棒棒军과 조선족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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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09-03-25 14:36|본문
棒棒军과 조선족 남자
우상렬
나는 처음 사천 중경에 왔을 때 棒棒军, 棒棒军하길래 무슨 중국인민해방군 현대화 川軍군단인 줄 알았다. 그래서 그 尊容을 보려고 머리를 돌리는 순간 나는 그만 서글프나고 맥삭해나고 말았다. 아니, 허구픈 웃음을 짓고 말았다. 棒棒军, 빛 좋은 개살구. 军하고는 관계없고 거저 몽둥이를 손에 든 일군의 사람들. 굳이 軍에 갖다 붙인다면 몽둥이軍이라 해야겠지. 棒棒军, 어디 돈 벌이 될 만한 곳에 오구작작 몰켜 있는 사람들. 얼굴은 가마잡잡하고 전신은 초라하다. 인생에 찌든 모습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모택동이나 등소평이 신민주주의혁명시기 중국의 농민혁명을 조직, 지도할 때 궐기한 농민들과 클로즈업되면서 나는 일종 전율을 느끼기도 했다.
棒棒军, 중경 특유의 짐군들이다. 중경은 山城이라 차가 다니기 불편한 곳이 많다. 그래서 이 짐군들이 생겨났다고 한다. 이 짐군들은 참 간단하다. 손에 몽둥이, 간혹 가다가 나무몽둥이도 있지만 대개 사천특유의 참대로 만든 몽둥이를 쥐고 있는 모습이 그들의 가장 일상적인 모습이다. 그 몽둥이 끝에는 짐을 동일 바가 감겨져 있다. 끼리끼리, 무리무리 서 있다가 어디 나를 짐이 생기면 욱 몰려가고 몰려오고 한다. 아침 장에 좀 돈 깨나 있어 보이는 아줌마 뒤에서 이 초라한 棒棒军이 아줌마가 사는 물건들을 챙겨 몽둥이에 달아매고 그 아줌마 엉덩이 뒤를 탈탈 거리며 따라 가는 모습은 중경의 한 희극적인 진풍경이기도 하다. 그러면서도 중경의 심한 빈부 차이를 보여 주는듯하여 씁쓸하기도 하다.
棒棒军은 중경의 최하층. 정말 자기 몸으로 떼우는 막벌이군들이다. 인간노동이 신성하고 평등하다고 하지만 이 棒军棒에게서는 도저히 이것을 느낄 수 없다. 오히려 그들에게서는 그 반대급부- 노동의 멍에와 고역 같은 것을 느낄 뿐이다. 그들을 보는 순간 우리 일반 사람들은 나는 그래도... 하는 홀가분한 기분에 잠기기 십상이다. 인간의 고약한 심보다. 이 棒棒军의 하루 수입도 얼마 되는 것 같지 않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줄 치고 앉아 있는 棒棒军들을 보면 일이 없어 노는 날이 더 많은 것 같다. 그래서 내가 하루는 그들에게 물어보았다. 너네 하루에 평균 얼마 버는가고? 고작 많으야 20-30원이란다. 그러니 한 달에 몇 백 원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 몇 천원 받고도 적다고 아우성을 치는 세상에 몇 백 원이라니 그들은 중경의 극빈층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실제로 그들을 접해보면 그리 가련하지 않다. 그들은 자기네들 끼리 희희닥닥 거리며 잘 놀아나기도 하고 아무대고 빙 둘러 앉아 카드놀이로 돈내기를 하기도 한다. 그들은 교활한 룸펜 건달기풍도 있는 듯하다.
하루는 내가 그들 몇을 불러 일을 시켰다. 짐 한 짝 나르는데 좀 후하게 쳐서 매 인당 4원으로 정했다. 그들도 흔쾌히 좋다고 했다. 그런데 짐을 다 나르고 돈을 치러줄려니 매인당 4원이 아니라 10원이라 하며 나눕는다. 내가 분명 손가락 4개를 펴 보이며 확인시켰건만. 그들은 한결같이 내가 중국어 諧音인 4와 10을 오꼈다는 것이다. 어거지로 바가지를 씌우는 판이다. 그래서 나는 못 이기는 척하고 매 인당 10원을 주고 말았다. 후에 다른 사람들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棒棒军들이 발음이나 생김생김이 사천사람과 다른 외지인들을 만나면 고런 깜직한 속임수를 쓰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불쌍히 여기며 인간적 동정을 한 내가 괜히 불쌍해나고 우스워났다.
