 갔다. 더욱 1931년 만주사변과 1937년 중일전쟁이 잇따라 일어나 조선에서는 인적·물적 수탈이 극심해졌고, 조선인의 만주 이주는 더욱 많아졌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전하였으나, 얼마 후 남북이 분단되고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많은 조선족은 그대로 동북지방 등에 남게 되었고, 현재는 중국의 소수민족으로서 중국 국적을 소유하며 살고있다.
조선족은 잘 알다시피 한국말과 중국말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그들의 표현으로는 외국어인 한국어를 함께 사용할 줄 아는 중국의 국민이다. 우리는 그들이 같은 국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 중국 사람이다. 한국과 중국 간에 국제축구경기가 벌어진다면 자국인 중국 선수를 응원하며, 한.중간에 첨예한 사건이 벌어지면 중국인의 입장에서 분노를 나타내고, 당연히 세금도 중국 정부에 낸다. 중국에서 태어나고 중국인으로 살아온 상황을 생각해보면 이런 현상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우리는 같은 국민으로 착각하는 일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족’이라 부르면 왠지 비아냥거림처럼 생각하지만, 중국에서는 신분증에 조선족이라고 표기할 만큼 자연스럽다. 중국 본토민인 다수의 사람은 한족, 기타 만주족, 회족, 몽고족 등등 출신을 신분 증에 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의아하게 우리나라에서만 조선족이라 부르면 낮춰서 부르는 것으로 생각한다.
한.중 수교 이후 많은 한국의 기업인들이 중국에 진출했지만, 마음만 급하고 중국 관습에 어두웠다. 그 결과 중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조선족에 도움을 받다가, 일부는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일로 조선족에 대한 원망이 나쁜 소문으로 퍼졌고, 결과적으로 일부에서는 나쁜 인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일은 반대로 한국에서도 일어난다. 한국에 온 조선족 중 일부사람은 열심히 일하고도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였다. 이러한 경우, 대부분 불법체류자 신분이기에 어디에 하소연하지도 못하고 당해도 아무 말 못하다 보니 한국인에 원망이 있을 수밖에 없다.
상호간 이렇게 안 좋은 일들이 있다 보니 우리와 조선족 사이에 일부이지만 불신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필자는 중국에 진출한 사업가들이 조선족에게 통역을 부탁하고는 뒤에서 불안해하는 경우를 수없이 보아왔다. 해법은 간단하다. 통역할 때 녹음을 하고, 그 녹음을 제3자에게 들려주어 통역이 제대로 됐는지 검증하라고 권한다. 이렇게 하면 통역에 대한 잘잘못을 바로 파악할 수 있어 불안감을 자연스럽게 해소할 수 있다. 또한 중국 현지에서 사업하겠다는 사람이라면 중국어에 대한 학습은 필수라고 말하며 중국어를 배울 것을 강하게 권장한다.
현재 조선족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경제발전으로 한국으로의 취업과 한국인 관련사업 및 관광통역 관련, 중국 현지의 취업 등으로 많은 인원이 조선족 마을을 떠나고 있다. 연변 같은 조선족 집단 거주지역이었던 곳들도 이제는 조선족의 수가 줄면서 한족의 수가 더 많아졌다. 또한, 경제적으로 부부가 독립되고,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이혼율이 급격히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몇 해 전 마음 맞는 한국의 지인들이 의기투합하여 (조선족을 위하여) 연변대학에 귀금속 공예과를 만들어주면서 많은 장비와 물자를 도와준 일이 있었는데, 이제는 학생 수에서 조선족은 얼마 안 되고 본토민인 한족들이 대부분이어서 결과적으로 조선족을 위한다며 벌인 사업이 마음은 아프지만 주객이 전도된 사례도 있을 만큼 중국의 조선족 사회도 변화를 겪고 있다.
