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잉라이' 가리봉, 중국동포들의 삶과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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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10-09-02 09:42본문
1964년 한국 구로동과 가리봉동 일대에 만들어져 한국 전체 수출의 약 10%를 담당했던 서울 구로공단. 당시 한국에서 가장 역동적인 지역이었던 이곳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고 상경한 젊은 여공들이 청춘을 바친 곳이었다. 2010년 현재, 이곳에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먼 이국땅에서의 삶을 선택한 중국동포들이 자리하고 있다. 영원한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중국동포들이지만 이곳 가리봉동에서만큼은 그들만의 세상을 확실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이에 KBS 2TV '감성다큐 미지수'에서는 가리봉동 일용직 노동자들의 삶을 취재했다. 가리봉동 사람들의 하루 일과는 새벽 5시부터 시작된다. 한국 사회에서 이른바 3D업종의 일자리는 이들의 몫이다. 남자들은 일용직 건설노동이나 공사현장, 여자들은 식당 주방일이나 파출부로 일한다.
새벽에 김포공항에서 자재 운반 일을 하고 온 오병철(43)씨. 급성 담낭염으로 직장을 잃고 일자리를 찾아 가리봉동에 왔다는 그는 중국의 가족들에게 석 달에 100만원씩 꼬박꼬박 보내며 저금도 하고 있다. 한국 시골에서 집을 얻어 가족들과 살고 싶다는 그의 소박한 꿈은 언제쯤 이루어질까?
안산에서 일자리를 잃고 가리봉동으로 이사 온 임용일(69)씨 역시 가리봉동에서 처음 얻은 방은 한 집에 40가구가 모여 사는 일명 ‘벌집촌’이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집이지만 방 한 칸을 여러 개로 쪼개어 만들어진 작은 방은 겨우 한 몸 누울 수 있을 만큼 작지만 그에게는 유일한 휴식처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만난 김진걸(55)씨. 손에는 아내에게 주기 위한 핸드폰이 들려있다. 가리봉동에 와서 만났다는 아내와는 반지하방에 신혼살림을 차렸다. 안정된 일자리만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는 힘든 상황이지만 함께 하는 아내가 있어서 의지가 된다고 말한다. 외롭고 고단한 한국에서의 생활이지만, 그들은 이곳에서 한국사회의 공존과 인정을 받기를 바라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