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장례전도사를 선택한 조선족 사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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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작성일 :11-07-25 09:22|본문
직업의 귀천을 떠난 특수한 선택
그가 선택한 업종은 말그대로 특수했다.타계한 사람이 생기면 곧 달려가 의전행사를 치뤄주는 직업으로 그는 이 업종에 종사한지도 어언 7년 세월 잡는다.한국에 가 있는 중국인으로서 유일하게 장례전도사로 있는 그가 바로 효은상조의전 리동욱대표,직업의 귀천을 떠난 그의 특수한 선택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재한 조선족으로서는 유일한 장례전도사
“우연한 기회에 장례식장에서 근무하고있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데 저를 보고 한번 배워 보지않겠는가고 권고했지요.처음에는 거부감이 없지않았으나 슬그머니 호기심이 갔습니다.어떻게 할것인가 며칠 동안 고민하던 끝에 이런 분야를 찾는 사람이 매우 드물것이라는 생각에 배워보기로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와같이 이 직업을 선택한 계기에 대해 간단명료하게 설명했다.한 동료의 소개로 어느 장례식장에 들어가 8개월 동안이나 이 분야의 지식을 배웠다고 했다.초기에는 좀 망설이기는 했지만 차차 시간이 지나면서 장례 역시 하나의 문화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다.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그는 이 업종이야말로 자기 적성에 맞는 직업이라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고 모름지기 잘 배워야 하고 또 잘할수 있다는 신심도 생겼다.장례 내용과 절차를 하나하나 메모하면서 기억하고 전문 강의를 들으면서 관련 지식들을 장악하기에 무척 애를 썼다.
이 특수한 업종을 배움에 있어서 무엇보다도 담량과 의무감이 중요했다고 리동욱은 자기의 체험담을 털어놓았다.초기에는 사망자의 시신을 처리하고 안치하는 등 절차에서 자기도 모르게 강렬한 거부감이 생겨 상당 기간 손을 댈수가 없었으며 때로는 밥맛이 떨어지고 실면하는 등 증상으로 엄청난 고생을 치뤘다고 말했다.
“이 특수한 직업에 적응하는데 반년은 넘어 걸렸던 것으로 기억됩니다.적응 시간이 필요했던거지요.관건은 의무감이였습니다. 이미 타계한 사람을 반드시 편하게 보내야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서 비로서 거리감은 없어지고 모든 일을 정상적으로 할수 있었습니다.”
2006년 리동욱은 현대종합상조에 입사하여 정규적인 교육을 더 받았고 2년후에는 한국에 이름있는 재향군인 상조에 근무하면서 여러 방면의 실무를 보다 확실하게 익혔다.그는 허심하게 배우고 착실하게 일한데서 2년동안 행사팀장으로도 있었다.4,5년간 게으름없이 꾸준히 노력하여 재한 조선족으로서는 최초로 1급장례전도사 자격을 취득,같은 업종에서 인정받는 전문가로 성장했다.
그는 특수한 정신적 자세와 신분을 갖춘 인간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장례문제는 아무 때든 현실적으로 다가올수 있는,회피할수 없는 문제다. 물론 이 업종을 천한 직업으로 보는 사람들도 없지 않겠지만 오늘 장례전도사로 된 리동욱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어떻게 보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고 했다. 그는 자신을 특수한 지식과 정신적자세를 갖춘,특수한 신분의 인간이라고 자칭하고있다.이 세상 사람치고 누가 마지막 길이 없겠는가.이런 의미에서 자신이 하는 일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하고 가장 필요한 업종의 하나라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예 전문 중국인을 위한 상조회사를 건립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였다.
“이 몇 년간 한국에 중국인 수자가 급속해 불어나면서 장례를 치러야 할 중국인들도 엄청 늘어났습니다.허나 객지에 있다보니 불편한 점이 많았지요. 아는 사람도 별로 없는 상황에서 갑자기 사망자가 나타나면 조급증으로 어쩔바를 몰라합니다.할수없이 당지 상조를 리용하나 장례비용이 만만치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지요.”
