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로그인

우리 력사 바로 알고 삽시다(3)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철호| 작성일 :12-11-19 06:26|

본문

  
 
고난의 조선족간민

                           문전옥답 치발역복하지 않았다고 정부에 빼앗기고
                           사지안에 들었다고 영문 모른채 점산호에 빼앗기고

                                        
조선간민구

1881년,청정부는 동북지방의 최후의 금단지역인 김림성 동남부의 봉산위장을 개방하고 훈춘에 초간총국을 설치하여 이민실변청책을 실시하였다. 또 황무지개간을 고무하기 위하여 “훈춘녕고탑초간 장정”을 반포,당해에 토지를 받은 호들은 땅세를 면제하고 소작료는 매상에 660문(文)씩 받기로 하되 반드시 5년후에 갚게 하며 그 나머지는 한푼도 풍기지 않기로 하였다. 그밖에 간민들에게 부림소를 대주고 기한을 정하여 빛을 갚게 하는 등 우대정책을 실시했다.

1885년에 와서 간민전문개간국을 설정하기에 이르렀는데 그 의의에 대하여 연변대학 박창욱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이는 우리 조선족으로 놓고 말하면 토지를 개간할수 있는 합법적권리를 얻은것입니다. 많은 조선족들이 연변땅에 들어왔기에 그후 민족공동체형성에 중요한 조건을 마련해주기도 했지요”

 
한편 지방관청의 관리들과 지주, 토호렬신들은 정부에서 관황(官荒,관청의 황무지)을 조사하여 풀어놓는 기회에 많은 토지를 차지하였을뿐만아니라 5년내에 조세를 받지 않으며 집, 식량,씨앗, 부림소 및 일부 농자금을 선대해준다는 좋은 조건으로 조선농민들을 모집하여 황무지를 개간하게 하거나 소작농으로 고용하였다.

이런 좋은 조건은 조선농민들을 더욱 자극하게 되여 수많은 조선농민들로 하여금 두만강을 건너게 하였다. 농민들은 두만강연안의 4개보, 39개 사로부터 해란강이북과 부르하통하이북 그리고 훈춘이북쪽으로 끊임없이 들어와 괴나리보짐을 풀고 황무지를 개간하였다.
 
두만강기슭의 화룡현 숭선으로부터 연길현 광제욕에 이르는 기름진 2백리 땅이 조선농민들에 의해 전부 개간되였을뿐만아니라 해란강이북지역과 가야하연안도 대폭 개발되기 시작했다. 초강국설치시의 조사에 의하면 당지에 숙지가 적잖았는데 훈춘지방에 5620헥타르, 남강지방에 1만 8938헥타르, 오도구지방에 3073헥타르, 흑정자지방에 144헥타르가 있었다. 훈춘변황후선지부 리금용의 조사에 의하면 가야하로부터 고려진북안에 이르는 구간에는 이미 8곳이나 개간되였는데 그 면적은 2000여헥타르에 달했다.

1900년, 의화단운동이 일어나자 로씨야는 동청철도를 보호한다는 구실로 동북지방에 쳐들어왔고 잇달아 훈춘을 점령,  연변지구와 조선북부지방을 강점했다. 이에 경황실색한 연변지방 관리들과 군경들은 길림으로 꼬리를 사렸다.  그 기회에 조선간민들은 연변지구에 더 많이 이주하였는데 1909년에 이르러서는 3만 4133세대에 18만 4876명으로 늘어났다.

치발역복 귀화입적

1891년, 청정부에서는 화룡 월간국과 통상국을 무간국으로 고치고 이듬해에는 무간총국을 국자가에 옮겼으며 조선족의 호적을 조사하여 4개보, 39개 사에 편입시키고 조선족을  청나라신민으로 인정하였다.

당시의 정세를 류병호선생은 “조선족에 대한 청나라의 ‘편적위민’‘치발역복’정책”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지적하고있다.
 

“조선족간민에 대한 청나라조정의 편적위민은 민족동화를 목적으로 한 치발역복을 기초로 하였다. 근대적국적법을 아직 수립하지 못한 청나라조정은 입관시에 관내지역의 한족인민들에게 강요하였던 치발역복정책을 200년후 조선으로부터 이주하여온 조선족간민들에게도 강요하고 이를 토지소유권을 부여하는 전제로 삼았다.”


청나라조정은 조선족간민에게 토지소유권을 주는것은 령토주권을 버리는것과 같으므로 치발역복하여 만족으로 동화된 조선족간민만이 청나라의 신민으로서 토지소유권을 가질수 있다고 인정하였다. 물론 이런 정책을 조선족간민들은 납득할수가 없었다.

