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속의 다문화 거리>가리봉동 연변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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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10-11-15 10:55|본문
2002년부터 '조선족 거리'로 본격 부상..주민 절반이 조선족
돈 번 조선족들, 최근 주거환경 좋은 곳으로 이주 추세
(서울=연합뉴스) 구정모 기자 = "서른일곱 개의 방 중의 하나, 우리들의 외딴방. 그토록 많은 방을 가진 집들이 앞뒤로 서 있었건만, 창문만 열면 전철역에서 셀 수도 없는 많은 사람이 쏟아져나오는 게 보였다."
소설가 신경숙 씨가 열여섯 살에 상경해 구로공단의 한 공장에서 일했던 경험이 밑거름된 소설 '외딴방'엔 1970년대 말~1980년대 초 구로공단의 노동자들이 장시간 노동에서 막간의 휴식을 취했던 가리봉동 '쪽방촌'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작가가 살던 '외딴방'은 '계단을 타고 구불구불 들어가 이젠 더 어쩔 수 없을 것 같은 곳에 작은 부엌이 딸린 방이 또 있던 붉은 벽돌집'에 '미로 속에 놓인 방들' 중 하나였다.
대도시 노동자들의 안식처였던 가리봉동의 이미지는 그러나 1990년대 후반부터 이곳을 접한 이들이라면 전혀 다르게 기억한다.
구로공단이 해체되면서 원주민(?)이었던 '공돌이', '공순이'들이 하나둘씩 떠나고 중국동포(조선족)들이 이곳에 모여들면서 '연변타운'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지하철 7호선 남구로역 3번 출구를 나서면 중국 간체자로 '외국인 당일개통, 선불폰'이란 빨간색 입간판이 행인을 맞으면서 이곳이 어떤 거리인지를 예고해주고 있다.
왕복 4차로 구로동길을 따라 200m가량 내려가면 오른쪽으로 남부순환로가, 왼편으로 우마길로 연결되는 삼거리가 나온다.
이 우마길이 이른바 '연변 거리'다.
길 양쪽으로 '연길명태어옥', '동북삼성반점', '두만강식당', '도문반점' 등 조선족들의 고향인 중국 연변의 지명을 딴 음식점들이 눈길을 끈다.
단층 또는 높아야 3층짜리인 상가 건물 두 개 건너 하나꼴로 '중국 노래방', '상해 노래방', '홍콩 노래방' 등 노래방이 촘촘히 자리 잡고 있다. 줄잡아 스무 곳에 달한다.
가무를 즐기는 중국동포들은 모국이자 외국인 이곳에서 별다른 오락거리가 없어 노래방을 즐겨 찾는다고 한다. 대낮인데도 노래방에서 사람들이 흥에 겨워 노래 부르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도로공사, 농장일, 모텔 청소 등 구인정보를 내건 직업소개소도 흔하게 눈에 띈다.
<※사진설명: 조선족 음식점이 밀집한 연변 거리 모습>
연변 거리 식당의 주메뉴는 양꼬치구이(洋肉串:양로우촨)다.
얇게 썬 양고기를 꼬챙이에 꿰어 숯불에 익힌 뒤 위구르인과 몽골인들이 즐겨 먹는 향신료인 '쯔란'과 고추ㆍ들깨ㆍ참깻가루를 섞은 양념에 찍어 먹으면 별미다. 이젠 조선족 밀집지역 하면 '양꼬치'를 떠올릴 정도로 대표적 음식으로 부상했다.
초두부, 개고기(狗肉), 소배필(소삼겹살) 등 다른 조선족 음식도 이곳에서 맛볼 수 있다.
<※사진설명: 연변거리에 있는 가리봉종합시장>
연변거리 중간쯤에 가리봉 시장골목이 수직으로 이어진다. 골목 입구엔 '가리봉종합시장, 동포타운, 어서 오십시오'라는 아치형 간판은 이곳이 어떤 곳인지 직설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골목을 따라 올라가면 쪽방촌이 나오는 언덕길이 나온다. 2-3층의 다가구 주택인 밀집된 이곳은 연변 거리의 실질적인 배후지다.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20만원 내외의 저렴한 방값에 조선족들이 이곳에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이들의 문화로 새롭게 채색된 연변거리가 조성된 것이다.
