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조선족아줌마'의 일상 "눈치보지 않고 발편잠 자고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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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10-09-20 09:29|본문
북경에 한국기업들과 한국류학생들이 대거 들어오면서 망경지역은 북경 최대의 코리아타운으로 부상했고 많은 조선족녀성들이 한국집 가정부, 회사식당, 민박집 등 일자리를 찾아 북경으로 대거 진출했다. 그들은 북경을 두번째 고향으로 삼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타향살이를 하고있다. 조선족녀성 대부분은 농사를 지어봤자 남는 돈이 적어 자식 공부뒤바라지를 위해 북경땅을 밟게 되였다. 북경에 온 최씨는 "원래 길림성 훈춘시 농촌에서 시부모를 모시고 남편과 아들 다섯이 농사를 지으며 살았는데 일년내내 농사해도 남는 돈이 별로 없었기에 2005년 북경에 왔다."고 말했다. 그들은 어렵게 북경생활에 적응했고 욕을 자주 먹으며 스트레스속에서 눈물겨운 타향살이를 하고있다고 말했다. 처음 북경에 왔을적 한국인 가정에 가정부로 들어가려면 한식을 할줄 알아야 하기에 친척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한식을 우선 배워야 한다.
가정부로 있을 경우는 오전 9시에 출근하여 집안청소와 빨래를 한후 점심밥을 준비하고 저녁밥을 거두고나면 밤 9시가 된다. 마음씨가 좋은 주인을 만나면 눈치밥정도지만 일부 심보가 나쁜 주인을 만났을 경우는 늘 감시받는 기분이다. 최씨 녀성은 "한 한국인 가정에서 일할때 안주인이 늘 시름을 놓지 못하고 눈살을 세우고 도처를 살폈다. 한번은 녀주인이 돈지갑을 잃어버렸다고 집이 떠나가게 소란을 피웠는데 말치 않아도 내가 훔쳤다는 눈치였다. 생각같아서는 당장 걷어치우고 그 집을 뛰쳐나오고 싶었지만 도적이라는 모자를 쓰고싶지 않았다. 그날 저녁 안주인이 옷장구석에서 돈지갑을 찾았다. 저는 설음이 북받쳐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미련없이 그 집을 나와 새 일자리를 찾았다."고 억울했던 그때 일을 회억하며 말했다.
고향사람들은 북경을 돈 잘버는 금전판으로 알고 있지만 그곳의 조선족녀성들은 북경은 금전판이 아니라고 입을 모았다. 엄씨녀성은 "돈이 저절로 하늘에서 떨어지는 곳은 없어요. 북경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도 북경에서 별 고생을 다해 봤습니다. 짠지장사를 할때 새벽에 나가고 밤중에 귀가하군 했습니다. 그당시 저의 얼굴은 해볓에 새까맣게 탔고 손발은 갈라터져 보기도 흉했지요. 하지만 돈버는 재미에 고달픈줄 몰랐지요. 고생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돈을 벌어요?"라고 말했다. 북경에 있는 조선족 녀성들은 월로임이 보통 2500~3000원씩 받고있는데 소비로 평균 한달에 500~600원 쓰고 친구나 가까운 이웃들이 생일을 쇠면 축의금으로 100~200원씩 낸다. 유일한 오락으로 그때는 술도 한잔 하고 노래를 부르며 스트레스와 피로를 푼다.
그들은 고향에 돌아가 뜨끈뜨끈한 가마목에 누워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실컷 발편잠을 자고 싶지만 아직은 고향에 돌아갈 때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비록 고생스럽더라도 몇년간 더 견디면서 힘이 있을때 조금이라도 더 벌어 자식들의 결혼 등에 보태주고 늙그막에 쓸 돈을 얼마라도 저금하기 위해서이다. 북경 온 이들은 이곳에서 힘들게 일하는것보다 한국에 나가려한다. 수년간 한국인집에서 일했고 한식에도 능하기에 한국생활에 빨리 적응할수 있다는게 그들의 생각이다. 하지만 무연고동포방문 실무한국어시험이 올해로 페지되고 시험이 점점 난이해지는 등 문제로 언제 출국하겠는지는 할수없는 처지다. 조선족녀성은 북경의 최하층에서 살아가면서도 찌들지 않고 항상 희망을 품고 가족과 남편,자녀들을 위해 자신 모든것을 헌신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