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美 봉제공장서 일하던 소년, 글로벌 기업가로 우뚝...엘살바도르 한인회장 하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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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9-02-03 00:32|본문
美 봉제공장서 일하던 소년, 글로벌 기업가로 우뚝...엘살바도르 한인회장 하경서
[인터뷰365 박상훈 기자]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입니다. 사업도 결국은 같이 일하는 사람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어야 성공합니다. 주변 사람에게 웃음을 주며 사랑을 나누면서 살고싶습니다."
10살 나이에 미국으로 간 한국 소년은 어머니의 봉제 공장일을 도우며 학업을 이어갔다. 재봉틀을 돌리며 공장의 배달 업무까지 맡아 일하는 10대 소년의 성실함을 알아본 거래처 공장 사장님은 공장 인수를 제안했다. 그 때의 기회를 시작으로 중미 엘살바도르의 글로벌 기업 '카이사'가 탄생했다.
3000억대 매출을 올리는 '카이사'를 이끄는 하경서 회장(1962~)은 미국 이민 후 약 40년만에 봉사를 실천하는 아메리카 대륙 엘살바도르의 거상이 됐다.
하 회장은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에 이어 한국인으로는 두 번째로 엘살바도르 국회의원들의 만장일치로 수상이 결정되는 엘살바도르 '아미고 노블레상(귀중한 친구)' 수상자로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의 목표는 간단하다. 사업의 목표도, 인생의 목표도 '행복' 이다. 하 회장은 "행복이란 자신만의 행복이 아닌 모두의 행복"이라고 말했다. 회사의 직원, 이웃이 행복하도록 가진 것을 다 나누고 싶다는게 그의 철학이다.
이를 위해 하 회장은 '나눔의 기쁨'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매출에 해당되는 3000억 원의 1% 이상을 미혼모·고아 등을 위해 기부하고 있다. 미성년 미혼모에게는 직업 교육과 장학금을 제공하는 '가로보(GARROBO)'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한편 현지의 16개 고아원을 후원하고 있다. 교육과 복지를 통해 자립을 돕는다. 사내에서도 유치원, 예배당, 병원, 운동센터를 운영하며 직원들이 행복하게 일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엘살바도르 한인회장이자 한글학교의 교장, 카이사 그룹의 회장 하경서 씨를 전세계 한인 회장들의 모임이자 재외동포재단이 주최하는 '2018 세계한인회장대회'에서 만났다.
◆ 한국에서 미국으로, 미국에서 엘살바도르로
-한국을 찾은 소감은.
엘살바도르와 한국 양국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번 행사처럼 기회가 될 때마다 참석하고 있다. 대한민국에 엘살바도르 한인들의 존재감을 알리고 싶고, 엘살바도르 한인들을 대표한다는 생각에 기쁘게 참여하고 있다.
-미국 이민 생활은 어땠나. 미국 이민 후 엘살바도르에 정착하게 된 계기는.
10살이 되던 해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됐다. 영어를 못하니 고생이 많았다. 그나마 영어를 몰라도 수업을 따라갈 수 있었던 수학을 제외하곤 다른 과목은 정말 힘들었다. 대학교 때까지 학교를 다니면서 봉제 공장에서 일하시는 어머니를 도왔다. 그러다가 공장 사업 확장을 위해 중미 엘살바도르로 정착해서 살게 된거다.
-가족 관계는.
아내와 두 아들이 있는데, 큰아들은 올해 스물셋이고 국제단체에서 봉사 일을 하고 있다. 작은아들은 스물두 살이고 경영학을 전공한다. 아이들은 LA에서 태어나 엘살바도르로 다 같이 왔다가 대학생이 되면서 유학떠났다. 지금은 가족 모두 각자의 일을 하면서 흩어져서 살고있다. 글로벌 시대니까. (웃음)
-사업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 계기가 있었나.
