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옥금 회장 -중국은 사업 기회 무궁무진, 100대 기업 진입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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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 :16-01-14 17:07|본문
▲ 헤이룽장대천그룹 천옥금 회장
[서울=동북아신문]‘연은 바람이 거셀수록 더 높이 난다’는 속담이 있다. 글로벌 경제침체와 더불어 세계 경제성장 엔진인 중국도 뉴노멀 시대에 접어들었지만 농업, 제조업에서 미디어분야에까지 진출, “중국은 사업 기회 무궁무진”하다며, “앞으로 사업을 더 키워 중국의 100대 기업에 진입 하겠다”고 기염을 토하는 중국동포 여성기업인이 있다. 바로 월드옥타 헤이룽장(黑龍江)성 하얼빈지회 부회장인 천옥금 회장(47.여)이다. 그는 지난 10월, 싱가포로에서 개최된 제20차 세계한인경제인대회가 끝난 후에도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바쁜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기존 사업체 외에 새롭게 시작한 미디어분야와 투자회사로의 사업 확장 때문이다. CCTV.com 한국어방송이 12월17일자로 ‘연은 바람이 거셀수록 더 높이 난다’는 제목으로 천옥금 회장을 집중 조명했다. 기사를 일부 수정 전재한다. <편집자>
교원 공무원에서 기업인으로
천옥금 회장은 원적이 한국 경상북도이다. 아버지의 고향은 구미, 어머니 고향은 안동이다.
하얼빈상업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5년 동안 모교에서 회계학과 기업관리를 가르쳤다. 모교에 남은 것은 그가 졸업시험에서 1등을 했기 때문이다. 당시 농촌 출신이라 대학을 마친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던 그는 하얼빈에 남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결국 모교의 유일한 중국동포 교수가 됐다.
도시에 남는 데는 성공했지만 상아탑에 갇혀 지내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꿈은 전공을 살려 기업가나 은행가가 되는 것이었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대학을 마칠 때 동기 중 유일하게 주산 특 1급을 딴 그녀는 대학에 몸담고 있는 동안 중국상업계통 계산기술대회에 나가 6등을 했다.
헤이룽장 TV가 이 조선족 여 교수의 입상 소식을 뉴스로 전했다. 하얼빈시의 한 간부가 이 방송을 보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한국에 주재할 공무원을 뽑는데 한국말을 하느냐”고 물었다. 천 교수는 이렇게 해서 한국어 테스트 등 시험을 보고 공무원이 됐다.
한중 수교가 이뤄진 1992년 그녀는 중국 하얼빈시 정부 공무원 신분으로 한국땅을 밟았다. 한국에 IMF 체제가 들어선 97년 12월까지 주재하는 동안 중국 대사관 모임 등을 통해 한국 기업인들과 폭넓게 교류했다. 천 회장은 서울시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와 한국 기업을 중국과 연결해주는 일을 하면서 쌓은 다양한 경험을 살려 2001년에 하얼빈에 한국산 생활·혼수 용품 도소매 매장을 냈다.
“처음에 한국 분들이 많이 도와주셨죠. 저더러 중국에 돌아가면 한국 상품을 한번 팔아보라면서 물건을 그냥 대주셨으니까요. 제가 본래 인덕이 많아요.” 천 회장은 창업시절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번 돈으로 그 이듬해 대천유통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드디어 기업인의 꿈을 이룬 것이다. 대천이란 회사 이름은 자신의 성 천(千)에 큰 대(大) 자를 얹어 지었다. 상표는 ‘大千’이라고 쓴 띠를 두른 지구의 모습이다.
3년이 지나 기업 경영의 노하우를 익혀 자신이 붙자 흑룡강대천금강식품유한회사를 설립, 농장에서 버섯 등을 키워 건강식품으로 가공 판매했다. 천 회장의 농장은 현재 감자와 옥수수도 재배해 세계적인 패스트푸드 회사인 KFC의 중국 법인에 전량 납품하고 있다.
▲ 지난 7월 10일, 류쟈원(刘加文)신화망 부 총편집장과 ‘신화망 한국어채널 독자 광고대리 협의’를 맺은 천옥금 회장(오른쪽).
