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조선어교육과 교육환경, 더이상 방치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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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11-02-17 02:50|본문
딸애가 유치원에서 배워오는 말들이 심상치 않다. 보고 듣는 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철부지아이들이 유치원선생님과 학부모들로부터 가난하고 낙후하던 시절에 사용했던 비표준어, 사투리와 유치한 속어들까지도 그대로 전수받아 스스럼없이 구사한다. “틀린 말”, “나쁜 말”, “사투리” 하면서 바른 말 고운 말로 시정해주지만 개인적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소, 중, 고 학생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들어봐도 과거 ‘평양어’와 함경도사투리, 연변속어와 중국어나 다름이 없는 짬뽕언어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퉁명스럽고 거칠고 그냥 뱉어버리면 주어서 집에 가서나 맞춰 뜻을 알 수 있는 언어구사,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배운 것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거리낌 없이 ‘전수’시키고 있는 것이다. 지적하고 시정해 주면 “그게 어째?!”하면서 당연한 것을 괜스레 문제 삼는다는 식이다.
낙후한 조선어는 이미 한국에서 그 진가를 충분히 증명 받았다. 한국을 다녀온 3분의 2를 웃도는 조선족들이 절실히 통감하는 것이 우리의 조선어교육과 교육환경으로는 한국인들과 교제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조선어교육과 교육환경을 개선하면 된다. 그러나 한중수교 20년을 맞도록 교육계와 학계는 그렇다할만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낙후한 조선어를 은근슬쩍 한국어로 둔갑시키고 있다.
문자는 언어와 언어 환경을 전제로 한다. 조선족의 미숙한 언어표현은 미숙한 문자사용으로 이어진다. 한 번은 딸애가 유치원에서 백자 남짓한 통지문을 들고 왔는데 통지문격식을 갖추지 못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부적절한 단어사용과 아수라장인 문장구성, 개념을 잃은 맞춤법 때문에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유치원생을 가르치는 사범학교 졸업생뿐만 아니라 중, 고생을 가르치는 연변대학 조선어문학부 졸업생들의 조선어수준도 혀를 내두를 수준이다.
조선어교육환경이 되어야 하는 조선어방송, 신문, 잡지와 서적들은 편집인을 위한 ‘조선어맞춤법’이 따로 있어 다행히 격식은 갖추고 있으나 작품의 용어사용과 표현방법, 표현수법이 낙후하고 한국어의 인명, 지명과 서로 달라 혼란스러우며 한국어의 두음법칙과 대조되어 보고 듣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다. 이는 한국을 다녀온 3분의 2를 헤아리는 조선족인구에게 자체의 낙후성 때문에 외면당한 방송, 신문, 잡지와 서적이 되었다는 증거이다.
조선족의 한국행은 이미 2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이미 대부분의 조선족가정에서 한국방송을 수신하고 한국적 생활양식을 추구하며 한국어 구사를 전혀 낯설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런 부모들이기에 당연히 자녀들이 한국인들과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지기를 바란다. 그러나 오늘의 조선어교육과 교육환경으로는 한국인들에게 기피당하고 왕따 당하는 부모들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
오늘날 전 중국이 한국어를 배우는 열조에 휘말려 있다. 어느 날 한국어를 구사하는 한족들에게 ‘기피’ 당하고 ‘왕따’ 당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비록 늦었지만 조선어가 환골탈태의 획기적인 전변을 가져와야 한다.
우선, 낙후한 조선어의 기조를 벗어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조선어에 잠재되어 있는 비표준어, 사투리와 듣기 난감한 속어를 지양하는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 바른 말 고운 말을 쓰고 남을 배려하는 언어, 예의 바른 조선어교육과 교육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다음, 분명한 언어구사, 적절하면서도 논리적인 표현법 사용과 언어의 순발력 제고, 창의력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 앞뒤가 맞지 않고 무슨 말을 할 지 몰라 뜸을 들이고 곁에서 ‘귀뜀’해 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조선족들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끝으로 한국어의 두음법칙을 받아들이고 조선어의 인명과 지명을 한국어의 인명과 지명으로 통일하여야 한다. 두음법칙은 문장에서 뿐만 아니라 언어에서도 장애를 일으키고 있다. 한국어의 외국어 인명과 지명은 조선족들이 제일 해독하기 어려워하는 난제이다.
조선어교육의 개혁은 교원대오의 변화와 교육환경을 만드는 학자, 작가, 기자들의 변신이 선행되어야 한다. 한국연수교육이 격려되어야 한다. 정리 실업되어 한국에서 노동생활에 종사하고 있는 조선어교원 출신과 조선어문학부 졸업생들을 합리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그들만큼 조선어에 기초를 두고 한국어에 익숙한 사람들이 없다.
방대한 학자, 작가, 기자들도 ‘동네 상’에 연연하지 말고 한국작품과 기사에 비하고도 남는 작품과 기사창작에 열중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한 차원 높은 조선어교육환경이 조성되고 조선어방송과 신문, 잡지와 서적들이 시청자와 구독자를 돌려받을 수 있으며 더불어 한국인들과 경쟁할 수 있는 조선어교육과 교육환경이 주어질 수 있다.