어머니의 봉제공장 일을 도우며 트럭으로 옷을 배달하던 때였는데, 내게 놀랄 만한 제안이 들어온거다. 그때 만난 거래처 대표가 나를 좋게 봤는지 감사하게도 공장 인수를 제안해왔다. 처음으로 사업의 기회가 온거다. 대학교 3~4학년 때 쯤 거래처 컨설턴트로 들어가서 일을 하다가 공장을 인수하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또 대학교때 실무경영을 가르쳐줬던 사업가들에게도 큰 도움을 받았다. 봉제 공장 사업의 규모를 키우면서 중미 엘살바도르로 진출하게 된거다. 섬유사업과 패키징을 주요 사업으로 하고 있다. 그 외 잔잔한것들도 많은데 기회가 되거나 아이디어가 좋으면 투자한다. 중미는 인프라가 부족하기 때문에 서로 믿을만한 회사들이 모여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서로 이끌어주는 분위기가 있다.
-기업가로서의 활동 뿐 아니라 엘살바도르에 거주하는 한인들을 대표하는 한인회장 활동에도 열정적이다. 엘살바도르 한글학교에서 교장선생님도 맡고 있다.
한글학교는 나의 가장 큰 욕심이다. 아이를 키운 부모의 입장에서 엘살바도르 한인 아이들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했다. 처음에는 임대료 때문에 학교를 일년에 한번씩 옮기기도 하고 학교 물건을 도둑 맞기도 하고 여러 어려움이 있었다. 지금은 안전한 지역에 정착해서 학교를 세웠다. 학생들은 4~50명정도 된다. 작년에는 고등학생이 많았는데 다들 졸업해서 한국, 미국으로 공부하러 갔다. 요즘엔 두살부터 네살 학생들이 많다.
◆ 돈보다 사람...가장 중요한것은 행복
-성공한 기업가로 2013년 한국의 한 다큐멘터리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는데. 자전거를 타고 사무실을 돌아다니며 직원들과 서스럼없이 소통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내 생각에 회사가 잘 돌아가려면 회사안에 나 같은 '돌아이' 같은 사람이 한 명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데 직원보다는 사장이 '돌아이' 인 게 낫지 않겠나.(웃음) 그런데 술 마시고 '돌아이 짓'을 하는 것보단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며 직원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게 낫다고 본다. 드러다보니 직원들이 자연스럽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하더라.
-사업가로서 가장 중요하게 꼽는 요소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늘 개방적인 생각을 하려 노력한다. 사실 사업은 세 가지만 있으면 성공한다. 돈, 아이디어, 사람. 이 세 가지가 뭉치는 것이 굉장히 힘들다. 세 가지 중 하나만 빠져도 부도가 나던지 제대로 돌아갈 수가 없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세 가지만 얘기하면 아내가 하나 빠졌다고 한다. 제일 중요한 것은 '행복'이다. 나와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행복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그래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 역시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직원 복지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
(카이사 그룹은 지역 현지인들의 삶의 질 향상과 한인회 인지도 제고를 위해 미혼모, 고아, 미성년 미혼모 지원사업 '엘 가로보'를 엘살바도르 한인회차원의 사업으로 확대했다. 또, 실습생 14~18세 미혼모를 대상으로 2년간 실습 기회를 제공해 봉제기술, 디자인, 제품라인 개발 등과 함께 사회생활이 가능하도록 기본 학습을 통한 교육의 기회도 제공한다.)
사업을 해보니 돈을 벌어주는 것은 기계가 아니라 결국은 같이 일하는 사람이더라. 식구들보다도 서로 더 많은 시간을 같이 일하며 보낸다.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면, 분명히 돈 버는 것이든지 회사를 키우는 것이든지 다른 것은 걱정 안 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직원들에게도 늘 봉사하며 살면 좋은 결과가 오니 늘 겸손하게, 기회가 있을 때 남을 도우며 살라고 말한다.
-직원을 뽑는 본인만의 기준이 있다면.
