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로그인

"조선족은 다가올 동북아시대 소금입니다"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09-03-31 09:59|

본문

"조선족은 소금과 같습니다. 양은 적어도 꼭 필요한 게 소금이죠."
 
이승률 연변과기대 부총장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그 밑바닥엔 조선족에 대한 유별난 사랑이 자리잡고 있다. 그는 16년간 중국 연변 땅을 넘나들며 조선족을 계몽하고 교육해왔다. 조선족에 무관심한 이들로선 그의 깊은 애정이 낯설기만 할 것이다.
 
이 부총장은 원래 건설 쪽 일을 해온 사업가였다. 어느날 아주 특별한 만남을 계기로 삶의 행로가 180도 바뀌었다. 1990년 10월. 이 부총장은 사업차 중국에 갔다. 한-중 수교를 예측하고, 칭다오에 골프장 사업을 하려한 것이다. 그를 위해 중국 실력자(국가 지도자 아들)을 만나러 갔다.
 
공교롭게 약속이 겹쳐 한 한국인이 먼저 실력자와 만나는 모습을 지켜봤다. 미국에서 온 김진경 박사(현 연변과기대 총장 및 평양 과기대 설립총장)였다.
"중국의 젊은이들에게 과학기술을 가르치는 일에 여생을 바치고 싶다. 학교를 세울 수 있도록 도와 달라."
 
김 총장이 실력자에게 부탁한, 바로 이 말이 이승률 부총장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재산 모두를 교육사업에 쓰겠다는 그의 큰 뜻이 자신을 부끄럽게 했던 것이다. 중국의 젊은이는 다름아닌 조선족이었다. 이 부총장은 당시 받은 충격과 감동을 김 총장에게 전하며 동참의 뜻을 밝혔다. 이후 두 사람은 함께 손을 잡고 일을 해왔다.
 
그렇게 해서 1992년 중국의 첫 외국과의 합작대학인 연변과학기술대학(YUST)이 탄생했다. 십수년 불모지에 대학을 세우고 동량을 길러냈으니, 그 의미는 남다를 터다. 하지만 한국과 동북아 미래의 입장에서 보면 단순한 대학 하나의 차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이는 바로 삶과 교육의 젖줄이 되 준 대상이 조선족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조선족인가.
여기에 대한 답은 최근 이승률 부총장이 쓴 `동북아시대와 조선족`(박영사, 2007년)에서 살펴볼 수 있다.
 
"중국의 조선족 사회는 지정학적으로 동북아의 중심에 위치해 있고, 한반도와 중국의 변연에 자리잡고 있다. 또한 조선족 문화는 한반도 문화와 중국 문화의 융합으로 형성된 이중문화구조로, 한중 관계 발전에 독특한 역할을 하고 있다."
 
조선족은 앞으로 전개될 동북아 국제협력시대의 핵심 키워드이며, 중요한 매개체라는 것이다. 책은 한마디로 조선족에 대한 `백과사전`이다.
 
책에 따르면 조선족은 150여년 전부터 중국으로 이주해 현재 200만 정도가 살고 있다. 이 이주의 역사는 우리 민족의 다난한 역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예컨대 혹독한 일제치하엔 이주가 크게 늘었다. 일제가 한반도를 병합한 후 1918년까지 동북지역에 이주한 한민족은 대략 40여만명. 항일 운동 혹은 일제 박해를 피해 고국을 떠난 이들의 애닯은 사연을 웅변해주는 수치다.
 
조선족은 짧은 이주 역사가 말해주듯, 이미 민족성과 우리 문화를 형성한 채 중국으로 건너갔기에, 중국내 타 소수민족과 차별점이 뚜렷하다. 이는 조선족을 낮춰보거나 무관심한 우리의 편견과 선입견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지 보여준다. 이승률 부총장은 바로 이 조선족의 정체성과 중요성을 일찍 깨달은 선각자다.
 
연변과기대의 위상은 중국에 설립된 최초의, 전무후무한 사립대라는 점에서 확인된다. 조선족의 교육과 실용적 학문 학습을 통한 인재 양성이란 뜻을 중국 정부가 이해하고 받아들였던 것이다. 우리쪽에서 보면 한국 역사를 모르는 조선족을 일깨우게 하는 역할을 했다. 조선족 사회 공동체의 등대 역할을 했던 것이다.
 
조선족은 현재 한국, 일본, 몽골, 러시아 뿐만 아니라 미국, 유럽 등까지 활발히 진출해 있다. 하지만 정작 국내에선 조선족을 좀 더 크게 `써먹을` 일은 못하고 있다.
 