백의흑관은 조선민족의 상징이요, 상투와 머리태는 남성의 성가여부를 상징하는 표징이었다. 장기간의 유교문화의 영향을 받아 엄격한 상하간의 례의와 타문화에 대한 배타주의사상을 길러온 조선민족은 조상이 물려준 백의흑관을 버리고 호복(만족복장)을 갈아입고 부모가 준 머리카락을 깎아버리는것을 조상에 대한 배신으로 간주하였다.

참으로 머리우에 떨어진 날벼락이 아닐수 없었다. 복종하지 않으면 피땀으로 걸구어온 옥답을 빼앗기고 지어 가장집물까지 털린후 강건너 설음의 고향땅으로 쫓겨갈판이였다.
 
그렇다고 만주호적에 든다는것도 조상들에게 죄스러운 일이였다. 어떤 사람들은 굶어죽으면 죽었지 “치발역복, 귀화입적”하지 않는다면서 문전옥답을 버리고 떠나가버렸다. 어떤 사람들은 앉아버티기도 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관부에서 순찰할 때만 호복에다 머리를 풀어 땋고 평소에는 여전히 한복차림을 했다.
 
그러다가 1900년 의화단운동이 일어난후 짜리로씨야가 연변을 침략하자 연변지방의 관리들이 길림으로 도망치는 통에 치발역복바람이 즘즘해졌다. 하여 치발역복하였던 많은 조선족들은 다시 민족복장을 입었다.

점산호와 조선족지주

청나라정부에서 황산지를 백성들에게 팔게 되자 지방관리와 군벌, 대상인들은 파리떼처럼 달려들어 비옥하고 편리한 지대를 차지하기 위해 혈안이 되였다. 그들은 권세를 등대고 청장(淸丈, 토지를 재주는 일따위)인원들에게 뢰물을 먹여 많은 황무지를 차지하였는데 어떤자들은 말을 타고 다니면서 광활한 황무지에 말뚝을 꽂아가면서 토지를 점유했고 또 어떤자들은 “토지개간회사”라는 빈 간판을 내걸고 한지방의 토지를 독차지하였다. 이렇게 황무지를 헐값으로 차지하여 일약 벼락대지주로 된 지방의 관리, 군벌, 대상인들을 가리켜 “점산호”라고 하였다. 그때의 정경을 《이야기 중국조선족력사》(박청산, 김철수 저)에서 이렇게 서술하고있다.
“점산호들이 차지한 토지면적은 토지증명서에 <동쪽은 수림이고 서쪽은 강이며 남쪽은 수림이고 북쪽은 개울>이라고 써넣고 이것을 <사지(四至)집조>라고 하였는데 이렇게 주먹구구로 사지를 정해놓으니 개간민의 토지도 사지안에 들어갔다. 관청에서 비록 경작지를 다시 측량하고 등록된 면적을 초과했을 때는 <부다지(浮多地)>로 처리하여 땅세를 받아들였으나 그것 역시 빛좋은 개살구에 지나지 않아 조사해내지 못한 토지가 많고 또 조사해냈다 해도 우선권이 점산호들에게 있어서 땅세를 바치면 그만인것이다. 그리하여 개간민들은 웬 영문인지 모른채 피땀으로 일군 문전옥토를 점산호들에게 점령당하고 빈주먹으로 나앉게 되였다.”

거기에다 치발역복, 귀화입적을 하지 않은 개간민들의 경우는 더욱 한심했다. 관청에서는 치발령을 어긴 자에게 기한을 정해 토지를 한족지주나 한족이주민에게 넘겨주도록 강요하고 기한내에 넘겨주지 않으면 강건너 조선땅에 쫓아버렸기때문이다. 그리하여 수많은 조선개간민들은 자기 손으로 가꾼 토지를 점산호들에게 빼앗기고 소작농이나 고농으로 전락되였다.

조선이주민속에서도 대지주가 나타났는데 이런 사람들은 모두 치발역복, 귀화입적을 한 사람들이였다. 그들은 관청과 점산호들에 뢰물을 먹이고 점산호들의 문턱을 뻔질나게 드나든 덕에 점산호들로부터 몇백헥타르의 황무지를 개간하여 대지주가 된것이다.

 

“변발호복”하여 지방관리들의 신임을 얻은 어떤자들은 점산호를 대신하여 조선족간민을 모집하여 황지를 개간시키고 소작료를 받아들이며 그가운데서 어부지리를 얻어 점차 지주로 되였고 일부 사람들은 관부와 결탁하여 기타 귀화입적하지 않은 간민들을 고용하여 황지를 개척한 뒤 자기이름으로 령조납세(領照納稅)함으로써 일약 수십상의 토지를 점유한 지주로 되였다.