허나 조선족으로 상조회사를 설립단다는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였다.우선은 투자가 필요했고 다음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 믿어주겠는가가 의문이였다.리동욱은 한동안 당지 상조회사의 의전대행을 하면서 거듭되는 료해와 심사숙고를 거쳤다.그 과정에 장례비용 및 일처리 방식에서 당지 상조회가사 중국인들에게는 적합하지않는 부분이 있음을 실감, 자체 회사가 있어야겠단는 필요성을 거듭 인식했다.
중국인들을 위한 자체 회사를 설립해야겠다는 결심을 갖게된것은 이보다도 어느 한 중국인이 의외의 사고로 갑자기 사망했으나 그 가족을 찾지못해 애를 먹었던 일이 있은후부터였다.사망자의 신분을 확인할수있는 그어떤 증명자료도 찾을수 없었던것이다.이럴 경우 사망자의 신분이 확인될때까지 장례를 치를수가 없게 되는데 나중에는 정부의 무인고 처리를 받게 된다.객지에 나와 있는 사람들에게 이와같은 상황에 부딛치면 제일 난감한 일이다.
“사망자의 시신을 목격하면서 전 너무 측은하고 불쌍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사랑하는 가족을 놔두고 잘 살아보겠다는 일념으로 뼈빠지게 일하다가 현장에서 뜻하지않던 봉변을 당한 그,허나 그 가족들은 아무도 모르고 있을것이니 얼마나 비통하고 원통한 일입니까.같은 조선족으로서 저는 당시 무어라 말할수없는 슬픔과 아픔을 느꼈습니다.죽어서도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고 아무런 대우도 없이 내버려진 이들을 누군들 알아주겠습니까?누가 어떻게 말하든 제가 하는 일은 고향사람들을 위한 것이라 생각되기에 자부감을 느낌니다. “
지금도 가끔 신분을 확인할수 없는 사망자가 있어 도와달라는 요청이 들어오는데 이때마다 이동욱대표는 중국영사관 아니면 여행사를 찾아다니며 신분확인을 위한 조사에 나선다고했다.최소한의 인적 사항에 따라 하는 일이라 다반수가 쉽게 풀리지 않는 실정이라 해석했다.특히 불법체류자일 경우 신분확인이 더욱 어려워 시신도 처리못하고 상당기간 미룰수밖에 없다한다.여기저기 뛰여다니며 겨우 신분을 밝힌 후에는 또 산재보험수속,가족과의 련계 등 후속처리가 있어야하는데 그 수속절차가 복잡해 이에 소모되는 정력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같은 동포를 돕다는 의무감에서 끝까지 책임진다고 했다.
2009년 3월 이동국은 외국인이 가장 많이 집결돼 있는 대림동에서 효은상조회사를 오픈했다. 그는 장례비용을 많이 절감하고 중국인들에게 알맞는 맞춤형 장례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나름대로의 운영체계를 구축,고객들로부터 비용이 합리하고 봉사가 깎듯하다는 평가를 받았다.그의 소개에 의하면 효은상조는 가입비 없이 저렴하게 리용할수 있으며 100% 후불제라 했다.또 효은상조 상품은 3일장 기준이고 지정 장례식장을 리용할시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이와같은 최적의 장례비,고품격의 서비스는 중국인들에게는 적격이여서 찾는 고객이 점점 많아졌다.아무때든 비보 소식을 알리는 전화가 오면 전국 어디에든 달려가 접수한다고 했다.지금은 중국인들뿐만 아니라 한국인들도 적지 않게 찾아 일손이 딸리는 형편이다.현재 효은상조에는 직원이 8명에 관리팀장 5명이 있다.