이와관련 이 부총장은 "현지서 한국에 진출할 인력에 대한 교육과 취업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며 "하지만 교회나 NGO에서 할 뿐 정부나 기업 차원은 없다."고 전했다.
 
특히 동북아 국제 협력 측면에선 조선족에게 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기대할 수 있다. 조선족의 진로에 대해 이번에 나온 신간 `동북아시대와 조선족`은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다.
 
"조선족은 한중 관계 발전을 위한 중개자가 될 것이다. 일본은 조선족에 대한 인식이나 대우 면에서 우리보다 훨씬 낫다. 지리적으로 가까운 북한과는 민간교류가 계속 넓어지고 있다. 이런 배경은 한- 중관계나 한반도의 평화통일, 더 나아가 동북아 구도에 조선족이 상당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을 낳게 한다."
 
아마도 독자들은 밋밋했던 조선족에 대한 체감 온도가 이 책을 통해 상당히 높아져 감을 깨달을 것이다.
 
요즘, 이 부총장은 몇 년 전부터 북한 쪽에 발걸음이 잦다. 연변과기대의 순수한 취지와 성공사례를 본 북한이 2001년 평양과기대 설립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교육 사업의 씨앗이 중국에서 연변과기대라는 꽃을 피웠다면, 북한에서 아주 알찬 열매를 맺게 된 셈이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09-04-18 13:50:46 출국/비자에서 이동 됨] [이 게시물은 운영자님에 의해 2010-11-27 10:42:30 한민족센터에서 이동 됨]
0

