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치 마케팅으로 성공한 중국 조선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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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백두넷 작성일23-10-06 15:03본문
한국 서울시 가리봉 시장 부근에 있는 금삼각대주점(웨딩홀) 3층에서 리동호 대표와 만났다. 흰 와이셔츠에 정장을 차려입은 40대의 젊은 사장이었다. 우리는 같은 연길태생이라는 것에 금방 말문이 열렸다.
리동호 대표(오른쪽)
“한국에는 언제 나오셨어요?” “2014년에 한국으로 나왔습니다.” 십년도 되지 않았는데 금삼각대주점(웨딩홀)과 동호 이벤트회사를 이끌고 있는 대표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성공비결이 무엇일가요?” “다른 사장들은 고객이 왕이라고 말하지만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의아해하는 나에게 그는 재빠르게 말을 이어갔다. “고객을 왕이 아닌 가족처럼 대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서비스입니다. 만약 고객을 왕이라고 생각한다면 정서적인 공감대가 없기에 진심이 없어 보이고 그것이 결여된다면 고객이 만족을 느낄 수 없습니다.” 그는 다른 대표들과는 다른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고객을 가족처럼 모신다고 하는데 다른 사장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일가요?” “행사의뢰가 오면 저는 우선 집으로 찾아가 미팅부터 합니다. 고객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고객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가족성원들은 어떻게 되는지? 행사장 손님은 얼마이고 투자금액은 얼마나 되는지? 세세히 상담부터 진행합니다. 이것이 내가 고객과의 소통의 시작이고 나름대로의 정서적인 교감입니다.”
고객과의 미팅을 통해서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오랜 갈등을 풀어준 적도 있고 아버지와 아들의 오해를 풀게 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라고 한다. 그는 사회자, 반주, 상차림, 사진, 동영상, 답례품 등 행사장의 일체를 맡아주고 있다.
마진을 남기기보다는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선에서 진심을 다해서 도와주고 있다. 특히 행사시 중국전통과 조선족전통의 노래를 선곡함으로써 고향을 그리워하는 고객들의 마음을 달래주군 한다. ‘타향의 봄’, ‘모두 다 갔다’, ‘이 벌에 풍년이 들면’, ‘붉은 해 변강 비추네’ 등 노래와 함께 고향에서의 향수가 듬뿍한 자신만의 스토리로서 고객들과 정서를 공유하는데 고객들은 이 대표의 손을 부여잡고 감격의 눈물을 주체하지 못할때가 많다. 이와 같이 고객의 정서를 우선으로 하는 것이 그의 변함없는 패턴이였다.
“어떻게 되어 이벤트회사를 꾸리게 되였나요?” “처음 한국에 나왔을 때 노가다 일도 하고 배달일도 하면서 틈새시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에서 중국 조선족들이 정규적인 이벤트 업체가 없이 개개인이 일을 맡아하고 있었는데 저는 그런 사람들을 한곳에 모아 이벤트회사를 꾸리려고 맘을 먹었습니다.”
한국사회에서 중국 조선족들이 할 수 있는 이벤트회사는 ‘남들이 모르는 좋은 낚시터’였다. 그는 매스타겟에게 무차별적으로 말을 거는 대중 시장이 아닌 세분화된 시장 속 특정한 성격을 가진 소규모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목표를 설정하고 공략하는 니치 마케팅을 시작했다. 시장의 빈틈을 공략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포인트는 무엇인지, 소비자의 니즈가 무엇인지부터 파악하였다.
2016년 드디어 장영환 밴드와 의기투합하여 재한 조선족사회에서 첫 “동호이벤트회사”를 설립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돈 20만원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발품도 팔았고 다른 사람한테 돈을 빌리기도 했었다. 이렇게 시작은 비록 어려웠지만 현재는 회사가 많이 성장하였고 일감도 늘어났다. 다음 주에도 네 집이 예약되었고 특히 7월부터 8월사이에는 일정이 꽉 찼다며 나한테 메모장을 보여주는 이대표의 모습은 자신감으로 넘치고 있었다.
현재 이벤트회사에는 20명좌우의 직원이 있는데 촬영 8명, 사회자 2명, 밴드 2명, 메이컵 3명, 상차림 2명 등이 있다. 그의 거래처는 서울에만 10곳이고 수원, 안산 등 재한 조선족밀집지역인 지방까지 합치면 수십여 곳이 된다.
코로나로 인해서 이벤트행사가 많이 줄어들긴 했으나 지금까지 그가 진행한 행사만 해도 400여건이라고 한다.
올해 2월 말 그는 이벤트회사의 고객을 좀 더 확보할 타산으로 가리봉동에서 금삼각음식점을 인수해 웨딩홀을 오픈했다. 1층부터 4층까지 테이블이 마련된 웨딩홀은 고객을 동시에 400명을 접대할 수 있는 쾌적한 장소이다. 평일인데도 손님들이 2층까지 꽉 차고 있었다.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고마웠던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어려서 부모와 헤어지고 친척 집으로 전전긍긍하면서 초등학교밖에 다니지 못한 것이 콤플렉스였지만 현재는 행사장의 사회자로 거듭나고 있다. 결혼식, 아이 돌, 팔순, 칠순, 환갑 등 각종 행사사회를 보려면 말발이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전문 용어도 필요했다.
그는 다른 사람의 몇배로 노력했다. 한국에 와서 제일 감사한 것은 자신이 사회자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현재 사회자로서 꽤나 이름이 났고 몸값도 오르고 있는데 이것이 제일 감사한 일이라고 했다.
또다른 감사함은 이베트 회사와 식당을 운영하다 보니 장사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한 것이다. 장사란 곧 인심장사이다. 일부 중국 조선족들은 단순히 모방은 잘하는데 살에만 집중하고 뼈에는 집중하지 않는 면이 좀 있는 것 같다. 돈도 벌어야 하지만 손님의 입장에서 뭐가 불편한지를 먼저 생각한다면 그 보답은 언제든지 자신한테 돌아온다고 믿었으면 좋겠다.
“혹시 삶의 신조 같은 것이 있을까요?”
“내일에 대한 투자는 돈이 아니고 마음과 정력입니다. 나는 십 년 뒤에 필요한 사람한테도 투자하는데 이에 대해 주위의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합니다. 돈을 번다는 것은 바로 신용을 지키는 것입니다. 신용이 생기면 사람의 마음을 열게 되고 따라서 돈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신용이 바로 생명이고 돈이라고 믿습니다.”
리동호대표는 앞으로의 꿈에서 이렇게 말했다.
예술을 좋아하는 중국 조선족들이 한국에 많지만 평일에는 힘든 일에 종사하고 주말에만 간간이 예술 활동에 종사하고 있는데 이런 현실이 너무 안타깝다. 무대가 있어도 오르지 못하는 그들에게 넓은 무대를 만들어주는 것이 꿈이다.
그 외에 재한 조선족사회를 위해 경제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훌륭한 리더가 되고 싶다. 재한 조선족사회의 시장 흐름과 소비자에 대한 섬세한 포착으로 니치 마케팅에 성공한 중국 조선족 리동호대표의 힘찬 래일을 응원하면서 인터뷰를 마무리 하였다.
박연희
출처 길림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