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듯 다른 유대민족과 한민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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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6-01-24 17:40|본문
한민족의 웅비의 날이 다가오는가. 을미년을 보내고 병신년을 맞으면서 이상하게도 우리 민족의 기원문화를 생각하게 되고, 유대민족과 비교를 하게 된다. 한민족과 유대민족은 여러 면에서 매우 대조적이면서도 같은 하늘신앙을 가지고 있는 민족이다.
유대민족은 스스로를 ‘선민(選民)’이라고 한다. 하나님(여호와)으로부터 선택된 민족이라는 뜻이다. 이에 비해 한민족은 스스로를 ‘천손족(天孫族)’이라고 한다. 하늘(하나님)의 정통자손이라는 뜻이다.
유대민족은 알다시피 구약(토라)을 믿는 민족이다. 유대민족은 일찍이 나라를 잃고, 세계 각지로 흩어져서 살아왔다. 그래서 스스로의 처지를 ‘디아스포라’라고 말한다. 다른 나라에 흩어져 살다 보니 믿을 것은 ‘돈’밖에 없었지만, 그들의 정신과 영혼은 구약에 의해 유지되었다. 이에 비해 한민족은 광활한 만주 땅을 잃어버리고 일부는 중국에 동화되고, 나머지는 한반도로 이주해 살았지만 작은 영토는 유지했다. 한민족은 작은 땅에서 잦은 외침에 시달리면서 외래사상에 사대하면서 살아왔다.
서로 다른 역사과정에서 유대인은 ‘불의 신화’와 가부장의 전통 속에서 ‘실체적 사고’를 통해 살아왔고, 한민족은 ‘물의 신화’와 끈질긴 여성성에 의지해 ‘심정적’으로 살아왔다. 유대그리스도 문화전통은 밖으로 나가 지금 세계적 지배문화가 되어 있고, 한민족은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위해 세계평화를 안에서 꿈꾸고 있다. 두 민족문화의 남성성과 여성성이 대조적이다.
유대인은 지금 실질적으로 세계를 움직이고 있다. 유대인들의 머리가 좋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고, 현대사상을 이끌고 있는 주요 인물인 마르크스, 프로이트가 유대인이고, 현대과학의 상징인 아인슈타인도 유대인이다. 노벨상을 수상한 역대 인물을 보면 유대인이 약 27%(노벨경제학상은 42%)를 차지한다고 한다.
오늘날 세계금융시장과 석유·곡물시장의 메이저들도 유대인이다. 석유결제통화를 달러로 제한함으로써 미국의 달러본위제를 실질적으로 정착시킨 인물인 키신저, 컴퓨터와 스마트폰 시대를 연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 그리고 세계적인 영화감독 스필버그도 유대인이 아닌가.
디아스포라 당한 유대인은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도 정치·경제는 물론이고, 과학기술·문화예술 등 문화 권력을 다 잡고 있다. 그 힘으로 1차 세계대전 후 이스라엘을 중동 땅에 다시 세웠을 것이다. 유대인의 힘은 구약에 있다고 한다. 유대인은 구약을 끊임없이 읽고 써왔다.
이에 비해 한민족은 어떤가. 한민족은 좁은 땅에 살면서 유대인의 여호와에 해당하는 ‘환인’, 그리고 환웅과 국조단군을 두고 있지만, 우리의 성경인 ‘천부삼경(天符三經)’은 잊어버린 채 외래종교와 사상에 의지해 살아왔다.
한민족도 유대인만큼 머리가 좋아 ‘아시아의 유대인’이라는 별명도 얻고 있지만 유대인이 이룬 세계문화사적 업적에 비할 수는 없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훈민정음)’과 ‘금속활자’가 있었지만 이들이 한민족의 사상을 정리하고 펼치는 데 이용되지 못했다. 급기야 외래 이데올로기에 종속된 탓으로 현대에 이르러 동족상잔의 6·25전쟁을 벌였으며, 지금도 그 이념에 따라 남북 대치 중이다.