소, 중, 고 학생들이 주고받는 대화를 들어봐도 과거 ‘평양어’와 함경도사투리, 연변속어와 중국어나 다름이 없는 짬뽕언어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퉁명스럽고 거칠고 그냥 뱉어버리면 주어서 집에 가서나 맞춰 뜻을 알 수 있는 언어구사,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배운 것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거리낌 없이 ‘전수’시키고 있는 것이다. 지적하고 시정해 주면 “그게 어째?!”하면서 당연한 것을 괜스레 문제 삼는다는 식이다.
낙후한 조선어는 이미 한국에서 그 진가를 충분히 증명 받았다. 한국을 다녀온 3분의 2를 웃도는 조선족들이 절실히 통감하는 것이 우리의 조선어교육과 교육환경으로는 한국인들과 교제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러면 조선어교육과 교육환경을 개선하면 된다. 그러나 한중수교 20년을 맞도록 교육계와 학계는 그렇다할만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으며 오히려 낙후한 조선어를 은근슬쩍 한국어로 둔갑시키고 있다.
문자는 언어와 언어 환경을 전제로 한다. 조선족의 미숙한 언어표현은 미숙한 문자사용으로 이어진다. 한 번은 딸애가 유치원에서 백자 남짓한 통지문을 들고 왔는데 통지문격식을 갖추지 못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부적절한 단어사용과 아수라장인 문장구성, 개념을 잃은 맞춤법 때문에 아연실색하고 말았다. 유치원생을 가르치는 사범학교 졸업생뿐만 아니라 중, 고생을 가르치는 연변대학 조선어문학부 졸업생들의 조선어수준도 혀를 내두를 수준이다.
조선어교육환경이 되어야 하는 조선어방송, 신문, 잡지와 서적들은 편집인을 위한 ‘조선어맞춤법’이 따로 있어 다행히 격식은 갖추고 있으나 작품의 용어사용과 표현방법, 표현수법이 낙후하고 한국어의 인명, 지명과 서로 달라 혼란스러우며 한국어의 두음법칙과 대조되어 보고 듣기가 여간 불편하지 않다. 이는 한국을 다녀온 3분의 2를 헤아리는 조선족인구에게 자체의 낙후성 때문에 외면당한 방송, 신문, 잡지와 서적이 되었다는 증거이다.
조선족의 한국행은 이미 2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부정할 수 없는 것은 이미 대부분의 조선족가정에서 한국방송을 수신하고 한국적 생활양식을 추구하며 한국어 구사를 전혀 낯설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런 부모들이기에 당연히 자녀들이 한국인들과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지기를 바란다. 그러나 오늘의 조선어교육과 교육환경으로는 한국인들에게 기피당하고 왕따 당하는 부모들의 전철을 밟을 수밖에 없다.
오늘날 전 중국이 한국어를 배우는 열조에 휘말려 있다. 어느 날 한국어를 구사하는 한족들에게 ‘기피’ 당하고 ‘왕따’ 당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비록 늦었지만 조선어가 환골탈태의 획기적인 전변을 가져와야 한다.
우선, 낙후한 조선어의 기조를 벗어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조선어에 잠재되어 있는 비표준어, 사투리와 듣기 난감한 속어를 지양하는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 바른 말 고운 말을 쓰고 남을 배려하는 언어, 예의 바른 조선어교육과 교육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다음, 분명한 언어구사, 적절하면서도 논리적인 표현법 사용과 언어의 순발력 제고, 창의력교육이 병행되어야 한다. 앞뒤가 맞지 않고 무슨 말을 할 지 몰라 뜸을 들이고 곁에서 ‘귀뜀’해 주기를 기다리는 것이 조선족들의 보편적인 현상이다.
끝으로 한국어의 두음법칙을 받아들이고 조선어의 인명과 지명을 한국어의 인명과 지명으로 통일하여야 한다. 두음법칙은 문장에서 뿐만 아니라 언어에서도 장애를 일으키고 있다. 한국어의 외국어 인명과 지명은 조선족들이 제일 해독하기 어려워하는 난제이다.
조선어교육의 개혁은 교원대오의 변화와 교육환경을 만드는 학자, 작가, 기자들의 변신이 선행되어야 한다. 한국연수교육이 격려되어야 한다. 정리 실업되어 한국에서 노동생활에 종사하고 있는 조선어교원 출신과 조선어문학부 졸업생들을 합리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 그들만큼 조선어에 기초를 두고 한국어에 익숙한 사람들이 없다.
방대한 학자, 작가, 기자들도 ‘동네 상’에 연연하지 말고 한국작품과 기사에 비하고도 남는 작품과 기사창작에 열중하여야 한다. 그래야만 한 차원 높은 조선어교육환경이 조성되고 조선어방송과 신문, 잡지와 서적들이 시청자와 구독자를 돌려받을 수 있으며 더불어 한국인들과 경쟁할 수 있는 조선어교육과 교육환경이 주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