사실 중경시에는 棒棒军 같은 최하층 극빈층이 많다. 금년으로 중경이 직할시로 승급된 지 만 10년째. 현재 중경직할시는 인구 3천 2백만 명의 세계 최다 인구 도시다. 장강 삼협땜을 건설할 때 100만 인구를 흡수한데다가 주변의 현진이나 농촌을 흡수하여 직할시의 등치를 불렸다. 현재 농촌노동력이 대거 도시로 몰려들었는데 정부 차원에서 이들에게 일자리를 해결해주는 것이 가장 큰 이슈었다. 농촌노동력의 棒棒军에로의 끊임없는 합류는 스스로의 자구책임셈이다. 그래서 정부 차원에서는 이들 棒棒军들에게 될 수 있는 한 편익을 도모해준다. 세금면제는 더 말할 것도 없고 숙식도 제공해주기도 한다. 얼마 전에 강안구에서 棒棒军의 쉼터를 마련해주어 쾌자되었다.
사실 이 棒棒军은 중경에 이전부터 있었던 것이다. 언제부터인지는 딱히 모르겠지만 퍼그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山城이 이런 棒棒军을 수요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山城의 수요논리만으로 풀이해서는 석연치 않은 면이 있다. 왜냐하면 山城이라고 하여 꼭 棒棒军이 생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동북의 요녕성의 山城인 本溪시를 떠올려보았다. 산이 많아 조선의 지리조건과 비슷하여 조선전쟁을 반영한 영화 <英雄兒女>를 찍었던 곳이다. 그런데 여기는 棒棒军 같은 것이 없다. 그럼 중경은 있고 본계는 왜 없는가? 나는 남방사람과 북방사람의 심리기질로밖에 풀이할 수 없었다. 이른바 남방사람은 ‘티끌 모아 태산’형으로 1전2전 열심히 벌고 모으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우리 북방사람은 허방 날아가는 돈을 한 몫 잡으려는 일획천금형이다. 그래서 남방사람들은 小本生意부터 열심히 한다. 그러나 우리 북방사람들은 대구 大本生意만을 꿈구다 보니 공중누각의 집을 잘 짓는다. 이것이 바로 남방과 북방의 한 갈림길.
나는 이 棒棒军에 우리 조선남자들을 대입시켜 본다. 잘 어울리지 않는다. 한 ‘놈’도 해낼 것 같지 않다. 우리 조선남자들은 북방사람들보다 더 일획천금형이다. 내 고향은 심양소가툰이다. 심양시교다. 무슨 중국에서 제일 큰 연마석공장이요, 무슨 농약공장이요 하는 더러운 국영대형공장들이 많이 앉아 있었다. 그런데 지난 세기 90년대 본격적인 시장경제가 가동되면서 줄줄이 망했다. 이른바 下崗붐이다. 우리 조선족도 많이 下崗했다. 그래서 下崗을 한 남자들이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 두발로 삼륜차를 몰아 사람을 실어나르는 일. 우리 거기 얘기로 登三輪이란다. 워낙 가격이 싸니깐 상대적으로 비싼 택시가 밀려나고 장사가 되었다. 하루에 짭짤한 수입을 올릴 수 있다. 그래서 漢族들은 너도나도 下崗證을 들이밀며 登三輪 수속을 하건만 우리 조선족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그 잘 난 登三輪 해서 얼마 번다고...하는 식. 정말 조선족 登三輪하는‘놈’ 보고 죽을려 해도 없다. 우리 연길시만 놓고 보아도 그렇다. 연길시는 좀 고급인지라 三輪車는 거저 짐을 실어 나르지. 그런데 짐 三輪車를 登하는 조선족을 누가 보았는가? 무슨 극이나 특정 공연 같은 데서나 볼 수 있겠지.
棒棒军-티끌모아 태산, 북방사람-일획천금, 우리 조선족-일획천금 중의 일획천금. 일획천금하면 얼마나 좋으랴! 그러나 그것은 십중팔구는 백일몽과 백수건달의 대명사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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