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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출신 마지막 증인 조선족 ......
위안부출신 마지막 증인 조선족 리수단할머니의 인생을 적는다
리수단할머니.
마지막 증인
10월 19일 오후, 할빈시조선족예술관에는 특별한 손님 한분이 찾아왔다. 백발이 성성한 80대의 운신이 어려운 할머니 한분이 한복을 차려입은채 휄체어에 앉아 안중근 의사 기념관과 민속박물관을 관람했다.
해설원은 류창한 한어로 해설을 진행했다.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한어로 대답을 하기도 하였다. 분명 그의 한어말씨에 조선어 억양이 짙게 묻어나지만 할머니는 조선말을 전혀 모른단다.…(2009-03-31 09:5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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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밉상이던 조선족... 이제 위신 올라가기 시작》
ㅡ한국국제로동재단 취업강사 김일남씨
기자가 한국에서 재한 조선족현황을 잘 아는 조선족을 찾으니 많은 사람들이 《김일남선생》이라고 소개한다.
《재한 조선족? 밉상이죠.》 재한 조선족들의 권익을 위해 십여년 뛰여온 김일남씨 입에서 답답하고 안타까운 치부들이 줄줄이 나온다.
서울 대림동 지하철역을 나와서 바로 보이는 국제로동재단 취업교육 사무실을 찾아 김일남씨(55세)를 만나려고 들어서니 조선족 여럿이 찾아와 애로상담을 하고있었다. 어느 중학교 조선어문 교원같은 인상의 김일남씨, 취재중…(2009-03-31 09:4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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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사회속에 함께 뿌리 내리고파"
"대부분 재미조선족들은 한인들을 가깝게 생각하고있고 또 한인사회와 함께 가고싶어합니다."
미국 뉴욕조선족동포회 주광일회장은 "한인 이민사회가 성장한것처럼 조선족사회도 최근 급성장하고있다."며 "그동안 한인사회와의 긴밀한 협력관계가 없었다면 힘들었을것"이라고 말했다.
뉴욕의 조선족사회는 10년이라는 짧은 이민사를 갖고있지만 매우 빨리 발전해왔다. 이민 초기 한인업소에서 인력을 제공하면서 자본력을 모았고 지금은 많은 업소들을 직접, 또는 동업형식으로 운영하고있다.
현재 뉴욕일…(2009-03-31 09:3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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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도, 이방인이 아닌것도 아닌 그들 ‘조선족 이모’
좌판 약장수로 시작해 산업현장과 가사노동을 책임지는 노동자, 중국어 교사에 이르기까지. 조선족 동포가 우리 사회에서 담당하는 역할이 점점 다양해지면서 비중도 커지고 있다.법무부의 최근 자료에 따르면, 고용허가제가 실시된 2004년 8월부터 2007년 9월말까지 국내에서 직업을 갖고 활동중인 조선족 동포는 9만5691명이다. 베트남, 필리핀, 태국, 중국 등 외국인 노동자를 모두 합친 8만3821명보다 1만명 이상 많다. 특히 2004년과 2005년 사이에는 무려 2만4858명이 늘었다.조선족 동포…(2009-03-31 09:2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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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의 불량소비현상에 대한 검토
개혁개방이후 조선족사회의 경제발전이 빨랐고 그들의 생활수준은 전에 없이 제고되었다. 그러나 조선족의 비계획적인 소비경향은 조선족사회의 경제생활에 불리한 영향을 초래하였다.
조선족의 경제생활에서 계획성이 결핍하고 생산보다 소비가 앞선 경향이 심하였다. 개혁개방이전 논농사 위주인 조선족농민들의 생활은 밭농사 위주인 주위 한족(汉族)들보다 더 윤택하였으나 돈은 있는 대로 다 써버리는 경향이 있어 저축은 거의 못하였다. 이에 비해 한족들은 수입은 조선족보다 적었지만 저축만은 언제나…(2009-03-25 15: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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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이라는 디딤돌
우리 가게에서는 중국의 다수 민족인 한족(汉族)이 소수 민족이다. 17명의 직원 가운데 한족은 단 2명이기 때문이다. 나머지 15명 가운데 1명은 몽고족, 14명은 조선족이다. 따라서 대부분의 의사소통은 한국어(조선어)로 이루어진다.