공부 잘 하는 사람은 별로다 내가 공부를 못해서.(웃음) 공부 잘 하는 사람들은 교수하라고 한다. 공부는 조금 못해도 노력을 많이 하는 친구들. 프로젝트가 실패해도 끈질기게 밀고 나갈 수 있는 참을성이 있는가를 본다. 사실 내가 이 자리까지 오게 될 수 있었던 원동력도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요한건 너무 크게 넘어지기 전에 빨리 '유턴'을 해야 한다. 우리 회사는 직원들에게 많은 기회를 준다. 대신 마음이 깨끗해야 한다. '거짓말'과 '도둑질'만 안하면 어떤 사고를 치더라도 회사에 남아 있으라고 말하는 이유기도 하다. 사고 없이 발전하는 회사는 없다. 그것이 결국엔 다 회사의 자산이 된다.
-과거 북한에서도 사업을 하고 싶다고 했는데 구상하고 있는 사업이 있나.
개성은 이미 꽉 차서 새로 들어갈수 없고 동·서쪽 개발에 참여해 섬유 사업을 시작하고 싶다. 섬유는 세팅할때 돈이 적게 들고 수출도 빨리 가능하다. 한반도 평화가 오면 러시아, 중국 투자자들이 아닌 한국사람들만 투자할 수 있는 지역이 필요하다. 남북관계가 1년사이에 몰라보게 좋아졌는데, 앞으로도 더 발전의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 하경서가 사는 방법
-실패를 많이 했다고 했는데 힘들었던 고비가 있었다면.
사업하면서 사기 한번 안 당해본 사람은 없을 거다. 분명히 산업용 땅이라고 해서 계약했는데 주택용이라서 사용할 수 없다든지, 변호사나 회계사를 잘못 만나기도 했다. 최근에도 마음 고생을 했다. 베트남에서 1000억대의 사기를 치고 잠적한 한국의 한 기업 때문에 베트남에서 일하는 한국 기업 전부가 조사를 받고 블랙리스트에 올랐다. 베트남에 진출한 우리 회사 역시 이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봤다. 피해자들이 더 많이 생기는걸 막기 위해서 대사관에 항의도 했는데, 사기 친 기업이 너무 철저하게 손을 써놔서 별다른 처벌 방법이 없다고 하더라. 속은 터지는데 사업하다 보면 정말 많은 일을 겪는다.
-고난을 극복하고 현재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이 있다면.
어려움이 있을때마다 극복하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첫 번째, 그냥 용서하는거다. 두 번째, 협상을 통해 손해를 최소화한다. 세 번째는 상대 회사가 정말 어려운 사정일 경우인데, 그럴 땐 같이 살아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게 사람 사는 방법이고 사업하는 방법 인 것같다. 마음을 넓게 가져야만 한다.
-성공의 비결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가 교육을 받았고, 미국에서 사업을 시작해 엘살바도르로 갔다. 가능한 많은 경험을 쌓고 그것을 나만의 것으로 만들어 이용했다. 모든것은 장단점이 있다. 나쁜 부분은 덜어내고 좋은 것만 활용할수 있어야 한다.
-해외에서 어려운 시절을 보내고 성공했는데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세상에 홀로 남은 사람처럼,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처럼 밖으로 나가 독립심을 키우라고 말하고싶다. 봉사를 해도 좋고 관광을 해도 좋고. 베트남, 중미, 아프리카 등 해외로 나가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면서 많은 경험을 쌓다보면 스스로 끈질기게 해낼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
-마지막으로 남은 인생 목표는 무엇인가?
나는 이제 돈이 목표가 아니다. 하루 밥 세 끼 먹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이제 노년을 준비하는데 돈만 모아서 뭐하겠나. 돈이나 사업을 자식들에게 물려줄 생각도 없고. 살아 있을 때 같이 나누고 싶다.
어떻게 해서든 나는 같이 일하는 사람을 매일 백번 웃기는 게 목표다. 나도 백번 웃고 싶다. 그러면 오늘 하루 성공한 기분이 든다. 상대방과 웃음을 나누며 사랑을 나누는 거다. 다들 일하면서 하루하루 스트레스가 쌓인다. 같이 앉아 밥 먹으며 농담 나누며 웃으면 스트레스가 풀린다. 늘 웃으면서 사는 것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