장례는 인간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특수한 업종
효은상조는 이미 동류 업종에서 비교적 정규화한 장례 전문으로 자리를 굳혀 서울권에서든 지방에서든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그 지명도가 높다. 허나 필경은 특수한 업종인것만큼 친구들과 가족 및 사회로부터 직시되는 시각이 달라 한동안 주춤했고 마음적인 진통도 겪지 않을수 없었다고 하면서 힘들었던 한단락의 경력에 대해서도 감추지않았다.
“초기에 많은 친구들이 장례식장에 드나드는 나를 보고 세상 할 일 없어 그런 업종에 손을 대는가고 나무람했습니다.그런 곳에 다니는 사람은 불길하다면서 알은체도 하지 않았지요.허나 나는 속으로 이 업종이 인간생활에서 없어서는 안될 특수한 업종으로서 누구든 해야만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이제 시간이 가면서 나의 역할이 알려지기만 하면 그네들도 리해할 날이 있을거라고 자신을 위안 했지요.”
원래 익숙한 사람들로부터 자신이 외면당하는 건 그렇다치고 근심걱정에 쌓여 잠못이루는 안해와 어머니 그리고 그 외 념려를 하고있는 가족들의 모습을 보면서 몇번인가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었다고 그는 회억했다.어머니는 네가 그 일을 해낼수 있겠냐하고 수십번이나 반문했고 안해는 친척친우들로부터 외면당하는게 가슴아프다면서 몇 번인가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럴때마다 리동욱은 마지막 가는 사람을 위해 장례를 치러주는것이 결코 천한 일이 아니며 자신은 귀천을 떠나서 이 중요한 선택을 할것이라며 그 리유에 대해 차근차근 해석해 주었다.사회적으로도 중국에서 온 조선족이 장례전도사로 되겠다?해낼수 있을가?라는 여론이 있어 그에게는 정신적인 부담이 되었다. 허나 한번 먹은 마음 쉽게 포기할수 없는 그였다.그는 몇 년동안의 피타는 노력을 거쳐 마침내 사회가 수요하는,그가운데서도 중국동포가 더욱 필요로 하는 이 특수업종에서 하나같이 인정받고 존경받는 지명인사로 부상한것이다. 그는 장례를 마친후 가족들이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면 제일 기쁘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1급장례전도사로 성장한 리동욱은 최근 중국과 한국의 장례문화연구에 몰두하고있다고 밝혔다.중한 장례제도 차이,전통장례방식 및 그 력사 등에 대해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 목적은 금후의 장례문화 추세와 발전방향을 제시하기 위한데 있다고 했다.중국과 한국의 장례문화를 비교하여 상호 보완하고 또 미흡한점들을 개선해야 한다는게 그의 소견이였다.중국은 현재 사망자에 한해 신분여하와 귀천을 불문하고 100% 화장한다.허나 한국은 세부적인 면에서 중국과 다른점이 많다.화장시설이 선진적이고 상조가 체계화 되어있다.전에 매장문화가 위주였지만 지금은 사람들의 관념이 바뀌여 60% 이상이 화장을 한다고 한다.장례문화도 사회물질문명과 관계되며 한 나라 한 민족의 전통습관,전통의식과 관계되기떄문에 비교적 복잡한 연구테마라고 리동욱 대표는 해석했다.
“이 몇 년간 보다 정규화하고 체계적인 상조회사로 거듭나기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아직도 미흡한 점이 적지 않으며 힘도 미약합니다.허나 이미 이 업종에 발을 붙힌이상 어려운 점을 극복하면서 믿음이 있고 실속이 있는 회사로 키워갈것입니다.저는 신심이 있습니다.”
이동욱대표는 고향이 중국흑룡강성 아성시,중국에서 한때 한국기업에 근무도 하고 중화료리 음식점에서 지배인으로도 있었으며 어느 려행사 가이드로도 있은 경력이 있다. 2001년에 한국에 입국하여 부부가 함께 아껴 먹고 아껴 쓰며 번 돈으로 효은상조회사에 투자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