내가 딱히 의도했던 조직 구조는 아니지만 그렇게 되어버렸다. 주위에서는 "참 복 받았다"고 축하해주지만 복을 받은 건지는 계속 두고 볼 일이다. 여하튼 외국에서 사업하면서 내가 줄곧 사용해오던 언어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편한' 일이긴 하다…(2009-03-25 15: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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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화의 끈질긴 생명력을 보았다
중국 연변조선족자치주 수부 연길시를 방문한적이 있다. 공항에서 내려 호텔까지 가는 도로변의 풍경이 이국같지가 않았다.모든 간판들이 한글과 한자 복수로 되여있었기때문이다. 그것도 한글 먼저, 한자가 뒤로 씌여있었는데 자치주조례에 따른것이라고 한다. 또한 조선족과 한족이 함께 사는 도시지만 대부분의 경우 우리말이 통해 불편함이 전혀 없었다.그리고 오래전부터 형님, 동생 하며 지내온 K씨가 연길에 오면 3대 명물 보신탕, 국수, 찰떡은 맛보아야 한다면서 보신탕집부터 안내하여 가보니 서울 어느 뒤…(2009-03-25 15:1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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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포끼리 서로 헐뜯지 맙시다.
재한조선족문제연구
제2부 재한조선족의 삶의 실태
“우리 동포끼리 서로 헐뜯지 맙시다.”
김정룡
예로부터 우리민족은 단합심이 부족한 것이 단점으로 지적되어 왔다. 이를테면, 옛날 조정에서는 외적을 눈앞에 두고도 당파싸움에 빠져 있었고, 한반도는 남북으로 쪼개졌고, 남쪽에서는 “경상도 사람, 전라도 사람” 하면서 차별을 두고, 일본열도에서는 조총련과 민단이 대립해온 역사가 있다.
조선족사회는, 조선족이 집결된 연변사람들이 흑룡강성, 요녕성, 길…(2009-03-25 15: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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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로 본 한국인-조선족 국제결혼실태분석
재한조선족문제연구
제1부 사례로 본 한국인-조선족 국제결혼실태분석
-국적이 뭐길래?
"중국동포들이 가출하면 어디로 가나요?"
“따르릉, 따르릉,”
“여보세요, 중국동포타운신문입니다.”
“여보세요, 저는 한국 사람인데요, 한 가지 여쭈어 볼 일이 있어 전화 드렸습니다.” “네, 말씀하십시오.”
“중국동포들이 가출하면 어디로 가나요?” 하느님 맙소서. 한국 땅이 아무리 작다고 한들 도망가면 어디에 가는지 내가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일단 중국동포가 가출한…(2009-03-25 15: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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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과 혼인신고를 하고 형과 살다가 신세 망친 여자
일부 조선족여성들이 한국 땅을 밟으려고 국제결혼을 수단으로 삼고 있으며, 그 방법도 가지각색이여서 웃지도 울지도 못할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이를테면 아버지와 딸, 오누이, 형부와 처제가 위장결혼을 하는 경우가 있으며 동생과 혼인신고를 하고 형과 사는 사례도 있다.
길림시에서 온 장모 여인(28세)은 3년 전에 한국에 왔는데, 당시 한국인 박모가 중국에 가서 그녀와 선을 보고 혼인약속을 했지만 신용불량자라 재산담보를 제출할 수가 없어 혼인신고를 못하고, 박모의 동생이 형을 대신해 장모…(2009-03-25 15: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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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한 세 조선족아줌마의 창업취업 성공담
힘들수록 얻는것도 많아요
1. 한국생활 쉽지만 않다.2. 계획을 세워라. 3. 부지런하라.4. 전문가가 되라.