글로벌한민족 목록

글로벌한민족 목록
재한 조선족 생활 보고서 --2 인기글 《힘들게 벌어서 보낸 돈인데…》 한국에 온지 다섯달밖에 되지 않으며 가사도우미를 한다는 50대의 한 조선족녀성은 남편이 1992년 중한 수교전에 한국에 와서 여태껏 남편 혼자 벌어서 자식 둘을 류학공부까지 시켰다며 《한국에 온 사람들이 바보라고 그렇게 힘들게 번 돈을 몽땅몽땅씩 중국에 보내겠는가?》고 했다. 지난 15년간 중국에서 남편의 돈을 받아썼고 오늘은 한국에 와 자기도 힘들게 일해 돈을 벌면서 중국의 현실과 한국의 현실을 다 잘 아는 녀성의 말이였다. 한국에 온지 10년…(2009-03-31 10:39:13)
재한 조선족 생활 보고서 --1 인기글 ―재한 조선족 41명에게서 듣는다 재한 조선족들은 힘들게 돈을 벌어서는 그 돈을 어떻게 소비하고있는가? 어느 정도 송금하고있는가? 그들의 희로애락은 무엇일가? 한국과 중국에서 견우직녀의 부부감정은? 그리고 재한 조선족들이 생각하는 정착지는 어디인가?... 이번 한국에서의 《재한 조선족 삶의 현장》 취재에서 기자는 재한 조선족 32명에 대한 전화취재와 9명에 대한 대면취재를 통해 상술한 문제들을 두고 알아보았다. 전면적이지 못하지만 재한 조선족의 생활현황과 마음을 살펴볼수 있는…(2009-03-31 10:37:34)
중경과 우리 민족 인기글 나는 우리 조선사람이 씨앗같은 기질이 있다고 생각된다. 바람에 이리저리 날려가다가도 여기다 싶으면 떡 물고 널어져서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운다. 중경은 중국 서남지구에 위치한 오지. 이제야 서부대개발이라 니 정말 개혁개방의 늦차를 타도 한참 늦게 탄듯한 감이 든다. 그런만큼 여기는 또 새로운 기회의 땅인지도 모르겠다. 이에 항상 력동적이고 기회의 땅을 찾는 한국사람이 들어온다. 제조업을 비롯한 제1산업, 기간건설을 비롯한 제2산업, 식당, 사우나같은 제3산업-서비스업이 중국정부의 …(2009-03-31 10:34:49)
연변조선족 한국서 2중차별 받아 인기글 한국으로 건너온 중국 조선족 출신의 정모(여·42)씨는 중국 지린(吉林)성 옌지(延吉) 출신이라는 이유로 올들어 두 차례나 가사도우미 면접에서 떨어졌다. 정씨는 “옌볜에서 왔다는 이유로 면접조차 보지 못한 경우도 있다”며 “조선족이라고 차별받는 것도 모자라 출신지역에 따라 또 차별을 받는다”고 토로했다.국내에 체류중인 조선족 출신 근로자들이 중국내 출신지역을 따져 차별하는 ‘조선족 지역차별’로 두 번 고통받고 있다. 특히 중국 지린성의 옌볜(延邊) 지역 출신에 대한 편견이 상대적으로 심해 취업에서…(2009-03-31 10:34:05)
어느 위조여권자의 갈망 인기글 나는 한국에 입국해 9년 세월을 보낸 중국동포 장 영수(가명)이다. 20대의 젊은 나이에 입국해서 벌써 서른 고개를 넘겼다. 지금은 사랑하는 아내, 귀여운 아기와 함께 남부럽지 않은 행복한 가정을 이뤘다. 그래서 가족의 소중함과 책임감을 가슴속 깊이 느끼게 되고, 자기가 진 죄를 더더욱 가슴 저리게 뉘우치게 된다. 나는 요녕성 OO시의 어느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가족의 무거운 짐을 짊어지게 되었다. 농사는 돈이 안 됐다. 1998년 …(2009-03-31 10:33:18)
《돌아와요 연변으로》 인기글 연변태생이 아니여서 이왕에는 연변에 관심이 적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어쩐지 자주 연변이야기가 나온다. 도시에 계시는 부모님들이 그렇게도 자주 그리워서 외우시던 고향산천이 아마도 나의 마음을 움직인것 같다. 연변은 확실히 우리 조선민족의 마음의 고향이였다. 해외에 있을 때 다른 사람들보다 한국의 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들을 때마다 눈시울이 젖어났다. 타향살이 몇해던가 락엽이 뿌리를 찾는다고 아마 그 도리인가보다. 중국에서 살고있는 200만 우리 동포가 삶을 찾아 산지사…(2009-03-31 10:23:24)
조용한 날 없는 가리봉의 밤- 중국동포의 거리 인기글 조용한 날 없는 가리봉의 밤 중국동포의 거리 지난 11월 14일 수요일 밤 10시, 가리봉삼거리에서는 자가용 운전자와 술에 취한 행인 2명과 시비가 붙었다. 행인 한명은 차앞을 가로막으며 막무가내로 비켜주지 않았고 또 한명은 목격자라며 자가용운전자가 고의적으로 차로 사람을 쳤다고 우격다짐으로 따져들었다. 자가용 백미러에 팔을 치였다는 주장이다. 자가용운전자는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그러는 동안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모여들기 시작한다. 30여명의 군중 속엔 구경차 모여든 사람들은 중국…(2009-03-31 10:21:45)
현대판 에덴동산의 겨울동화 인기글 창세기에서 신은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하지만 이브의 유혹으로 아담은 선악과를 먹었다. 신은 이에 대한 벌로써 에덴동산에서 추방하고 이브는 산고의 고통을 아담은 밭가는 고통을 주었다. 하지만 이는 창세기의 내용일 뿐, 종교적 시각이 아니라 인간 삶의 관점에서 재 해석해 보면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것은 그 세계의 아주 중요한 도덕이였을것이다.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고 부끄러움을 느껴 나무잎으로 중요부분을 가리는것이 선악과의 효능이라 한다. 현대사회는 인간을 중심으로 가정을…(2009-03-31 10:17:35)
