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족의 인구이동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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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09-03-03 16:54|본문
2. 조선족의 인구이동은 조선족사회의 쇠퇴인가, 아니면 희망과 기회인가?
중국 조선족 사회의 변화를 읽다.
조선족의 인구이동은 조선족사회의 쇠퇴인가? 아니면 희망과 기회인가?
8년 만에 고향땅을 밟은 나는 너무 크게 놀랐다. 연길시의 상점, 약방, 식당, 지어는 구멍가게에 들어가 보아도 연업원들이 대분분 한족(본토인)들로 바꿨다. 전 같으면 조선족 청년들, 특히 처녀들이 꽉차 "까르르....." 웃음 짖던 대부분 봉사업에 한족처녀들로 채워졌다. 지어는 조선족의 전통 “연변국수”로 유명한 연길시 “진달래 식당”에 들어가 보아도 말짱 어색한 모양새의 한복 치마저고리 입은 한족들이다. 또한 고향집 앞길을 분주이 오가는 많은 택시들의 주인들도 대부분 한족들로 바뀌었다. 필자는 “과연 고향이 옳은가!?”하는 엉뚱하고 착잡한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해외에서도 조선족 사회의 변화와 축소를 들어왔으나 집적 여기서 몸소 제 눈으로 보고 체험하니 웬지 심정은 씁쓸했다. 물론 나 본인도 어느 때 부터인가 해외에 나가 있으니 자책감이라 할가? ....... 하여턴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8년 만에 고향땅을 밟은 나는 너무 크게 놀랐다. 연길시의 상점, 약방, 식당, 지어는 구멍가게에 들어가 보아도 연업원들이 대분분 한족(본토인)들로 바꿨다. 전 같으면 조선족 청년들, 특히 처녀들이 꽉차 "까르르....." 웃음 짖던 대부분 봉사업에 한족처녀들로 채워졌다. 지어는 조선족의 전통 “연변국수”로 유명한 연길시 “진달래 식당”에 들어가 보아도 말짱 어색한 모양새의 한복 치마저고리 입은 한족들이다. 또한 고향집 앞길을 분주이 오가는 많은 택시들의 주인들도 대부분 한족들로 바뀌었다. 필자는 “과연 고향이 옳은가!?”하는 엉뚱하고 착잡한 생각까지 들었다. 물론 해외에서도 조선족 사회의 변화와 축소를 들어왔으나 집적 여기서 몸소 제 눈으로 보고 체험하니 웬지 심정은 씁쓸했다. 물론 나 본인도 어느 때 부터인가 해외에 나가 있으니 자책감이라 할가? ....... 하여턴 관심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조선족은 어디로 갔는가?
현재 연변을 중심으로 한 조선족 자치주와 흑룍강, 요녕성 조선족 집거구는 인구이동으로 눈에 뛰게 축소되고 민족 집거구는 새판으로 째어지고 있다. 200여만 중국조선족 인구 중 청 장년을 중심으로 한 근 40%에 달하는 60여 만이 산해관 이남 지역으로, 혹은 해외로 진출하였고 또 이런 지각 변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조선족 농촌 공동체 해체, 민족교육의 축소, 자치구역 민족 인구 감소, 민족성 약화, 민족간부비례 감소 등 심각한 파장을 불러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현재 연변을 중심으로 한 조선족 자치주와 흑룍강, 요녕성 조선족 집거구는 인구이동으로 눈에 뛰게 축소되고 민족 집거구는 새판으로 째어지고 있다. 200여만 중국조선족 인구 중 청 장년을 중심으로 한 근 40%에 달하는 60여 만이 산해관 이남 지역으로, 혹은 해외로 진출하였고 또 이런 지각 변동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조선족 농촌 공동체 해체, 민족교육의 축소, 자치구역 민족 인구 감소, 민족성 약화, 민족간부비례 감소 등 심각한 파장을 불러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면 왜 이런 문제들이 생기는가?
그 주요 원인을 살펴보면 중국의 개혁 개방에 따르는 조선족의 의식 변화가 첫손 꼽힌다. 옛날에는 조상들의 때가 묻은 고향에 발을 붙히고 부지런히 일하며 자식을 키우고 재부를 일구며 사는 것이 민족과 국민의 미덕으로만 여겨왔다. 특히 조선족은 전국적으로도 어느 민족보다 춤과 노래를 잘한다는 자부심에 어깨를 으쓱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 그런 것들이 별 관심사가 아니다. 우선 사람들이 제일 관심하는 즉 우선 “잘 살고 봐야한다”는 생각이 팽배하다.
그 주요 원인을 살펴보면 중국의 개혁 개방에 따르는 조선족의 의식 변화가 첫손 꼽힌다. 옛날에는 조상들의 때가 묻은 고향에 발을 붙히고 부지런히 일하며 자식을 키우고 재부를 일구며 사는 것이 민족과 국민의 미덕으로만 여겨왔다. 특히 조선족은 전국적으로도 어느 민족보다 춤과 노래를 잘한다는 자부심에 어깨를 으쓱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늘 그런 것들이 별 관심사가 아니다. 우선 사람들이 제일 관심하는 즉 우선 “잘 살고 봐야한다”는 생각이 팽배하다.
중국이 개혁 개방되면서 누구나 먼저 부딪치는 문제가 인간 삶에서 사람들은 사이의 소득 면에서 차이다. 공동이 일하고 같이 나누어 먹던 ”철 밥통“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같은 사람이 같은 시간대에 같은 일을 하고서도 받는 노임이 지역에 따라서도 천양지차이다.
연변, 혹은 동북지역 조선족 집거구에서 한 달에 약 800원(약 $100.-) 받던 사람이 산해관 이남 도시들에 진출하면 같은 일을 하고도 2배 - 3배의 수입을 더 올릴 수 있게 된다. 여기에 옛날엔 호적과 의식주분배의 제도적 제한으로 이동이 통제되던 것이 이젠 그런 통제 제도가 몽땅 쓰레기통에 들어갔다. 약삭빠른 중국 조선족들께도 손발을 부지런히 놀리면 전국 어느 지역에 가서나 살 수 있는 자유의 길이 열렸다.
여기에 힘을 실어 준 것이 등소평의 “힌고양이나 검은고양이나 쥐를 잡는 것이 고양이다”는 실용주의 노선이다. 전국의 소수민족 중에 문화 수준면에서 그래도 앞장에선 조선족들이 많은 소수민족을 제치고 발 빠르게 앞장서 돈을 보고 동서남북으로 감히 뛸 수 있게 하였다.
현재 중국의 개혁개방과 함께 전국 총 55개 소수민족 중 인구유동과 도시화 진출에 가장 앞장선 것이 물론 조선족들이다. 여기에 일찍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낸 고국 한국의 영향을 배제할 수 없다. 많은 조선족들이 한국나들이로 새로운 경제의식과 정보에 눈을 뜨기 시작했고. 한중수교로 문이 열린 후 한국기업과 한인들이 대거 몰려오면서 조선족들도 새로운 의식에 돈벌이 법과 기술을 배웠다. 그리고 최근년래 한국 등 외국에 가 벌어들이는 외화수입이 민족 자치지구에선 가관이다. 한국 등 조선족 해외파들이 보내온 1년간 연변은행접수 딸라 수입이 전 연변 총 생산액의 2배를 넘긴다하니 말이다.
조선족들이 돈 벌이에는 초보적인 성공을 거두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