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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력사 바로 알고 삽시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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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철호| 작성일 :12-11-23 06:25|

본문

 

조선인사회의 지도자 김약연선생

 

 

 

제8장 간민교육회간민회

 

 

우후죽순마냥 궐기하는 반일단체들

조선인사회의 건설을 위해 몸부림

 

 

1910년대의 반일단체들

 

 

“간도협약”이 체결되자 연변의 조선인들은 한결같이 일떠나 룡정에다 간도총령사관을 설치하고 조선인에 대하여 “치의법권”하는것을 반대해나섰다. “간도협약”이 맺어지자 일제는 상부지내에서 “령사재판권”을 실시했고 잡거구의 조선인에 대해서는 “지조권(知照權)”, “청심권(聽審權)”, “복심신청권(復審申請權)”을 실시하려고 책동했다. 이에 각지 진보적인사들은 반일단체를 묶어 저항해나섰다.

 

이런 단체들가운데는 반일보황주의를 주장하는 단체들도 있었고 자산계급민족주의를 주장하는 단체들도 있었으며 러시아와 중국의 급진파들과 련합전선을 결성할것을 주장하는 단체들도 있었다. 물론 조선인반일민족전선은 신구사상의 교체시기에 처해있어 일정한 경향성은 있었으나 료원의 불길같은 그 기세는 하늘을 찌를듯해 그 누구도 막을수 없었다.

 

1910년 훈춘현성에서 리종호 등을 주요간부로 한 해도회(海島會)가 성립되였다. 연해주와 간도에서 한글자씩 따내 이름한 이 단체에서는 러시아와 연해주, 훈춘, 간도의 반일지사들간의 련계를 강화하기 위하여 각지와의 통신련락에 전력하면서 일제의 동태를 정찰했다.

 

1911년 왕청현 덕원리에서 대종교수령 서일이 중관단(重光團)을 묶고 단군숭배를 반일민족사상으로 고취, 반일인재양성에 힘쓰면서 무장투쟁을 준비했다. 서일은 후에 자신이 건립한 대한군정서를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로 개편, 총재를 맡고 항일무장투쟁을 위한 무력강화사업을 밀고나갔다. 북로군정서 산하에는 총재부와 군사령부가 있었는데 김좌진장군이 군사령부의 사령관으로 활약했다.

 

1912년 왕청현 백초구에서 조상갑을 단장으로 하는 급당(急黨)이 성립, 중국신해혁명에 편승하여 민중을 폭동에로 궐기시켜 민족독립을 실현하려 하였다.

 

1912년 훈춘현성에서 김학천을 회장으로 하는 훈춘상무회(商務會)가 성립, 훈춘시의 시민과 상인을 반일민족운동에 궐기시켰다.

 

1912년 화룡현 덕신사에서 김태일을 단장으로 하는 민권당(民權黨)이 성립되였다. 종지는 급당과 동일했다.

 

1912년 왕청현 라자구에서 김천보를 회장으로 하는 농상회가 성립되였다. 농상회는 농업과 상업을 추진하는 단체로 표방했으나 실지로는 “반일흥한(反日興韓)”을 주장하면서 민족독립을 위하여 산업을 진흥시키려 했다.

 

1913년 훈춘현성에서 황병길을 회장으로 하는 기독교교우회가 성립되였다. 기독교교우회에서는 기독교신자들을 반일민족운동에 궐기시키기에 힘썼다.

 

1913년 훈춘현에서 박상규를 총리로 하는 둔전영(屯田營)이 성립되였다. 이 조직에서는 중한반일인사들을 련합하여 반일공동전선을 결성할것을 주장했다.

 

1914년 연길현 의란구에서 황성현을 회장으로 하는 친목회가 성립되였다. 이 단체에서는 일제의 통감정치를 결사적으로 반대하면서 조선의 국권을 회복하기 위해 호상협력할것을 주장했다.

 

그외에도 연길현 동성용에서 성립한 사우계(士友契), 룡정에서 성립한 청년친목회, 국자가에서 성립한 대동협신회(大東協新會) 등 수많은 반일단체들이 있었는데 이런 반일단체들에서는 일제의 중국침략과 조선인을 보호한다는 미명하에 조선인에 대해 식민통치를 유지하는것을 반대해 나섰다.

