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향창업 꿈꾸며 한국서 차근히 준비했어요"
페이지 정보
작성자 :admin| 작성일 :11-07-21 09:55|본문
연길광명수산활어회집 강용천, 최미향부부의 창업스토리
강용천씨는 "고향에서 활어회집을 하려고 한국에서부터 몇년간 차근차근 준비를 했습니다. 비록 지금 성공을 론하기는 이르지만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자평합니다"라고 하며 앞으로 류통경로에서 원가를 최대한 낮추고 맛과 서비스로 승부하는 진정한 명가회집으로 거듭나겠다는 속셈을 내비치기도 했다.
10년전, 왕청에서 경영하던 한국주방용품가게가 문을 닫게 되자 강용천씨는 28살 젊은 나이에 한국행을 택했다. 그도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건설현장, 사우나 등을 전전하면서 3~4년 동안 고된 막일을 했다. 그러다 힘으로 일하는데는 한계가 있다싶어 서점에 가서 부동산에 관한 책, 주식에 관한 책들을 사 보면서 새로운 아이템을 구상하기에 이르렀고 일단 어떤 분야든 기술을 장악하고 경험만 쌓는다면 평생 직업으로 삼을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느날 친구모임에서 강용천씨는 심양에서 온 최미향씨를 알게 됐고 공통한 목표와 취미를 가진 두 사람은 결혼까지 약속하는 사이로 발전했다. 그때 한국에서는 한창 회집이 성업중이였고 이를 눈여겨 본 이들은 바다가에서 맛볼수 있는 싱싱한 활어회를 고향에 제대로 알려보자는 일념으로 활어회집 창업에 뜻을 품고 우선 600만원의 수강료를 지불하고 6개월간 료리학원에서 열심히 료리기술을 배웠다.
안정적으로 창업을 하려면 무엇보다도 경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이들은 각자 부동한 회집에 취직해 강용천씨는 주방에서 일하면서 회를 뜨는것부터 활어 류통, 보관 등에 이르기까지 경험을 쌓고 최미향씨는 고객접대, 직원관리, 경영 등을 배워갔다. 그리고 한 가게에 오래동안 근무하면 월급도 오르지만 다른 가게의 경영방식을 더 습득하기 위해 일부러 또 다른 가게에 취직해 낮은 월급을 받으면서 경험을 쌓아갔다.
이것이 끝이 아니였다. 삼면이 바다인 한국과는 달리 연길에서 회집을 하려면 우선 활어수족관이 있어야 싱싱한 활어회를 손님상에 올릴수 있다고 생각한 강용천씨는 수족관을 만드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부산에 있는 수족관공장을 찾아갔다. 기술류실을 막기 위해 사장은 낯모를 직원을 받으려고 하지 않았지만 먹고 자는것만 책임져주면 로임을 안 받고라도 일하겠다며 끈지게 매달리는 강용천씨의 도전정신에 그만 감동받아 일년간 기술을 배워줬다고 한다. 그때 기술을 장악한 덕택으로 지금 연길광명수산활어회집에서 사용하는 수족관은 모두 강용천씨가 직접 만든것이라고 한다.
그뒤 또 일년간 활어운반차가공기술까지 장악한 그는 2009년초에 귀국하여 결혼하고 그해 9월 15만원을 들여 200평방메터 되는 가게를 임대맡아 본격적으로 활어회집을 경영하기 시작했다.
서로 쳐다보아도 상대방의 의중을 알아차릴수 있는 그들 부부는 그동안 배워온대로 안해는 식당운영을, 남편은 주방을 맡아하면서 열심히 일했다. 하여 사업은 나날이 흥성해갔다. 그들은 대련으로부터 항공편으로 직접 운송해온 신선한 광어, 우럭, 농어, 도미 등 가지각색의 활어회를 저렴한 가격으로 팔고 항상 고객의 립장에 서서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기에 고객들로부터 호평을 받고있다.
손님들은 처음에는 회맛이 맛있어봐야 거기서 거기겠지 라는 생각을 갖고 찾아오지만 한번 맛을 본후부터는 단골손님으로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차츰 고객들도 늘어나 올 4월에는 회집동쪽에 있던 다른 가게까지 인수해 상을 20개로 늘였다.
이제 앞으로는 대련으로부터 항공운송해온 활어를 활어운반차로 주내에 있는 회집들에 배송하는 도매업무도 펼치고싶다는 이들 부부는 몇년 동안 우선 경험을 쌓고 기술을 익히면서 창업준비를 사전에 착실히 한것이 옳았다면서 자신들의 경험담을 귀감있게 들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