한민족도 일제식민 기간 중 해외 각지로 흩어져 살았고, 겉으로는 유대인의 디아스포라처럼 보이지만, 통일을 이루기는커녕 도리어 극심한 체제 경쟁과 반체제 정서 속에 살고 있다. 유대인의 자기긍정과 민족 정체성과 달리, 한민족은 아직도 자기부정과 사대사상에 젖어 있다. 한국인만이 한국의 근대발전상을 모르고 있다고 한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결국 자신의 경전(신화)과 법전과 역사를 스스로 쓸 줄 모르는 탓이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사상이 있지만 한국인에게는 한국사상이 없다. 유대인에겐 구약이라는 구심점이 있지만 한민족에게는 알맹이가 없다.
신화와 역사가 없는 민족, 남의 신화와 남의 역사에 의해 사는 민족은 경제가 아무리 성장한다고 해도 언젠가는 역사 앞에 굴복하고 만다. 역사는 과거가 아니다. 역사는 현재적으로 써가고 있는 민족의 영원한 신화이면서 고향이다. 주체적 글쓰기를 하지 못하는 민족은 역사의 미아가 된다.
역사적 식민지란 남(이웃나라)이 써놓은 텍스트(역사)에 의존하는 민족을 두고 하는 말이다. 과거에 한때 식민지였던 것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문화식민지가 문제인 것이다.
다가오는 병신년에는 무엇보다 우리 역사를 스스로 쓸 줄 아는 국민이 되는 것이 선결과제인 것 같다. 주체적으로 역사를 쓰는 일은 자신감과 자긍심으로 미래를 열어가는 역사를 쓰는 것을 말한다. 세계적으로 한국의 경제 위상에 맞는 역사와 문화예술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역사적 과제이다.
문화에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큰 법칙이 있다. 자신의 문화를 확대재생산해 나가는 민족과 국민은 흥하고, 그렇지 못한 민족과 국민은 망한다는 사실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비판과 반대가 확대재생산에 도움이 되는가, 방해가 되는가를 시금석으로 삼아야 한다.
고대에 인류문화의 찬란한 등불이 되었던 한민족에게 신(神)은 다시 인류평화를 구현하라는 사명을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병신년을 앞두고 해본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01-24 17:41:30 中國硏究所에서 이동 됨]
유대민족은 스스로를 ‘선민(選民)’이라고 한다. 하나님(여호와)으로부터 선택된 민족이라는 뜻이다. 이에 비해 한민족은 스스로를 ‘천손족(天孫族)’이라고 한다. 하늘(하나님)의 정통자손이라는 뜻이다.
유대민족은 알다시피 구약(토라)을 믿는 민족이다. 유대민족은 일찍이 나라를 잃고, 세계 각지로 흩어져서 살아왔다. 그래서 스스로의 처지를 ‘디아스포라’라고 말한다. 다른 나라에 흩어져 살다 보니 믿을 것은 ‘돈’밖에 없었지만, 그들의 정신과 영혼은 구약에 의해 유지되었다. 이에 비해 한민족은 광활한 만주 땅을 잃어버리고 일부는 중국에 동화되고, 나머지는 한반도로 이주해 살았지만 작은 영토는 유지했다. 한민족은 작은 땅에서 잦은 외침에 시달리면서 외래사상에 사대하면서 살아왔다.
서로 다른 역사과정에서 유대인은 ‘불의 신화’와 가부장의 전통 속에서 ‘실체적 사고’를 통해 살아왔고, 한민족은 ‘물의 신화’와 끈질긴 여성성에 의지해 ‘심정적’으로 살아왔다. 유대그리스도 문화전통은 밖으로 나가 지금 세계적 지배문화가 되어 있고, 한민족은 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위해 세계평화를 안에서 꿈꾸고 있다. 두 민족문화의 남성성과 여성성이 대조적이다.
유대인은 지금 실질적으로 세계를 움직이고 있다. 유대인들의 머리가 좋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고, 현대사상을 이끌고 있는 주요 인물인 마르크스, 프로이트가 유대인이고, 현대과학의 상징인 아인슈타인도 유대인이다. 노벨상을 수상한 역대 인물을 보면 유대인이 약 27%(노벨경제학상은 42%)를 차지한다고 한다.