낮이라 대부분이 일하러 나간 탓인지 주택가엔 인기척이 없이 고요했다. '방 있음', '개조심'이란 방문(榜文)만이 을씨년스럽게 지나가는 이에게 말을 걸 뿐이다.
<※사진설명: 가리봉종합시장 골목을 나오면 쪽방촌이 밀집한 다가구주택 지역이 나온다. 멀리 보이는 고층 건물은 가산디지털단지이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조선족이 가리봉동으로 유입되기 시작했지만 본격적으로 연변 거리가 형성된 것은 2002년 정부가 자진 신고하는 미등록(불법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6개월에서 1년의 출국준비 기간을 부여했을 때부터다.
연변 거리에서 2000년부터 조선족을 취재해온 중국동포타운신문 김용필 편집국장에 따르면 정부의 이같은 조치는 사실상 미등록 외국인노동자에게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기간을 준 것으로 이해돼 음지에 숨었던 조선족들이 거리로 나서게 됐다.
김 편집국장은 "당시 정부조치로 자진신고를 하면 1년간 단속될 걱정이 없게 돼 조선족을 상대로 하는 음식점과 노래방 등이 대로변에 생겨나기 시작했다"며 "한창 거리가 활기가 넘칠 때 주말 하루에만 풀린 돈이 10억 가까이 됐다"고 전했다.
원래 이곳에 살던 한국인과의 마찰도 적지 않았다. 중국인을 무시하는 한국인 특유의 민족적 선입견에다 쓰레기 무단 투기 등 거리 질서를 해치는 조선족들의 일상적 습관이 겹치면서 양측간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하지만 한국인 상인과 조선족, 조선족유학생들이 지난 2004년 한자리에 모여 이곳을 '화합과 공존의 거리'로 선포하는 행사를 비롯한 자정활동을 통해 공생의 길을 모색했다.
1만5천600여명의 가리봉동 주민 중 조선족이 7천100명에 달해 이곳 경제가 조선족 없이는 돌아갈 수 없다는 현실적 판단도 작용했다.
<※사진설명: 조선족이 주로 사는 가리봉동 다가구주택지역. 임대료는 방 1개당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20만원 내외다.>
대표적 조선족 밀집지역인 가리봉동은 그러나 최근 들어 그 이름이 바래지고 있다. 조선족들이 한국사회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하면서 돈을 번 이들이 주거환경이 좀 더 나은 곳으로 속속 떠나기 때문이다.
또 이곳이 재정비촉진지구로 지정돼 재개발된다는 소식도 조선족의 이탈을 부추겼다. 남부순환로 건너편으로 가산디지털 3단지가, 이곳 동쪽은 구로디지털 1단지가 들어서 옛 구로공단 지역은 이미 IT(정보기술)산업의 메카로 변신했고, 이곳은 슬럼지역처럼 덩그러니 남아 있다.
조선족들은 이곳 가리봉동을 떠나 대림, 신대방, 신림, 낙성대, 건대입구 등 지하철 2호선 주변을 따라 흩어졌다.
연변 거리에서 40년째 미용실을 운영하는 한 사장의 말처럼 어쨌거나 이곳에 사는 이들은 상점이나 월셋집 주인을 제외하고는 한국인이든 조선족이든 '최하층민'인 셈이다. 결국 가리봉동은 조선족들이 좋아서 오기보다는 '싼 맛'에 와서 돈을 벌면 뜨는 정거장이 돼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은 그렇기 때문에 가리봉동은 조선족의 애환이 서린 곳이다.
이곳 '동포사랑교회'의 이순기 목사는 "가리봉동은 조선족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 잘 알 수 있는 곳"이라며 "불행한 역사로 중국에 살게 된 조선족들이 고국이라고 찾아왔지만 결국 불법체류자로 전락한 채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