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결혼가정, 서로에 대한 차이부터 인식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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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0-01-14 09:58본문
한국사회에서 다문화 가정 등장은 1990년대 초 정부가 중국 연변처녀와 결혼 적령기를 지난 농촌 노총각간 결혼사업을 시작으로 본격화됐다는 것이 정설이다. 이 같은 배경은 왜곡된 성비례로 결혼을 못한 남성의 급증과 경제적 수준이나 문화적 여건이 낮아 한국 여성과 결혼하지 못한 남성의 입장을 고려해서였다.
그러나 이후 국제결혼이 별다른 창업자본 없이 고수익을 창출할 수도 있다는 소문이 나면서 국제결혼중개업체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여기에 일부 종교단체들이 가세하면서 중개업체 난립으로 이어졌다.
가정폭력 등 다문화가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점 해결의 시발점은 이런 업체난립에 대한 개선 의지와 여성결혼이민자들을 향한 사회 전반의 인식전환이 맞물리면서 진행되어야한다는 지적이다.
◇차이점 인정 못하고 의처증까지 이어져
제3세계 여성이 결혼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 한국에 오는 것은 국내서 결혼이 여의치 않은 한국남성의 사정과 외국인 여성들의 경제적 욕구가 타협된 결과물이다.
적지 않은 한국사람들은 외국인 여성들을 '돈 목적으로 결혼하는 사람', 또는 '목적을 위해 위장결혼한 사람'이라는 편견을 갖고 바라본다.
전문가들은 결혼은 기본적으로 윤리와 경제적 문제가 미묘하게 얽힌 제도지만 우리 사회는 이주 여성들에게 유독 경제적인 잣대만 대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주민여성쉼터 관계자는 "상담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많은 한국 남편들이 의처증 증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생활기반이 약하고 나이 차이가 많다 보니 젊은 아내들에게 위기감을 느끼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대부분 의처증의 원인은 자기 부인이 돈을 목적으로 한국에 왔고 자기와 위장결혼을 했으니까 언젠가는 도망갈 것이라는 의혹"이라며 "이 의혹이야말로 결혼을 불행으로 떨어뜨리는 가장 큰 악재"라고 설명했다. 물론 이주여성을 꿈을 갖고 삶을 개척하기 위해 이주한 당당한 신세대 여성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상황이 간단하지만은 않다.
한쪽에서는 외국인 아내가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며 눈물을 흘리지만 다른쪽에서는 적지 않은 한국인 남편들이 외국인 아내에게 버림받아 회한의 한숨을 내쉬고 있기 때문이다.
◇근본적 해결책 없이 주먹구구 대안만
다문화가정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뚜렷한 방안이 현재까지 없다. 국제결혼중개업체에 대한 관리감독 철저, 가정폭력 이주 여성을 위한 쉼터 확대, 법률자문, 국적취득 요건 완화 등의 방안들이 제시됐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못된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방안은 한국 내 일반가정의 위기에 대처하는 방식과 큰 차이가 없어 그 실효성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이주여성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의사소통과 문화적 차이 문제다. 정부나 각 지자체는 한국문화 체험 명목으로 김치담그기 같은 각종 이벤트성 행사를 벌이고 있지만 의사소통도 안돼는데 문화적 차이를 이해할리 만무하다.
이주 여성에게 한국어 교육은 한국생활 적응에 일차적인 과제지만 체계적인 한국어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인프라는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이때문에 이주여성들은 한국에 와서 가족들의 특별한 배려가 없다면 완전히 고립된 생활을 하게 된다.
◇행복한 가정의 출발은 차이점 인정
4년 전 국제결혼중개업체의 소개로 카자흐스탄에서 한국으로 시집와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 나제즈다 김씨(26.가명)의 결혼생활은 많은 것을 시사해준다.
남편 유모씨와 일군 가정은 신혼초만해도 다문화가정이 갖고 있을 만한 문제점을 골고루 갖고 있었다.
남편인 최모씨는 자신보다 18살이 많았고 직업도 비정규직이었다. 나제즈다 김씨는 한국과 카자흐스탄 양 민족의 피가 반반이지만 외모는 슬라브계통에 가깝다. 김씨는 영어만 약간 할 뿐 한국어는 기본적인 인사도 못했다. 게다가 이슬람교도다.
언어와 생김새, 종교까지 확연히 다른 두 부부는 결혼 한달만에 이혼을 생각했다. 특히 음식과 성관계를 절제하는 라마단 기간에 다툼은 두드러졌다. 남편은 가끔 손찌검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씨는 현재 자신의 결혼생활에 상당히 만족감을 드러냈다. 결혼 초만해도 주변에 아내를 내보이길 주저하던 남편은 요즘엔 틈만나면 주변사람들에게 아내 자랑을 늘어놓는 '팔불출' 역할을 마다하지 않는다.
금방이라도 헤어질 것 같았던 두 사람 사이에 과연 어떤 극적인 반전이 생겼을까.
남편 최씨는 2년 전 회사에서 퇴출이 됐지만 적지 않은 나이탓에 재취업이 쉽지 않았다. 당장 생계에 어려움을 느끼자 김씨는 고향에서의 취미생활을 되살려 서울 이태원에서 액세서리 좌판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아내가 집안 밖으로 나가는 것을 꺼려했던 남편은 수입의 많고 적음을 떠나 아내가 생계를 위해 새벽시장을 뛰는 것을 고마워하기 시작했고 곧 자신도 직접 참여해 사업 규모를 불렸다.김씨는 이 과정에서 남편과 동질감 보다는 차이점을 느꼈다고 한다. 한이불을 덮고 살면서 서로 장단점을 몰랐던 두 사람은 장사를 하며 자주 다투었지만 이전처럼 단절 때문에 치른 싸움은 아니었다.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이제 두 사람은 인생의 동반자이자 사업의 동업자로서 서로를 인정하고 있다. 김씨는 아직까지 한국어가 서툴다. 그러나 남편과 별다른 어려움 없이 대화가 된다. 언어보다 '믿음'이 의사소통 수단이기 됐기 때문이다.
부부는 이제 두 사람의 아름다운 교집합인 2세를 학수고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