 

그중에서도 1913년 5월에 민국정부의 인정을 받으면서 성립된 “간민회(墾民會)”가 영향력이 큰 반일단체이다. 간민회는 후에 반일보수단체인 “농무회”와 첨예하게 대립된다.

 

조선인사회 건립 위하여

 

“간도협약”이 체결된 1개월후인 1909년 10월, 화룡현의 진보적인사들인 박무림, 김약연 등 30여명은 일제의 “치외법권”을 반대하기 위하여 “한민자치회”를 결성하고 민중을 동원, 일제와 그 주구단체인 “일진회”의 죄악을 폭로단죄하려고 계획하였다. 그들은 연변에서 “민족자치”를 실시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이듬해 1월 연길부청에 인가신청을 제기하였다.

 

이에 일제는 조선족들이 일본과 청나라를 반대하여 “독립하려 한다”고 날조하면서 청나라에 “한민자치회”를 해산시킬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연길부윤 도빈(陶彬)은 “귀화입적”하면 몰라도 그렇지 않고 청나라통치를 탈리하여 “조선인자치”를 실시하는것을 허락할수 없다고 했다. 청나라 역시 조선인들이 청나라통치를 벗어나는것을 두려워했던것이다.

 

1910년 3월 조선인종교계인사 40여명이 조선인자제들의 교육을 위해 국자가에 “간민교육회”를 설립하려고 연길부윤 도빈에게 인가신청을 하였다. 도빈은 조선인교육에서 “중국어를 주요과목”으로 가르치고 교수법과 기타 교과서 등도 “청나라의 지도에 의거”할것을 전제조건으로 “간민교육회”를 인정하여 허락했다.

 

어려서 한학을 배웠고 귀화입적한후에는 중국경찰학당까지 졸업한 중국어에 능통한 반일친중국파이며 조선족교육가인 리동춘(1873년생)이 “간민교육회” 회장으로 임명되였다. 정부에서는 그에게 로임까지 지불했으며 수하에 서기 몇사람을 두고 일하게 했다. “간민교육회”는 지회를 각 현에 건립하였는데 1911년의 통계에 의하면 회원이 130여명에 달하였다고 한다. “간민교육회”는 저명한 반일운동가인 리동휘, 김립 등의 적극적인 지지와 협조를 받기도 했다. 특히 소영자 길동학당에는 “간민교육회”의 중견인물들이 운집하여 있었다.

 

연변대학 력사학교수 박창욱선생은 “간민교육회”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간민교육회에서는 ‘조선이 망했으니 조선에다 국적을 둘 필요가 없다. 조선에 국적을 둔다는것은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겠다는 말과 같다. 국적을 중국에다 옮기자’는 반일친중국사상을 선전하면서 ‘신학’을 제창하고 ‘구학’을 개량하기에 힘썼습니다. 청나라조정은 조선인들의 이러한 활동을 환영하였습니다.”

 

“연길부윤 도빈은 간민교육회내부에 ‘간민교육연구회’를 비밀리에 설치하게 하고 그 회원들에게 조선인을 통치함에 있어서 나타난 문제들을 조사하고 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의견들을 제출할 임무를 주었다.”(전신자 “간민교육회와 간민회”)

 

1911년 중국에서 신해혁명이 일어났다. 손중산을 위수로 하는 “동맹회”는 만청봉건통치를 뒤엎고 중화민국을 창건하였다. 중화민국림시정부에서는 “련성자치제(聯省自治制”)를 주장했다.

 

이것은 “간민교육회”의 대단한 활력소였다. “간민교육회”에서는 리동춘 등 4명의 대표를 북경에 파견하여 려홍원(黎元洪)부대통령을 만나 연변지구 조선인사회상황을 보고한후 “간민자치회”의 성립을 허락해줄것을 바랐다. 려원홍은 찬성을 표시하면서도 “자치”란 두 글자를 취소할것을 지시하였다.