주방장인 박아줌마: 분명한 목표 갖고 부단히 자기개발해야박씨(길림성 구태시, 52세)아줌마는 한국에 간지 6년째이다. 남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울상이지만 박씨 아줌마한테는 《늘 일자리가 따라다닌다.》 한국행에 앞선 분명한 목표와 충분한 준비, 부단한 자기개발이 그 원인이다. 중국에 있을적 원래 식당업을 한 박씨는 료리에는 익숙, 한국에 간 후에도 여전히 식당업에 종사하…(2009-03-25 15: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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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이런 게 싫더라~"
벌써 고국 대한민국 땅을 밟은 지도 어언 5년 세월이 훌쩍 넘어선다. 눈앞에 추석을 앞두고 있으니 올해도 거의 다 지나가는 느낌이다. 내 고향의 전통과 뿌리는 같으나 한 세기를 넘나들며 꽤나 큰 차이를 보이는 한국문화와 사회. 그동안 벌어졌던 그 간격이 빈번한 교류와 함께 점점 가까워진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다.
그 동안 한국은 이렇게 변했다. 미국과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은 관계로, 일상용어에서는 요즘 한자어를 쓰면 왠지 좀 촌스럽다 하고, 콩글리쉬를 쓰면 뭔가 있어 보인단다. 회사에…(2009-03-25 15: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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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없는 마음
연변에서 태여나고 자란 중국 조선족인 내가 이곳 한국에 류학을 와서부터 머리 아프게 고민했던것이 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만큼 밤과 낮 따로 없이 긴장에 얼굴 근육 한번 제대로 풀지 못한채 늘 뻣뻣하게 나를 만들었던 고민, 그건 고민이 아니라 차라리 고문이였다. 이 하늘아래 그렇게 마음이 혼란스러워본적이 이제껏 없었으며 이 세월동안 그렇게 풀이 죽어본적이 또한 없었다. 이 아름다운 한국에서, 이 예쁘장한 고국에서 나는 그 누구에게도 말못할 고민에 내 스스로 정신분렬증에 걸리지 않을가 얼마나 걱…(2009-03-25 15:0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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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 언어우세가 아닌 능력우세로 거듭나야 할 때
번역시장에서 조선족들이 경쟁대상에게 점점 밀리고있다. 조선족들은 단순한 언어번역보다도 다방면의 지식, 종합자질을 구비한 능력있는 통역으로 거듭나야 할 때다 갈수록 활발해지고있는 중한교류로 각종 국제회의, 경제무역, 문화, 교육, 관광 등 령역에서의 통역에 대한 수요는 줄곧 끊기질 않았으며 지금도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 과정중 조선족들은 중국어와 한국어를 동시에 다룰수 있다는 우세로 번역시장에서는 받들리는 존재로 있었다. 하지만 한국어를 배우는 중국학생들의 증가와 중국어를 장악한 한국인들…(2009-03-25 15: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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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과 한국인사이 이혼절차에서 드러나는 문제점
요 몇 년 동안 조선족과 한국인 사이 국제결혼 건수가 급증함에 따라 이혼율도 급상승하고 있다.
전문가들의 예측에 의하면 조선족과 한국인 사이 국제결혼에 있어서 위장결혼 수가 60% 넘을 것으로 보고, 진짜 결혼으로 왔으나 가출하여 별거상태에 있는 자가 많아 잠재적 이혼이 굉장히 많을 것으로 짐작되어 실제 큰 말썽이 없이 살고 있는 비례가 20% 미만일 것이라 한다.
그렇다면 이미 이혼했거나 현재 이혼 중에 있거나 앞으로 잠재적으로 이혼할 수를 합치면 80%나 된다는 얘기가 된…(2009-03-25 14:5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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