오늘날 세계금융시장과 석유·곡물시장의 메이저들도 유대인이다. 석유결제통화를 달러로 제한함으로써 미국의 달러본위제를 실질적으로 정착시킨 인물인 키신저, 컴퓨터와 스마트폰 시대를 연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 그리고 세계적인 영화감독 스필버그도 유대인이 아닌가.
디아스포라 당한 유대인은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도 정치·경제는 물론이고, 과학기술·문화예술 등 문화 권력을 다 잡고 있다. 그 힘으로 1차 세계대전 후 이스라엘을 중동 땅에 다시 세웠을 것이다. 유대인의 힘은 구약에 있다고 한다. 유대인은 구약을 끊임없이 읽고 써왔다.
이에 비해 한민족은 어떤가. 한민족은 좁은 땅에 살면서 유대인의 여호와에 해당하는 ‘환인’, 그리고 환웅과 국조단군을 두고 있지만, 우리의 성경인 ‘천부삼경(天符三經)’은 잊어버린 채 외래종교와 사상에 의지해 살아왔다.
한민족도 유대인만큼 머리가 좋아 ‘아시아의 유대인’이라는 별명도 얻고 있지만 유대인이 이룬 세계문화사적 업적에 비할 수는 없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훈민정음)’과 ‘금속활자’가 있었지만 이들이 한민족의 사상을 정리하고 펼치는 데 이용되지 못했다. 급기야 외래 이데올로기에 종속된 탓으로 현대에 이르러 동족상잔의 6·25전쟁을 벌였으며, 지금도 그 이념에 따라 남북 대치 중이다.
한민족도 일제식민 기간 중 해외 각지로 흩어져 살았고, 겉으로는 유대인의 디아스포라처럼 보이지만, 통일을 이루기는커녕 도리어 극심한 체제 경쟁과 반체제 정서 속에 살고 있다. 유대인의 자기긍정과 민족 정체성과 달리, 한민족은 아직도 자기부정과 사대사상에 젖어 있다. 한국인만이 한국의 근대발전상을 모르고 있다고 한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결국 자신의 경전(신화)과 법전과 역사를 스스로 쓸 줄 모르는 탓이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사상이 있지만 한국인에게는 한국사상이 없다. 유대인에겐 구약이라는 구심점이 있지만 한민족에게는 알맹이가 없다.
신화와 역사가 없는 민족, 남의 신화와 남의 역사에 의해 사는 민족은 경제가 아무리 성장한다고 해도 언젠가는 역사 앞에 굴복하고 만다. 역사는 과거가 아니다. 역사는 현재적으로 써가고 있는 민족의 영원한 신화이면서 고향이다. 주체적 글쓰기를 하지 못하는 민족은 역사의 미아가 된다.
역사적 식민지란 남(이웃나라)이 써놓은 텍스트(역사)에 의존하는 민족을 두고 하는 말이다. 과거에 한때 식민지였던 것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의 문화식민지가 문제인 것이다.
다가오는 병신년에는 무엇보다 우리 역사를 스스로 쓸 줄 아는 국민이 되는 것이 선결과제인 것 같다. 주체적으로 역사를 쓰는 일은 자신감과 자긍심으로 미래를 열어가는 역사를 쓰는 것을 말한다. 세계적으로 한국의 경제 위상에 맞는 역사와 문화예술의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역사적 과제이다.
문화에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큰 법칙이 있다. 자신의 문화를 확대재생산해 나가는 민족과 국민은 흥하고, 그렇지 못한 민족과 국민은 망한다는 사실이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비판과 반대가 확대재생산에 도움이 되는가, 방해가 되는가를 시금석으로 삼아야 한다.
고대에 인류문화의 찬란한 등불이 되었던 한민족에게 신(神)은 다시 인류평화를 구현하라는 사명을 주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병신년을 앞두고 해본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6-01-24 17:41:30 中國硏究所에서 이동 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