그녀가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한 것은 2007년 하수도 배관 제조 공장을 차리면서부터. 중국 경제성장의 여파가 최북단인 헤이룽장성에까지 미치자 각종 개발로 대규모 토목공사가 늘어날 것을 예감한 천 회장은 포스코로부터 사들인 친환경적인 아연도금 파이프로 배수관을 만들어 기존 제품과의 차별화를 꾀했다.
단숨에 정부 하수도관 발주를 독점하게 되자 이어서 상수도관 공장도 세워 배관 분야에서 하얼빈 제1기업으로 떠올랐다. 간접 인프라 확충으로 도로가 늘어나는 것을 보고 태양광 가로등 제조업에도 뛰어들었다. 헤이룽장성은 중국 최북단인 만큼 겨울에는 영하 20도는 기본이라 배터리가 얼지 않고 습기를 막는 방수 처리가 된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해 특허도 따냈다. 하자 발생 시 최단 시간에 교체하는 신속한 서비스로 신뢰를 구축했다.
그녀는 현재 7개 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4개는 주식회사, 3개는 개인회사다.
한중 경제교류 정확한 정보가 우선
“중국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대충 알고 덤비면 실패해요. ‘조선족들에게 사기를 당했다, 못 믿을 사람들이다’ 말하는 한국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대부분 그 조선족이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정보의 부족으로 인한 한계 때문인 경우가 많아요.”
천 회장은 “중국과 교류하려면 중국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중국진출 기업의 첫 번째 요건으로 정보를 강조한다. 급변하는 중국사회에서 비즈니스를 하려면 한 개인이 가진 정보에 의존하는 시대는 지났고, 이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소식통이 중요하다. 한국기업과 비즈니스하려는 중국 현지기업인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름 한국을 잘 알고 한국어를 잘 하는 나도 비즈니스 파트너를 구하기가 어려운데 일반 중국 기업인들은 오죽하겠어요? 알리바바 등 전자상거래가 활발하게 커 가고 있지만 정보력 부재 혹은 신용에 관한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확실한 정보와 신용을 바탕으로 한 진정성 있는 파트너십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무역과 제조업 등을 통해 안정적으로 연매출 9천만 위안을 올리자 사업 영역도 확대했다. 지난해 성장 가능성 있는 중소기업에 투자하는 기업투자회사도 설립했고 올해는 중국 신화통신사 인터넷판 신화망(新華網)의 한국어채널 관리 운영권도 5년간 독점으로 계약했다.
천 회장이 미디어분야로 사업을 확장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한중 간 경제교류 활성화를 위한 믿을 만한 소통의 장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천 회장은 올해 7월 10일 대천미디어기획유한회사 이름으로 신화망 한국어채널 협력 사무에 관한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에 따라 대천미디어가 신화망 한국어채널의 단독 광고대리 협력파트너가 되고 5년 간 신화망 한국어채널을 관리, 운영하게 된다.
신화망 한국어판의 단독 대리협력파트너로서 대천미디어는 한국과 중국 간의 투자 유치, 문화, 엔터테인먼트, 여행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진행될 합작을 위해 온라인과 오프라인 홍보 및 보급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신화망과 대천미디어의 협력 체결에 관해 천 회장은 “전 세계 한국어 유저들에게 중국의 정치, 경제, 문화를 전파하고 재중 한국인들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소개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궁극적으로 “재중 한국기업의 발전과 양국 간의 민간 교류 협력을 강화, 발전시키기 위한 측면도 있다”고 강조한다.
사업은 ‘돌격형’ 생활은 ‘계획형’
천 회장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사업을 확장하는 ‘돌격형’이지만 실제는 치밀한 계산과 ‘계획형’ 생활이 특징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운동과 독서를 한 후 7시 30분에 회사로 출근합니다. 각 공장에서 올라온 보고를 이메일로 확인하고 지시를 내립니다. 오전에 거래처 등과 전화하고 오후에는 3시간 정도 외부와 연락을 끊은 채 사업 구상과 독서로 시간을 보냅니다. 5시면 퇴근해 저녁식사 후 산책을 하고 돌아와 일기를 쓰고 자리에 눕습니다. 새벽에 일어나는 습관은 30년째이고 저녁 약속을 줄이고 일찍 자는 건 5년이 넘었죠. 건강도 좋아지고 일의 능률도 오르더군요.”