차홍규 전 칭화대 교수
조선족은 중국에 거주하고 있는 한민족(韓民族) 혈통을 지닌 중국 국적의 주민들을 가리킨다.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의 민족 분류에서는 중화인민공화국의 56개 민족 가운데 조선족이 13번째로 인구가 많으며 ‘조선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대한민국 법무부의 출입국 외국인 정책본부가 작성하는 통계 자료에서는 ‘한국계 중국인’(韓國系中國人)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중국내 조선족은 200만 정도로 추산되고 있으며, 대부분 인구가 중국 동북지방의 랴오닝(遼寧), 지린(吉林), 헤이룽장(黑龍江), 즉 동북삼성(東北三省)에 집중적으로 거주하고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 시절 전국에 땅을 잃은 농민과 생업을 잃은 조선인들이 생겨났고, 이들 중 일부는 만주(滿洲)지방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이주한 조선족들은 황무지를 개간하고 산림을 개척하면서 생활 터전을 만들어 갔다. 더욱 1931년 만주사변과 1937년 중일전쟁이 잇따라 일어나 조선에서는 인적·물적 수탈이 극심해졌고, 조선인의 만주 이주는 더욱 많아졌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패전하였으나, 얼마 후 남북이 분단되고 중국이 공산화되면서 많은 조선족은 그대로 동북지방 등에 남게 되었고, 현재는 중국의 소수민족으로서 중국 국적을 소유하며 살고있다.
조선족은 잘 알다시피 한국말과 중국말을 동시에 할 수 있는, 그들의 표현으로는 외국어인 한국어를 함께 사용할 줄 아는 중국의 국민이다. 우리는 그들이 같은 국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 중국 사람이다. 한국과 중국 간에 국제축구경기가 벌어진다면 자국인 중국 선수를 응원하며, 한.중간에 첨예한 사건이 벌어지면 중국인의 입장에서 분노를 나타내고, 당연히 세금도 중국 정부에 낸다. 중국에서 태어나고 중국인으로 살아온 상황을 생각해보면 이런 현상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데 우리는 같은 국민으로 착각하는 일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족’이라 부르면 왠지 비아냥거림처럼 생각하지만, 중국에서는 신분증에 조선족이라고 표기할 만큼 자연스럽다. 중국 본토민인 다수의 사람은 한족, 기타 만주족, 회족, 몽고족 등등 출신을 신분 증에 표시하고 있다. 그런데 의아하게 우리나라에서만 조선족이라 부르면 낮춰서 부르는 것으로 생각한다.
한.중 수교 이후 많은 한국의 기업인들이 중국에 진출했지만, 마음만 급하고 중국 관습에 어두웠다. 그 결과 중국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는 조선족에 도움을 받다가, 일부는 이리저리 끌려 다니며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일로 조선족에 대한 원망이 나쁜 소문으로 퍼졌고, 결과적으로 일부에서는 나쁜 인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일은 반대로 한국에서도 일어난다. 한국에 온 조선족 중 일부사람은 열심히 일하고도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였다. 이러한 경우, 대부분 불법체류자 신분이기에 어디에 하소연하지도 못하고 당해도 아무 말 못하다 보니 한국인에 원망이 있을 수밖에 없다.
상호간 이렇게 안 좋은 일들이 있다 보니 우리와 조선족 사이에 일부이지만 불신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필자는 중국에 진출한 사업가들이 조선족에게 통역을 부탁하고는 뒤에서 불안해하는 경우를 수없이 보아왔다. 해법은 간단하다. 통역할 때 녹음을 하고, 그 녹음을 제3자에게 들려주어 통역이 제대로 됐는지 검증하라고 권한다. 이렇게 하면 통역에 대한 잘잘못을 바로 파악할 수 있어 불안감을 자연스럽게 해소할 수 있다. 또한 중국 현지에서 사업하겠다는 사람이라면 중국어에 대한 학습은 필수라고 말하며 중국어를 배울 것을 강하게 권장한다.
현재 조선족 사회는 많은 변화를 겪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경제발전으로 한국으로의 취업과 한국인 관련사업 및 관광통역 관련, 중국 현지의 취업 등으로 많은 인원이 조선족 마을을 떠나고 있다. 연변 같은 조선족 집단 거주지역이었던 곳들도 이제는 조선족의 수가 줄면서 한족의 수가 더 많아졌다. 또한, 경제적으로 부부가 독립되고, 서로 멀리 떨어져 있다 보니 이혼율이 급격히 높아진 것도 사실이다. 몇 해 전 마음 맞는 한국의 지인들이 의기투합하여 (조선족을 위하여) 연변대학에 귀금속 공예과를 만들어주면서 많은 장비와 물자를 도와준 일이 있었는데, 이제는 학생 수에서 조선족은 얼마 안 되고 본토민인 한족들이 대부분이어서 결과적으로 조선족을 위한다며 벌인 사업이 마음은 아프지만 주객이 전도된 사례도 있을 만큼 중국의 조선족 사회도 변화를 겪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