 

1913년 5월 “간민교육회”는 지방정부의 허가를 받고 국자가에서 총회를 소집하였다. 회의에서 “간민회장정”을 정식으로 통과한후 간부들을 선거,임명하고 동남로관찰사서(東南路觀察使署)의 인가를 받았다. 저명한 반일활동가인 김약연이 회장으로 당선되였다.

 

“간민회”는 자기의 종지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간민들이 두만강을 건너 중국땅에 이주한지 40여년이 되고 간민인구도 수십만에 달하나 식견이 어둡고 종래로 흩어져 거주하기 때문에 통일된 규범도 없다. 이에 간민회를 조직하여 민중지간의 감정을 소통하고 중국의 법률을 연구하여 민중들을 민국의 법률에 복종하게 하며 공화정부의 보호에 의거하여 자기의 의무를 다하고 언어, 풍속의 통일을 기하여 노력할것이다.”

 

“간민회에서는 망국노를 원치 않는 조선인들을 동원하여 일제의 식민통치기반에서 벗어나 중국국적에 가입하고 중국정부에 의거하여 중국법률의 보호하에서 자치를 실시하며 나아가서는 연변을 반일민족운동의 기지로 건설하려고 하였다.” (전신자 “간민교육회와 간민회”)

 

마침 민국정부에서도 1912년 국적법을 제정, 반포, 조선인들에게 귀화입적하여 일제의 통치기반에서 벗어날것을 요구했다. 민국정부에서는 연변인구의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조선인들이 일제의 통치기반에서 벗어나 중국의 통치를 받기만 하면 연변에 대한 일제의 침략을 저지하고 령토주권을 수호할수 있다고 인정하였던것이다. 간민회에서는 지체없이 “입적운동”을 전개하였다.

 

간민회에서는 또 구학을 반대하고 신학을 제창하며 민주와 과학을 제창하고 봉건가부장제와 봉건미신활동을 반대하는 “사숙개량운동”을 전개하여 조선인들의 개화를 추동하였다.

 

각지에 야학교와 식자반을 꾸려 문맹퇴치사업도 전개했고 농민들로 하여금 생업을 개발하고 수입을 증가하게 하기 위해 “식산흥업(殖産興業)”운동도 벌렸으며 조혼을 반대하고 남녀평등을 주장하기도 했다. 간민회에서는 러시아의 “권업회”와도 밀접한 련계를 가졌고 미국과 러시아에 건립된 “국민회”와도 련계를 가지면서 비밀리에 반일민족활동을 전개하였다.

 

간민회에서는 간민교육회를 계승하여 연변에서의 반일문화계몽운동을 더욱 활발하게 펼쳐나가면서 조선인자치운동을 전개했다. 간민회의 활동을 상해에서 발간하는 “독립신문”(1920년 1월)에서는 이렇게 보도하였다. “간민회의 조직과 활동은 간도조선인사회의 새기원을 열어놓았다.”

 

간민회농무계의 대립

 

간민회의 활동은 연변에 살던 유림(儒林)들의 강력한 반발을 자아냈다. “그것은 간민회가 주장하는 민주공화정치와 신문화교육운동은 공매지도를 ‘중화(中華)’사상으로 이어가려는 유림들의 주장과는 어긋났고 또 그들의 사회기반이였던 서당교육을 궁지에로 몰아넣었기 때문이다.”(김춘선 “ 간민회와 농무계의 대립”)

 

이에 유림들은 사회단체로서의 “농무계(農務契)”를 조직하여 간민회와 법적인 투쟁을 전개하고 공교회(孔敎會)를 건립하여 신앙활동으로 대중적기반을 확대하려 했다. 1913년 6월 29일,간민회가 성립된지 몇 달 안되여 연변의 유림들은 연길현 지신향 솔완자에 모여 농무계를 출범시켰다. 최남기가 총회장에 당선되였다. 그해 11월에 200여명 유림들이 모여 “공교회연길지회”를 정식으로 창립하고 공자묘까지 세웠다.