그녀의 경영 방침은 ‘간섭은 최소로, 책임감을 부여해 소신 있게 일하고 성과를 함께 나누자’다. 그래서 전체 직원회의는 월 1회로 제한하고 허례를 줄이기 위해 공장은 예고 없이 방문한다. 매달 직원들의 애로 사항이나 건의 사항을 받아 근무 환경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 천옥금 회장(앞줄 왼쪽 두번째)이 ‘2015 세계한인회장대회’ 개회식에 중국동포 기업인들과 함께 참가해 박근혜 대통령(가운데)과 남긴 단체사진
뚜렷한 실적을 올린 직원에게는 회장 급여에서 일부를 떼어내 보너스로 지급한다. 반대로 직원들이 직접 작성하는 근무평가표에서 최하점을 3회 연속 받는 직원은 스스로 그만두는 분위기를 만들어 놨다.
그녀는 “70여 명의 직원 중에 연속으로 최하점을 받아 그만두는 사례가 지금까지 3번에 불과하다”면서 “최하점이 누구라는 것을 본인에게만 알려서 체면도 살려주고 스스로 노력하는 분위기를 조성했기에 이직자가 거의 없다”고 자부했다.
메모광인 그녀는 어디를 가든 메모 수첩을 들고 다니며 사업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듣거나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 즉시 적고 필요하면 스크랩을 해둔다. 지금까지 매일 기록한 일기만도 100권이 넘을 정도.
그렇게 쌓인 기록을 바탕으로 2011년에는 ‘중소기업 융자 성공 노하우’란 제목의 경영서를 출간했다. 올해는 ‘중소기업 융자 성공 사례집’도 펴냈다.
언뜻 보면 24시간도 부족할 듯 한데 그녀는 “미리미리 정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업무에 부담이 없다”며 “사업을 궤도에 올리면 그 이후는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기 때문에 다른 일에 또 도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천 회장은 대천투자회사를 설립해 제조업과 농장 그리고 투자사업 등 여타 사업들을 총괄 경영할 생각이다. 사업체를 일일이 진두지휘하던 스타일에서 벗어나 미디어사업에 집중하면서 경영의 합리화를 꾀하고자 함이다. 이에 따라 미디어사업과 대천투자회사가 있는 베이징, 제조업과 농장 등이 있는 하얼빈 그리고 경제교류 파트너들이 있는 한국을 오가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교원 공무원에서 기업인으로
천옥금 회장은 원적이 한국 경상북도이다. 아버지의 고향은 구미, 어머니 고향은 안동이다.
하얼빈상업대학을 졸업한 그녀는 5년 동안 모교에서 회계학과 기업관리를 가르쳤다. 모교에 남은 것은 그가 졸업시험에서 1등을 했기 때문이다. 당시 농촌 출신이라 대학을 마친 후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던 그는 하얼빈에 남기 위해 열심히 공부했고, 결국 모교의 유일한 중국동포 교수가 됐다.
도시에 남는 데는 성공했지만 상아탑에 갇혀 지내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꿈은 전공을 살려 기업가나 은행가가 되는 것이었다.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대학을 마칠 때 동기 중 유일하게 주산 특 1급을 딴 그녀는 대학에 몸담고 있는 동안 중국상업계통 계산기술대회에 나가 6등을 했다.
헤이룽장 TV가 이 조선족 여 교수의 입상 소식을 뉴스로 전했다. 하얼빈시의 한 간부가 이 방송을 보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한국에 주재할 공무원을 뽑는데 한국말을 하느냐”고 물었다. 천 교수는 이렇게 해서 한국어 테스트 등 시험을 보고 공무원이 됐다.
한중 수교가 이뤄진 1992년 그녀는 중국 하얼빈시 정부 공무원 신분으로 한국땅을 밟았다. 한국에 IMF 체제가 들어선 97년 12월까지 주재하는 동안 중국 대사관 모임 등을 통해 한국 기업인들과 폭넓게 교류했다. 천 회장은 서울시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와 한국 기업을 중국과 연결해주는 일을 하면서 쌓은 다양한 경험을 살려 2001년에 하얼빈에 한국산 생활·혼수 용품 도소매 매장을 냈다.