 

또 일부는 부유한 조선의 상인들인데 그들은 무역과정에 강북의 넓고 비옥한 황무지와 헐한 땅값에 끌리여 조선의 재산을 전부 팔고 남녀노비들까지 거느리고 솔가이주하여 일약 수십상의 황무지를 소유한 지주로 되였다.(계속)

0

글로벌한민족 목록

글로벌한민족 목록
우리 력사 바로 알고 삽시다(7) 인기글 간도일본총령사관 연변을 침략하고 항일투쟁을 진압한 소굴 연변의 풍부한 물질자원을 수탈한 수뇌부 죄악의 붉은 담장 네귀에 삼엄한 또치까를 앉힌 우중충한 붉은 벽돌담장, 2메터도 넘는 그 붉은 담장에 옹위되여 있는 미색의 건축물-룡정시 륙도하로 869번지. …(2012-11-22 10:59:41)
우리 력사 바로 알고 삽시다(6) 인기글 “간도협약” 부패무능한 청정부 불평등조약 맺고 고난의 조선인들 이중악박에 모대겨 백두산 “정계비” 청나라 강희황제는 일찍부터 《청일통지(淸一統志)》를 편찬하여 청나라경역을 명확히 하려고 하였다. 물론 청나라-조선 변계가 두만강, 압록강이라는…(2012-11-22 10:59:03)
조선 조·한 경제합작 조속 회복하려 인기글 조선 조·한 경제합작 조속 회복하려2012-11-16 13:59 래원:인민넷 인민넷이 11월 16일 서울에서 한국련합뉴스를 인용하여 보도한데 따르면 조선이 한국과의 경제합작을 회복하기 위해 한국기업이 조선에 투자하여 개설한 공장을 완미하레 관리하고있다고 한 기업인이 15일 밝혔다. 그들의 기업은 조선에 마늘가공공장을 앉혔다. 그는 15일 한국련합뉴스의 취재를 접수하였을 때 전날 2년 6개월만에 조선을 방문하고 공장을 둘러보았다고 하고나서 조선측에서 공장의 시설을 잘 관리하였다고 하고…(2012-11-22 07:51:53)
조선족기업인들이 개발한 제주도 별장 판매 인기몰이 인기글 구매자에 영주권 부여, 후세까지 사유재산으로  (흑룡강신문=칭다오) 박영만 기자 = 지난 11월 9일부터 3일동안 칭다오 백리광장에서 진행된 ‘해외유학 및 해외부동산 판매전시회’에서 다롄의 조선족기업인들이 개발하여 판매하는 ‘제주도빅토리아관광리조트’ 프로젝트가 수많은 현지 고객들의 흥취를 자아냈다. 칭다오일보, 칭다오석간, 칭다오라디오방송, 칭다오TV 등에서 연일 해당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홍보물을 쏟아내고 많은 칭다오시민들이 구매의향을 밝히는 등 인기몰이를 이어갔다.  전…(2012-11-22 07:23:53)
월드옥타 中연변지회장에 허재룡씨 인기글 (선양=연합뉴스) 신민재 특파원 =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중국 연변·연길지회는 20일 정기총회를 열고 신임 회장에 허재룡(50) 연변룡성일진비닐채색유한공사 대표를 추대했다고 21일 밝혔다.신임 허 회장은 다음달 20일 제4대 회장 취임식을 갖고 2년의 임기 동안 지회를 이끌게 된다.유대진 현 회장은 이달 초 월드옥타 본회 부회장에 선임됐으며 연변·연길지회의 명예회장으로 활동할 예정이다.월드옥타 연변·연길지회는 지난 2007년 2월 창립돼 현재 142명의 동포 기업인이 회원으로 …(2012-11-22 07:05:25)
우리 력사 바로 알고 삽시다(5) 인기글 피눈물의 지팡살이 지주 지방관청 일본제국주의의 수탈에 녹아나는 조선족농민들 포산호의 억울함태고연한 원시림과 잡목이 우거진 황지에서 흰…(2012-11-20 05:46:42)
"조선족무형문화재, 부(富) 창조하는 문화콘텐츠" 인기글 한국외대 문화콘텐츠 콜로키움… 장경률 전 연변일보 신문연구소장올해 퇴임한 장경률 전 연변일보 신문연구소장은 "우리민족 고유의 '아리랑'이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등재를 앞두고 있는 것은 정말 축하할 일이다"며, "다만, 문화란 '국경'을 넘어 인류 모두가 향유해야 할 자산이란 것을 인식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했다.장경률 전 소장은 한국외대 글로벌문화콘텐츠연구센터(센터장 임영상)가 지난 14일 한국외대 대학원에서 개최한 문화콘텐츠 콜로키움에서 '무형문화재, 중국 조선족의 가장 큰 정신…(2012-11-19 07:52:56)
우리 력사 바로 알고 삽시다(4) 인기글 벼꽃향기 거치른 벌판에 벼꽃향기 싱그럽고 조선족농민 “어곡전”까지 다뤄 첫 수리공사 “연변의 벼농사는 우리 조선족에 의해 시작되였습니다. 력사적으로 보면 고구려나 발해시기에 이곳의 벼농사는 이미 시…(2012-11-19 06:55:02)