 

“농무회와 공교회에서는 조선인들의 입적을 반대했으며 입적한다는것은 민족과 조상을 배반하는것으로 여겼습니다. 또 신학을 반대했는데 신학에는 인류교육의 최고의 도덕이 없다는것이였습니다. 1912년 중화민국의 초대 대통령으로 된 원세개는 공맹지도를 국교로 삼는다고 공포했습니다. 때문에 공교회를 믿어도 중국정부에서는 어쩌지 못했지요. 유림들은 간민회에서 회비를 강제징수한 문제, 농민들에게 여러 가지 부담을 안긴 문제, 일부 향약이나 렬신들의 불법행위에 대한 민중들의 불만을 리용하여 간민회를 극력 반대했습니다. 간민회에 대한 유림들의 조직적인 반발은 간민회의 활동에 상당한 곤난을 조성하여 주었습니다.”

 

박창욱선생은 그때의 상황을 이렇게 말하면서 모순의 실질은 신구문화사상간의 투쟁이였고 초점은 입적여부문제였다고 지적했다.

 

한편 간민회에서도 가만있지 않았다. 중화민국 2년 12월 2일 김약연은 동남로관찰사서에 “보고”를 올려 “공교회”의 부당성을 지적하였다.

 

“그자들은 공교의 세력에 등대고 첫째는 유신교육을 훼방하고 둘째는 간민회를 반대합니다. 무릇 어떤 종교든지 그 성격을 보면 도덕을 양성하는것인데 간민구학구(舊學究)들이 조직한 공교회는 절대로 선한 마음을 품은 것이 아닙니다. 그자들의 행실을 따져보면 형식은 공교의 이름을 띠고있지만 내용은 농무계와 한동아리입니다. 그러기에 이 사건은 앞날에 지방행정에 실제 위험으로 되는 문제입니다.”

중화민국 3년 6월 1일자 동남로관찰사서 “연길현공서보고 제154호”에서 연길현지사 관운종은 이렇게 피력하고있다.

 

“대체로 간민회는 적극적인 주의를 가지고 한민교민을 간민회에 받아들이였고 귀화민을 입적시키고 치발역복을 하게 하고 공화민권을 신장하여 일한합병‘’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려고 한다. 그런데 농무계사람들은 모두가 중국에 거주한지 오래된 초간, 월간 한족(韓族)들로서 전답과 재산을 가지고있으므로 망국에 대한 사상이 약했다. 비록 곁으로는 입적하지 않았으나 실제에 있어서는 일찍부터 동화되여 가고있었으며 복장과 풍속은 여전하지만 그것은 순전히 수구파의 표현이였다. 그들은 유신파들이 머리를 깎고 양복을 입은것을 보면 저항하고 격렬한 수단으로 무리를 지어 공격했다. 이것이 간민회와 농무계의 의견상이이다.”

 

정부에서는 농무계와 간민회의 상호비난에 대하여 여러 가지로 화해시켰으나 치렬한 대립은 계속되였다. 그러다가 1913년 11월 3일 공교회 회원 정안립이 길신녀학교에서 공교회년례를 치르던중 간민회회원들에게 구타를 당하는 사건이 발생하기까지 했다. 이에 농무계에서는 관찰사서에 상소하기로 결정하였으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앉아버티기를 하려고 하였다.

 

조선인의 두 단체는 다 반일친중국견해이면서도 이렇게 법정에서도 민간에서도 계속 첨예화되였다. 한편 관찰사서에서는 간민회와 농무회간의 대립의 첨예화가 일제에게 중국내정에 간섭할수 있는 언턱거리를 줄수 있다고 보고 곁으로는 간민회활동을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지지하는척 하면서도 실지로는 감독, 간섭, 단속하였다.

 

1914년 3월 원세개는 지방련성자치기관을 철페할데 관한 명령을 하달, 이에 근거하여 길림동남관철사서에서도 포고 11호를 반포하여 “간민회와 농무계가 모두 자치성격을 띤 조직이므로 즉시 해산”할 것을 선포하였다. 연변조선인의 반일운동에 적극적인 역할을 놀던 간민회는 이렇게 력사의 무대에서 정치적 막을 내리게 되였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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