엎지른 물 뒤늦은 후회 인기글 금년 3월초 43살나는 김씨는 한국에서 불법체류단속에 걸려 11년만에 귀국하게 되였다. 단동시 동강부두에 도착한 그는 봄철 싸늘한 추위에 홀홀 떨며 변방검사소의 벌금을 기다려야 했다. 함께 온 5~6년 불법체류자들은 모두다 자체로 벌금을 내고 순리롭게 통관했지만 불법체류자가운데서도 《고참》인 그는 지갑에 돈이 없어 오직 마중나온 녀동생의 도움을 기다려야만 했다. 오빠를 데리고 나온 녀동생은 떨고있는 오빠가 애처로워 상점에 데리고 가 내의부터 한벌 사입히고 심양으로 가는 고속뻐스에 올랐다.몰라보게 …(2009-03-31 10:14:14)
서울 조선족기업가가 본 중국동포 장·단점 인기글 얼마 전 필자는 연변TV 대외사업부에서 해외출장을 온 기자들과 함께 현재 서울 명동과 대림동에서 대형음식(예식)사업을 하고 있는 연변출신의 조선족기업가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서울에서 13년간 꾸준히 음식업을 경영해 성공한 그는 수많은 중국동포들을 겪어왔고 향수(鄕愁)와 애환(哀歡)을 함께 나누면서 느낀 경험들을 통해 중국동포들의 ‘장점’과 ‘단점’을 지적했다. 10여 년간 그들과 함께 부대끼면서 감수한 것들이어서 신빙성이 높았고 수긍이 갔다. 아래에 그가 본 중국동포의 장·단점(長·…(2009-03-31 10:13:11)
12명 렬사(전우)들의 유골 이름 찾아 14년 인기글 60년전 길림해방전투서 희생된 12명 렬사(전우)들의 유골 이름 찾아 14년 림남석 리규택 로인 오늘도 11명 무명렬사들의 이름 찾는다 60년전인 1947년 11월 7일 길림시를 해방하는 제1차 외곽전투에서 12명 조선족전사들이 영광스럽게 희생되였다. 60년후인 2007년 11월 7일에 그 전역에서 요행 살아남은 렬사들의 전우 림남석(83세)과 리규택(80세)은 렬사들의 유골이 묻혀있는 길림시 풍만구 가룡원렬사릉원에 또다시 찾아와 12명 영령들을 추모하였다. …(2009-03-31 10:07:54)
민족인재의 적극 활용법 인기글 민족인재의 귀중함: 조선족학생이 중국의 대학을 나오고 외국류학까지하고 돌아오자면 적어도 20년이란 긴세월이 걸리지만 그중 우리민족교육과 부모형제가 적어도 소학교부터 고등중학교까지12년이란 기초교육의 전반과정을 책임지고 그모든 경제 및 기타 부담을 감당한것이다. 우리 민족영재들은 중국의 교육제도에서 비교적 합리한 지식과 전업구조를 가지고 있어 200만 인구밖에 안되지만 언어 수학 물리 화학은 물론 철학 미술 영화 교육 항천 기계 로봇 IT BT NT 기업 기술원 교원 경찰 군인 공…(2009-03-31 10:02:09)
[열람중]"조선족은 다가올 동북아시대 소금입니다" 인기글 "조선족은 소금과 같습니다. 양은 적어도 꼭 필요한 게 소금이죠." 이승률 연변과기대 부총장의 말에는 힘이 있었다. 그 밑바닥엔 조선족에 대한 유별난 사랑이 자리잡고 있다. 그는 16년간 중국 연변 땅을 넘나들며 조선족을 계몽하고 교육해왔다. 조선족에 무관심한 이들로선 그의 깊은 애정이 낯설기만 할 것이다. 이 부총장은 원래 건설 쪽 일을 해온 사업가였다. 어느날 아주 특별한 만남을 계기로 삶의 행로가 180도 바뀌었다. 1990년 10월. 이 부총장은 사업차 중국에 갔…(2009-03-31 09:59:23)
한국 회사서 일하는 조선족들의 희와 비 인기글 한국에서의 조선족들의 회사취직은 쉬운 일이 아니였다. 한국에 입국하여 우선 일당으로 노가다판을 전전하면서 사처에 일자리를 부탁하고있었다. 회사취직은 일반적으로 친척, 친구, 아는 사람 등 조선족끼리 서로 부탁하고 소개하며 이뤄지고있었다. 조선족들은 자기가 있는 회사에서 누가 나가거나 새로운 일자리가 생기면 자기가 아는 조선족을 소개해 주군 했다. 하루 11―13시간 로동회사거나 음식점 종업원 대부분이 11시간―13시간씩 일을 하고있었고 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때문에 변비가 생기는 사람도 있었…(2009-03-31 09:56:00)
한국 노가다판의 조선족남자들 인기글 기자는 협찬과 신문사의 파견을 받고 일전 한국에 가 《재한 조선족 삶의 현장》 취재를 하게 됐다. 한국 체류기간 기자는 재한 조선족 32명에 대한 전화통화와 직접 만나본 사람들을 통해 재한 조선족들의 밑바닥인생을 보았고 그들의 간고한 돈벌이와 아끼는 생활을 보며 중국에 있는 우리들의 삶은 말 그대로 사치임을 절감하게 됐다. 한국에 입국한 조선족마다 첫 정거장처럼 꼭 거쳐가는 곳이 있다. 노가다판이다. 이 노가다판을 통해 조선족들은 중국 국내에서 종래로 겪어보지 못했던 고된 로동관을 넘게 되고 …(2009-03-31 09:54:09)
게시물 검색

공지사항 2025년 새해 건강복 많이 받으세요 !
延边聖山本草商贸有限公司(연변성산본초상무유한공사)微信 138-4339-0837 카톡전화번호 010-4816-0837
Copyright © 2006 吉ICP备2020005010号 住所 :延吉市北大新城 2号楼3010
企业法人注册号(법인사업자 등록번호):222400000012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