“처음에 한국 분들이 많이 도와주셨죠. 저더러 중국에 돌아가면 한국 상품을 한번 팔아보라면서 물건을 그냥 대주셨으니까요. 제가 본래 인덕이 많아요.” 천 회장은 창업시절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번 돈으로 그 이듬해 대천유통이라는 회사를 설립했다. 드디어 기업인의 꿈을 이룬 것이다. 대천이란 회사 이름은 자신의 성 천(千)에 큰 대(大) 자를 얹어 지었다. 상표는 ‘大千’이라고 쓴 띠를 두른 지구의 모습이다.
3년이 지나 기업 경영의 노하우를 익혀 자신이 붙자 흑룡강대천금강식품유한회사를 설립, 농장에서 버섯 등을 키워 건강식품으로 가공 판매했다. 천 회장의 농장은 현재 감자와 옥수수도 재배해 세계적인 패스트푸드 회사인 KFC의 중국 법인에 전량 납품하고 있다.
▲ 지난 7월 10일, 류쟈원(刘加文)신화망 부 총편집장과 ‘신화망 한국어채널 독자 광고대리 협의’를 맺은 천옥금 회장(오른쪽).
그녀가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한 것은 2007년 하수도 배관 제조 공장을 차리면서부터. 중국 경제성장의 여파가 최북단인 헤이룽장성에까지 미치자 각종 개발로 대규모 토목공사가 늘어날 것을 예감한 천 회장은 포스코로부터 사들인 친환경적인 아연도금 파이프로 배수관을 만들어 기존 제품과의 차별화를 꾀했다.
단숨에 정부 하수도관 발주를 독점하게 되자 이어서 상수도관 공장도 세워 배관 분야에서 하얼빈 제1기업으로 떠올랐다. 간접 인프라 확충으로 도로가 늘어나는 것을 보고 태양광 가로등 제조업에도 뛰어들었다. 헤이룽장성은 중국 최북단인 만큼 겨울에는 영하 20도는 기본이라 배터리가 얼지 않고 습기를 막는 방수 처리가 된 기술을 독자적으로 개발해 특허도 따냈다. 하자 발생 시 최단 시간에 교체하는 신속한 서비스로 신뢰를 구축했다.
그녀는 현재 7개 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4개는 주식회사, 3개는 개인회사다.
한중 경제교류 정확한 정보가 우선
“중국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대충 알고 덤비면 실패해요. ‘조선족들에게 사기를 당했다, 못 믿을 사람들이다’ 말하는 한국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대부분 그 조선족이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정보의 부족으로 인한 한계 때문인 경우가 많아요.”
천 회장은 “중국과 교류하려면 중국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무엇보다 필요하다”고 중국진출 기업의 첫 번째 요건으로 정보를 강조한다. 급변하는 중국사회에서 비즈니스를 하려면 한 개인이 가진 정보에 의존하는 시대는 지났고, 이젠 정확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소식통이 중요하다. 한국기업과 비즈니스하려는 중국 현지기업인 역시 마찬가지이다.
“나름 한국을 잘 알고 한국어를 잘 하는 나도 비즈니스 파트너를 구하기가 어려운데 일반 중국 기업인들은 오죽하겠어요? 알리바바 등 전자상거래가 활발하게 커 가고 있지만 정보력 부재 혹은 신용에 관한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확실한 정보와 신용을 바탕으로 한 진정성 있는 파트너십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무역과 제조업 등을 통해 안정적으로 연매출 9천만 위안을 올리자 사업 영역도 확대했다. 지난해 성장 가능성 있는 중소기업에 투자하는 기업투자회사도 설립했고 올해는 중국 신화통신사 인터넷판 신화망(新華網)의 한국어채널 관리 운영권도 5년간 독점으로 계약했다.
천 회장이 미디어분야로 사업을 확장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한중 간 경제교류 활성화를 위한 믿을 만한 소통의 장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천 회장은 올해 7월 10일 대천미디어기획유한회사 이름으로 신화망 한국어채널 협력 사무에 관한 계약을 체결했다. 계약에 따라 대천미디어가 신화망 한국어채널의 단독 광고대리 협력파트너가 되고 5년 간 신화망 한국어채널을 관리, 운영하게 된다.