[열람중]우리 력사 바로 알고 삽시다(3) 인기글 고난의 조선족간민 문전옥답 치발역복하지 않았다고 정부에 빼앗기고 사지안에 들었다고 영문 모른채 점산호에 빼앗기고 조선간민구1881년,청정부는 동…(2012-11-19 06:26:01)
우리 력사 바로 알고 삽시다(2) 인기글 룡정시 개산툰진 선구촌 제6촌민소조에서 보이는 꼬리섬. “간 도” “월강죄” 두려워한 거짓말 “간도농사” 향연짙은 력사의 지명ㅡ“간도”로 …(2012-11-18 08:15:25)
우리 력사 바로 알고 삽시다(1) 인기글 월 강 곡 이 땅에 정착하게 되는 민족의 전주곡 애달픔 맺혀있는 겨레의 슬픈 노래 1 겨울 두만…(2012-11-18 06:47:51)
한국 경주대, 하얼빈에 한국어학당 개소 인기글 한국 경주대학교(총장 이순자)가 중국 하얼빈에 한국어학당을 개소했다.  경주대는 지난 12일 이순자 총장, 이준희 교수(관광중국어학과), 차원현 교수(국제한국어교원학과), 헤이룽장성 하얼빈시제9중학교 허웨이 부교장을 비롯한 관계자와 현지 학생 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경주대학교 한국어학당 개소식을 가졌다.  경주대는 현지강사 및 한국인 교수를 파견해 한국어학당을 운영할 계획이며 교육은 경주대학교와 업무협정이 체결된 현지 중국인 학생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이순자 총장은 "중국 현지에…(2012-11-15 08:38:35)
中기자 "北위화도 경제특구 가보니…" 인기글 주민 1만3천여명 농업 종사…기반시설 낙후(선양=연합뉴스) 신민재 특파원 = "도로는 온통 흙길이고 고층 건물은 없다. 흙으로 만든 오래된 집에 사는 주민은 뜰에 채소를 많이 심어놨는데 위화도 특구 전체가 마치 세상과 동떨어진 별천지 같다."중국 환구시보(環球時報)가 14일 북·중이 공동 개발을 추진 중인 북한 위화도 경제특구의 현재 상황을 취재한 기사를 실어 관심을 끌고 있다.환구시보는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회사로 국제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룬다.신문은 북한이 외국 기자에 위화…(2012-11-15 07:39:07)
"아리랑의 中 무형문화유산 등재는 조선족의 자랑" 인기글 "아리랑의 中 무형문화유산 등재는 조선족의 자랑" 장경률 전 연변일보 신문연구소장, 한국외대 콜로키엄서 주장 (서울=연합뉴스) 홍덕화 기자 = 중국이 최근 아리랑을 '문화유산'에 선정함으로써 한·중 간 문화적 갈등 조짐이 일고 있는 것과 관련해 "한국과 조선족 사회가 함께 아리랑을 보존, 발전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장경률 전 연변일보 신문연구소장은 15일 오후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문화콘텐츠연구센터(센터장 임영상) 주최로 서울 한국외대 BRICs 화상강의실에서 열린 …(2012-11-15 04:56:38)
조선족 전철수 黨 중앙위원…김진길 후보위원(종합 인기글 조선족 전철수 黨 중앙위원…김진길 후보위원(종합) 中 18차 당대회 주석단에 진입한 조선족 전철수(서울=연합뉴스) 홍덕화 기자 = 재중동포로 8일 개막된 중국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시진핑 국가부주석, 리커창 상무 부총리 등과 함께 247명으로 구성된 주석단에 포함된 전철수(全哲洙·60) 당 통전부 부부장. 지린(吉林)성장 출신인 전 부부장은 15~17기 중앙후보위원에 연속 선출됐고 제8기 전국인민대표대회와 1…(2012-11-15 04:53:40)
게시물 검색

공지사항 2024년 龍의 힘찬 기운을 받아 건강부자가 되세요
延边聖山本草商贸有限公司(연변성산본초상무유한공사)微信 138-4339-0837 카톡전화번호 010-4816-0837
Copyright © 2006 吉ICP备2020005010号 住所 :延吉市北大新城 2号楼3010
企业法人注册号(법인사업자 등록번호):222400000012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