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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나온 조선족, 공장서 떠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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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09-11-2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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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이주여성… 결혼前 경력 필요도 없어
적합한 일터·교육도 없어… '육체노동' 밖에 할게 없어
조선족 김홍매(37·중국)씨는 1996년, 중국 옌볜(延邊)의과대학을 졸업했다. 전공은 가정의학이었다. 그의 의대 동기들은 현재 병원장이 되거나 중국 곳곳에서 중견 의사로 활약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 온 김씨는 지난 8년간 식당 주방일부터 방석공장 직공까지, 3D(더럽고 어렵고 위험한) 일자리를 전전하며 밑바닥 인생을 살아왔다. 주변에선 결혼이주여성들이면 대부분 겪는 '운명'이라고 했다.
 
김씨는 중국에서 사업을 하던 한국인과 결혼해 2001년 한국 땅을 밟았다. 남편의 몸이 좋지 않아 한국에 도착한 날부터 세 식구의 생계는 김씨가 책임져야 했지만, 그의 '고학력'은 취업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다. 김씨는 "결혼이주여성이 구할 수 있는 일은 식당 종업원이나 공장 생산직 등 '육체노동'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 김홍매씨는 최근까지 대전의 한 노인요양원에서 ‘의사출신 요양보호사’로 일했고, 요즘은 대전 중구청에서 상담업무를 맡고 있다. 김씨는 “중국어 강사가 되려는 꿈은 접었지만, 사무직이 된 것만으로 만족한다”고 했다.
 
처음 찾은 곳은 시누이가 소개해 준 식당 주방일이었다. 김씨는 "그래도 일자리를 구할 수 있어서 참 감사했는데, '한국 물정 모르는 중국인'이라며 일을 고되게 시켰다"고 했다. 그곳에서 4개월간 일하다가 기숙사를 제공해준다는 방석 공장으로 옮겨 2년 반 동안 일했다.
 
그는 '중국어 강사'가 되고 싶었다. 한국말이 익숙해지자 여러 중국어 학원의 문을 두드려봤지만, '아이가 있나' '차는 있나' '남편은 무슨 일을 하나' 등을 묻고는 다시 부르지 않았다. 몇몇 학원에서는 "미혼 선생님을 찾는다"고 했다. 김씨는 "웬만한 학원은 쉽게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계속 면접에서 떨어지면서 절망감이 커졌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의대를 졸업했다고 해도, 한국에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어요. 의사는 바라지도 않았지만, 마트 캐시어(계산원) 자리도 저에게는 주지 않더라고요."
 복지부에 따르면, 결혼이주여성은 2009년 5월 현재 14만9853명으로, 100쌍이 결혼하면 11쌍은 국제결혼이다. 그러나 이렇게 대량으로 들어오는 인력을 우리 사회는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YWCA연합회 사회개발위원회 최정은 팀장은 "농촌이나 도시 저소득 가정에 시집온 동남아 여성은 대부분 어렵게 살고 있어 일자리 수요가 높다"고 전했다.
 
결혼이주여성들의 배우자와의 연령차는 평균 11.8세(2008년 기준)로, 머지않은 미래에 남편을 대신해 경제활동을 해야 할 공산이 크다. 최 팀장은 "그러나 결혼이주여성은 마땅히 도전할 만한 자리도 없고, 이 인력을 활용할 만한 적합한 일터도 없다"고 지적했다.
 
김씨도 자신의 능력을 활용할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고된 노동을 하며 세 식구를 먹여 살렸지만 남편과는 2006년 이혼했고, 그때부터 진짜 '홀로서기'가 시작됐다. 안경 렌즈를 포장하는 공장에서 일하다가 공부를 하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이제 이 땅에 제대로 된 한국인으로 살아야 하는데, 만날 공장만 전전할 수는 없잖아요. 한국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자격증'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는 요양보호사 자격증과 사회복지사2급 자격증을 따고, 대전 인근의 노인전문요양원에 취직했다. 최근에는 대전 중구청에 계약직으로 이직해 민생 상담 업무를 맡고 있다. 월급은 150만원 정도로, 비로소 '사무직' 일자리를 구했다는 데 만족한다.
김씨는 "이제 '중국어 강사'가 되는 것은 포기했다"고 했다.
 
김씨처럼 당장 생계가 절박한 형편이 아니더라도, 결혼이주여성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일자리를 찾고 있다. 법무부가 결혼이주여성에게 '한국 정부나 공공기관으로부터 가장 지원받고 싶은 분야'를 물었더니(2008년), 한국어 교육(51.3%)에 이어 '취업 교육 및 취업 훈련'이 22.7%를 차지했다. 또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조사한 결과(2008년)에 따르면 조사대상 결혼이민자의 80.6%가 미취업 상태였고, 이 중 66.5%는 향후에 취업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필리핀에서 온 A(34)씨는 "고향 식구들에게 부칠 돈을 벌기 위해 일자리를 찾고 있다"며 "식당 서빙 자리라도 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국말도 능숙한 편이지만, 직업교육을 받아본 적이 없고 인맥도 없어 일자리를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김유정 부연구위원은 "다문화 인력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이 가정과 사회 모두에도 '플러스'가 된다"며 "결혼이주여성들의 취업을 통해 다문화 가정의 경제적인 지위가 올라가면 전체적인 사회 통합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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