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변 사상 최대 홍수...경제손실 36.6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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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운영자| 작성일 :10-08-04 09:01|본문
27일부터 28일사이 갑자기 들이닥친 특대폭우로 연변지역의 목단강, 송화강, 고동하, 푸얼하, 해란강, 부르하통하, 가야하 및 두만강 등 류역의 수면이 불어나기 시작했다. 홍수는 악마의 입을 벌려 량안의 민가들을 무자비하게 덮쳤다. 량강수력발전소, 륙정산저수지, 아동저수지 등 여덟 개 저수지는 모두 위험수위를 넘어섰고 땜은 위험에 처해있다. 삽시간에 연변의 여러 지역은 홍수가 핥고 지나면서 상황은 위급해졌고 부분적인 향진은 홍수에 잠겼다. 홍수는 연변으로 하여금 전례없는 엄청난 손실을 보게 했다.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연변의 리재민은 근 50만명에 달했으며 직접적인 경제손실은 36.6억원, 농작물 수해면적은 10만여헥타르에 달했다. 재해가 엄중한 지역은 도로, 전기, 통신이 파괴되고 지어 일부 향진은 외계와의 련계가 단절되였다. 여섯갈래의 국가, 성급 도로간선이 파괴되고 74갈래의 농촌도로가 밀려나거나 엄중한 위험이 잠재해있고 172개의 다리가 파손되였다. 하지만 손실은 계속 늘어만 나고있다.
특대폭우로 연변의 많은 촌, 마을은 치명적인 재난을 입었다. 재해가 엄중한 지역인 안도, 돈화, 화룡 등 지역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기자의 눈에 띄이는것은 도처에 생긴 페허였고 재해가 끝난 뒤의 모습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안도현 량강진 서강촌과 사차자촌에서 기자의 눈에 뜨이는것은 볼품없이 동강난 담장과 무참하게 파괴된 마을이였다. 《이 곳은 원래 사람이 살던 집이였으나 90여채의 집들이 순식간에 물에 밀려 모습을 잃었습니다. 지어 어떤 곳들은 집터마저 밀려나갔지요.》 진흙과 잡동사니들로 메워진 안도현 량강진 사차자촌의 거리에서 안도현 상무부현장 고길준은 눈앞의 썰렁한 모래밭을 보면서 기자에게 말했다. 《폭우는 량강진에 1억여원에 달하는 경제손실을 조성, 지세가 낮아 푸얼하, 이도송화강의 협공을 받은 서강촌의 재건은 적어도 1억여원이 수요된다.》7월 28일, 《외로운 섬》으로 변한 만보진, 신합향의 수만명 군중들은 홍수에 포위되여 있었다. 재해가 엄중한 홍기촌, 신흥촌, 공영촌의 근 700명의 리재민들은 물에 포위되여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되였다. 그들은 단지 두대의 군용 직승비행기의 공중투하와 연변군분구의 300여명의 장병들이 도보로 운송한 식품과 텐트 및 소독약품 등 재해물자로 생존을 유지하고있었다.
7월 28일, 목단강의 역류로 하여 소석하의 물은 땜을 넘었고 그 물은 다시 돈화 개발구를 들이닥쳤다. 기자가 이 곳에 왔을 때 개발구단지는 물로 뒤덮였으며 72개 기업은 전부 생산을 정지했고 69개 기업은 재해를 입었으며 직접적인 경제손실은 4.3억원에 달했다. 돈화시의 따푸차이허진, 현유진, 강원진, 홍석향, 강남향 등 지역은 재해가 가장 엄중한 향진이다. 일부 진구역과 촌툰은 물공급과 전기공급이 단절되고 교통과 통신이 마비되여 《외로운 섬》으로 되여버렸다. 가옥이 무너진 신발촌의 군중들은 잠시 물을 피해 높은 지세로 전이하였다. 갑자기 들이닥친 폭우로 해란강은 파도치는 바다를 방불케 했다. 화룡시구역의 해란강류역 8800여메터 땜이 파괴되였고 하류지역 촌민들의 생명과 재산안전이 엄중한 위협을 발았다. 화룡시의 5000여명 대군은 불철주야로 분전하여 땜을 막고있다. 룡정시의 수원지 급수파이프가 파괴되였다. 전 시는 닷새동안 급수가 이뤄지지 않았다. 시민들은 지금까지 소방차가 주변현시에서 보내온 물로 일상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이 며칠간 우리는 줄곧 홍수방지 제일선을 지키고있었습니다. 집에는 물을 받을 사람이 없어 한방울의 물도 저비하지 못한 상황입니다. 지어 밥도 지을수 없어 동네식당에 가서 죽과 만두로 끼니를 떼우고 출근합니다.》
룡정시의 한 기관간부가 기자에게 남긴 말이다. 기자가 원고를 발송하기 전까지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직접적경제손실은 36.6억원, 그중 재해가 비교적 엄중한 돈화, 안도, 화룡의 직접적 경제손실은 각기 14.6억원, 10.03억원, 2.12억원에 달한다. 리재민은 이미 50만명으로 육박하며 림시 전이한 인구는 7만여명, 현재까지 고립된 인구는 3만여명에 달하며 생산이 정지된 공장, 광산기업은 160여호, 무너진 집은 6719채에 달하며 파급인수는 2만여명에 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