신화망 한국어판의 단독 대리협력파트너로서 대천미디어는 한국과 중국 간의 투자 유치, 문화, 엔터테인먼트, 여행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진행될 합작을 위해 온라인과 오프라인 홍보 및 보급 서비스를 제공하게 된다.
신화망과 대천미디어의 협력 체결에 관해 천 회장은 “전 세계 한국어 유저들에게 중국의 정치, 경제, 문화를 전파하고 재중 한국인들의 생활상을 생생하게 소개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또한 궁극적으로 “재중 한국기업의 발전과 양국 간의 민간 교류 협력을 강화, 발전시키기 위한 측면도 있다”고 강조한다.
사업은 ‘돌격형’ 생활은 ‘계획형’
천 회장은 분야를 가리지 않고 사업을 확장하는 ‘돌격형’이지만 실제는 치밀한 계산과 ‘계획형’ 생활이 특징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운동과 독서를 한 후 7시 30분에 회사로 출근합니다. 각 공장에서 올라온 보고를 이메일로 확인하고 지시를 내립니다. 오전에 거래처 등과 전화하고 오후에는 3시간 정도 외부와 연락을 끊은 채 사업 구상과 독서로 시간을 보냅니다. 5시면 퇴근해 저녁식사 후 산책을 하고 돌아와 일기를 쓰고 자리에 눕습니다. 새벽에 일어나는 습관은 30년째이고 저녁 약속을 줄이고 일찍 자는 건 5년이 넘었죠. 건강도 좋아지고 일의 능률도 오르더군요.”
그녀의 경영 방침은 ‘간섭은 최소로, 책임감을 부여해 소신 있게 일하고 성과를 함께 나누자’다. 그래서 전체 직원회의는 월 1회로 제한하고 허례를 줄이기 위해 공장은 예고 없이 방문한다. 매달 직원들의 애로 사항이나 건의 사항을 받아 근무 환경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다.
▲ 천옥금 회장(앞줄 왼쪽 두번째)이 ‘2015 세계한인회장대회’ 개회식에 중국동포 기업인들과 함께 참가해 박근혜 대통령(가운데)과 남긴 단체사진
뚜렷한 실적을 올린 직원에게는 회장 급여에서 일부를 떼어내 보너스로 지급한다. 반대로 직원들이 직접 작성하는 근무평가표에서 최하점을 3회 연속 받는 직원은 스스로 그만두는 분위기를 만들어 놨다.
그녀는 “70여 명의 직원 중에 연속으로 최하점을 받아 그만두는 사례가 지금까지 3번에 불과하다”면서 “최하점이 누구라는 것을 본인에게만 알려서 체면도 살려주고 스스로 노력하는 분위기를 조성했기에 이직자가 거의 없다”고 자부했다.
메모광인 그녀는 어디를 가든 메모 수첩을 들고 다니며 사업에 도움이 되는 이야기를 듣거나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 즉시 적고 필요하면 스크랩을 해둔다. 지금까지 매일 기록한 일기만도 100권이 넘을 정도.
그렇게 쌓인 기록을 바탕으로 2011년에는 ‘중소기업 융자 성공 노하우’란 제목의 경영서를 출간했다. 올해는 ‘중소기업 융자 성공 사례집’도 펴냈다.
언뜻 보면 24시간도 부족할 듯 한데 그녀는 “미리미리 정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업무에 부담이 없다”며 “사업을 궤도에 올리면 그 이후는 전문 경영인에게 맡기기 때문에 다른 일에 또 도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천 회장은 대천투자회사를 설립해 제조업과 농장 그리고 투자사업 등 여타 사업들을 총괄 경영할 생각이다. 사업체를 일일이 진두지휘하던 스타일에서 벗어나 미디어사업에 집중하면서 경영의 합리화를 꾀하고자 함이다. 이에 따라 미디어사업과 대천투자회사가 있는 베이징, 제조업과 농장 등이 있는 하얼빈 그리고 경제교류 파트너들이 있는 한국을 오가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